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교양강의 - 이야기로 읽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 동양문화의 정수가 담긴 인간학의 보고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8
신동준 지음 / 돌베개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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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3국은 참 묘한 관계에 있다. 중국, 한국(남북을 포함하여), 일본은 비슷한 듯 닮아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혹은 반대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인 애증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3국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묘한 관계라 하겠다. 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에서 발생한 문제는 그 나라만이 아니라 삽시간에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준다. 그것도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전 분야에 걸쳐서 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나라에 고구려 열풍이 불게 만들었다. 중국의 동북 공정 이후로 영화, 드라마, 만화, 남북 협력 연구 등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게 생각했던 고구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 영향 때문인지 발해에 대해서도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해서도 재해석이 활발하게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아울러 우리와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는 티벳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다케시마 분쟁,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 일본과 러시아의 쿠릴열도 분쟁은 각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며, 이 분쟁들은 분쟁 당사자국들 뿐 아니라 나머지 나라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2011년 출판계의 새로운 동향은 누가 뭐래도 중국의 부상이라고 하겠다. 각 출판사마다 “중국을 만든 책”내지는 “중국을 말한다”와 같은 주제 하에 중국에 관한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중국에 관한 사상서적, 역사서적, 학술서적들이 쏟아졌다. 과거 일본에 관한 서적들이 쏟아지던 것과 비견할 만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중국의 G2부상이 그 이유이다. 잠자던 거인으로 불리던 중국이 잠에서 깨어나 놀랍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베이징 올림픽까지 성대하게 개최했다. 헐리웃의 섹시한 스타 리스트 중에 이연걸을 비롯하여 중국 출신의 배우들이 이름을 제법 올리기 시작했다. 세계 속에서 중국의 위상이 전혀 달라졌다는 말이며, 외국 유명 언론들도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없고, 미국 열풍 못지않게 중국 열풍이 일어났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국에 관한 여러 가지 서적 중에서 연말에는 압도적으로 춘추 전국 시대에 관한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중국 고전은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 열국지의 순으로, 시대는 위촉오 삼국시대, 명, 청의 순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춘추 전국 시대 이야기는 지전 같은 고사성어 내지는 짧은 역사적인 사실을 다룰 때에나 관심을 받았지 이렇게 통으로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지전도 중국의 전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춘추 전국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작년 중반기에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를 시작으로,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신동준의 열국지 교양 강의가 비슷한 시기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만 해도 꽤나 완성도가 높은 책들이요, 저자의 이름값이 만만치 않은 책들이며, 각 저자가 뚜렷한 시각을 가지고 책을 재미있게 끌어가고 있는 책들이 비슷한 시기에 3권이나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 덕에 심심치 않은 연말을 보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춘추전국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위촉오의 삼국지도 아니고, 명청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송도 아닌 전쟁과 불안의 시대인 춘추 전국인가? 열국지 교양 강의의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책을 시작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춘추 전국 시대는 주왕실의 몰락과 각지에 봉하여졌던 제후국들이 제(齊), 진(晉), 진(秦), 초(楚), 오월(吳越)로 통합되고 다시 진(秦)으로 통일되는 530년의 시기를 말한다. 흔히 춘추전국이라는 말로 부르지만 제환공에서부터 시작하여 월왕 구천까지의 춘추 오패의 시대(BC 770~476)를 춘추시대라고 하며 전국 칠웅의 시대(BC 475~221)를 전국 시대라고 부른다. 춘추 시대는 전국 시대에 비하여 존왕의 명분이 강했지만 이 또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패도가 뒷받치하지 않고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실제로 자신의 군사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환공의 뒤를 이어 패자가 되고자 했던 송 양공은 송양지인이라는 어리석고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후세에 남겼을 뿐이다. 오월을 거쳐 전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패도적인 성향이 더 강해진다. 제나라는 군주 강씨를 멸하고 신하인 전씨가 왕위를 차지했으며 중원의 진(晉)은 신하들에 의해서 한위조(韓魏趙)의 3개 국가로 분할되었고, 연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등장하여, 진제위한조연초의 전국 7웅이 형성된다. 전국 7웅은 춘추시대의 존왕이라는 명분과 서로 창칼을 맞대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예의를 지키는 로망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상대를 멸망시키기 위한 생존 경쟁에 돌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제자백가가 출연하고 각 나라의 제후들이 왕을 칭하며, 자국의 국력을 키우기 위하여 널리 인재를 구하며 출신보다는 실력을 우선시 하고, 실력만 있다면 자천도 교만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봉건 질서의 몰락을 가속시켰다.

