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광대 - 김명곤 자전
김명곤 지음 / 유리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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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연예인이 대세다. 잘 키운 연예인 열 중소기업 안부럽다고 장나라, 장윤정 같은 인기 연예인 한명만 잘 키우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한다. 부와 인기와 권력을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슈스케, 보코, 위탄, K-팝 등 오디션 프로가 넘쳐난다. 이 프로들은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예능인 스타킹과는 달리 실력을 갖춘 절박함이 묻어 있다. PD들과 심상위원들은 이들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는데 사용한다. 슈스케의 악마의 편집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오디션 프로가 참 불편하다. 나도 김지수와 장제인의 신데렐라, 울랄라세션의 스윙베이비를 보고 열광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연예인이 되고 싶고, 가수가 되고 싶은 그들의 목적 의식에 대한 불편한 인식 때문이다. 내가 혼자 삐딱하니 바라보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말이다.

 

  "나는 딴따라다 태어났을 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고 그게 자랑스럽다."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위의 말을 누가 했는지 혹시 아는가? 전자는 박진영이 했고, 후자는 김명곤이 했다. 전자는 상업과 서구 음악의 최첨단을 달리는 JYP 프로덕션의 사장이요, 후자는 비상업성과 한국적 음악에 천착한 순수 예술인이라고 하겠다. 살아온 삶의 궤적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도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인데 그 둘에게는 공통된 점이 하나 있으니 딴따라 의식이다. 김명곤의 표현으로 하자면 광대의식이다.

 

  딴따라! 연예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다.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체로 나팔 소리의 의성어 "따따따"에서 유래한 말로 받아들인다. 과거에 딴따라를 하겠다면 부모님들이 발벗고 나서서 말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내 기억에 이선희 씨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서 가발쓰고 변장하고 강변가요제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명곤의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박진영이 1집과 2집으로 활동하던 그 시절에도 연예인 특히 가수에 대한 편견은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았다. 물론 박진영의 파격적인(!) 무대의상이 한몫 거들었지만 말이다. 가수니, 대중 예술가니, 대중 음악가니 하면서 조금은 고상하게 자신들의 자리매김을 시도하던 사람들 틈에서 발칙하게도 그는 "나는 딴따라다"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자조적인 웃음을 섞으면서 자학하면서 스스로는 딴따라로 비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나는 딴따라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라는 당당함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박진영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가 많이 올라갔다.

 

  김명곤의 "나는 다시 광대다"라는 말도 박진영의 딴따라 선언과 동일하다. 한문으로 "廣大"라고 쓰고 김명곤은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지만은 광대의 원래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광대는 순우리말로 옛날의 사당패나 풍물패와 같은 예능인들을 지칭했던 말이다. 요즘에도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을 광대라는 말로 부르면 비하하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지만 김명곤은 당당하게 나는 광대라고 선언한다. 박진영의 딴따라 선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는 일을 즐거워 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순수한 열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하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협하지않는 광대기질! 김명곤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이만한 말이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광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 확고한 광대의식, 박진영 식으로 말하면 딴따라 의식이 있기 때문에 김명곤은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요,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길과 산홍에게서 무릇 광대는 이러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잡게 된다.

 

  논어에 이르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비록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들 내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공길)

 

  내 비록 천한 기생의 몸이지만 일본에 나라를 판 오적의 두목에게 몸을 팔지 않겠다.(산홍)(63p)

 

  요즘 광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의도의 뭇 의원들은, 스나이퍼를 자청하면서 개콘의 씹을거리로 전락해 버린 모 의원들을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서편제를 통해서 화려하게 등장한 김명곤의 뒤편에는 수천 시간, 수만 시간의 어둠의 시간이 존재함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그리고 인간 김명곤에 대해서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내게 판소리의 아름다움과 흥과 한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김명곤씨가 앞으로도 아름답고 꿈꾸는 광대로 남길 기도한다.

 

  ps. 이 글을 쓰면서 리쌍의 광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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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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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直說 straight talk)!

 

  "바른대로 혹은 있는 그대로 말함"

 

  쉽게 말해 대놓고 말한다는 의미다. 이리저리 뱅뱅 돌리고, 이런 저런 비유를 통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고도 간결하게 의견을 표명한다는 뜻일텐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무슨 말이야?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비비꼬인 반응이다.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라는 거창한 부제와는 달리 뭐하나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고, 쏘지도 못했다. 탈춤의 말뚝이를 기대했지만 말뚝이의 가면을 쓴 양반이다. 왠지 한홍구와 서해성에게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이런 젠장이다. 이 시대의 지성인, 사상가, 정치인들 36명을 불러서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고 했으나 글쎄다. 직설 후기에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고 쓰고 있으니 그런가보다 넘어가지만 글을 통해서는 뜨거운 논쟁은 고사하고 차가운 이성적인 대립도 느낄 수가 없다. 그냥 술먹고 한둘이 모여서 야부리푸는 정도, 딱 그정도이다. 

