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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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나꼼수를 통해서 대중의 뇌리 속에 그 심상치 않은 이름을 각인시켰다. 물론 나꼼수에서 조국을 띄우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보의 새로운 자산으로 그 이름이 언급된 정도이다. 김용민의 “조국 현상을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얼굴, 키, 학벌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그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는 정도이다. 맞다. 또 하나 있다. SNS에 꽤 능통하다는 것이다. SNS의 위력을 실감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뛰어든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초창기부터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 그의 팔로워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시장의 SNS 멘토단의 일원이었고, 김제동과 더불어 위트있는 선거 독려 트윗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제동이 선거율 50%가 넘으면 삼각산 사모바위 앞에서 윗옷을 벗겠다는 트윗에, 조국에게 망사 스타킹을 신기겠다는 나꼼수 팀의 엉뚱한 제안을 승낙했었다. 선거율 50%가 넘지 못해서 공약을 지키지 못했는데 2012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빨간 망사스타킹을, 통합진보당이 승리하면 한쪽 발에는 파란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고 선언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가 할만한 점잖은 소리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발상인데 조국 교수는 실제로 그렇게 할만한 사람이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다. 가진 조건에, 위트에, 합리적인 사고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기는 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이름에 비해 정치계에서는 무명이라는 것이다. 무명이라는 말은 그가 정치계에서 인지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정치적인 업적도 보여주지 못한 비정치인이라는 뜻이다.

 

  조국 현상을 말하다가 나오기 전에 먼저 이 책이 나온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순서를 바꾸어서 조국 현상을 말하다를 먼저 읽고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뜻한바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순전히 금전적인 이유이다. 동생이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과감하게 동생 책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조국 현상을 구입했다. 순서를 바꾸어서 이 책을 먼저 읽고 조국 현상을 읽었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었겠지만 뒤의 것을 먼저 읽고 앞의 것을 나중에 읽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아직 이 책을 보지 못하고 조국 현상을 먼저 읽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 또한 권하고 싶다.

 

  사회 비평, 정치 비평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으니 조국이다. 강준만의 강남좌파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준만은 조국에 대해서 한마디로 이렇게 평했다.

 

  “오연호의 조국 띄우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강준만이 왜 그런 평을 내렸는지, 왜 그가 최소한 이름값은 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의 대항마로 문국현을 띄웠던 오연호가 이번에는 조국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견해 낸 것이다. 발견해 낸 것만으로 부족해서인지 조국 띄우기에 열을 올린다. 이 책의 말미에서 오연호는 그러한 자신의 속내는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정말 이쪽엔 ‘차기’에 대한 희망을 걸어볼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혹시 여기저기에 있는데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꼭 기존 정치권에서만 찾아야 할까? 지금은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래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잠재성을 주목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든, 다른 기존 정치인을 변화시키든 새 희망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쪽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치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까지 ‘그 사람’을 찾아 나섰다. 기준은 하나였다. 진보이되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매력 있는 진보.(p 318)

 

