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 양장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어렸을 적부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왔고(아버지께서는 늦게 신학을 하시고 목사가 되셨다.) 주일이면 당연하게 교회에 가는 것이요, 성경에 나오는 것들은 조금도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렇다고 부모님께서 요즘과 세간의 주목을 받는 교회들과 같이 공격적이고 편협한 근본주의자는 아니셨다. 유교적인 집안에서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셨던 지라 힘드셨지만 비기독교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 또한 자연스럽게 익히고 계셨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다 보니 나의 신앙 또한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선배가 읽어보라고 던져주었던 이 책은 꽤 큰 충격이었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이 책을 다 읽기까지 한 학기가 꼬박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30장 읽다가 집어던지고 50장 읽다가 집어던지고, 책을 다 읽기까지 몇 번을 집어던졌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충격적인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이단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왜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민요섭과 아하스페르츠라는 두 주인공은 내게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을 던져 준 존재였다.

 

  신학을 배우다가 마르크시즘으로, 운동권으로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종교로 마지막에는 다시 기독교로 돌아온 민요섭! 잘나가는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서 자기 민족의 신 여호와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아하스페르츠! 둘은 민족적인 출신 성분도, 삶의 조건도, 시대적인 배경도 다 달랐지만 진지하게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구도자라는 면에서 동일하다. 작가가 민요섭의 이야기와 아하스페르츠의 이야기를 뒤섞어 진행하는 하는 것은 이러한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이리라.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부조리를 그냥 두는 무기력한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작은 혁명을 일으키려는 민요섭 궤적과 어릴 적부터 조금도 의심이 없이 믿어왔던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이집트로 바벨론으로 돌고 돌아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온 아하스페르츠의 삶의 궤적은 서로 다른 듯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아하스페르츠와 예수의 대화에서 정확하게 일치하기 시작한다. 아하스페르츠와 예수의 문답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시험을 적절하게 각색한 것이다. 물론 이 각색이 100%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면 이문열이라는 작가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문호로 평가가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이미 존재했던 이야기를 적절하게 각색하여 적절한 자리에 배치했을 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문열의 능력을 대단하게 평가하지만 말이다. 사람의 아들을 다시 펴서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인용해 보려고 했지만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하여 대신 성경의 이야기를 인용해 본다. 인용된 성경은 쉬운 성경 버전이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심] 그 후, 예수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 내내 금식하셔서, 매우 배가 고팠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에게 빵이 되라고 명령해 보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마귀가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시오. 성경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실 것이다. 그들은 손으로 당신을 붙잡아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소."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화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절하고 경배한다면, 이 모든 것을 주겠소."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썩 물러가거라! 성경에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겨라!'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마귀가 예수님에게서 떠나가고, 천사들이 예수님께 와서 시중을 들었습니다.(마태복음 4:1~11)

 

  사탄은 예수에게 세 가지 요구를 한다. “배가 고픈가? 그럼 돌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먹어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렇다면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라. 그리고 전혀 다치지 않는 기적을 보여라.” “세상을 가지고 싶은가? 나에게 한번 절하라. 이 모든 것을 주겠다.”