 

  직설법의 가장 큰 장점은 있는 사실을 팩트에 근거해서 낱낱이 까발리는 것이다. 까발리다 보면 사람들에게 욕도 먹을 수도 있고, 억울하게 비난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고수익 고위험이라고 이정도의 리스크는 떠 안아야 말에 힘이 실리고, 생명이 깃든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나꼼수라고 할 수 있겠다. 김어준,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 나꼼수 4인방은 빙빙 돌리지 않는다. 발언하기 전에 몇번을 법률적으로 검토해 보겠지만 일단 말을 내뱉기 시작하면 결코 빙빙 돌리지 않는다. 정면승부한다. 나꼼수를 두고 견제가 들어가고, 고소하고, 심지어는 무리수지만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쫄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러한 리스크를 떠안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내뱉은 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청자가 판단할 몫이다.

 

  직설에는 이런 것이 없다. 고경태씨의 말처럼 책을 읽다가 주먹을 불끈 쥘 일도 없다. 사람을 불렀으면 뒷담화를 하든, 격렬한 토론을 하든 확실해야 하는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시종일관 서해성과 한홍구가 떠든다. 가끔 양념으로 초대 소님의 말이 들어간다. 몇 시간짜리 대담을 단 몇페이지로 줄이는 것이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방대한 양을 논점을 흐리지 않으면서 간단하게 추려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문어체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려운 말 쓰지 않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혹은 재미있도록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직설이라는 대담한 제목을 달고 나왔으면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야 한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다. 논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말이 구어체도 아니다. 구어체 형식을 빌린 문어체이다. 물론 어려운 말도 사정없이 사용한다. 다시 한번 이런 젠장이다.500페이지가 넘는 이 재미없는 책을 끝까지 읽어낸 내가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책의 제목이 잘못되었다. 直說이 아니라 稷雪이 맞다. 싸락눈을 북한에서는 稷雪이라고 부른단다. 싸락눈의 특징이 무엇이냐? 다른 눈에 비해서 개별적인 눈 결정은 단단하고 크다. 눈에 확 띈다. 그렇지만 안뭉친다. 응집력이 없다. 또한 눈도 눈인지라 시간이 지나고 햇볕을 받으면 녹아버린다. 그러니 싸락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각 챕터 초대 손님은 대단하다. 이름 석자만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리영희, 고은, 박지원, 홍준표, 박원순 등등! 하나같이 굵직하다. 그런데 응집력이 없다. 이 사람들을 초대해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르겠다. 다음 장을 읽으면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까먹는다. 존재감이 대단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그러니 싸락눈 稷雪일 수밖에!

 

  졀점 두개 중 하나는 순전히 빵가게님의 직설 때문이다.

 

  "신간평가단 탈락을 기념하며...saint님께 보내드립니다."

 

  이게 더 직설적이지 않은가? "놈현 관장사"라는 말을 두고 절독을 선언한 유시민도, 여기에 호응한 노사모도, 그리고 사과문을 낸 한겨레도, 시껍해한 서해성과 한홍구도 쿨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의 공과 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야당 노릇 제대로 못하는 민주통합당(당시 민주당)에 대한 직설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어디있겠는가? 직설은 4화로 죽어버리고 그저 싸락눈만 날리고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기꺼이 리스크를 떠안지 못했으니 이런 직설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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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4 -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4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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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춘추시대도 중반으로 들어섰다. 초반 패권국 제의 시대를 넘어 진초의 양강 구도가 무너지면서 4권의 주인공 자산의 시대에는 중원의 진과 초라는 2강과 뒤를 따르는 제와 서방의 진, 초와 끊임없이 다투는 오, 강대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교로 목숨을 연명하는 정, 노, 채, 송 등등의 약소국들이 등장한다. 공원국의 말대로 2강 체제가 무너지고 다극화의 시기가 다가오면서 각 국가들은 강대국의 그늘에서 쫓겨나 각자가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전히 예라는 국제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지만 제환공이나 진문공의 시절처럼 절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제환공과 진문공 시대도 예라는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있던 시기였기에 자산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력(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예는 "송양지인"일 뿐이다. 한마디로 자산의 시대는 자국의 이익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실리주의를 바탕으로 복잡한 외교전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전국 시대 말기의 대 진(서방의 진) 외교전인 합종연횡과는 성격을 달리 하는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채와 같은 국가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갈팡질팡하다가 멸망당했지만 묘하게도 자산의 정나라는 강대국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소국의 길을 걷게 된다. 2강 체제의 해체라는 국제정세가 자산의 정나라에게는 비상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MB정권 이후 글로벌 호구라는 자조 섞인 말을 수시로 하고 듣고 있는 우리나라 외교라인들에게는 통렬한 반성과 함께 깊이 숙고해야 하는 책이다. 외교부의 인사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대로 "오랫동안 고슴도치가 되지 못하고 어정쩡한 처지에 처해 있었던 우리 자신을 돌아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대로 글로벌 호구라고 불리는 한국의 외교정책을 떠올렸으며, 다른 하나는 호구 정당 민주통합당을 떠올렸다. 혹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민주통합당은 그야말로 호구당이다. 독재와 싸워온 수십년 야당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래서 한 때는 여당이 되어 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도 있지만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시절은 넘어가자. 거기에 대해 냉정한 역사적인 비판과 자성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넘어가자.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지고 다시 야당으로 돌아간 후의 정당 활동과 민주통합당으로 통합이 되어 지도부를 꾸리고 정당으로서 활동하는 지금의 모습만 지켜보자.

