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책을 읽으면 서평을 쓰곤 한다그리고 그러한 서평들을 내가 자주 이용하는 알라딘 웹 사이트에 서평을 올리곤 한다물론 아주 가끔의 경우는 책을 안 읽고 서평을 쓰는 경우도 있다물론 책을 안읽고 리뷰를 쓰는 데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첫 번째는 지나치게 부당한 이유로 폄하당하는 경우이다즉 일부의 악플로 테러 행위로 인해 책이 지나치게 부당한 평가를 일반인들에게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두 번째는 책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 되는 경우이다책 내용이 너무나 안 좋은데 많은 이들이 고평가 하니균형 있는 비판이 필요하다 느껴서이다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 책에 대해 단순히 욕을 하기 위한 경우이다물론 이런 경우 알라딘에서 100자 평을 이용하기도 하지만욕설이 들어갈 경우 제재를 받는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첫 번째의 경우는 내가 알라딘에 올린 김일성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리뷰이다물론 나는 이 책을 중간중간 부분적으로만 접했지 완독하지 않았다그러나 책을 안읽었음에도 리뷰를 단 것은 이 책의 가치에 비해 너무 폄하 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따라서 나는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알라딘에다 최고 점수인 별 5개와 더불어 장평의 리뷰를 달았다앞에서 언급한 두 번째의 경우는 최근 글항아리에서 출판한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ynder)의 저서 <피에 젖은 땅(Bloodland)>에 대한 리뷰에 해당한다.

 

최근 들어 스나이더의 책이 국내 네티즌들과 책 리뷰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이 책의 내용은 부제목에서 밝히듯이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을 다뤘고이 두 명의 독재자들로 인해 20세기 유럽사가 피로 물들었다는 것이 책의 저자 스나이더의 주장이다쉽게 말해 과거 냉전시기 팽배했던 히틀러 스탈린 전체주의론적인 접근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이 책이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아직까지 북한과 대립하며 반공주의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거기다 저자 스나이더가 다루는 동유럽 현대사는 필연적으로 반소주의적인 스텐스를 취하기 쉬운 소재다이런 부분에 있어서 한국 사회가 스탈린을 히틀러와 같은 선상에서 접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자 스나이더가 하는 주장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미국 몽클레어 주립대학교의 교수인 그로버 퍼(Grover Furr)는 2014년 당시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피에 젖은 땅에 대한 체계적인 반박서를 출간한 적이 있다. ‘Blood Lies’라는 제목을 가진 퍼 교수의 책은 스나이더가 책을 쓰며 이용한 1차 사료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반박했으며심지어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 등 원어 사료까지 파헤쳐서 반박했다굳이 그로버 퍼 교수의 체계적인 반박서가 아니더라도스나이더의 관점은 소련사에 대한 수정주의 학파 측 관점으로 보아도 문제가 많은 책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나이더 책의 문제점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에 나는 지난 4월 말에 책에 대한 반박 리뷰를 쓴 것이다.

 

물론 알라딘에 글을 올린 뒤 많은 이들의 댓글이 달렸다그중에는 예전부터 내 블로그에 와서 뉴라이트적 시각으로 욕설과 비방만을 일삼던 이도 있었고알라딘 친구분들의 긴 댓글 및 질문도 있었다내가 글을 쓰면서 스탈린 2천만 학살을 언급하며 비판의 소리를 높인 건 사실이다그러나 그 2천 만 학살론을 스나이더가 한 것으로 내가 주장했다고 생각했던 분들도 있었다물론 자주 언급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라 생각한다내가 2천만 학살설을 언급한 건 어디까지나 한국사회에 잘못알려진 부분에 대한 지적이지 스나이더가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큰 틀에서 보자면 스나이더의 주장이 그러한 반공주의적 주장과 크게 맥락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얘기이긴 하지만어쨌든 스나이더가 스탈린 2천만명을 죽였다고 거짓말 친다.”라고 한 적은 없다그 외에도 다른 부분에 대한 주장 및 반박을 달면서 내가 책을 안 읽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책을 안 읽었다는 사실을 밝힌 게 출판사 측에서 태클을 거는 요인이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워낙 잘 팔리는 책이라 하지만출판사 측에서 내 리뷰가 판매에 문제가 될거라 판단하고선 알라딘 측에 요구하여 게시글을 강제 비공개 처리 해버렸다강제 비공개 처리가 된 것은 4월 30일 그것도 내가 가장 바빴던 날 그러니까 여러 집회 및 개인적 용무가 많았던 날에 일어났다출판사 측에서 책을 안 읽은 것을 문제 삼은거야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맞는 얘기긴 하다하지만 내 리뷰가 책과 관련 없다는 공문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왜냐하면 내가 쓴 리뷰는 스나이더가 한 히틀러 스탈린 전체주의론에 대한 반박문이기 때문이다.