 

  춘추 전국의 특징은 묘하게도 군사력과 사상적 자유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군사력은 사상을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중국 역사상 춘추 전국 시대만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적도 없었다. 치도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등장했고, 춘추전국 시대 이후 유가에서는 왕도를, 법가에서는 패도를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치도에 대한 학설들이 존재하지만 오랜 세월 살아남은 치도는 왕도와 패도라고 하겠다. 훗날 유가의 한 갈래인 성리학은 왕도를 최고의 치도로 여겨서 군사력 자체를 터부시하는 우를 범하였고, 그 결과 성리학을 신봉한 나라를 멸망 혹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처한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로 역사학자 중에 성리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저자인 신동준은 반대를 넘어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저자는 난세에는 패도가 왕도에 우선하며, 치세에는 왕도가 패도에 우선하는 왕패병용을 최고의 치도로 주장한다. 저자가 춘추 전국에 주목하며 우리에게 열국지를 읽어보라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의 냉전 체제가 무너진지 30년이 까까워지고 있다. 공산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자유주의라는 명분은 퇴색해 버릭 철저하게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나라는 어제의 친구였던 대만과 수교를 단절하면서 대신 어제의 적이었던, 그리고 여전히 북한의 친구이기도 한 중국과 손을 잡았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이라는 실리를 추구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국제 사회는 주(周)라는 절대 질서가 사라져버리고 실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던 춘추 전국 시대의 양상으로 변해 버렸다. 이데올로기라는 절대 이념은 쇠퇴해 버리고 시장이라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고 예의를 지킨다고 할지라도 실력이 없다면 송양지인의 불명예를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먼저 미국이 패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을 호령한다. 제가 회합을 벌여 제후를 호령하듯이 UN을 통하여 세계를 호령한다. 맘에 들지 않으면 군사력을 동원하여 제재를 가한다. 절치부심하던 중국이 미국의 뒤를 바짝 뒤쫓아 G2로 부상했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과 같은 주변 여러 국가들이 있지만 앞으로의 양상은 패자의 자리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 국면이 될 것이다. 문명국가, 명분, 의리에 앞서 실력이 우선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미래 우리나라의 위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실력을 기르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송 양공의 행보처럼 시대착오적이다. 6.25 참전의 은혜, 혈맹과 같은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미국도 포기해버린 명분과 의리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미국에게 주고 있다.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면 빨갱이요, 의리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붙인다. 마치 과거 재조지은의 의미와 명분을 가지고 청나라를 대적했던 시대착오적인 조선의 집권층처럼 말이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입아프게 떠들어댈 필요도 없다.

 

  춘추 전국 시대처럼 국제 사회는 냉정하다. 조금만 삐끗하면 굴러떨어져 두번 다시 재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벼랑 끝을 걷는 것처럼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진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물론 이런 행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 또한 있어야 한다. 글로벌 호구를 자처하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우리가 춘추 전국 시대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오타가 많다. 일단 눈에 띄는 대로 찾아보자면 289페이지 12번째 줄 "주양왕이 여동생으로=>주 양왕의 여동생으로", 354페이지 7번째 줄 "위엄은 손숙오는=>위엄은 손숙오의", 395페이지 7번째줄 "부차를 달려와=>부차에게 달려와", 557페이지 6번째 줄 "진나라가 군사가=>진나라의 군사가", 560페이지 소제목 "장평대전과 두우참=>장평대전 혹은 장평대전과 백기"(두우참에 관한 내용이 없다. 뒤에 백기와 두우참이라는 소제목이 있다.)가 맞다.

 

  손자병법과 마찬가지로 처세술로 읽어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열국지를 구입해서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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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현대의 그것이 오버랩되는 현상에 대한 통찰,
이와 더불어 중국 관련 도서의 조명 역학 관계를 정확하게 지적해주신 위의 리뷰는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그나저나 saint님의 매우 훌륭한 리뷰 덕분에
저의 장바구니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ㅠ.ㅠ
(그런데...당최~ 좋은 리뷰를 써줘도 불만인거?)

saint236 2012-01-19 23:46   좋아요 0 | URL
이런 감사할데가...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는 사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를 전부 샀는데 논어 교양 강의를 제외하고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차트랑 2012-01-20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렇게 좋은 정보를 주시다니...
알라딘에서 페이퍼의 기능을 작동시킨 배경을 감지하는 순간입니다^
돌베개 교양강의 시리즈라구요
고맙습니다 saint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