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주루트, 원주민들의 이주루트에 대해선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대채로 이 루트를 따르는 것 같다.)

 

메머드(Mammoth)라는 털덮인 거대 코끼리가 살던 14,000년 전 혹은 16000년 전에는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이 연결되어 있었다. 확실한 시기는 현재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시기부터 인류는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돌창을 비롯한 성능 좋은 연장들을 개발해 큰 동물들을 사냥했고, 이 유목민들은 해마다 조금씩 신대륙으로 건너가 점차 더 깊이 내륙으로 이동했다.

(매머드, 매머드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전 대륙에 걸쳐 서식했던 코끼리와 비슷하게 생긴 돔울이다. 멸종 원인으로는 기후 변화에 적응 실패를 들기도 하지만,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과도한 사냥으로 명졸했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연구결과 러시아의 브랑겔 섬의 경우 비교적 최근은 기원전 1500년 경까지 살았다고 한다.)

 

기원전 8000년경에 이르러는 남아메리카 남단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남부 아메리카 대륙과 멕시코 지역에는 정교한 사회가 등장했고, 현재 페루에서는 잉카인의 인구가 거의 600만 명에 달하는 제국이 건설되었다.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서는 마야인이 문자, 아라비아 숫자와 비슷한 숫자 체계, 정확한 달력 그리고 발달된 농업 체계를 갖춘 복잡한 문명을 발달시켰다. 그 문명은 한때 북부의 유목 전사 부족이었던 아스텍인에게 계승되었으며 13세기 말경이면 아스텍인은 멕시코의 중남부 지역 대부분을 지배했다. 우수한 행정·교육·의학 체계도 발전시켰다. 종교도 발달했다.

(마야 최대의 유적지 치첸이트사의 쿠쿨칸에 있는 피라미드 엘 카스 티요)

 

멕시코 이북에 살던 사람들 또한 정교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수준의 문명을 발달시켰다. 신대륙 북부 지역의 사람들은 사냥이나 채집,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들 가운데는 바다표범을 사냥했던 북극권의 에스키모, 북부 산림지역에서 큰사슴이나 순록과 같은 큰짐승을 쫓던 수렵꾼들, 해안을 따라 안정된 주거 지역을 형성하고 주로 연어를 잡아 생활했던 북서부 태평양 부족들 그리고 극서부의 비교적 건조한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고기잡이와 식용 가능한 식물을 채집하고 작은 짐승을 사냥해 생활하며 성공적인 공동체를 발달시켰던 부족들이 있다.

(에스키모인과 허스키 그리고 이글루, 과거 북아메리카 북부대륙에도 이러한 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래사냥을 하는 에스키모인)

 

현재 미국의 1/3을 차지하는 동부 지역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가장 식량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대부분 숲으로 덮혀 있었 우드랜드(Woodland)라 불리던 이곳은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 거주한 대부분의 부족은 농사와 사냥, 채집, 고기잡이를 병행했다. 현재 미국 남부 지역에는 상당히 안정된 사회가 형성되었는데, 미시시피강 유역의 옥토에서 자라는 옥수수와 기타 농작물을 기반으로 커다란 교역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세인트 루이스(St Louis) 부근에 위치했던 카호키아(Cahokia)가 그 교역의 중심지로 서기 1200년 전성기 때에는 인구가 4만 명에 달했다.

(우드랜드 당시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주거지역)

 

유럽에서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스칸디나비아에 거주하던 바이킹(Viking)족들이었다. 그들은 서기 1000년경에 북대서양의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쳐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해안에 도착했다. 사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경우 이곳을 방문한 바이킹들이 현재 아이슬란드 땅이 살기가 좋아서 다른 외부인들이 오지 않게 그 땅을 아이슬란드라 이름을 지었고, 실제로 얼음이 가득 찬 곳을 그린란드라고 불렀다 한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바이킹들이 도착했던 곳이 어디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던 바이킹족의 레이프 에릭손(Lief Ericson)은 그곳은 빈랜드(Vinland)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와인랜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아마 포도주하고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바이킹족, 바이킹족은 서기 9세기부터 11세기까지 유럽을 휩쓸고 다니던 스칸디나비아인들이다. 이들은 1000년 경에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적이 있었다.)