 

워낙 잘 팔리는 책이라 출판사 측에서 내 리뷰가 거슬렸던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이러한 짓거리는 출판사 측에서 상당히 강제적이고 비상식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심지어 이의를 제기하여 해결하려면 방통위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라는 알라딘 측의 메일이 왔는데상식적인 선에서 말이 안 되는 조치라 할 수 있다그 이유는 기존 홈페이지에 올라온 알라딘 리뷰 중에는 책을 안읽고 쓴 리뷰가 많기 때문이다즉 그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책을 안읽고 올린 다른 이들의 페이퍼나 리뷰 또한 제제를 당해야 하고 현재 <세기와 더불어>에 달린 악플들 또한 차단 되야 한다따라서 이러한 부분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출판사 측의 조치는 소위 스나이더가 침마르게 주장하는 진정한 전체주의론적 행동이다.

 

워낙 어이가 없어서 결국 출판사측에 전화를 했는데원칙적으로 출판사측에서 책을 안읽은 리뷰에 대해 그런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책을 읽고 쓰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조금 믿기지 않아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렇다고 한다따라서 책을 읽고 쓰면 이번에 차단된 내 리뷰를 올려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내 리뷰에 대해 이러한 전체주의적 행위를 하며 보여준 조치에 나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고 어이가 없었으며 화도 조금 났었다본인들 스스로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서적을 출판해놓고 일개의 블로그 리뷰어에게 전체주의적 행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상당히 실망한 나는 올해 안에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책을 읽고 이 반공주의적 서적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과장 그리고 제국주의와 반공주의적인 서적인지를 아주 낱낱이 밝힐 생각이다두고 해라 피에 젖은 땅!!!!

 

리뷰를 읽고 싶은 사람은 여기를 클릭하시오

 

(로자갤에 올린거)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pd&no=57566&search_head=100&page=1

 

(페이스북에 올린거)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911236168922027&id=100001070470657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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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승전 76주년을 생각하며

1945년 4월 거침없이 진격하던 소련군은 독일 국경에 도달했다. 독일 국경에 도달한 소련군은 4년간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군의 종심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붕괴시켰고, 나치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도달했다.

베를린에 도달한 붉은 군대는 도시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독일은 1944년부터 총동원으로 모집한 국민 돌격대와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들까지 동원하여 전투를 치렀지만, 소련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련군은 250만 명의 병사와 6,200대의 전차 및 자주포, 7,500대의 항공기 그리고 41,000문의 대포가 동원됐다.

베를린 방어구역에 대한 포위봉쇄에 동원된 병력만 해도 150만이나 되었을 정도다. 거기다 1945년 1월 벌지 전투가 서방 연합군 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ㆍ영ㆍ프를 중심으로한 연합국 군대는 독일 본토를 향해 진격했고, 1945년 4월 26일 엘베강에서 소련군과 만나 악수와 우정을 나눴다. 말 그대로 독일은 동서남으로 포위된 것이다.

소련군의 진격이 베를린의 국회 의사당에 도달하자 히틀러는 아내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 자살을 했다. 그의 애완견 블론디도 독약을 먹고 죽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한 뒤에도 전투는 1주일이나 더 이어졌다.

히틀러에 이어 총통이된 카를 되니츠와 베를린 방어군 사령관 헬무트 바이틀링를 포함하여 1945년 5월 8일 항복을 선언했다.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은 소련에게 두시간이나 빨랐고, 따라서 소련에게 있어 승전 기념일은 5월 9일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치른 희생은 어마어마했다. 2,700만이 죽었는데, 이중 1,000만 명은 군인이었고 1,700만 명은 민간인이었다. 민간인 대다수는 독일이 자행한 무차별 학살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나치 독일의 학살은 극에 달했는데, 나치가 전개한 벨라루스 초토화 작전에서만 3년간 벨라루스 민간인 300만이 학살당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나치와 이에 협력하는 세력들에 의해 수백만이 죽었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 대다수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나왔다. 우크라이나 민족 영웅으로 알려진 스테판 반데라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학살했다.