 

  민주통합당이 과거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거대당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내가 알기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탄돌들이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면서 딱 한번 거대당이 된 적이 있다. 물론 당시에도 거대 여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여 국보법, 사학법과 같은 중요 법안들을 통과 시키지 못하고 사분오열했다. 거대당이었던 경험이 없어서 그랬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당시 사태를 보면서 나는 딱 한마디 했다. "여병추!"

 

  그런데 요즘 보면서 다시한번 "여병추!"을 외친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병신 삽질하네!"라는 심한 말을 날리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병신 삽질한다"는 말이다. 조중동같은 보수언론은 논외로 치자. 경향과 한겨레에서도 동일한 논조의 기사들이 실린다. 팟캐스트는 더 직설적이다. 나꼼수가 민주당 삽질한다고 비판한 것은 정봉주 의원이 사정없이 깔대기를 들이대던 초기부터요, 나꼽살도 FTA이야기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는 말이 민주당의 삽질이다. 김종배의 이털남 33회는 조목조목 민주통합당의 삽질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민주통합당은 국민의 도구이다. 제대로 못하면 국민들에게는 통합진보당이라는 도구가 있다."이다. 맞는 말이다. 솔직하게 나에게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헷갈린다. 인적 구성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고, 이름도 비슷하고, 정치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다르지만 얼핏보면 그놈이 그놈이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이라는 것이 김진표를 원내대표에 그대로 두고 한명숙을 당대표로 내세웠을 뿐이다. 모바일투표를 위해 많은 시민들이 경선에 참여한 것을 자기를 지지하는 줄 착각한다.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곧 자신들의 지지율 상승이라고 생각하는 김칫국이 어이없다. 이슈는 여러가지가 많은데 야당으로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하는 짓마다 다 용두사미다. 그러면서 항상 내리는 결론은 자신들의 의석수가 적어서 그러니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을 뽑아주면, 그래서 거대당으로 만들어주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삽질도 이런 삽질이 없다. 언제 자산이 우리 정나라는 작으니까 일단 크게 만들어 주면 강한 국가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가? 오히려 자산은 우리에게 약자는 약자 나름대로 의 생존의 원칙과 기술이 있다고 말한다.

 

  약자의 생존 기술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약자는 강자들보다 국제관계에 훨씬 민감해야 한다. 그래서 강자들을 다루는 솜씨, 곧 언변이 필요한다. ---(중략)--- 두번째로 약자는 강해지기 위해 기존의 강자들보다 더 엄격한 수단을 써야 한다. 그 엄격한 수단이란 법을 뜻한다. 자산은 강대국들의 압박 속에서도 개혁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그래서 춘추시대에 최초로 성문법을 만들어 국인들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법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의 법 집행은 춘추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엄격한 명도 있었다.(p36-38)

 

  여대야소라고 신세한탄하지 말고, 당신들이 그렇게 뽑아 놓았으니 당신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며 국민들 탓하지 말고, 그러니 다음에는 우리를 뽑아달라는 말로 표를 구걸하지도 말라. 작은 야당이라고 정치적으로 아무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유선진당, 민노당, 진보신당, 국참당 같은 당에 비하면 민주당은 거대야당이다. 민주당이 욕을 먹는 것도 그만한 덩치를 가지고도 매일 작다고 불평만 하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 야당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한나라당에 비하여 힘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약자의 처세술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첫째 약자는 강자보다 국제관계에 더 민감해야 하듯이 야당은 여당보다 국민의 정서에 더 민감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국민 정서에 민감한가? 지금의 민주통합당이 국민 정서에 민감한가? 아니다. 국민들의 정서를 모르고, 그저 한나라당에 대한 반사 이익과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통해서 얻는 정치적인 이익에만 민감하지 않은가? 무엇인가 국민의 정서를 살피고 대변하는 마음으로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지지는 구걸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을 밀어줘야할 당위성이 무엇인가? 반MB, 반새누리당을 위한 선거 연대라는 명목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면 굳이 민주통합당으로 모일 이유가 무엇인가? 통합진보당도 있지 않은가? 미리 샴페인 터뜨리고 오만하게 구는 민주통합당의 삽질이 그거 우스울 뿐이다. 여병추!

