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생일이다. 생일을 맞이하여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까 생각하면서 알라딘을 뒤져본다. 사고 싶은 책들이 많이 있는데 잠시만 더 기다리고 자제해본다. 가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이고이 보관함에 담아 놓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번 달에 다 지를 것 같은 생각이... 

  아직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이 있어서 구매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생일이니 동생한테 조금, 개인적으로 조금...이런 식으로 다 구입하련다. 구입의 주제는 아렌트 특집과 신화 특집, 그리고 기타 고전이다. 

 

 

 

 

 

 

 

 

 

  

 

 

 

 

 

  빵가게 님이 재미있게 읽는 아렌트. 내 대학원 전공도 윤리인지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나갔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읽어 보련다. 그런데 내용은 뛰어난데 문장이 난삽하다는 어려움이....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기로 결심한 책이다. 이번에는 북유럽 신화다. "토르"와 연관되어 요즘 인기를 끌지 않을까? 북유럽의 신화에 흠뻑 빠져보다. 구입하면 가장 먼저 읽을 책들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구매하고 싶지만 이벤에 당첨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안되면 결국 구매해야겠지. 이렇게 저렇게 가격을 따져보니 1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군. 게다가 보관 리스트에 담아 놓은 에코의 책들까지...왜 자꾸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지 모르겠다. 이러한 과욕 때문에 헉헉대며 책을 읽지만 올해는 어째 영 진도가 안나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6-19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생일이시군요! 빈 입이라 죄송하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드려요!!

북유럽 신화 1-3을 장바구니에 넣고 그저께 한참 고민하다가 리뷰글 읽고 결국 뺐는데
세인트님께서 읽어보시고 꼬옥~ 리뷰 써주세요. 아직도 미련있거든요.

즐거운 한주되시구요.

saint236 2011-06-20 13:22   좋아요 0 | URL
제가 그 미련에 다시 불을 붙여드리지요.
 
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박노자!!! 

  나에게 참 힘겹게 다가온 이름이다.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통하여 만난 그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박노자에 대한 배경 지식도 없이 이름만 알고 있던 시절 박노자가 러시아 출신의 귀화인이라는 것 때문에 한번 더 놀랬고, 그의 솔직 담백하지만 깊은 글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마지막으로 그가 지금은 한국에 없고 노르웨이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전히 그는 노르웨이에서 체류하고 있다. 그가 노르웨이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박노자라는 모순적인 이름 앞에서 많은 갈등을 한다. 그의 책을 읽고 싶다. 왜냐고? 그의 글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으면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다. 그런 또 무슨 이유냐고? 그의 글이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덮고 넘어가는 문제들까지 모두 까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솔직함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 책을 사 놓고 펴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이 한권을 읽기 위해서 9일(6월 4일~6월 12일)이나 걸렸다. 보통 이 정도 두께의 책을 보는데 3~4일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지 않고 며칠을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더 이상 리뷰 작성을 미루지 말자는 것이다. 이대로 며칠이 지나고 나면 언제 리뷰를 쓸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리뷰를 작성할 목록에 들어간지 1년이 넘는 책들도 있는데 빨리 작성하지 않으면 이 책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할 것 같아서 부담스럽지만 리뷰를 작성한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는 1부에서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2부에서 4부까지 이르는 동안 한국의 대학문화와 국가주의, 인종주의에 대하여 진단하고 나라로운 논리로 그것들을 비판한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 대학의 서열화와 그 안에서의 서열화, 단일민족 국가를 외치지만 재외동포법에 가려진 그 허구성과 불합리함을, 마지막으로는 신노예로 전락해버린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와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박노자는 한마디로 한국은 박정희식의 사이비 근대주의가 판을 치는 20세기의 중세국가로 결론을 내린다. 

  20세기의 중세국가!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이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30년이 넘게 살아온 내가 모르는 것을 그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방해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간신히 각오를 다지고 책을 다시 넘기기 시작한다.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는 그가 건드리는 문제들이 그동안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2~3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1부에서 지적하는 것들은 나도 모르게 당연시하고 있었다. 특히 군대의 문제와 상하급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체질화 되어 있어서 문제인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박노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만만치않은 문제인 것이다. 아마도 그가 러시아에서 자라 한국에 귀화한 외부출신의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이 책을 내면서 그 문제를 건드린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그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나아지지도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론, 맹종에 길들여진 사회, 종교적 패거리 주의, 대학의 서열화 등등 그가 지적한 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내리 누른다. 한국을 사랑하여 귀화한 박노자가 여전히 노르웨이에 있는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당신들의 대한민국! 책의 제목을 통하여 나와 남을 나누고,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나와는 적이라는 공식으로 사회를 다스리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지배층에게 맹종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박노자는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선언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주어진 서열대로 권리를 누리고 상부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중세의 논리가 20세기 한국에 그대로 펼쳐 지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이런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그의 안목과 까발릴 수 있는 용기와 말빨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 길 위에서 펼치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제목은 화려하다. 게다가 알라딘 서평단 도서였던 탓에 리뷰도 꽤 많이 올라왔다. 게다가 열하일기, 호모 쿵푸스, 호모 에로스 등 많은 저서로 이름을 알린 고미숙 씨의 작품이다. 고미숙 씨의 다른 작품을 못봤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꽤 호의적이었던 탓에 주저 없이 책을 샀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읽고 난 후의 솔직한 감정은 완전 실망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이 벌써 1년이 더 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리뷰를 작성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이 책을 보고 실망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책을 보고 실망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다.  