작가는 이 세 가지 시험을 아하스페르츠와 예수의 문답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억나는 대로 적으면 대력 이렇다. “당신이 지금 배가 고프듯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 당신은 그들에게 빵을 줄 수 있는가?”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면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라. 뛰어 내려라.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인 독립이다. 세상을 가지고 싶은가? 나에게는 남과 다른 식견이 있으니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당신을 보좌하겠다. 그러면 우리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아하스페르츠와 예수의 이 문답에서 아하스페르츠와 민요섭은 정확하게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내가 만난다. 아하스페르츠가 던지는 질문의 요지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세 가지 시험이다. 첫째는 부에 욕구요, 둘째는 대중적인 인기에 대한 욕구이며, 셋째는 권력에 대한 욕구이다. 사람의 아들치고 이 세 가지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하스페르츠가 끊임없이 말씀이 육화된 당신이 우리에게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절규하는 것은 신인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태생부터 인간인 우리들은 이 세 가지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거칠게 표현해서 귀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 책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민요섭의 방황도, 아하스페르츠의 절망도 결국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우리가 이 세 가지 유혹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롭지 못함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세 가지 욕구가 발현된 것이 지난 대선이고, 이 세 가지 욕구에 남보다 더 철저한 것이 MB정권이 아니겠는가? 지난 대선 우리가 도적적인 흠결을 무시하고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부자 되고 싶다, 잘 살고 싶다는 부에 대한 욕구가 아니던가? 또한 성공하고 싶고, 이름을 날리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대중적인 인지도가 아닌가? 하다못해 라면을 하나 사먹을 때도 맛이 아니라 대중적인 인지도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인맥과 학맥, 혈연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기반이 되지 않고는 권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1%이든지 99%이든지 상관없이 이 세 가지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 가지 유혹을 무시하는 것은 사회와 연을 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극소수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 가지 유혹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다만 얼마나 그 세 가지 유혹을 통제할 수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어 설 수 있다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지만 멈추어 설 수 없다면 사상 최악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유혹에 가장 충실한 예로 나는 MB정부를 바라본다. 온갖 불법과 비리로 얼룩지면서도 왜 그렇게 부동산에 목을 매는가? 왜 그렇게 국가를 이익모델로 삼았다는 비판을 듣는가? 부에 대한 욕망에 철저하게 솔직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부라 자처하면서 좌와 우를 가르고, 별 것 아닌 것에 목숨 걸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는가? 왜 자원외교가 아니라 자위외교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가? 대중적인 인기에 대한 욕망에 솔직하기 때문이다. 왜 전 대통령을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여 투신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는가? 물대포로 대표되는 강경 진압을 조자룡 헌 창 쓰듯이 하는가? 검찰과 경찰, 사법, 그리고 언론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가?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교회 장로를 내세우는, 그래서 교계의 큰 목사님들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하는 MB정부이지만 그들이 걷는 길은 예수의 길이라기보다는 아하스페르츠가 번민하면서 걸어간 길이다. 아니 아하스페르츠도 차마 마지막까지 가지 못했던 길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이 정권에 가지고 있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사람의 아들! 이 말은 우리가 세 가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 유혹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인지를 2007년 이후로 우리는 보고 있고 느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교회가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요, 회개해야 할 큰 허물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민요섭의 길이 아니라 극단적인 아하스페르츠의 길로 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ps 이문열은 딱 여기까지가 좋았다.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열국지까지도 봐줄만 하다. 그렇지만 선택 이후는 그에게 정말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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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아들'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문열이라는 작가는 제게 정말 대단한 작가였더랬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고개가 갸웃~ 했는데..결정타는 '삼국지 평역'이었습니다. 왠지 그때부터 작가를 의심하게되었답니다 ㅠ.ㅠ 평역 삼국지는 저를 절망의 구렁으로 밀어버렸답니다 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aint236 2012-01-11 11:0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삼국지는 고전의 힘이 살아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그정도까지야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택에서는 정말 고개를 절래절래...그후로 이문열은 쳐다도 안봅니다.

차트랑 2012-01-1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군요~
저 역시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절래절래~ 입니다^
그리고 저도 쳐다도 안봅니다 ㅠ.ㅠ

saint236 2012-01-11 23:46   좋아요 0 | URL
이문열에 대한 평은 대개 비슷하더라구요.

잘잘라 2012-01-1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두 분이 고개를 절래절래 하는 작가라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음.... 그래도 이왕 주문해놓았으니 초한지, 읽어보고 리뷰 올리겠습니다. ^^;

saint236 2012-01-18 10:02   좋아요 0 | URL
이문열의 글솜씨는 탁월합니다. 다만 그의 시각이 맘에 안든다는 것이겠지요. 그가 이명박 대통령을 칭송하던 기사를 보는 순간 그나마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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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대 후 잠실로 이사를 와서 가지 못하지만 과거엔 인사동에 자주 갔다. 머리가 복잡하면 가고, 실연을 당했을 때도 가고, 외로울 때도 갔으며,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갔다. 스무 살 인사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지라 인사동 찻집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아는 편이었고, 항상 가던 곳이 정해져 있었다. 경인미술관, 오 자네 왔는가, 지대방, 귀천! 조금은 모던한 분위기를 원하면 경인미술관과 오 자네 왔는가를 갔고, 주로 지대방을 갔으며(그 덕에 사장님과 조금은 안면이 있다), 모과차가 마시고 싶으면 귀천을 갔다.(모르긴 해도 인사동에서 모과차를 제대로 만드는 곳은 이곳일 것이다.) 옛날 귀천과 분점 귀천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지만 양쪽 모두에 걸려있던 시 한편이 있었다. 천상변 시인의 귀천이다.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이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어린 시절 멋모르고 외우고 다녔던 시였는데, 모과차 한잔과 함께 대하는 시는 너무나 달랐다. 歸天이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천상병 시인의 인생과 철학,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단편적으로나 음미해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되면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 아름답게 살았노라고, 고마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기를 원했고, 지금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내가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48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1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시면서 입원을 반복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학교에 있었던지라 곁에서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 학교에 있다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집에 돌아와서 사흘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가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간들을 기댈 대상을 잃어버린 외로움과 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의 길고 긴 싸움이었다. 왜 그리 길고 긴 시간들을 혼자서 그렇게 힘들어했고 외로워했을까? 내가 준비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떠나셨기 때문이었다.