아무튼 이러한 희생을 거치고 소련은 나치 독일을 멸망시켰다. 미국의 문학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이 소련의 붉은 군대에게 절대 값을 수 없는 빚을 졌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현재 우리가 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것은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희생도 있다. 이런점에서 우리는 소련과 스탈린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사실은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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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근대화와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조선반도의 강제병합을 통해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한 일본은 1918년에서 1922년까지 대략 4년간 또 다른 전쟁을 치렀었다. 그 전쟁이 바로 러시아 적백내전(Russian Civil War)이다. 일본이 참전한 이 전쟁인 어떤 전쟁이었고, 일본은 왜 철수했으며, 파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고자 한다. 20세기 초인 1910년대 전 세계는 인류최초로 최악의 대살상을 경험했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1914년 유럽에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동맹상태였던 일본 또한 이 전쟁에 참전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일본은 독일 식민지인 마리아나 군도와 마셜 군도 그리고 캐롤라인 군도를 점령하고, 독일령이던 중국 영토인 칭다오를 점령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휘청거렸지만, 일본은 영토 확장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한 유례없는 호경기를 맞이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바로 나라킨이라고 불리던 벼락부자들이었다. 물론 이런 호경기 현상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거품경제의 현상으로 나타나 불황에 시달리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대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의 대결이었다.

 

독일과의 전투에서 극심한 사상자만 내던 러시아 제국은 전쟁 와중에 빠지게 되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917년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시작된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는 니콜라이 황제를 몰아내어, 케렌스키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내각을 들어서게 했다. 그러나 이 임시정부 내각은 민중의 염원을 들어주지 못했고, 그해 4월 스위스에서 귀국한 레닌과 그가 이끄는 볼셰비키들은 몇 개월 후 혁명을 일으켰다. 그것이 바로 10월 혁명이었다. 10월 혁명을 통해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러시아에서 탄생했고, 공약에 따라 볼셰비키들은 19183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음으로써 전쟁에서 빠졌다.

 

1917년 러시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진영은 사회주의 세력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을 들어 차르를 복귀하려는 세력을 지원하며 침략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1918년에 시작된 적백내전(Russian Civil War)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 연합국에는 영국과 동맹을 맺었던 일본도 포함됐다. 혁명 러시아에서 적백내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19188월에 공동출병을 선언했다. 이 선언에 따르면 일본은 1만 명의 군대를 파병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7만 명 이상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들은 러시아 연해주의 중심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와 동부 시베리아 그리고 북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일본의 시베리아 파병은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쳤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경제호황은 19188월과 9월 사이 쌀소동이 일어나면서 점차 불황으로 이어졌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군수물자 시장을 잃게 된 일본은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1919년 식민지 국가 조선에선 3.1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칭다오 점령 당시 일본이 중국 정부에게 요구했던 21개조 요구에 반대하는 5.4운동이 중국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일본의 시베리아 파병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진행되었다.

 

거기다 적백내전은 볼셰비키 측이 점차 전선에서 승기를 잡게 되면서, 침략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초기 오합지졸의 군대였던 적군(Red Army)은 내전이 끝날 무렵에 500만 명이 넘는 병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1918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연합국들은 점차 군대를 철수하며 볼셰비키 정권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나갔다. 당시 일본이 적백내전 파병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공산주의 전파를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공동으로 출병했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로부터 시베리아를 차지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적백내전 시기 일본군이 주둔하던 시베리아 일대에서는 이른바 시베리아 빨치산(Partisan)들이 활발히 활동했다. 이 빨치산들은 백군과 간섭군을 돕는 철도와 운송시설들을 파괴하고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특히나 1920년에는 이른바 니콜라예프스크 사건이 일어나 빨치산에 의해 일본 외교관과 군인, 거류민 등을 포함한 70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1920년 시점에는 사실상 적백내전이 볼셰비키 측의 승리로 끝난 시점이었다. 1년 뒤인 1921년 미국에서 워싱턴 회의가 개최되었고, 여기서 연합군의 육해군 군축이 요구되었다. 일본의 군대 또한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은 시베리아 출병에서 전쟁비용 10억과 3,0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 아무런 소득 없이 1922년에 철수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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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67주년을 생각하며.🇻🇳🇻🇳🇻🇳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요새가 함락되었다. 프랑스군 사령부가 있던 베아트리스 기지가 베트민에 의해 함락됐다. 사령관 드 카스트리를 포함한 디엔비엔푸의 프랑스군 사령부 인사들이 전부다 포로로 붙잡혔다.

20세기 최고의 명장 보 응우옌 잡 장군의 천재적인 지략과 강철같은 불굴의 정신은 20세기 세계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투에서 2,293명이 전사하고 11,721명의 최정예 부대 프랑스군이 포로로 붙잡혔는데, 아주 영광스러운 승리다.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배를 끝낸 전투이자 위대한 승리가 바로 디엔비엔푸 전투다. 이 전투에서 베트남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식민주의를 지원한 미국도 무찔렀다.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부도덕한 개입을 한 미제국주의의 기만성을 아주 잘 보여줬다.