  그 매력 있는 진보가 조국이라는 말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일까? 오연호는 아들과 통화하는 그의 모습을 굳이 기록하면서 조국이 얼마나 자상하며 가정적인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열성적으로 소개한다. 자신의 이름값만으로도 부족했다 싶었는지 공지영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다른 진보 진영 인사들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조국에 대한 기대가 자신만의 개인적인 기대가 아님을 역설한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세일즈에 나선 결과일까? 오연호의 조국 띄우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왠만한 사람들은 오연호가 조국을 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만큼 조국이라는 이름도 기억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아니다. 아마도 오연호가 문국현 띄우기에서 실패하면서 왜 실패했는지 철저하게 복기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저 유한킴벌리 CEO라는 이미지만으로는 험난한 진흙탕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문국현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게다. 오연호의 기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국현은 너무 쉽게 져버렸다. 문국현 띄우기의 실패를 복기하면서 조국 띄우기에는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한다. 그가 단순히 이미지가 좋은 빈껍데기가 아니라 속까지 꽉찬 매력적인 진보라는 사실을 만인에게 공개한다. 이 책의 숨겨진 의도가 바로 이것이다. 사회 ․ 경제 민주화, 청년 실업 및 등록금 문제, 통일 문제, 검찰 개혁문제,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함하는 인물평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오연호는 2012년이 아닌 2017년을 보고 조국을 띄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그를 접한 진보 인사들이 2012년 어떤 부분이든지 조국을 영입하고 그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보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조국이라는 사람이 강준만이 평하는 것보다는 더 무게감이 있고 실속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국이 각 장에서 제기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이에 대한 해법은 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강남 좌파라는 이죽거리는 비난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쿨하게 인정하는 그의 모습을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주어가 없다고 강변하는 주어 상실의 시대에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노무현을 무작정 따를 것이 아니라 공과를 분명하게 평가해서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친노 인사들과는 다른 면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진보 진영의 소통합이라는 그의 제안이 현실로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예리한 통찰력에 흥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하나 있으니 권력에의 의지이다. 지금까지 그는 오연호와의 대담을 통하여 많은 대안들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훈수이다. 장기나 바둑을 조금이나마 둘 줄 아는 사람들은 대국 당사자보다 훈수하는 사람이 수읽기에 훨씬 능하다는 사실을 한다. 이기고자 하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현실을 객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지 않은 그는 어디까지나 훈수꾼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숙제는 훈수꾼이 아니라 대국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그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저런 계파와 실리를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그 속에서 나와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차기는 어렵지만 차차기에는 대선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조국의 다음 행보가 기대가 된다. 그의 말마따나 진보 진영의 대선후보군이 풍성해지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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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2-01-29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감하게 동생 책을 빼앗기로"...ㅋㅋ 잘 정리된 후기 이상 눈에 콱! 박히는 부분입니다.

saint236 2012-01-30 00: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동생이 아직 안 읽었다기에 과감하게 뺏아았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야만의 시대 3권도 같이 압수했습니다. ㅎㅎ

2012-02-01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의 말로는, 오연호가 조국을 띄우려다 생각보다 안 뜨자 바로 오연호 카드를 버리고 문재인 카드를 내세웠다고.. 그래서 약간 애매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조국이 벌쭘해졌다고 그러더군요. /주어 상실의 시대..ㅎㅎㅎ

saint236 2012-02-01 11: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게 볼수도 있군요. 문재인은 워낙 김어준이 띄워놓아서...만약 그렇다면 오연호가 이번에도 뻘짓을 했군요...어찌 되었던 조국이 정치에 뜻이 있다면 입각을 해서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속으로 4 - 택한 나의 그릇, 사도행전 8.9장 이재철 목사의 사도행전 설교집 4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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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8장과 9장의 강해 설교로 사울의 회심과 낙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몇가지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적어본다.

 

  첫번째 한국 기독교의 광신적인 편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존경받는 사울의 등장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사도행전 속으로 3권의 말미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와 그로 인한 사울의 등장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속으로 4권에서는 이렇게 등장한 사울이 스데반의 순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기록하면서 시작한다. 사도행전 8장 1~3절에서는 사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회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얻가 옥에 넘기니라

 