 

  생일은 시원찮게 챙겨드려도 장례식만큼은 요란뻑적지근하게 치르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다. 지금이야 장례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장례식장에서, 최대한 조용하게 장례식을 치르지만 어릴 적 내가 목격했던 장례식은 동네잔치에 가까웠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달라붙어서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잔칫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안에서는 곡을 하면서 조문객을 받지만 밖에서는 상여를 꺼내놓고 예행연습을 한다. 요령잡이의 소리가 얼마나 구슬픈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소리가 상당히 구슬픈데도 묘하게 리듬감이 있어서 그냥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례지낸 음식은 집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옛말대로 온 동네 아이들과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그 음식을 먹고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했다. 떠난 이에게 미처 못한 말을 하고 들어주다보면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사람도 마음의 준비가 된다. 죽은 사람을 묻는 예식이지만 철저하게 산 사람을 위한 예식이 바로 장례식이다.

 

  이 책에서 하는 말이 이것이다.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얼마나 부하게 살았느냐, 성공했느냐, 무슨 일을 이루고 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후회를 남기지 않고 죽음을 준비했느냐를 묻는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꼭 필요하지만 평소에 하지 못하고 있던 말들을 다 하라는 말도 “당신은 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라는 뜻이다. 천상병 시인의 말을 빌리려 표현하자면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냐는 의미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 살고 싶어한다.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하고, 돈을 모으고, 권력을 잡고 싶어한다. 잘 살기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한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잘 죽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당신은 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물으면 그냥 살다가 죽으면 죽는 것이지 잘 죽기 위해 애쓸 필요까지 있느냐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그냥 살다가 죽으면 죽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죽는 사람의 입장이고, 남겨진 자들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살아 있을 때는 그 사람으로부터 서운한 대접을 받은 것, 상처받은 것이 생각이 나는데 죽고 나면 왜 그렇게 못해준 것, 상처준 것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에서 소개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전혀 다른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칼라와 폴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한다. 고맙다. 용서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보낼 준비를 한 칼라와는 달리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아버지의 죽음을 직면하게 된 동생 폴이 아직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죽음은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발견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경험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풍요로움을 제공해 준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만들며, 평범한 것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잘 살려는 노력의 십분 지 일만 잘 죽으려는 노력으로 전환한다면 어떨까?

 

  2012년 가장 처음 읽은 책이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이다. 새해를 처음 시작하면서 읽게 된 책이 우연히도 인생의 마지막을 잘 준비했느냐는 책이라니. 몇 주 전 어머니와 말 그대로 대판 싸웠다. 개인적인 일도 산적해 있는데 장남으로서 집안일(주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일이지만)을 처리하자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는 당연하게 생각하신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너는 장남이니까, 여동생은 출가외인이니까, 막내는 불쌍하다.”인데 이 말이 나와 여동생의 마음을 후벼 판다. 외삼촌들도 한번씩 전화하실 때마다 스트레스는 더 늘어간다. 내 나이에 감당하기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쌓였던 마음이 아주 작은 일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그 후로 약간은 냉전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이대로 지나가면, 상처로 남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조만간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이 또한 이 책에 나에게 남겨준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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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6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천에 자주 들르셨군요. 때론 저도 들르던 곳입니다.
당시에는 천상병께서 생존에 계실때였죠.
천상병시인에게 시집에 손수 사인을 받 후, 신문을 통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돌아가신 후 한 번 더 방문했죠. 시인과 무언의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거든요. 안주인은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시인을 잃어버린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소풍을 아름답게 끝내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saint236 2012-01-06 01:10   좋아요 0 | URL
전 돌아가신 다음에야 들렀습니다. 학교 선배가 처음으로 저를 데리고 갔던 인사동 찻집이 여기거든요. 감기로 고생하던 시절에 여기 모과차만한 것은 없다면서.

