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한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정신없이 살아간다. "어!"하는 사이에 하루가 지나간다.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기 전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오늘은 어떤 일때문에 힘들어 했던가? 하루를 되새겨 보다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일 가운데에는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어서 지치게 하는 것들도 있고, 숙면을 방해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죽을만큼 힘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것이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이라.

 

  대개 이러한 일들은 나의 힘으로 되는 것들이 아니다. 때론 친구들의 도움으로, 때론 지인의 도움으로, 때론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의 변화로!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잊을 수 있는 것도 은혜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이 커진 것도 은혜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사방이 우겨싸임을 당한 것 같은 상황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솟아날 틈이 분명히 있다. 쉽지 않고 죽을만큼 힘들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 뿐이다. 이러한 아주 작은 틈이 존재하는 것 또한 은혜다.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라는 말만큼 절실히 깨닫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은혜라는 것이 묘하게도 한번에 왕창 쏟아지지 않는다. 그때그때 넘어지지 않을만큼 최소한으로 주어진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은 참 쪼잔한 분이라고 생각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딱 그만큼만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많이 부어 주어도 내가 그것을 담을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루케이도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은혜는 왕창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은 내가 어떻게 감당하지 못할만큼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로, 내가 넘어지지 않고 버틸만큼으로주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게 나에게 최적이니까! 나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존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뜻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교만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온갖 부침과 절망과 위기 속에서, 해도 너무한다고 투덜거리는 속에서 어느새 나는 성장해 있다.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내가 상상도 못했던만큼 성장해 있다.

 

  과거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렸던 만나를 쪼잔한 하나님의 행위라고 오해했던 적이 있다. 스팀팩도 아니고 반짝 주어지는 마약이라고 오해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 진다. 만나는 매일 매일 내리는 것이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이 되었던 것이며, 그들을 성장 시켰던 것이다.

 

  오늘 잠자리에 들면 내일도 하루가 시작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하나님의 만나를 기대한다. 그날 딱 내게 필요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기대해 본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 이 책을 펴놓고 그날 내게 주실 일용할 양식을 분명히 주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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