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 국내에 공론화 된 것은 1990년대였다. 1990년대 이 민간인 학살을 공론화한 인물은 바로 베트남에서 유학하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했던 구수정 박사를 통해서였다. 구수정 박사에 따르면 대략 9,000명 이상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이 주둔했던 꽝남과 꽝응아이 그리고 빈딘성 일대에서 학살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서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간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던 마을에는 주민들이 세운 증오비나 위령비가 있고, 그 피해자들이 적잖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 내에는 우리도 가해자였다는 인식이 생겼고,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는 일본의 침략이나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같은 선상에서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되고, 국민들 사이에서 반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인터넷 상에선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인식이나 여론이 생겼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위키 사이트들 중에서 가장 접속률이 많은 나무위키가 그러하다.

 

나무위키에 있는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서에 들어가 보면 굉장히 긴 장문의 글이 적혀있다. 이 장편의 문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증거가 없고, 대부분 거짓 증언이나 과장증언에 기반한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이 드는 예시 중 하나가 빈안 학살 중 일부인 '고자이 학살'이 그러하다. 이들이 고자이 학살에 대해 하는 이야기중 하나가 현재 고자이 학살 현장 벽화에 그려진 맹호부대 군인의 마크가 맹호부대 마크가 아닌 남베트남군 특수부대인 레인저 부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고자이 학살이 한국군이 한 학살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출처를 찾아보면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들의 일부 주장에 기반한 것이다. 물론 마크를 자세히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고자이 학살 현장 근처에 살던 주민들이나 피해자 대다수가 한국군이 했다고 주장하기에, 남베트남군이 벌였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주월한국군 총사령관인 채명신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즉 채명신이 "한국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한국군의 기본적인 구율로써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한홍구 교수의 저서 <대한민국사>에 따르면 1966525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발간한 전훈집에는 부락은 모든 적활동의 근거지이며, “게릴라의 보급, 인적자원 및 정보수집의 근원은 부락에 놓여 있으며 베트콩 하부구조의 기반은 부락과 주민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당시 베트콩 포로를 무단으로 처형했던 참전용사 김영만은 "채명신의 주장은 병사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거기다 나무위키 측 자료들을 읽어보면 인용된 출처가 명확하지 못하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있는 퐁니퐁넛 학살이나 빈호아 학살 그리고 하미마을 학살 등을 살펴보면, 최소한 부정론자들이 비하하는 한겨레나 그외의 다수 서적들이 인용되어 있는 반면 나무위키 파일은 그런 수고조차 없다. 또한 가끔씩 '빨갱이'와 같이 자극적인 감성적 단어들도 자주 보인다. 이러한 매체의 영향을 받아 유튜브나 네이버 뉴스 등에서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는 댓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퍼오는 자료들 또한 나무위키에 있는 내용들이 대다수다. 쉽게 말해 나무위키에서 만들어진 반공주의적으로 각색된 가짜뉴스들이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위키피디아에서도 학살 부정론자들의 반달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어 위키피디아에서 토론할때 가져오는 자료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고 나무위키에서 하는 일반적 주장들을 그저 앵무새 처럼 반복하는 수준이다. 출처가 있는 자료를 퍼와봤자, 채명신의 언급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나무위키를 포함한 일부 인터넷 사이트의 내용들은 상당히 출처가 부족한 내용들이고,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주장들을 사실인 것 처럼 포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문서상으로는 부족한 건 맞다. 그러나 미국의 미라이 학살도 공론화 되기 전에는 100명 이상의 베트콩 사살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당시 베트남인들은 한국군에 대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용병으로 와서 잔혹한 짓을 했던 아프리카측 병사들을 보는 입장과 비슷했다. 응우옌 비엣 타인의 저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겠다.