2012-01-06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6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 국왕의 일생 규장각 교양총서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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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뿌리깊은 나무가 종영되었다. 그전에는 공주의 남자, 그 전에는 이산, 또 그전에는....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왕들을 한번 열거해보자. "태조, 태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 선조, 광해군, 인조, 영조, 정조, 고종..."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많은 왕들이 드라마에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중국과의 역사 전쟁 때문에 고구려에 대한 열풍이 불기 이전 대부분의 사극은 조선이 배경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뿐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서 등장하는 왕비, 후궁, 상궁, 내시 등등을 합치면 또 얼마나 많은 궁궐에 살던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모른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상상하게 되는 궁궐의 모습은 명암이 분명하게 갈린다. 성군이 되어 국가를 잘 경영하든, 아니면 폭군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든 왕의 자리는 권력의 정점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서는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혹은 왕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의 한자락이라도 얻어보기 위해서 온갖 음모와 계략과 암투가 판을 친다. 무당을 불러서 저주 굿을 하고, 왕을 해치기 위해 은밀히 독살하는 것은 양반이요, 때론 직접적으로 무력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 왕과 궁궐의 모습이 대략이러한데 이것이 과연 사실인가? 모두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개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왕을 하늘의 아들, 성혈, 나랏님 등등 여러가지 말로 신성시하며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만 결국 왕들도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다. 조선 왕의 생각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왕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인간으로서의 왕보다는 정치권력자로서의 왕에 집중하기 때문에 반쪽짜리 이해에 머무르기 쉽다. 그 결과가 허구로 재구성되는 사극에 혹하여 역사를 오해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 책은 철저하게 정치권력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왕을 소개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물론 정치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왕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정치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왕의 일생에 대해서 소개한다. 한 주제에 대하여 2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게다가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를 많이 첨부하였기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다. 전문적인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읽히기 쉽게 만들었다는 취지에 적합하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꽤 흥미로운 지식들을 얻기도 했다. 가령 왕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이라든지, 혹은 왕이 어떤 음식들을 먹고 살았는지, 궁궐밖으로 왕이 행차한 이유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등등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을 세세하게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소득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힌다면 꽤 유익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규장각 교양총서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다. 첫째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생활상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다 보니 독자의 눈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임팩트가 없다는 것이다. 꽤 유익하고,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안나간다.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흥미진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의 책을 보기 위해서는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둘째는 삽화가 많이 들어가다보니 종이질이 월등하게 좋다는 것이다. 종이질이 월등하게 좋은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면 하나는 책값이 비싸진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눈이 아프다는 것이다. 비슷한 다른 책에 비하여 이 책은 꽤 고가이다. 예를 들면 조선 국왕의 일생은 290 페이지 책이 19800원이다. 선뜻 시리즈를 사모으지 못하고 한권씩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이 아픈 이유는 무엇이냐? 밝은 대낮에 야외에서 이 책을 보면 괜찮지만 형광등 밑이나 스탠드 밑에서 보면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눈이 심히 아프다. 혹 가능하다면 무광용지로 인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별점이 두개인 이유는 순전히 이것 때문이다.

 

  이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왕 노릇하는 것도 참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는 궁궐에 살게 하지 마소서라는 꼭지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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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1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인터넷으로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구입하고나서 후회한 책들이 더러 있습니다. 좋은 리뷰가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입니다. 그런 연유로 좋은 리뷰는 읽을 도서를 선정하는데 대단히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줍니다. saint님의 리뷰는 양질의 리뷰인지라 다수의 독자들에게 도움이 클 것입니다. 제게도 역시... 읽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리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saint님께서는 그 일을 해주시는군요. 새해 더욱 행복한 가정되시길 바랍니다.

saint236 2012-01-01 22:57   좋아요 0 | URL
이런 댓글에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차트랑공님도 좋은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에도 알라딘을 굳건히 지키세요 화이팅

2012-01-01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2-01-0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규장각 교양총서, 쉽게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책입니다. 관심은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건 신서나 문고본으로도 나와주면 안되는 것일까요. 아쉽습니다.

saint236 2012-01-03 10:19   좋아요 0 | URL
저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큰 맘먹고 한권씩 옮깁니다. 아마도 삽화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해보네요. 삽화가 보조 수단이 아니라 중요도가 꽤 높습니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節齋 김종서

 

  우리는 그를 대호라고도 부른다. 백두산 호랑이라는 의미이다. 세종의 명을 받아서 북방에 4군 6진을 개척한 인물로 고려의 윤관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우리는 백두산 호랑이라는 그의 별명 때문에 그를 거친 무장으로 오해하지만 당대의 석학이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그리고 세종 실록을 편판할 정도로 인정받는 사학자이다. 또한 맡겨진 직책이 무엇이든지 충실하게 해내는 뛰어난 관료이기도 하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느날 갑자기 정승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에 비하여 꽤 많은 직책들을 그것도 하급 직책에서부터 정승이라는 최상급 지책까지 두루 섭렵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다음 백과 사전에 나오는 김종서 항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1390(공양왕 2)~ 1453(단종 1) 조선 초기의 문신·장군.