  첫째는 책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고전 해설가 혹은 고전 평론가라는 저자의 입장이 인문 고전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재미있게 읽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가볍다. 오늘의 시각에서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좋지만 당시의 상황을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당시 칠두령들은 모두 백수들이고 사농공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들은 그렇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다고 말한다. 백수이지만 지지리 궁상으로 살지 않았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살았다고, 현재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것은 오늘날 백수인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안 혹은 동질감을 줄 수 있지만 고전을 충분히 읽기에는 부족하다. 왜 그들은 백수일 수밖에 없었으며 사농공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했는가라는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충분히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이 왜 청석골에 모였는지, 아니 세상은 왜 그들을 청석골에 몰아 넣었는지, 왜 서림이가 배신했는지 등등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 백수를 위한 케포이필리아"라는 에필로그의 제목답게 이 책에는 이 시대 청년 백수들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그러나 이런 애정이 고전의 속살 깊은 곳을 음미해보기보다는 현재의 삶에 쉽게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수박 겉핥기에 멈추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게다가 이 수박 겉핥기마저도 청년 백수들에게 몰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둘째 고전이 이상하게도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형편은 찌질하지만 삶이 지지리 궁상이어서는 안된다. 아무 이유 없어도 그냥 배워라, 의리는 피보다 더 진하게 여겨야 한다 등등. 마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것 같은 이런 이야기들이 임꺽정 해설서에 가득 차 있다. 임꺽정이라는 고전이 이렇게 읽힌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겠으나 임꺽정이 전해주는 진짜 의미는 자기계발이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 해설 또한 아닐 것이다. 임꺽정이라는 고전을 구해 읽고 강연을 따라 다니고, 이 책을 구해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그런 가벼운 가르침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가르침을 원한다면 굳이 고전을 읽을 필요가 무엇인가? 서점에 가면 수도 없이 널린 것이 자기계발서인 것을. 물론 저자가 청년 백수들에게 "당당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라 이것이 우리 시대 모든 마이너가 전수받아야 할 삶의 노하우이다."라고 외치는 의도는 알겠지만 꺽정이의 삶에서 우리가 읽어낼 것이 고작 자기계발, 자기 만족 밖에 안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고전을 읽을 필요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이 정이 안가는 이유는 이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마치 노홍철의 개그를 본 느낌이 든다는 것 말이다. 요즘 CF에 보면 노홍철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더라. "너무 가벼워? 그럼 무게 잡을까? 가벼워야 재미있다." 이 책이 딱 그렇다. 가벼워야 재미있다. 고미숙 씨는 충분히 가볍고 재미있게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난 고전에서 묵직함을 원한다. 한때 유행했던 말로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낯설다. 고미숙이 친해지지 않는다. 그의 다른 책을 구입하거나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1년이나 지나 간신히 리뷰를 작성한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아닌 변명을 구차하게 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1-06-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별 2개였습니다. ^^;;

saint236 2011-06-07 17:31   좋아요 0 | URL
하하...마립간님도 그러셨군요...

순오기 2011-06-0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 책 재밌게 술술 읽히기는 하던데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였어요.ㅜㅜ

saint236 2011-06-07 23:44   좋아요 0 | URL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볍다는...
 
일상의 치유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과거 군대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군에 입대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이 한달쯤 지나자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궁금해서 그 녀석을 찾아가 요즘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녀석 대답하는 말이 이렇다.  

  "주일날 예배 전에 찬양 인도하는 중대 군종병 있잖아요. 그 선임이 중대에서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사랑한다는 찬양을 불러요. 저는 그게 정말 가식처럼 느껴져서 싫어요. 그 선임 얼굴만 보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사라져서 안 나가요." 

  그 녀석이 교회에 다시 나오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썬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다. 일주일을 내 맘대로 살다가 일요일만 되면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의 개신교인이 800만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진짜 크리스천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짜게 잡아도 아마 50%는 썬데이 크리스천일 것이다. 이것저것 빼고 짜게 잡은 수치이지만 어찌보면 희망 수치인지도 모르겠다. 