 

"미국인들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미국인 관할을 순찰하던 한국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 출신의 한 아이가 그들의 부대로 걸어 들어가 몸에 묶고 있던 베트콩 폭탄을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마을 아이들에게 끔찍하게 보복했다. 그 사건 이후에, 한국인 병사들이 학교로 가서 소년 몇 명을 끌고 나와 우물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본보기로 삼기 위해 그 속에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이런 짓을 하는 한국인들이 마을 사람들 눈에는 프랑스인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따라다니면서 더 거칠고 비열하게 굴었던 모로코인들처럼 보였다. 2차 대전 때의 일본인들처럼, 한국인에게는 양심이 전혀 없어 보였고, 무자비한 살인기계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를 지저분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딱 알맞은 장소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출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p.198~199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부정론은 매우 비양심적이여 절대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들의 태도나 주장은 박정희 시대 형성된 반공주의적인 입장과 똑같다. 이러한 태도를 가져선 안된다. 따라서 나무위키를 포함한 일부 인터넷에 있는 내용들은 사실이 아니며, 비판의 대상이 되야할 문제다. 따라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부정론은 비판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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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가 대학에 들어가 1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군부대 입소 훈련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마침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는 때였던지라 처음에는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결국 선배들은 더 큰 목적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입소 훈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주로 낮에는 군사 훈련을 받고 저녁에는 정신 교육을 받았는데, 어느 날 저녁 베트남의 이른바 보트피플과 관련된 이야기를 영상으로 틀어주었다. 보트피플이란 베트남 통일 이후 작은 배로 베트남을 탈출한 난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강당 스크린에는 어떤 보트피플이 지나가던 큰 배에 구조를 애걸하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 거기에, 봐라, 북베트남이 적화통일을 하고나니 저 사람들은 고국에서 쫓겨나왔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바다 한가운데서 오갈 데 없는 꼴이 되지 않았느냐, 하는 내레이션이 붙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둔한 편이었던 옮긴이는 아무 생각 없이 그 화면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냥 감명만 받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둔할 뿐만 아니라 경솔하기까지 했던 옮긴이는 그런 느낌을 입 밖에 내어 말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근처에 앉아 있던 예리한 친구가, 아니, 어떻게 그런 무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느냐, 여태 전환시대의 논리도 안 읽어보았느냐, 하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무안을 당한 꼴이라 그 자리에서는 무시하는 척했지만, 둔하고 경솔할 뿐만 아니라 귀까지 얇았던 옮긴이는 얼마 후에 그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구해 보았고, 물론 당시의 다른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들었던 것들이 물구나무를 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옮긴이가 경험한 것을 당시 유행하던 말로 의식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정부와 전환시대의 논리-저자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는 한 젊은 대학생의 의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했던 셈이다. 물론 공정한 경쟁은 아니어서, 정부는 저자를 가두고 책을 판매 금지하는 폭력을 불사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 정권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베트남 전쟁에 대하여 정부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만큼 이 문제를 중시했던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베트남전을 둘러싼 정부의 선전은 엄청났던 것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노래 가사 외우는 일에 결코 유능하달 수 없는 옮긴이가 가시는 곳 월남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하는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겠다. 단지 말과 노래로 하는 선전뿐이었으랴. 아버지가 월남에 갔다온 친구네 살림은 뭔가 모르게 윤택하게 바뀌었고, 가전제품도 상표와 광택이 눈부셨다. 물질에 별 관심이 없었을 어린아이 눈에 그런 것이 보였을 정도이니, 당시 어른들에게 월남을 통해 유입되는 는 어떤 선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해석이 중요했던 것은 월남 파병의 정당화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베트남 상황과 한반도 상황이 여러모로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 문제였는데-사실 한반도와 베트남은 근대 이전 중국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고통에서부터 근대의 분단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점들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이 닮은꼴에 주목한 사람들에게는 한쪽의 상황 해석을 다른 쪽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고 싶은 유혹, 또는 한쪽의 상황 전개를 다른 쪽에서 이후에 전개될 상황에 대한 예시로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누구보다도 이 유혹에 깊이 빠져든 쪽, 또는 이 유혹을 반긴 쪽은 바로 당시의 정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75년에 남베트남 정부가 무너지자 이것을 구실로 민주적 권리들을 억압하는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것이 그 증거이다. 바다 건너 나라에 이데올로기 문제를 구실로 파병을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먼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을 이유로 정변에 가까운 사태를 일으킨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만큼, 당시 정권의 남베트남과의 동일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정권만큼은 아니겠지만 옮긴이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베트남 역사와 우리 역사의 비슷한 점에 새삼 놀랐고, 또 그런 유사성을 배경으로 우리와 다른 점들이 더욱 도드라지게 부각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비교해 가며 이 책을 읽는 것이 상당히 자극적인 독서 경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 덕분에, 즉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계속 참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호치민이라는 인물 역시 좀더 생생하게, 강한 환기 효과를 발휘하며 다가온다. 이 점에서는 이 전기의 저자인 윌리엄 J. 듀이커에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듀이커가 유물을 세심하게 붓으로 털어내어 발견된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 전기 작가라는 점이다. 바랜 부분을 채색하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을 땜질하는 대신 바랬으면 바랜 대로, 조각이 떨어져 나갔으면 떨어져 나간 대로 그대로 두기 때문에 그가 그린 초상에는 빈 곳이 많으며, 그 빈 곳은 읽는 사람이 상상력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것은 특히 베트남이나 호치민처럼 우리와 각별한관계에 있는 대상의 경우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이 옮긴이의 판단이다.