 

  지략이 뛰어나고 강직하였기 때문에 대호(大虎)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도총제(都摠制) 추(錘)의 아들이다.

 

  육진개척

  본관은 순천.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 상서원 직장(直長), 행대감찰(行臺監察)을 거쳐, 1419년(세종 1)에 사간원우정언이 되었다. 이어 광주판관(廣州判官)·봉상판관(奉常判官)·의주삭주도(義州朔州道)의 진제경차관(賑濟敬差官)을 지냈으며, 1426년 이조정랑, 1427년 사헌부집의·황해도경차관 등에 올랐다. 1433년(세종 15)에는 좌대언(左代言)으로서 이부지선(吏部之選)을 맡았다. 이 무렵 북쪽 변경에서 우디거[兀狄哈]족을 비롯한 여진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아, 조정에서는 대책 수립에 부심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북변 강화의 필요성을 강경하게 주장하여, 세종으로 하여금 북방 경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했다. 마침 1433년 우디거족과 오도리[斡朶里]족이 서로 다투는 등 여진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국토 확장에 뜻을 두고 있던 조정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에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그는 같은 해 12월 함길도도관찰사, 1435년 함길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7, 8년간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무찌르고 비변책(備邊策)을 올리는 등 6진(六鎭:종성·회령·경원·경흥·온성·부령)을 개척하여 국토확장에 큰 공을 세웠다. 이로써 1416~43년에 걸쳐 개척된 압록강 방면의 사군(四郡:여연군·자성군·무창군·우예군)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토가 두만강·압록강 상류까지 넓어졌다(→ 색인 : 4군6진). 1440년 서울로 돌아와 형조판서·예조판서를 지내고, 그뒤 충청·전라·경상 3도의 도순찰사를 거쳐 1446년 의정부우찬성으로 임명되고 판예조사(判禮曹事)를 겸하였다. 1449년 8월에 달달(達達:Tatar) 야선(也先)이 침입하여 요동지방이 소란해지자 평안도도절제사로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사서편찬

  그는 6진을 개척한 용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려사 高麗史〉·〈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세종실록〉의 편찬작업을 책임지는 등 학자·관료로서의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1451(문종 1) 좌찬성 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서 편찬한 〈고려사〉는 본래 1392년(태조 1) 정도전(鄭道傳) 등이 편찬한 것을 세종 때 몇 차례(1421, 1424, 1442) 개수한 끝에 완성한 것이었다. 〈고려사〉의 편찬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데다가, 정도전 등 몇몇 개인의 가문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등 공정치 못하다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김종서·정인지(鄭麟趾)·이선제(李先薺)·정창손(鄭昌孫) 등이 1449년부터 개찬에 착수하여, 1451년에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표(表) 2권, 열전(列傳) 50권, 목록(目錄) 2권의 기전체(紀傳體)의 정사(正史)로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같은 해 10월 우의정으로 승진, 편년체(編年體) 고려사 편찬을 건의하여, 이듬해인 1452년(단종 즉위년) 〈고려사절요〉 편찬에 참여했다. 같은 해 〈세종실록〉 편찬의 책임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계유정난(癸酉靖難:세조의 왕위찬탈사건)으로 위의 사서들에서 그의 이름은 모두 삭제되었다.

