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가 김영하의 책 <보다>를 가지고만 있다가, 그 다음편인 <말하다>가 나오는 바람에, 이 책부터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입니다. 얼마 전에 읽었어, 싶었는데, 그래도 찾아보니 그게 2013년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갑니다.
강연과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고 하니, 어떤 분에는 아, 저 강연 나는 들었어, 라거나. 또는 저 인터뷰 전에 읽었지 하면서 읽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실은 저도 이 책이 나오기 전에, 힐링캠프의 김영하 작가의 출연분량을 조금 본 적이 있습니다. 말을 참 잘 하시더군요.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느낌이 들었던 것에는 내용도 괜찮았지만 더해서 조금은 목소리의 효과도 있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 그렇구나, 하고 재미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긴 봤는데, 뭘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나는 어쩌다 저 장면을 보게 되었는지, 를 약간씩 기억하는데도, 그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책에 실린 그 강연을 읽기 시작하니까, 그 순간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그 때, 이렇게 말했었지, 그 때, 이런 말은 없었고, 여기에는 조금 더 있었어, 여기에선 아, 저런 수치를 말해주면 사람들은 정확하게 느끼겠지, 하는 그런 것들이 되살아 나더라구요.
네, 되살아났어요. 그것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더라도, 없어진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어딘가에 있었는데, 제가 다시 꺼내보고 싶었지만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그런 것처럼요. 그리고 갑자기 찾아낸 기억과 조금씩 맞춰가면서 이 사람은 자신을 보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이야기는 잔뜩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상하다면 덮어버리면 중단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찾으러 갈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 언어로 적힌 책이라면 그 말을 통역해 줄 책을 구하면 됩니다. 그 통역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스스로 말을 배우거나, 또는 다른 통역을 찾아보면 됩니다. 하지만, 왜 읽게 되는 걸까요.
글을 쓸 때 한 자 한 자, 그렇게 써 내려가듯이, 글을 읽을 때에도 실은 한 자, 한 자, 읽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읽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 만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읽는 것이라는 것은. 영화나 공연예술은 시간이 한정적이라서, 그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달라서, 사람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인지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싶어하고, 또 쓰고 싶어합니다. 잘 쓰거나 못 쓰거나의 문제를 떠나서,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 쉴 수도, 다른 취미를 가질 수도 있는데, 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요. 운이 좋다면 내가 읽고 싶은 책과 내게 필요한 책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때로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의 책을 찾아 계속해서 낯선 이야기의 세계로 떠나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원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없다면, 그 때에는 생각해봅니다.
이번에는 제 차례인 걸까요.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지금 이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글쓰기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것은 여러분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페이지 59~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