 

옮긴이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들이 우리나라 상황을 배경에 깔고 읽는 것처럼, 저자인 듀이커 역시 학자로서 엄밀성중립성을 지킨다 하지만, 베트남과 나름대로 특별한 관계를 가진 미국의 학자로서 이 전기를 써나갔다는 점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이 저자가 자신의 관점 또는 특정한 미국인 집단의 관점을 강요하려 한 삼류 전기가 아님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따지고 들자면, 저자가 30년에 걸쳐 호치민이 한 식구로 느껴질 정도로그 인물과 베트남을 연구해온 동기 자체가 객관적이지는 않으며, 미국인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자체도 의식하는 한 방식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일급의 전기를 읽는 도중 가끔 으슥한 곳에서 안경을 쓴 미국인 노학자의 모습과 마주치게 될 텐데, 그것은 독자에 따라 반가운 만남이 될 수도 있고 불쾌한 만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만남의 종류가 어떠하든, 또 저자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민족과 계급의 관계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시대의 과제를 감당하며 정직하고 겸허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긍지는 그 무엇으로도, 심지어 세월로도 훼손할 수 없다는 옮긴이의 독후감에 독자와 저자가 흔쾌이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번역 과정에서 베트남어와 베트남 문화에 대해 조언해주신 최귀묵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호치민 평전 후기

역자 정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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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방송들의 반북선전에 대한 단상

어용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텔레비전 채널인 TV조선과 채널A를 보면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방송이 있다. 대표적으로 ‘모란봉 클럽‘과 ‘이제 만나러 갑시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채널들은 과거 북한에 살다가 탈북한 이들을 대상으로 북한을 논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대략 살펴보면, 북한에 대한 시사와 일상 그리고 정치 및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있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얘기들 99.9% 수준으로ㅈ악의적이거나, 반북주의를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예를들면 ˝한글을 김일성이 만든 것으로 북한사람들은 믿는다.˝던지, ˝김정일이 아는 사람에게 ˝너 나야 저년이야˝라고 하며 아내의 총살을 명령했다.˝든지, ˝심완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말을 잘못해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기전 북한 경찰들에게 폭행당하며 넌 이름부터가 잘못됐어 이 새키야˝라고 욕을 먹었다던지 뭐 이런 류의 내용들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들이 하는 얘기들을 보면 출처와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찼다. 마치 냉전시대 당시 이른바 미국의 어용언론들이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을 일삼던 것이 생각날 정도다. 실제로 그랬었다. 《수용소 군도》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반공소설로 유명한 솔제니친은 소련의 굴라그와 일상생활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과 새빨간 거짓말을 일삼았었다. 그러나 패래스트로이카로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그 거짓말의 진상이 폭로됐다.

즉 현재 어용언론이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거짓말들과 위조들을 일부 탈북자들을 이용하여, 사실인냥 포장하고 있다. ‘현송월 총살설‘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거짓말들이 폭로가 되었지만, 이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거짓말들은 꾸준히 재생산 되고 남한 시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또한 이 어용언론 방송들은 북한에 대해선 조금이라도 긍정적이어선 안된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항일투사 국가대우를 마치 왕족의 사치나 귀족정의 권력 남용으로 묘사하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북한의 항일영웅 대우는 중국의 인민해방군 출신 참전용사나 베트남의 베트민 혹은 베트콩 참전용사들에 대한 국가의 영웅 대접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야할 문제다. 즉 이들이 부르주아적 반공의 관점으로 볼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채널들을 보면 그냥 화가난다. 그리고 이런 새빨간 거짓말들이 주지의 사실로 받들여지는 사회가 스스로의 비판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날조와 위조 그리고 왜곡에 맞서 북한에 대해 진실의 눈으로 보아야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 거짓증언들을 사실로 재생산하는 채널들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반북주의는 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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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단행한 월남 파병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이승만과는 달리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단행했는데이 경제개발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 바로 월남 파병이었다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군대를 파병했던 베트남 전쟁은 국제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비난을 받는 전쟁이었고미국의 참전명분이 너무나 없는 전쟁이었다즉 이러한 전쟁에 박정희는 돈을 벌기 위해 군대를 파병했던 것이다그렇다면 월남 파병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고어째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일까?