 

  계유정난

  그는 세종 때부터 임금의 신임을 받는 관료로서 성장했다. 문종도 죽음을 앞두고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남지(南智) 등과 함께 우의정인 그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했다. 그러나 세종의 여러 왕자들이 다투어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가운데, 수양대군(首陽大君)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는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인물로 그를 지목하고 제거하고자 하였다(→ 색인 : 세조찬위). 수양대군은 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 등의 모사(謀士)를 얻은 뒤 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유수(柳洙) 등 무사들을 규합, 1453년(단종 1) 10월 13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이날 우선 서대문 밖 김종서의 집으로 가서 양정·임운(林芸) 등이 김종서와 아들 승규(承珪)를 살해했다. 뒤이어 이들은 단종에게 김종서 등이 반역을 도모하였기에 대역모반죄(大逆謀叛罪)로 우선 죽였다고 아뢰고, 왕명을 빌어 대신들을 소집한 다음 홍윤성(洪允成) 등을 시켜 황보인·조극관(趙克寬)·이양(李穰) 등을 죽였으며, 정분(鄭)·조수량(趙遂良) 등은 귀양 보내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 1680년(숙종 6) 강화유수 이손(李巽)이 김종서의 억울함을 논하였으며, 1719년(숙종 45)부터 후손들이 다시 등용되기 시작하였다. 1746년(영조 22)에 그의 벼슬이 회복되었다. 종성의 행영사우(行營祠宇)에 제향되었다. 〈장백산에 기를 꽂고〉·〈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등의 시조가 전한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태종 시대에 관료로 첫 출발을 하여 세종, 문종, 단종 4대를 섬긴 충신이다. 세종이 한글 창제와 문치라는 소프트웨어를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했다면 북방 영토 개척이라는 하드웨어를 함께 한 사람은 김종서이다. 세종이 세손 단종을 부탁한 인물들이 집현전 학사들과 김종서를 필두로 하는 대신들이었는데 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후자는 한명의 이탈도 없이 단종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그 구심점에 선 사람이 김종서이다. 개인적인 성품이면 성품, 벼슬이면 벼슬, 배경이면 배경, 신념이면 신념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김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괜히 황희 정승이 김종서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쥐잡듯이 잡은 것이 아니다. 수양대군의 야심을 저지시킬 수 있는 대항마로 그가 지목된 것도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것이 그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한편 도 없다는 것이다. 세종과 단종 시대를 다루는 여러 드라마에 그가 비중있는 조역으로 출연하기는 하지만 단 한번도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없다. 혹 있다면 나에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만약 있다면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원래 나는 김종서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사람, 조선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야심가, 혹은 단종이란 구체제를 옹호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했었다. 이덕일씨가 들으면 미치고 팔짝 뛸만한 시각인데 이러한 시각을 나에게 심어준 것은 고등학교 때 접했던 한질의 소설이다. 드라마 작가 신봉승씨가 썼던 "소설 한명회"인데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이덕화가 한명회 배역을 맡기도 했다. 그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철저하게 한명회의 시각에서, 그리고 수양의 입장에서 사건을 풀어나간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소설 한명회"도 구해서읽어보길 바란다. 꽤 오래전 책이라 지금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도서관이라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명회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다. 수양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다. 단종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도 있고, 태종을 주인공으로 했던 드라마도 있다. 물론 얼마전 종영한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매우 비중있는 조연 정도로 등장할 뿐이다. 쉽게 말해 김종서는 이름 값에 비하여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결론은 그의 인생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임팩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권 통치와 권력이라는 맥락에서 김종서를 보자면 태종이나 수양에 비하여 임팩트가 없다. 자식에게 안정적인 왕권을 물려주기 위하여 개국 공신을 비롯하여 처남은 물론 사돈까지 처형하면서 태조와 대립각을 세웠던 태종! 권력에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자기 동생은 물론 조카까지도 죽이고 일가친척을 노비로 만든 수양! 두 사람에 비하면 김종서가 가지는 무인이나 장군, 권력자로서의 임팩트가 약하다. 문치와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측면으로 이해하자면 그의 임금이었던 세종에게 밀린다. 비극적인 죽음이라면 단종에게 밀리고, 충성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하자면 성삼문 박팽년을 비롯한 사육신에게 밀린다. 수양이 김종서를 너무 전격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처리했기 때문이다. 출세라는 면에서 보자면 권모술수의 대명사 한명회에게 밀린다.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 비해 드라마 제작자들의 입맛을 당길만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잘못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드라마나 영화의 특성상 어느 한면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럴만한 임팩트가 그에게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그가 너무 자신의 삶과 신념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세종의 파트너로서 오랜 세월 북방에 나가 맡겨진 일에 충실하였기에 중앙 정계에서 빗겨나 있었고, 중앙에 올라와서는 철저하게 세종과 문종 그리고 단종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했으며, 그의 존재감 때문에 수양에 의해서 가장 먼저 살해당한 덕이다. 그의 인생 자체가 주인공으로 부각될만한 포인트가 없으며,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꾸며내기에는 그가 남긴 족적이 너무 뚜렷하다. 결국 그는 왠만해서는 주연을 맡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인수대비를 보지는 않았지만 김종서에 대한 배역이 결코 조연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단 한번도 주인공이 될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김종서가 추구한 삶의 가치라는 것이 철저하게 조연이기 때문이다. 그가 수양처럼 왕이 되려는 마음을 품은 것도 아니요, 한명회처럼 권력에의 의지를 불사른 것도 아니요, 세종의 아들 수양을 선제공격할 정도로 냉정한 것도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태종, 세종, 문종, 단종의 신하로 남기를 원했다. 만약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싶었다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節齋라는 그의 호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이요,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큰 것이다. 김종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이 결코 후회가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자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덕일의 책은 역사책답지 않게 읽기가 쉽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같아서 술술 넘어간다. 그렇다고 그의 책이 여타 소설책처럼 역사적인 허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철저하게 사료 중심으로 이만한 책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존경할만한 하다. 다만 이덕일의 책은 중간중간에 저자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열정이요 장점으로 비춰지겠지만, 나에겐 플러스 요인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김종서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수양과 공신의 등장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표출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소설 한명회"를 같이 읽어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곳곳에 김종서의 죽음과 공신의 등장은 헌정질서의 파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조선에서 헌정질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명분이라든지, 유교적인 가치관, 혹은 정당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수긍이 가겠지만 왕조국가 그것도 입헌 군주제가 아닌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조선에서 헌정질서 운운한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가 아니겠는가? 저자에게 약간의 자제심이 동반된다면 그의 책은 더 재미있고, 설득력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자기를 따르는 공신들을 책길 수밖에 없는 수양의 꼼꼼함에 어느 한 분이 생각나는 것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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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2011-12-25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이덕일의 또 다른 책... 성공한 혁명과 실패한 혁명, 역사에게 길을 묻다...
를 보면... 이덕일이 왜 수양과 공신들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는지...그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saint236 2011-12-25 10:15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한번 구해서 봐야겠네요.