  스데반이라는 한 사람이 죽었다. 아무렇게나 살았던 사람도 아니요, 경건한 삶을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죽었는데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조금도 애석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울의 생각이 유대교적인 틀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의 신념과 종교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는 열정적이면 열정적일수록 더 위험하고, 비인간적이 되어 버린다. 사울이 꼭 그렇다. 열심을 내면 낼수록, 유대교에 독실하게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목숨에 위협을 받는다. 열심을 내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더 안타까워지는 것은 편협한 사울의 모습이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던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꽤나 유연하고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한 일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현 한국 교회의 모습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백번양보해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야 기독교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포기해선 안된다고 하더라도 산사에 찾아가서 불상을 훼손하는 광신적인 모습은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울의 편협함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없다면 앞으로 한국 교회는 자신의 편협함 때문에 거꾸러지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둘째 하나님의 선택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당시 스데반 정도는 아니지만 사울보다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아마도 사명자라는 말로부터 가장 먼 사람을 꼽자면 사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사울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핍박하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사울을 선택하셨다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할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사람들을 가려가면서 정죄하고 편가르는 한국 교회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숙성의 시기가 필요하다. 사명을 받았다고 다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명을 받았어도 일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이 있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할 일은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을 돌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조금도 망설임없이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사울이 그렇게 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지만 실패하고 고향으로 낙향했던 것도 사울을 하나님의 그릇으로 빚어가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 시간이 사울을 마지막까지 달려가도록 충전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준비가 되지 않고 열정만으로 뛰어나갔다가 도중에 멈추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백주년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분의 호칭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진다. 직분을 직위로 착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빈대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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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교양강의 - 이야기로 읽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 동양문화의 정수가 담긴 인간학의 보고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8
신동준 지음 / 돌베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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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3국은 참 묘한 관계에 있다. 중국, 한국(남북을 포함하여), 일본은 비슷한 듯 닮아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혹은 반대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인 애증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3국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묘한 관계라 하겠다. 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서 발생한 문제는 그 나라만이 아니라 삽시간에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준다. 그것도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전 분야에 걸쳐서 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나라에 고구려 열풍이 불게 만들었다. 중국의 동북 공정 이후로 영화, 드라마, 만화, 남북 협력 연구 등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게 생각했던 고구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 영향 때문인지 발해에 대해서도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해서도 재해석이 활발하게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아울러 우리와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는 티벳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다케시마 분쟁,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 일본과 러시아의 쿠릴열도 분쟁은 각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며, 이 분쟁들은 분쟁 당사자국들 뿐 아니라 나머지 나라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2011년 출판계의 새로운 동향은 누가 뭐래도 중국의 부상이라고 하겠다. 각 출판사마다 “중국을 만든 책”내지는 “중국을 말한다”와 같은 주제 하에 중국에 관한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중국에 관한 사상서적, 역사서적, 학술서적들이 쏟아졌다. 과거 일본에 관한 서적들이 쏟아지던 것과 비견할 만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중국의 G2부상이 그 이유이다. 잠자던 거인으로 불리던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 놀랍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베이징 올림픽까지 성대하게 개최했다. 헐리웃의 섹시한 스타 리스트 중에 이연걸을 비롯하여 중국 출신의 배우들이 이름을 제법 올리기 시작했다. 세계 속에서 중국의 위상이 전혀 달라졌다는 말이며, 외국 유명 언론들도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없고, 미국 열풍 못지않게 중국 열풍이 일어났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국에 관한 여러 가지 서적 중에서 연말에는 압도적으로 춘추 전국 시대에 관한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중국 고전은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 열국지의 순으로, 시대는 위촉오 삼국시대, 명, 청의 순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춘추 전국 시대 이야기는 지전 같은 고사성어 내지는 짧은 역사적인 사실을 다룰 때에나 관심을 받았지 이렇게 통으로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지전도 중국의 전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춘추 전국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작년 중반기에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를 시작으로,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신동준의 열국지 교양 강의가 비슷한 시기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만 해도 꽤나 완성도가 높은 책들이요, 저자의 이름값이 만만치 않은 책들이며, 각 저자가 뚜렷한 시각을 가지고 책을 재미있게 끌어가고 있는 책들이 비슷한 시기에 3권이나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 덕에 심심치 않은 연말을 보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춘추전국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위촉오의 삼국지도 아니고, 명청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송도 아닌 전쟁과 불안의 시대인 춘추 전국인가? 열국지 교양 강의의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책을 시작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춘추 전국 시대는 주왕실의 몰락과 각지에 봉하여졌던 제후국들이 제(齊), 진(晉), 진(秦), 초(楚), 오월(吳越)로 통합되고 다시 진(秦)으로 통일되는 530년의 시기를 말한다. 흔히 춘추전국이라는 말로 부르지만 제환공에서부터 시작하여 월왕 구천까지의 춘추 오패의 시대(BC 770~476)를 춘추시대라고 하며 전국 칠웅의 시대(BC 475~221)를 전국 시대라고 부른다. 춘추 시대는 전국 시대에 비하여 존왕의 명분이 강했지만 이 또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패도가 뒷받치하지 않고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실제로 자신의 군사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환공의 뒤를 이어 패자가 되고자 했던 송 양공은 송양지인이라는 어리석고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후세에 남겼을 뿐이다. 오월을 거쳐 전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패도적인 성향이 더 강해진다. 제나라는 군주 강씨를 멸하고 신하인 전씨가 왕위를 차지했으며 중원의 진(晉)은 신하들에 의해서 한위조(韓魏趙)의 3개 국가로 분할되었고, 연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등장하여, 진제위한조연초의 전국 7웅이 형성된다. 전국 7웅은 춘추시대의 존왕이라는 명분과 서로 창칼을 맞대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예의를 지키는 로망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상대를 멸망시키기 위한 생존 경쟁에 돌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제자백가가 출연하고 각 나라의 제후들이 왕을 칭하며, 자국의 국력을 키우기 위하여 널리 인재를 구하며 출신보다는 실력을 우선시 하고, 실력만 있다면 자천도 교만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봉건 질서의 몰락을 가속시켰다.