(작전지역에 있는 한국군)

 

사실 한국 정부의 베트남 파병은 미국이 요청해서 간 것 보다는 한국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1961년 11월 11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박정희는 11월 14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백악관에서 1시간 20분 동안 정상회담을 가졌는데여기서 박정희는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할 용의가 있다.”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밝혔다미국에서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보다 수용하게 된 것은 케네디가 암살 이후 등장한 린든 B. 존슨 정부에서였다린든 존슨 정부가 통킹만 사건을 계획하던 1964년 7월 30일 박정희 정부는 국회본회의에서 베트남 공화국 지원을 위한 국군부대의 해외파병 동의안을 제출시켜 통과시켰다이렇게 해서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전투부대 파병이 단행된 것이다.

 

한국은 그 이전부터 이미 남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한 상태였다. 1963년 9월 11일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부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았던 박정희는 1964년 130명 규모의 의무부대와 10명의 태권도 교관을 보냈고같은 해 2천명 규모의 비전투부대인 공병대 중심의 병력을 보냈다미국의 존슨 정부가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한국에 요청하자 한국 정부는 곧바로 전투부대 파병을 결정했고, 1965년 10월 베트남 전쟁에 전투부대를 파병했다이렇게 해서 한국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 완전히 철수하는 시점까지 총 8년 5개월 동안 지속되었다이 기간 동안 총 30만 명 이상이 참전했고상시적으로 5만 이상의 병력을 남베트남에 주둔시켰다베트남에 파병된 부대로는 맹호부대청룡부대백마부대십자성 부대비둘기 부대 그리고 주월사 백구 공군지원단 등이 있었다이중에 전투부대는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그리고 백마부대가 있었다.

(파병가기 전 박정희와 악수하는 한국군)

 

베트남에 전투부대 파병은 미국 측이 파병의 대가로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차관공여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미국은 한국의 베트남 전투부대 파병에 대한 보상조치로 14개항으로 이루어진 <브라운 각서>를 마련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추가파병에 따른 비용은 미국정부가 부담한다.

2. 한국군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를 현대화 한다.

3. 베트남 주둔 한국군을 위한 물자 용역은 가급적 한국에서 조달한다.

4. 베트남에서 실시되는 각종 건설·구호 등 제반사업에 한국인 업자를 참여시킨다.

5. 미국은 한국에 추가로 AID 차관과 군사원조를 제공하고베트남과 동남아시아로의 수출증대를 가능케 할 차관을 추가로 대여한다.