차트랑 2012-01-01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정성의 들여 리뷰를 작성하시다니...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정성은 늘 감동을 동반하게됩니다. saint님의 글을 정성이 가득합니다. 감동받고 돌아갑니다.

saint236 2012-01-01 22:59   좋아요 0 | URL
조선 역사상 안타까운 인물 중의 하나가 김종서인지라 적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조선 역사중 가장 관심이 가는 시대가 김종서의 시대와 정조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의 책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네요.

차트랑 2012-01-0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종서의 시대도 매우 마음아픈 역사이고 정조의 정치사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에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번주는 왜 그리 뉴스도 많은지...

 

  첫째, 김정일이 죽었다. 김일성의 뒤를 이어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던 김정일이 죽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김정일 사망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보도한다. 김정일의 죽음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국정원이 뭇매를 맞는다.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은 당당하게 "텔레비전 보고 알았다" 말하고, 이런 정보통과 국방 책임자를 믿고 있는 내 마음은 그저 속이 탈 뿐이다. 이런 사태를 반영해서인지 인터넷에는 구하라 놀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서울 시장 재보선 당시 나경원 놀이 이후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는 처음이다. "구하라를 국정원장"으로 놀이다.

 

  국정원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갑자기 드는 생각은 왜 언론에서 이렇게 타당한 말들을 쏟아 내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언론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쏟아낼 때에는 무엇인가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혹의 눈초리를 가지고 찬찬히 기억을 더듬던 과정 중에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누구냐고?

 

  류...우...익...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이 사람이 몇달 전에 꽤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내년 4월 쯤에 남북 정상회담을 갖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나꼼수를 열심히 들은 사람들은 얼핏 기억이 날 것이다. 베를린 선언과 남북 정상회담 설레발을 기억하시는가? 북한에서 했던 말도 기억이 나는가?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붙였던 남측에서 돈봉투를 건네면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사과해 달라고 애걸했었다는 이야기! 포털에서 "천안함 사과 애걸"이라는 관련어를 치면 여러 기사가 뜬다. 심지어는 조선에서도 뜬다. 반박하는 남측의 성명에 녹취록을 공개하겠다는 북한의 맞대응도 있었다. 포털에서 "천안함 사과 애걸&녹취록 공개"라고 쳐보라. YTN 기사가 나올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남북 정상회담에 목을 맸던 것일까? 왜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류우익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쏙 들어간 것일까? 조문을 보내고 말고, 정보통이 부재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류우익"이다. "류우익=남북정상회담"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현 정부의 대북외교가 그리고 정치적인 마인드가 근시안적임을, 그리고 그 근시안도 상당히 헛다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발성 이벤트 하나면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 마인드가 문제다. 솔직히 김정일의 죽음은 선관위 D-DOS 문제로 시달리는 MB정부에 천운으로 작용할 것이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봉주와 이상훈 대법관이 중심에 있다.