(레이프 에릭손의 빈랜드 상륙을 그린 상상화)


(현재 캐나다 지역에 복원해 놓은 바이킹 가옥)

 

바이킹족이 북대서양에 도착한지 10년 뒤, 토르핀 칼세프니(Thorfinn Karlsefni)가 이끄는 소수의 노르만족이 현재 캐나다의 세인트로렌스 강 유역에서 약 1년간 정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주민들의 적대적인 태도에 부닥치자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들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는 입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설로 계속 구슬로 전해지다가, 14세기에 이르러 문자로 옮겨져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유럽에서 이 미지의 땅을 동경하게 되는건 15세기에 이르렀다. 1347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nople)에서 시작된 치명적인 전염병인 흑사병이 1/3의 유럽 인구를 죽게 만들었다. 1세기가 지나 유럽은 원래의 인구로 회복할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상업이 부활했다. 그러자 해외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이에 부응해 새로운 상인 계층이 생겨났다. 교역이 증대하고 항해술이 발달해 장거리 항해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교역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됐다. 그 결과 육로를 통한 동방무역이 막히자 유럽 중 일부는 항로개척에 나서게 된다.)

 

14세기 초 마르코 폴로(Marco Polo)를 비롯한 모험가들이 동양에서 향신료, 옷감, 염료 등 이국적인 상품과 그보다 더 이국적인 이야기들을 안고 돌아오자, 교역으로 부자가 되기를 갈망했돈 유럽인들은 무엇보다 동방과의 교역을 꿈꾸기 시작했다. 지난 2세기 동안 동방과의 교역은 아시아 왕국까지의 긴 육로로 가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제역을 받아왔다. 또한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당하자 육로를 통한 아시아와의 교역은 더 막히게 되었다.

(희망봉, 희망봉은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다. 1486년 당시 포르투갈이 항로개척을 통해 희망봉에 도달했고, 이는 이후에 인도로 가는 길이 되기도 했다. 명나라와 일본의 명주도 이곳을 통해 오는 포르투갈과 무역을 하게됐다. 현재는 아프리카에사는 펭귄 서식지이기도 하다.)

 

서유럽 사회에서 항해술이 발달하자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을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해상무역과 항로개척에 뛰어든 나라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15세기 당시 포르투갈의 항해술은 발달되어 있었고, 이것은 항로개척에 기여한 헨리 왕(Prince Henry the Navigator)의 덕택이었다. 헨리가 사망한 후인 1486년에는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를톨로뮤 디아스(Bartholomeu Dias)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돌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민중사학자 하워드 진의 경우 그를 악랄한 정복자와 학살자로 강도높은 비판을 하기도 한다. 2009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그를 학살자로 규정하고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선언하기도 했다.)

 

1480년대 당시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한 남성의 후원요청을 받았다. 이사벨라는 여러 번 거절했지만, 1492년에 그를 후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사벨라 여왕이 후원한 이가 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당시 스페인의 이세벨라 여왕은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았기에 콜럼버스를 후원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소위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는데, 이계약이 바로 산타페 계약(Santa Fe)’이다. 149283일 스페인 팔로스 항을 출발한 콜럼버스 일행은 120명의 선원과 3척의 배를 동원했다. 이들은 1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보급품도 실었고, 인도를 찾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쪽으로 향해 계속했다. 14921012일 항해를 시작한 지 약 70일이 지났을 무렵 그들은 바하마 군도에 상륙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 역사의 시작이었다.


참고자료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1(개정판), 앨런 브링클리, 황혜성(역), 휴머니스트, 2011


미국사(완전 개정판), 이주영, 대한교과서,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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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0-12-30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분야로는 찰스 만의 <인디언>(원제: 1491)도 추천합니다

NamGiKim 2020-12-30 12:33   좋아요 0 | URL
그런책도 있군요. 호기심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