6. 한국이 탄약생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자재를 제공한다.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 초기 논리적 차원에서 과거 6.25전쟁 기간 중에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이 한국에 군대를 파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월남에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이에 보답하려는 의무감을 강조했고더 나아가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7년 1월 17일 대전에서의 유세에서 박정희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었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만약 우리 한국군이 파견되지 않았다면 당시의 내 추측으로는 주한미군 2개 사단이 베트남으로 갔을 것이다당시 베트남미국 정부가 한국군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우리가 보내기 싫으면 안 보낼 수도 있습니다그럴 경우 미군 2개 사단이 갔을 겁니다우리나라의 국방을 위해서도 한국군이 월남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박정희 이러한 논리로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옹호하고 추진했다이러한 박정희의 행위는 당연히 미소냉전에서 극대화된 반공주의(Anti-Communism)의 논리였다이것과는 별개로 한국 정부가 베트남 파병에서 벌어들인 경제적 이득은 막대했다수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남베트남에 진출하여 돈을 긁어모았고직접적인 현금 수입만 2억 360만 달러라는 추정이 있을 정도다이른바 월남 특수라는 것이 있었는데 한진그룹이나 현대그룹 같은 재벌이 바로 이 과정에서 탄생하게 되었다또한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해외 건설 특수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군 사진, 아이를 들고 있는게 인상적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베트남 파병으로 적잖은 돈을 벌었고경제발전에 초석을 깔 수 있었다그렇다면 과연 베트남에 파병되어 한국 정부에게 돈을 마련했던 군인들의 대우는 어떠했을까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열악했다한국 정부는 베트남 파병 기간인 1966년에 6,949만 달러를 벌었고 이후 4년간 총액 6억 2,502만 달러 규모의 수익을 올렸다그러나 이것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던 일본보다 더 적은 수익이었으며심지어 훨씬 더 적은 인원을 파병했던 호주나 뉴질랜드태국필리핀 그리고 대만이 벌어들인 수익보다도 적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당시 한국이 월남 파병에서 벌었던 총액 10억 달러는 고작 30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던 대만보다 약간 더 돈을 번 수준이었다브라운 각서의 주인공인 주한 미 대사 브라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베트남에 파병한 한국의 이득은 파병하지 않은 일본보다 적고 대만보다는 약간 많은 정도이다.”

 

당시 전투부대로 파병된 군인들의 월급을 보면 그러한 모순점들은 아죽 극명하게 드러난다당시 한국군 사단장인 소장이 미국으로부터 받는 월급여가 354달러인 반면필리핀군과 태국군의 소대장인 소위는 각각 매월 442달러, 389달러를 받았다심지어 일반 사병들의 경우는 남베트남군의 월급여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고한홍구 교수는 주장한다주월한국군 1인당 유지비가 연간 5천 달러인 반면미군 1인당 유지비는 1만 3천 달러였다앞에서 언급한 사병들의 월급을 비교하자면, 1967년 기준으로 미군 상사의 월 보수액이 402.25달러필리핀이 284.8달러태국이 266.39달러인데 반해 파월 한국군 상사는 102,5달러에 불과했다하사의 경우 미국이 333달러필리핀이 279달러 그리고 태국이 257달러인데 반해 한국군은 82달러밖에 안 됐다즉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월급은 미군의 1/5, 필리핀이나 태국군의 1/3밖에 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총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한국군)

 

이처럼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 군인의 대우는 참으로 형편없었다한 마디로 착취에 시달린 것이나 다름없다국가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거기다 참전한 이들 중 적잖은 수가 미군이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고엽제에 노출되어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거기다 이런 참전 과정속에서 한국군은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대략 9,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5,000명에서 10,000명 이상의 라이따이한이 태어났다특히나 민간인 학살은 워낙 잔인해서 학살당했던 곳에 증오비나 위령비가 세워질 정도였다.

 

주월한국군사령관이던 채명신 장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쳐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정책을 했다고 하지만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특히나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설정해놓은 자유사격지대에서는 그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상관이 없었다즉 민간인 학살은 이런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1966년 5월 25일 주월한국군사령부가 발간한 전훈집에는 부락은 모든 적활동의 근거지이며, “게릴라의 보급인적자원 및 정보수집의 근원은 부락에 놓여 있으며 베트콩 하부구조의 기반은 부락과 주민이다라고 강조했다쉽게 말해 민간인 학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한국 군대가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민간인 학살 현장에 참여했던 베트남전 참전용사 류진성씨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내놓았다.

 

전통적으로 킬러 컴퍼니(Killer Company)’라는 부대가 있습니다살인 중대그 살인 중대가 지나가는 곳에는 지나가면 생명체는 없습니다그게 킬러 컴퍼니라는 걸 우리는 압니다야수들의 놀이터가 바로 전쟁터입니다.”

 

이처럼 베트남 전쟁에서 발발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이러한 구조와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었다거기다 박정희가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이미 미국이 명분에서조차 호치민에게 진 전쟁이었다그 이유는 <전환시대의 논리>저자 리영희가 말하듯이베트남 전쟁은 1세기에 걸친 항불전쟁 즉 독립전쟁의 연장선상이었기 때문이다당시 미군과 한국군이 적으로 규정한 베트콩들은 사실 자신들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으며이 독립투쟁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호치민과 북베트남 공산당이었다즉 남베트남 정권은 펜타곤 페이퍼가 설명한 것과 같이 미국의 창조물이었고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 또한 미국의 꼭두각시였다따라서 베트남 전쟁은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고그런 전쟁에 한국은 돈을 벌기 위해 참전한 것이다.

