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엽전의 처세술
딩 위옌 스 지음, 장연 옮김 / 김영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엽전의 처세술!
제목에서부터 오해를 불러 살만한 책이다. 엽전은 과거에 사용되던 금속 화폐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곤 한다. 다음 어학 사전에는 엽전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봉건적 인습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를 얕잡아 이르는 말.
굳이 영어를 좋아하는 요즘 표현으로 옮기자면 루저정도라고 할까? 내 기억에 엽전이라는 말이 화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사용된 첫번째는 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그룹 이름에서였다. 컬투쇼를 듣다보면 "엽전 열닷냥"이라는 노래 가사가 나와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찾아보니 한복남 씨의 노래 제목이란다. 여하튼 엘신님의 서재에서 이 책을 분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올렸던 뜻은 루저라는 개념이었다. 게다가 처세술이라는 말까지 붙으니 스스로를 엽전이라고 부르는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적고 있는 책이라고 오해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책을 접하고 보니 순수하게 과거에 사용되었던 화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저자가 고향을 떠나 멀리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었을 때 누군가 저자에게 삶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주기 위하여 주었던 선물이란다. 그 선물을 받고 저자가 깨달은 엽전의 처세술은 이런 것이다.
그 엽전의 의미는 "밖으로는 둥굴게(圓), 안으로는 반듯하게(方)' 처신하라는 뜻이었다. '반듯하게'는 처세의 바탕을 이루는 올바른 기운으로서 갖가지 좋은 인품을 가리킨다. '둥글게'는 노련하고 원만하게 처세하라는 의미로서 삶에 기교가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컨대 똑바로 걸어갈 수 없으면 빙 둘러서 가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반듯하면 쇠처럼 한번 구부러지면 곧 부러지고 만다. 한편 누구에게나 잘 보이기 위해서 너무 원만하게 지내면 다른 사람만 욕을 먹고 자신은 반사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런 식으로 지낸다면 어느 누가 친해지려고 하겠는가? 이런 사람도 인생의 실패자가 되고 만다. 반드시 반듯하면서도 둥글게, 둥글면서도 반듯하게 처신해야 한다.
즉 '밖으로는 둥글게, 안으로는 반듯하게'. 이는 확실히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경구이다. 이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p5~6)
결론부터 말자하면 대인관계에서는 둥글게, 자신에 대해서는 반듯하게 처신하라는 말이다. 과거 대학원 수업 시간에 기독교 윤리 개론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예쑤의 윤리에 대해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예수의 윤리를 하나님 앞에서는 단독자로 서야하며, 대인관계에 대해서는 보편주의자로 처세해야 한다고 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는 철저하게 윤리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다잡아야 하며, 대인관계에서는 인종이나 나이, 환경이나 조건에 의한 차별 없이 모든 이들을 현제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뒤바뀌게 된다면 기독교 윤리는 예수의 윤리를 배신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고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교수님들에게 배운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 가르침만은 내 머릿 속에 확실하게 각인이 되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분도 그렇게 살지 못해서 왕따를 자처했다는 것이다. 엽전의 처세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가르침이 생각이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밖으로 둥글게, 안으로 반듯하게! 대인관계에서는 굳이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낼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로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원칙과 가치관을 세웠다면 아무리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타협을 해서는 안된다. 이게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이다. 물론 어렵다. 이렇게 살려고 애쓸수록 소위 말하는 성공과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정의롭게,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더군다나 언젠가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앞에 서게 될 것이라 믿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싶어하는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안과 밖이 뒤바뀌니 문제이다. 개인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대하게,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최대한 편협하게 산다. 약육강식이라는 무한경쟁의 법칙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린 세태 속에서 남보다 한발 앞서려고 발버둥친 결과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예수를 닮아간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아니 기독교인들은 더 철저하다.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면죄부 삼아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한없이 편협하다.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르면 이단이요,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별한 상황은 이러한 문제를 더 심화시킨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좌요 우며, 꼴통이요 체제를 뒤흔드는 빨갱이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2012년 대산과 총선을 치르면서 편가르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지불해야할 대가도 꽤 클 것이다. 밖으로는 둥글게 안으로는 반듯하게라는 엽전의 처세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ps. 중국 사람이 썼다는 특이함을 제외하고 내용은 그저 그렇다. 여타 자기 계발서와 다를 것이 없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자기 계발서의 백과사전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책을 보내 주신 엘신님에게 감사한다. 나머지 책도 빨리 읽고 끄적거리는 것이 엘신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