 

  춘추 전국의 특징은 묘하게도 군사력과 사상적 자유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군사력은 사상을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중국 역사상 춘추 전국 시대만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적도 없었다. 치도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등장했고, 춘추전국 시대 이후 유가에서는 왕도를, 법가에서는 패도를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치도에 대한 학설들이 존재하지만 오랜 세월 살아남은 치도는 왕도와 패도라고 하겠다. 훗날 유가의 한 갈래인 성리학은 왕도를 최고의 치도로 여겨서 군사력 자체를 터부시하는 우를 범하였고, 그 결과 성리학을 신봉한 나라를 멸망 혹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처한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로 역사학자 중에 성리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저자인 신동준은 반대를 넘어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저자는 난세에는 패도가 왕도에 우선하며, 치세에는 왕도가 패도에 우선하는 왕패병용을 최고의 치도로 주장한다. 저자가 춘추 전국에 주목하며 우리에게 열국지를 읽어보라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의 냉전 체제가 무너진지 30년이 까까워지고 있다. 공산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자유주의라는 명분은 퇴색해 버릭 철저하게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나라는 어제의 친구였던 대만과 수교를 단절하면서 대신 어제의 적이었던, 그리고 여전히 북한의 친구이기도 한 중국과 손을 잡았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이라는 실리를 추구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국제 사회는 주(周)라는 절대 질서가 사라져버리고 실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던 춘추 전국 시대의 양상으로 변해 버렸다. 이데올로기라는 절대 이념은 쇠퇴해 버리고 시장이라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고 예의를 지킨다고 할지라도 실력이 없다면 송양지인의 불명예를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먼저 미국이 패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을 호령한다. 제가 회합을 벌여 제후를 호령하듯이 UN을 통하여 세계를 호령한다. 맘에 들지 않으면 군사력을 동원하여 제재를 가한다. 절치부심하던 중국이 미국의 뒤를 바짝 뒤쫓아 G2로 부상했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과 같은 주변 여러 국가들이 있지만 앞으로의 양상은 패자의 자리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 국면이 될 것이다. 문명국가, 명분, 의리에 앞서 실력이 우선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미래 우리나라의 위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실력을 기르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송 양공의 행보처럼 시대착오적이다. 6.25 참전의 은혜, 혈맹과 같은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미국도 포기해버린 명분과 의리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미국에게 주고 있다.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면 빨갱이요, 의리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붙인다. 마치 과거 재조지은의 의미와 명분을 가지고 청나라를 대적했던 시대착오적인 조선의 집권층처럼 말이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입아프게 떠들어댈 필요도 없다.

 

  춘추 전국 시대처럼 국제 사회는 냉정하다. 조금만 삐끗하면 굴러떨어져 두번 다시 재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벼랑 끝을 걷는 것처럼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진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물론 이런 행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 또한 있어야 한다. 글로벌 호구를 자처하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우리가 춘추 전국 시대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오타가 많다. 일단 눈에 띄는 대로 찾아보자면 289페이지 12번째 줄 "주양왕이 여동생으로=>주 양왕의 여동생으로", 354페이지 7번째 줄 "위엄은 손숙오는=>위엄은 손숙오의", 395페이지 7번째줄 "부차를 달려와=>부차에게 달려와", 557페이지 6번째 줄 "진나라가 군사가=>진나라의 군사가", 560페이지 소제목 "장평대전과 두우참=>장평대전 혹은 장평대전과 백기"(두우참에 관한 내용이 없다. 뒤에 백기와 두우참이라는 소제목이 있다.)가 맞다.

