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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치유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과거 군대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군에 입대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이 한달쯤 지나자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궁금해서 그 녀석을 찾아가 요즘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녀석 대답하는 말이 이렇다.
"주일날 예배 전에 찬양 인도하는 중대 군종병 있잖아요. 그 선임이 중대에서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사랑한다는 찬양을 불러요. 저는 그게 정말 가식처럼 느껴져서 싫어요. 그 선임 얼굴만 보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교회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사라져서 안 나가요."
그 녀석이 교회에 다시 나오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썬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다. 일주일을 내 맘대로 살다가 일요일만 되면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의 개신교인이 800만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진짜 크리스천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짜게 잡아도 아마 50%는 썬데이 크리스천일 것이다. 이것저것 빼고 짜게 잡은 수치이지만 어찌보면 희망 수치인지도 모르겠다.
썬데이 크리스천의 특징이 무엇인가? 생활이 정확하게 둘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일요일과 월요일에서 토요일! 이렇게 둘로 나뉜 일주일을 각각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요일에는 기독교인으로서의 기준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간다.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성실히 나오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월요일에서부터 토요일까지는 기독교인이지만 세상의 기준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것, 가끔 차에 십자가 악세사리를 걸어 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증표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썬데이 크리스천이 몇 맥만이 있다고 한들 교회 싸이즈가 커지는 것 외에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오늘날 교회가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고, 목사가 먹사로 불리면서 최소한의 존경심마저도 사라지고 조롱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된 교회가 아니라 큰 교회를 지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썬데이 크리스천인 까닭이다. 교회에서만 거룩하고 사회 속에서는 그 거룩을 잃어버리고 너무나 완벽하게 동화되어버리는 삶으로는 세상 속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고,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말이지만 간과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기독교인의 행실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어 있는데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 결과가 일상과 유리된 기독교 신앙이다. 그런 신앙이 생명이 있고 힘이 있을리 없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이야기한다. 일상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일상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썬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내 삶을 온전하게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 이것이 내 신앙의 화두이자 목표이다.
ps.청년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한 가득 닮겨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