(1965년 퀴논에 도착한 한국의 맹호부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경제부흥의 기회를 얻었다마찬가지로 한국도 베트남 전쟁을 통해 경제부흥의 기회를 얻었다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결국 월남파병의 경제성장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에 저항하던 베트남 인민의 피와 한국 피지배계급의 피를 먹고 탄생한 작품이었던 것이다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험에서 한국 사회가 전쟁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혁명의 물결에서 한국은 역으로 반공주의가 강화되었고반전운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집필하여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렸던 기자 리영희 또한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정도다결국 이러한 비극이 2003년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참고문헌

 

20세기 우리 역사강만길창작과비평사, 1999

 

대한민국사 아리랑 김산에서 월남 김 상사까지한홍구한겨레신문사, 2003

 

박정희 평전전인권이학사, 2006

 

한국현대사 다이제스트 100김삼웅가람기획, 2010

 

베트남 전쟁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박태균한겨레출판, 2015

 

박정희 평전김삼웅앤길, 2017

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한규한책갈피, 2018

 

Ghosts of the Vietnam War - BBC News.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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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1~8 세트 - 전8권 - 김일성 항일 회고록, 계승본
김일성 지음 / 민족사랑방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국내 출간에 대한 단상

블라디미르 레닌의 생일인 어제 어용언론 조선일보가 쓴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국내 서점에서 판매 시작˝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2011년 당시 한국에서 국가 보안법 위반에 해당한 이적표현물을 출간했다는 이야기였다. 쉽게말해 처벌 혹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늬양스의 기사였다.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이 태어난 시점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던 1945년까지를 다룬 회고록이다. 총 8부작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김일성 본인의 항일무장투쟁에 초점을 두었다. 페이지는 8권까지 합치면 3,500페이지가 넘는다. 참으로 방대한 분량의 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북한 측 저작을 읽는 건 국립중앙도서관에 북한 자료실 열람을 제외하면 국가보안법에 적용되는 행위이다. 그 이유는 북한 출판물 자체가 이적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보안법이 희대의 악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헌법에 나온 것과 같이, 소위 민주국가에 사는 우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았을때, 당연히 북한에서 출판된 저작이 국내에 출판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준수하려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국보법 처벌‘을 운운하고 있으며, 인터넷 서점 페이지에 들어가 악플봐 비방을 일삼고 있다. 그들이 이와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대상을 단순히 적대시 하는 생각과 세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김일성의 이미지는 단순히 독재자나 폭군같은 이미지다. 미국이나 서방에서 스탈린을 2천만 명 학살했다는 거짓말을 믿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도, 한반도의 미래라는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고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김일성의 또 다른 이면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 북한의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 즉 독립운동을 했다는데 있다. 김일성은 1931년 만주사변 시점부터 1942년 미드웨이 해전까지 항일투쟁을 만주에서 했었다. 김일성 또한 수 차례의 전투에 참가했고, 1940년 홍기하 전투의 경우엔 일본군 100여 명 이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쉽게 말해 김일성은 전설적인 항일투사였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김일성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편향된 한 가지 측면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또한 그것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20세기 역사에서 현실 사회주의권과 제3세계의 인물들을 대하던 태도와 똑같다. 그 결과가 한국에는 이승만 남베트남에는 응오딘지엠, 칠레에는 피노체트, 필리핀에는 마르코스와 같은 악랄한 학살자 혹은 독재자들을 지원한 동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의 입장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또한 북한 사회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도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세기와 더불어>가 과장과 뻥튀기 그리고 각색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 책에도 신뢰가 매우 떨어지는 구절들과 사료적으로 빈약한 근거빈약의 내용들도 분명 존재한다. 또한 항일전과 기록이나 몇몇 서술들은 기존의 북한 서술이 보여주듯이 숫자의 과장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서술이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신빙성이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학술적인 측면과 사료적 빈약성 그리고 부풀려진 과장 문제와는 별개로, 단순히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또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1948년 여순항쟁 이후 이승만과 친미친일 세력들이 일제의 치안 유지법을 모태로 제작한 국가 보안법의 야만성과 악랄함을 보여주는 예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은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감정이 앞선다. 김일성의 회고록이 문제적 시리즈라는 점과는 별개로 항일투쟁 당시의 김일성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 체취를 많이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마치 <호치민 평전>의 저자 찰스 펜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본인이 OSS에 있으면서 만났던 호치민에게 느꼈던 감정을 저작에 잘 담아냈듯이 말이다. 이런 점에서의 가치는 이 <세기와 더불어>가 충분히 있을거라 생각한다.