  썬데이 크리스천의 특징이 무엇인가? 생활이 정확하게 둘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일요일과 월요일에서 토요일! 이렇게 둘로 나뉜 일주일을 각각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요일에는 기독교인으로서의 기준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간다.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성실히 나오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월요일에서부터 토요일까지는 기독교인이지만 세상의 기준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것, 가끔 차에 십자가 악세사리를 걸어 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증표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썬데이 크리스천이 몇 맥만이 있다고 한들 교회 싸이즈가 커지는 것 외에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오늘날 교회가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고, 목사가 먹사로 불리면서 최소한의 존경심마저도 사라지고 조롱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된 교회가 아니라 큰 교회를 지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썬데이 크리스천인 까닭이다. 교회에서만 거룩하고 사회 속에서는 그 거룩을 잃어버리고 너무나 완벽하게 동화되어버리는 삶으로는 세상 속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고,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말이지만 간과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기독교인의 행실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 결과가 일상과 유리된 기독교 신앙이다. 그런 신앙이 생명이 있고 힘이 있을리 없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일상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일상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썬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내 삶을 온전하게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 이것이 내 신앙의 화두이자 목표이다.

ps.청년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한 가득 닮겨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041524191&code=910100 

  위의 링크로 들어가면 오세훈 시장이 반값 등록금에 대한 입장을 적어 놓은 기사를 볼 수 있다.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그가 한 말의 요지는 이렇다.  

  "시장인 자기도 딸 둘 대학 보낼 때 힘들었는데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반값 등록금이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대안인가? 대학생도 지성인이니 스스로 생각해보라." 

  웃기는 것은 "돌아오는 길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20대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청춘이니까 아플 때"라는 그의 마지막 코멘트이다. 이건 뭐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세훈 시장의 짧은 이 몇마디가 또 내 가슴에 불을 확 질렀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청춘이니까 아플때이다. 참 오만한 말이다. 아파야만 청춘이냐?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청춘들을 계속 아픈 상황에 놓아두어야 하는 것인가? 요즘 20대들의 삶이 어떤지 그는 과연 알고나 있을까? 지성을 갈고 닦는 대학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곧 써먹어야하는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하는 곳이 대학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국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꼬부랑 글씨에 목을 메는 청춘들의 아픔을 그는 알까? 88만원 세대라고 자조하는 그들의 아픔을 오시장은 알까? 88만원 세대에도 못들어가는 백수와 백조들의 아픔을 그는 알까? 등록금 마련하기 위하여 제약회사 마루타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들의 아픔을 오시장은 알까? 등록금이라는 부채에 허덕이다 못해 결국 목숨을 끊어야 하는 청춘들의 아픔을 오시장은 알까? 등록금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는 슬픔을 그는 알까?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지는 아픔을 그는 알까? 왜 그렇게 등록금 깎아달라고 아우성치는지 그는 알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눈부시게 아프닌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오만이요, 생각없는 말이다. 등록금이 지금 가장 좋은 대안인가 물었는가? 물론 반값 등록금이 가장 좋은 대안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대안인 것은 분명하다. 정치인이 할 일이 무엇인가? 시장이 할 일이 무엇인가? 가장 좋은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대안을 먼저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라고 시민들이 그를 시장으로 뽑아준 것이 아닌가? 책상 머리에 앉아서 가장 좋은 대안을 찾는다면, 그것이 자기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대통령은 고사하고 시장이 될만한 그릇이 아니다. 한강 르네상스와 랜드마크, 반값등록금 어느 것이 가장 시급한 정책인가? 

  대학생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인이라 했는가? 그런 지성인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내놓은 대안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그는 과연 지성인인가? 그리고 솔직하게 요즘 대학이 지성인을 만들어 내는 곳인가? 지성인을 만들어 내는 곳으로서의 대학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지금 대학은 지성인이 아니라 기술공을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니던가? 모대기업의 임원이 황당하게 학교를 향하여 무슨 일갈을 했는가? 요즘 대학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고, 그래서 기업들이 신규 채용자들을 가르쳐서 사용하는데 에로 사항이 맞다고. 대학생들이 지성을 갈고 닦길 원하는가? 그러고 싶은 대학생들도 뭐해먹고 살 것이냐는 생존의 문제로 밀어 내는 것이 현재 시스템이 아닌가? 그러면서 지성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울리고 어르는 기만적인 행동이 아닌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파서 청춘이 아니다. 청춘이니까 아픈 것들도 힘들지만 털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 아파야만 청춘인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힘들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반값등록금이 대안은 아니다, 민관주도사업이라는 기만적인 말로 더 아프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히 말한다. 난 청춘들을 덜 아프게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한 표를 행사할 생각이다. 김난도 교수의 책제목을 이렇게도 써먹을 수 있구나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아마 글러브의 김상남이 이 기사를 봤다면 딱 한마디 날렸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니미 뽕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