 

  손자병법과 마찬가지로 처세술로 읽어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열국지를 구입해서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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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현대의 그것이 오버랩되는 현상에 대한 통찰,
이와 더불어 중국 관련 도서의 조명 역학 관계를 정확하게 지적해주신 위의 리뷰는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그나저나 saint님의 매우 훌륭한 리뷰 덕분에
저의 장바구니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ㅠ.ㅠ
(그런데...당최~ 좋은 리뷰를 써줘도 불만인거?)

saint236 2012-01-19 23:46   좋아요 0 | URL
이런 감사할데가...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는 사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를 전부 샀는데 논어 교양 강의를 제외하고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차트랑 2012-01-20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렇게 좋은 정보를 주시다니...
알라딘에서 페이퍼의 기능을 작동시킨 배경을 감지하는 순간입니다^
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라구요
고맙습니다 saint님~!!!
 
엽전의 처세술
딩 위옌 스 지음, 장연 옮김 / 김영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엽전의 처세술!

 

  제목에서부터 오해를 불러 살만한 책이다. 엽전은 과거에 사용되던 금속 화폐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곤 한다. 다음 어학 사전에는 엽전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봉건적 인습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를 얕잡아 이르는 말.

 

  굳이 영어를 좋아하는 요즘 표현으로 옮기자면 루저정도라고 할까? 내 기억에 엽전이라는 말이 화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사용된 첫번째는 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그룹 이름에서였다. 컬투쇼를 듣다보면 "엽전 열닷냥"이라는 노래 가사가 나와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찾아보니 한복남 씨의 노래 제목이란다. 여하튼 엘신님의 서재에서 이 책을 분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올렸던 뜻은 루저라는 개념이었다. 게다가 처세술이라는 말까지 붙으니 스스로를 엽전이라고 부르는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적고 있는 책이라고 오해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책을 접하고 보니 순수하게 과거에 사용되었던 화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저자가 고향을 떠나 멀리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었을 때 누군가 저자에게 삶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주기 위하여 주었던 선물이란다. 그 선물을 받고 저자가 깨달은 엽전의 처세술은 이런 것이다.

 

  그 엽전의 의미는 "밖으로는 둥굴게(圓), 안으로는 반듯하게(方)' 처신하라는 뜻이었다. '반듯하게'는 처세의 바탕을 이루는 올바른 기운으로서 갖가지 좋은 인품을 가리킨다. '둥글게'는 노련하고 원만하게 처세하라는 의미로서 삶에 기교가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컨대 똑바로 걸어갈 수 없으면 빙 둘러서 가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반듯하면 쇠처럼 한번 구부러지면 곧 부러지고 만다. 한편 누구에게나 잘 보이기 위해서 너무 원만하게 지내면 다른 사람만 욕을 먹고 자신은 반사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런 식으로 지낸다면 어느 누가 친해지려고 하겠는가? 이런 사람도 인생의 실패자가 되고 만다. 반드시 반듯하면서도 둥글게, 둥글면서도 반듯하게 처신해야 한다.

  즉 '밖으로는 둥글게, 안으로는 반듯하게'. 이는 확실히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경구이다. 이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p5~6)

 