 

  각설하고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MB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 정상회담에 목을 맸는데 김정일이 죽었으니 김정은과 만나야 하나? 그렇다면 지금까지 3대 세습은 극악무도한 행위라고 공격해왔는데 3대 세습자 김정은을 대화 상대로 삼아야 하나? 여러가지로 폼도 안나고, 체면도 안서고, 쪽팔리는 짓이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까 관심을 가져볼 문제이다.

 

  둘째, 정봉주 판결이다. 대법원이 22일 공판을 통해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정봉주 전 국회의원은 1년 징역에 10년간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사법부가 그렇게까지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봐도 윗선의 개입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다.(이런 젠장!) 경찰에 개입한 흔적이 이미 드러났으니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참고로 대법관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상훈 대법관은 3번의 제청 끝에 이용훈 대법원장이 통과시켰다.

 

  BBK가 이명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임은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나경원 전 의원의 주어가 없다는 센스 만점의 답변이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 도전했던 사람이 정봉주이고,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은 BBK라는 MB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정봉주를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집어 넣어야 하는 것은 결국 BBK라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정봉주의 판결이 재갈 물리기 위한 무리수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의 입감 명령 때문이다. 오늘 아침 10시경에 판결이 났는데 5시까지 입감하라니 무슨 감옥이 기숙사도 아니고. 결국 나꼼수 33회를 녹음하다가 중단했다고 한다. 어떤 트위터러들은 인혁당 사건 이후로 이렇게 빨리 처리가 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냉소를 날린다. 무엇이 그렇게 정봉주를 두렵게 하는가? 그는 부인에게 얹혀 사는 사람이니 돈이 아니겠고, 현 국회의원도 아니니 정치적인 권력도 아니겠고, 그렇다고 자기 혼자 깔대기를 들이대는 사람이니 인기도 아닐 것이고! 결국 그에게 남는 것은 BBK 밖에 없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내후년에는 과연 이 사건을 두고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두고 볼 것이다.

 

  가끔 대한민국은 입법 행정 사법이 독립되어 서로 견제하는 삼권 분립국가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혹 우리나라는 대통령이라 이름하는 왕이 다스리는 왕조국가가 아닐지... 참 BBK 주범 김경준이 기획 입국설을 뒷받침 했던 편지를 썼던 사람들을 고소했다. 무엇인가 김경준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나 보다. 이 또한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사건이다.

 

  셋째, 이상득 불출마와 박근혜 체제! 선관위 D-DOS! 상시적인 레임덕이 이정권의 특징이라고 말하지만 본격적으로 레임덕이 시작되었다. 이상득 의원과 관련된 의혹들이 덮어지지 않을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들의 비리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올해 내로 판결은 어렵겠지만 내년 후반기에는 어떻게든 판결이 나게 될 것이다. 이 과정 중에 박근혜와 이상득 사이에 빅딜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혹 이 빅딜이 결렬되면 다음은 서로 맞찌르기 형국이 될 것이다. 맞찌르기 도구는 아마도 저축은행이 될 것이다. 이 안에서 경찰과 검철은 누구에게 줄을 댈 것인가 저울질 하게 될 것이고, 그 저울추는 당연히 박근혜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선관위 문제 또한 지켜볼 사안이다. 청와대가 어디까지 연루되어 있는지. 지금은 모 행정관 한명만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몸통인지, 아니면 꼬리인지 수사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 내곡동 문제도 어찌 처리가 되었는지, 아직도 대통령 소유로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여러모로 화려한 한주다. 평소에 어느 하나라도 터지면 이목이 집중될 문제인데,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니 집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녀석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우리가 받는 무언의 메시지가 있으니....

 

  "닥치고 버로우!"

 

  아직은 봄이 오려면 멀었나 보다. 원래 안보려고 생각했던 달려라 정봉주를 봐야겠다. 그리고 나머지들도 같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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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2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12-22 23:42   좋아요 0 | URL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어떤 식으로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