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향 -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1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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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나우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든다.


  누구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를 이렇게나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내공이 상당하다는 말일 것이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비유이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는 탕자에 우리의 모습을 투사한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행하던 탕자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온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지만 문제는 그러한 우리의 결심이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돌아오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절망과 좌절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리라. 그런데 나우엔은 이것이 탕자의 비유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누엔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세 사람, 탕자, 큰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각자의 위치에서 말하면서 이것을 신앙의 성숙으로 연결시킨다.


  죄와 회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이 탕자임은 분명하지만 여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 가운데 살아가던 탕자에서 돌아와서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거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큰 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질되어 간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큰 아들처럼 행동한다. 평가하고, 깔아 뭉개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나우엔은 큰 아들도 몸은 집에 있지만 사실은 집을 나갔던 탕자와 같은 모습이라고 말한다.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큰 아들 도한 돌아와야 할 탕자이다. 아니 더 심각하다. 탕자는 자신이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큰 아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지 오래 될 수록 큰 아들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예배에 나온다, 나는 성경을 잘 안다, 나는 기도를 오래한다 등등의 자기 합리화를 통하여 은혜가 사라져 버린 나의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올바른 것으로 해석한다. 감히 나를 평가하느냐, 세상 법정이 감히 교회를 판결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내 삶을 곰곰히 돌아본다. 과연 나는 큰 아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녀서 이제는 기독교 신앙이 숨쉬는것처럼 자연스러워진 이 상태 속에서 혹시 내가 큰 아들과 같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 모태 신앙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자기 성찰을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비로소 아버지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저 감격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흉내 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집 나간 아들도, 그리고 집에 머물러 있지만 가족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큰 아들도 모두다 보듬어 줄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의 모습 가운데 조금이나마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9년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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