보 응우옌 잡 장군의 말대로 이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에 맞서던 전 세계 사회주의 진영에겐 환영할 일이었고, 식민주의를 유지하려던 이들에겐 불행한 일이었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지금도 제국주의에 맞서는 진보진영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위대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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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 -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는
곽영완 지음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2014년과 2015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단체가 있다. 그 단체가 바로 테러리즘의 상징인 ISIS. ISIS는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사실상 국가 하나를 만들었었다. 또한 수많은 자원자를 전 세계로부터 끌어들였으며, 유럽과 서방지역에서도 ISIS에 가담하는 이들이 적잖게 있었다. 심지어 20151월 한국에 살던 김모군이 ISIS에 가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한국 사회 또한 경악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거기다 이들은 청소년들이 즐겨하던(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인 GTA 5를 이용하여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시도도 했었다.

 

이들이 주도했던 사건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5년에 일어났던 프랑스 파리의 총기 테러였는데, 54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중에서 최소 130명이 사망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했던 나 또한 충격 받았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에 프랑스 파리를 관광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요르단 조종사를 산채로 화형하거나 서방측 인질들을 참수하는 영상 등은 참으로 잔혹하고 충격적이었다. ISIS의 급부상과 더불어 이슬람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나 혐오도 급상승했던 것 같다. 그 예시로 2018년 예맨 난민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측에선, “이슬람이 테러를 일으킬 거다.”라는 허무맹랑하고 인종혐오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물론 옳지 못한 관점이지만, 이것은 ISIS의 부정적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습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SIS는 왜 발생한 것이고, ISIS가 활동하는 지역 중동은 전투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슬람은 무엇일까? 이들의 역사는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까? 왜 이들은 자살폭탄테러를 포함한 각종 테러 그리고 무자비한 살상을 일삼는 것일까? 누군가는 ISIS를 생각하다보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 싶어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고, 실제로 그러한 답을 찾고자 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확실한 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ISIS의 존재와 그들이 추구하는 사상,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중동의 역사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역사 및 종교에 대해 개략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복잡 다다한 이 내용들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쓰기 위해 자신 나름의 노력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도 없었다. 나는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교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저 돼지고기를 더럽게 여겨 먹지 않고, 여자들은 히잡을 강요당하며, 금식날이 있다는 단편적인 지식 정도였다. 이들이 금지된 행위라 여기는 하람에 이자 받기가 금지돼 있다는 것과 이슬람교도의 기본적인 의무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수입의 일정 부분 기부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은 중동사의 개략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데 그 범위는 현재 유라시아와 중동 그리고 이집트 리비아를 포함한 아프리카까지 역사를 포괄시키고 있다. 중동의 역사도 서구 열강의 침탈과 미소냉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특히 중동의 현대사적인 측면에서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은 아랍민중에게 여러 가지 해악을 끼쳤다. 이스라엘이 끼친 해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전개한 인종청소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1차부터 4차까지 전개된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 아랍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군사력을 토대로 아랍 연합군을 괴멸시키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다. 6일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에선 이스라엘이 이집트 나세르 측의 항공기 수백 대를 한 번에 격파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다.

 

그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특히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의 경우 ISIS를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ISIS는 오사마 빈라덴이 이끌었던 알카에다의 한 분파에 속했던 집단인데, 2011년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하면서 급부상했다. 또한 2003년 미국이 일으켰던 이라크 전쟁은 아무런 성과 없이 4,500명의 미군 전사자와 최소 2조 달러 비용을 내고 끝났다. 거기다 이라크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신무기는 거짓말이었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통치 또한 막장으로 해서 바트당 해체 이후 혼란과 분란만 만들어 놓았다. 즉 이라크 침공은 모든 면에서 실패한 전쟁이었으며, 매우 부도덕한 전쟁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무책임한 행위도 ISIS의 등장원인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중동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에는 항상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평화와 안정을 망치는 제1의 요소이다. ISIS의 등장도 그러하다. 책에서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2011년 민주화 시위를 가장한 친서방 폭동이었던 반카다피 운동도 결국 부유했던 리비아를 말 그대로 개판5분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현재 리비아 민중 70%는 카다피를 그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중동 국가들도 서방의 농간과 개입으로 피해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서방의 개입 이후 ISIS라는 문제도 그 나라에 같이 남게 되었다.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이 그러하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책은 ISIS와 더불어 중동과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설명한 책이다. ISIS가 급부상할 때 나온 책이라 근래의 중동 상황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동과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분쟁의 기본적인 배경과 맥락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ISIS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입문서로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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