  결론부터 말자하면 대인관계에서는 둥글게, 자신에 대해서는 반듯하게 처신하라는 말이다. 과거 대학원 수업 시간에 기독교 윤리 개론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예쑤의 윤리에 대해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예수의 윤리를 하나님 앞에서는 단독자로 서야하며, 대인관계에 대해서는 보편주의자로 처세해야 한다고 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는 철저하게 윤리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다잡아야 하며, 대인관계에서는 인종이나 나이, 환경이나 조건에 의한 차별 없이 모든 이들을 현제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뒤바뀌게 된다면 기독교 윤리는 예수의 윤리를 배신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고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교수님들에게 배운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 가르침만은 내 머릿 속에 확실하게 각인이 되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분도 그렇게 살지 못해서 왕따를 자처했다는 것이다. 엽전의 처세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가르침이 생각이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밖으로 둥글게, 안으로 반듯하게! 대인관계에서는 굳이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낼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로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원칙과 가치관을 세웠다면 아무리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타협을 해서는 안된다. 이게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이다. 물론 어렵다. 이렇게 살려고 애쓸수록 소위 말하는 성공과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정의롭게,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더군다나 언젠가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앞에 서게 될 것이라 믿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싶어하는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안과 밖이 뒤바뀌니 문제이다. 개인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대하게,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최대한 편협하게 산다. 약육강식이라는 무한경쟁의 법칙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린 세태 속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려고 발버둥친 결과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예수를 닮아간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아니 기독교인들은 더 철저하다.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면죄부 삼아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편협하다.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르면 이단이요,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별한 상황은 이러한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좌요 우며, 꼴통이요 체제를 뒤흔드는 빨갱이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2012년 대산과 총선을 치르면서 편가르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할 대가도 꽤 클 것이다. 밖으로는 둥글게 안으로는 반듯하게라는 엽전의 처세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ps. 중국 사람이 썼다는 특이함을 제외하고 내용은 그저 그렇다. 여타 자기 계발서와 다를 것이 없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자기 계발서의 백과사전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책을 보내 주신 엘신님에게 감사한다. 나머지 책도 빨리 읽고 끄적거리는 것이 엘신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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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뜻깊은 의미를 담고있는 표현입니다.
타인을 대할 때는 너그럽고 인자하게 대하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참으로 뜻깊은 지혜를 배우고 갑니다.
평생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할 말입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데...

좋은 글 자주써주시고 잊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saint236 2012-01-14 15:50   좋아요 0 | URL
저도 엽전의 처세술이라는 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일용할 양식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한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정신없이 살아간다. "어!"하는 사이에 하루가 지나간다.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기 전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오늘은 어떤 일때문에 힘들어 했던가? 하루를 되새겨 보다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일 가운데에는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어서 지치게 하는 것들도 있고, 숙면을 방해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죽을만큼 힘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것이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이라.

 

  대개 이러한 일들은 나의 힘으로 되는 것들이 아니다. 때론 친구들의 도움으로, 때론 지인의 도움으로, 때론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의 변화로!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잊을 수 있는 것도 은혜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이 커진 것도 은혜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사방이 우겨싸임을 당한 것 같은 상황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솟아날 틈이 분명히 있다. 쉽지 않고 죽을만큼 힘들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 뿐이다. 이러한 아주 작은 틈이 존재하는 것 또한 은혜다.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라는 말만큼 절실히 깨닫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은혜라는 것이 묘하게도 한번에 왕창 쏟아지지 않는다. 그때그때 넘어지지 않을만큼 최소한으로 주어진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은 참 쪼잔한 분이라고 생각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딱 그만큼만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많이 부어 주어도 내가 그것을 담을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루케이도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은혜는 왕창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은 내가 어떻게 감당하지 못할만큼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로, 내가 넘어지지 않고 버틸만큼으로주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게 나에게 최적이니까! 나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존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뜻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교만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온갖 부침과 절망과 위기 속에서, 해도 너무한다고 투덜거리는 속에서 어느새 나는 성장해 있다.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내가 상상도 못했던만큼 성장해 있다.

 

  과거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렸던 만나를 쪼잔한 하나님의 행위라고 오해했던 적이 있다. 스팀팩도 아니고 반짝 주어지는 마약이라고 오해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 진다. 만나는 매일 매일 내리는 것이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이 되었던 것이며, 그들을 성장 시켰던 것이다.

 

  오늘 잠자리에 들면 내일도 하루가 시작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하나님의 만나를 기대한다. 그날 딱 내게 필요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기대해 본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 이 책을 펴놓고 그날 내게 주실 일용할 양식을 분명히 주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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