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승전 76주년을 생각하며

1945년 4월 거침없이 진격하던 소련군은 독일 국경에 도달했다. 독일 국경에 도달한 소련군은 4년간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군의 종심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붕괴시켰고, 나치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도달했다.

베를린에 도달한 붉은 군대는 도시에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독일은 1944년부터 총동원으로 모집한 국민 돌격대와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들까지 동원하여 전투를 치렀지만, 소련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련군은 250만 명의 병사와 6,200대의 전차 및 자주포, 7,500대의 항공기 그리고 41,000문의 대포가 동원됐다.

베를린 방어구역에 대한 포위봉쇄에 동원된 병력만 해도 150만이나 되었을 정도다. 거기다 1945년 1월 벌지 전투가 서방 연합군 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ㆍ영ㆍ프를 중심으로한 연합국 군대는 독일 본토를 향해 진격했고, 1945년 4월 26일 엘베강에서 소련군과 만나 악수와 우정을 나눴다. 말 그대로 독일은 동서남으로 포위된 것이다.

소련군의 진격이 베를린의 국회 의사당에 도달하자 히틀러는 아내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 자살을 했다. 그의 애완견 블론디도 독약을 먹고 죽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한 뒤에도 전투는 1주일이나 더 이어졌다.

히틀러에 이어 총통이된 카를 되니츠와 베를린 방어군 사령관 헬무트 바이틀링를 포함하여 1945년 5월 8일 항복을 선언했다.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은 소련에게 두시간이나 빨랐고, 따라서 소련에게 있어 승전 기념일은 5월 9일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치른 희생은 어마어마했다. 2,700만이 죽었는데, 이중 1,000만 명은 군인이었고 1,700만 명은 민간인이었다. 민간인 대다수는 독일이 자행한 무차별 학살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나치 독일의 학살은 극에 달했는데, 나치가 전개한 벨라루스 초토화 작전에서만 3년간 벨라루스 민간인 300만이 학살당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나치와 이에 협력하는 세력들에 의해 수백만이 죽었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 대다수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나왔다. 우크라이나 민족 영웅으로 알려진 스테판 반데라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학살했다.

아무튼 이러한 희생을 거치고 소련은 나치 독일을 멸망시켰다. 미국의 문학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이 소련의 붉은 군대에게 절대 값을 수 없는 빚을 졌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현재 우리가 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것은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희생도 있다. 이런점에서 우리는 소련과 스탈린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사실은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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