드디어 문제적 시리즈가 국내에 출간됐다. 참으로 기쁘고 놀라운 일이다. 국가 보안법이라는 홍콩 보안법이 새발의 피로 보일 정도로 악랄한 악법이 살아있는 이 땅에서 이런 문제적 시리즈를 출간한 출판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앞으로 <세기와 더불어>외에도 보다 많은 북한의 서적들이 출간되어, 다양한 입장과 시각에서 평가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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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제일쉬워요 2021-04-26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각으로 이 책을 읽어보셨군요.. 솔직히 말하면 저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생소합니다. 북한 관련 저작물은 당연히 불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출판한 데에 큰 의의가 있는거군요.. 사서 읽어볼거 같진 않지만 마냥 이 책이 출간된 것에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사라진거 같습니다.

NamGiKim 2021-04-26 08: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목 2021-04-26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에 동의합니다. 다만 이번에 출간된 <세기와 더불어>는 정식으로 저작권 협의를 거치지 않은 ‘해적판‘인 것 같습니다. 엄연히 북한도 베른 협약에 가입되어 있어 북한의 저작물도 저작권 보호 대상인데, 관련한 뉴스를 보면 정식 계약은 당연히 하지 않은 것 같고, 저작권료 공탁 등 절차도 밟지 않은 것 같거든요. 아무리 대북 제재 때문에 정식 출판계약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지만...

어니언 2021-04-2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할게 없어서 대한민국국민에게 폭격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심지어 지네국민도 무차별하게 살해하고 굶기고 인권유린도 가차없이 이뤄지는 적국에 대해 궁금할거도 많고 이적행위라는거에 의문 갖는거 자체가 아예 다른나라 사람이고 북한사람인가봐요 한국사람이면 당연히 분노하는 입장이 되어야 정상 아닌가요 직접경험하지않은 사람도 같은 교육받고 자라도 이렇게 다를수잇구나

NamGiKim 2021-04-26 19:28   좋아요 0 | URL
정확히 얘기하자면 북한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폭격한 적 없어요.(한국전쟁 초기에 전투기 기총소사를 빼면) 정확히는 연평도 포격이 있었죠. 서울 불바다와 같은 호전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건 하나의 미국과의 대립에서 내부결속을 위한 움직임일 뿐이고요. 긴장속에서 양측 다 여러 사건이 있었는데, 단순히 북한의 사례밀 예를 드는건 한반도 문제에서 지극히 한 측면만 본 것이라 봅니다. 실제로 미국이 북한을 타겟으로 핵폭격 훈련등을 대놓고 진행했고, 그 북한의 경제문제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살인적인 경제제재 때문인데 그것을 북한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지엽적입니다.

아니 근데 책 출판이 뭐 어때서요. 히틀러같은 파시스트적 반인륜범죄자의 자서전은 출간이 되는데 김일성은 왜 안되는지....

북네im 2021-04-27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유럽에서는 공개적으로 나치독일 표현물을 패용하거나 표현하면 처벌하는 법이 있는데 이것도 악법이냐 일제보다 넘사벽으로 동족을 죽여댄 악마집단에게 그렇게 좋으면 가서 살아라 뭐 여기도 공산화통일되면 공개총살 될 새끼가

NamGiKim 2021-04-27 23:00   좋아요 0 | URL
내가 당신같은 수꼴이라면 오히려 문화전쟁의 승리로 얘기했을거다. 북한은 이승만 저작 출판 못하는데 자유주의 한국은 세기와 더불어 출판 하잖아.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 정도의 융통성도 사상의 다양성도 없는 당신들은 진짜 자유주의하는건지 참. 남이 뭘 출판하든 무슨상관.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