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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조국!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나꼼수를 통해서 대중의 뇌리 속에 그 심상치 않은 이름을 각인시켰다. 물론 나꼼수에서 조국을 띄우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진보의 새로운 자산으로 그 이름이 언급된 정도이다. 김용민의 “조국 현상을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얼굴, 키, 학벌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그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는 정도이다. 맞다. 또 하나 있다. SNS에 꽤 능통하다는 것이다. SNS의 위력을 실감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뛰어든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초창기부터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 그의 팔로워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시장의 SNS 멘토단의 일원이었고, 김제동과 더불어 위트있는 선거 독려 트윗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제동이 선거율 50%가 넘으면 삼각산 사모바위 앞에서 윗옷을 벗겠다는 트윗에, 조국에게 망사 스타킹을 신기겠다는 나꼼수 팀의 엉뚱한 제안을 승낙했었다. 선거율 50%가 넘지 못해서 공약을 지키지 못했는데 2012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빨간 망사스타킹을, 통합진보당이 승리하면 한쪽 발에는 파란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고 선언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가 할만한 점잖은 소리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발상인데 조국 교수는 실제로 그렇게 할만한 사람이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다. 가진 조건에, 위트에, 합리적인 사고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기는 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이름에 비해 정치계에서는 무명이라는 것이다. 무명이라는 말은 그가 정치계에서 인지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정치적인 업적도 보여주지 못한 비정치인이라는 뜻이다.
조국 현상을 말하다가 나오기 전에 먼저 이 책이 나온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순서를 바꾸어서 조국 현상을 말하다를 먼저 읽고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뜻한바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순전히 금전적인 이유이다. 동생이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과감하게 동생 책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조국 현상을 구입했다. 순서를 바꾸어서 이 책을 먼저 읽고 조국 현상을 읽었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었겠지만 뒤의 것을 먼저 읽고 앞의 것을 나중에 읽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아직 이 책을 보지 못하고 조국 현상을 먼저 읽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 또한 권하고 싶다.
사회 비평, 정치 비평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으니 조국이다. 강준만의 강남좌파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준만은 조국에 대해서 한마디로 이렇게 평했다.
“오연호의 조국 띄우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강준만이 왜 그런 평을 내렸는지, 왜 그가 최소한 이름값은 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의 대항마로 문국현을 띄웠던 오연호가 이번에는 조국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견해 낸 것이다. 발견해 낸 것만으로 부족해서인지 조국 띄우기에 열을 올린다. 이 책의 말미에서 오연호는 그러한 자신의 속내는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정말 이쪽엔 ‘차기’에 대한 희망을 걸어볼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혹시 여기저기에 있는데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꼭 기존 정치권에서만 찾아야 할까? 지금은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래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잠재성을 주목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든, 다른 기존 정치인을 변화시키든 새 희망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쪽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치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까지 ‘그 사람’을 찾아 나섰다. 기준은 하나였다. 진보이되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매력 있는 진보.(p 318)
그 매력 있는 진보가 조국이라는 말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일까? 오연호는 아들과 통화하는 그의 모습을 굳이 기록하면서 조국이 얼마나 자상하며 가정적인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열성적으로 소개한다. 자신의 이름값만으로도 부족했다 싶었는지 공지영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다른 진보 진영 인사들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조국에 대한 기대가 자신만의 개인적인 기대가 아님을 역설한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세일즈에 나선 결과일까? 오연호의 조국 띄우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왠만한 사람들은 오연호가 조국을 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만큼 조국이라는 이름도 기억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아니다. 아마도 오연호가 문국현 띄우기에서 실패하면서 왜 실패했는지 철저하게 복기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저 유한킴벌리 CEO라는 이미지만으로는 험난한 진흙탕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문국현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게다. 오연호의 기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국현은 너무 쉽게 져버렸다. 문국현 띄우기의 실패를 복기하면서 조국 띄우기에는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한다. 그가 단순히 이미지가 좋은 빈껍데기가 아니라 속까지 꽉찬 매력적인 진보라는 사실을 만인에게 공개한다. 이 책의 숨겨진 의도가 바로 이것이다. 사회 ․ 경제 민주화, 청년 실업 및 등록금 문제, 통일 문제, 검찰 개혁문제,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함하는 인물평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오연호는 2012년이 아닌 2017년을 보고 조국을 띄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그를 접한 진보 인사들이 2012년 어떤 부분이든지 조국을 영입하고 그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보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조국이라는 사람이 강준만이 평하는 것보다는 더 무게감이 있고 실속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국이 각 장에서 제기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이에 대한 해법은 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강남 좌파라는 이죽거리는 비난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쿨하게 인정하는 그의 모습을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주어가 없다고 강변하는 주어 상실의 시대에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노무현을 무작정 따를 것이 아니라 공과를 분명하게 평가해서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친노 인사들과는 다른 면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진보 진영의 소통합이라는 그의 제안이 현실로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예리한 통찰력에 흥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하나 있으니 권력에의 의지이다. 지금까지 그는 오연호와의 대담을 통하여 많은 대안들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훈수이다. 장기나 바둑을 조금이나마 둘 줄 아는 사람들은 대국 당사자보다 훈수하는 사람이 수읽기에 훨씬 능하다는 사실을 한다. 이기고자 하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현실을 객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지 않은 그는 어디까지나 훈수꾼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숙제는 훈수꾼이 아니라 대국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그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저런 계파와 실리를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그 속에서 나와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차기는 어렵지만 차차기에는 대선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조국의 다음 행보가 기대가 된다. 그의 말마따나 진보 진영의 대선후보군이 풍성해지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