 

  둘째 강자보다 엄격한 수단을 써야 한다. 즉, 강자보다 더 엄격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새누리당이 원칙을 어기면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여타 야당이 원칙을 어기면 난리가 난다. 김어준은 진보의 결벽주의라고 평하지만 그런 결벽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진보를 차별화 시킨다. 물론 결벽주의가 편협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한국 진보정치의 한계이다. 엄격한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 결벽주의 편협주의를 추구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상황과 때에 맞추어서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까지 포기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국민에게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져서 했던 말을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했던 말을 잘 뒤집는다. 초반부터 안해도 되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FTA 날치기 안된다고 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왜 합의는 해주는가? 김진표를 욕하면서 왜 김진표를 원내대표로 놓아두는가? 왜 자기들이 내세운 인사가 부결이 되도록 내버려두는가? 원칙이 없다. 기준도 없다. 그냥 주먹구구식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거대야당이 될 확율? 물론 높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할 확율? 꽤 낮아질 것이다. 왜냐? "병신 삽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자산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물론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ps. 자산은 정치가요, 안자는 비평가라는 공원국의 평이 꽤나 마음에 와닿는다. 묘하게 안자에게서 진중권이 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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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2-23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갈려서 민주통합당을 통합민주당으로 썼다. 다 고쳤는데 정작 제목은 안 고쳤으니 에라 모르겠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차트랑 2012-02-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기왕에 바꾸신거 제목도 바까주세요 ㅠ.ㅠ

그나저나 춘추전국시대가 저를 겁나게 유혹하는군요
미쵸요...

saint236 2012-02-23 21:58   좋아요 0 | URL
알았습니다. 바꾸지요. 요즘 춘추전국 이야기는 장난이 아닙니다. 이래서 역사를 공부하나 싶습니다.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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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덕은 서서가 여망과 장량에 비견될 선비를 추천하니 목을 빼고 다시 서서에게 묻기를

  “그분의 재주는 선생과 비교하면 어떠합니까? 번거롭지만 나를 위하여 말해 주시오.”


  “서서는 그분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지 꼭 비교해야 한다면 그분이 기린이라면 서서는 비루먹은 조랑말에 불과합니다. 그분이 봉황이라면 서서는 한 마리 까마귀에 불과한 몸입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을 말하기를 관중이나 악의에 비교하지만 관중이나 악의도 그분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분은 經天緯地(경천위지) 할 재주를 가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당금의 천하에서 그분과 비교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봉추가 있다 하나 저의 견해로는 복룡이 더 윗길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대목을 잘 알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책사를 얻었던 유비가 조조의 계략에 의해 그를 떠나 보내면서 그렇게 아쉬워했고, 유비의 마음을 알아차린 서서가 제갈공명을 추천한다. 삼국연의의 메시급 사기 캐릭 제갈공명의 등장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주의할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제갈공명이 스스로를 공자같은 위인이나 손자같은 병법가가 아니라 관중과 악의라는 춘추 전국시대의 관리와 무장에 견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등장하겠지만 악의는 뛰어난 무공을 자랑하지만 끝모를 자신감과 그를 질시하는 이들의 참소로 죽음을 당한 연나라의 장수로, 관우와 비슷한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제갈공명은 정치에서는 관중이요, 무공에서는 악의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갈공명이 관중과 악의를 닮고 싶었던 것은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가 살던 시대가 춘추 전국 시대와 너무나 닮아 있던 후한의 혼란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관중과 악의와 같은 현실정치와 부국강병을 통해 천하를 안정시키고 싶었던 것이 어찌 보면 제갈공명의 속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신주는 관중과 공자라는 춘추시대의 두 인물을 통하여 현실정치와 이념정치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난 후 중국은 전란과 혼란의 시기로 접어든다. 존왕양이의 기치를 걸고 패자를 추구하는 춘추 오패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전국칠웅의 시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이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따로 구분하여 부르지 않고 일반적으로 춘추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혼란의 시대 가장 처음 등장한 인물은 관중이라는 관료이다. 일반적으로 춘추전국하면 유가의 공자와 맹자와 순자, 법가의 상앙과 한비자, 병가의 손자, 묵가의 묵자, 도가의 노자와 장자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놀랍게도 춘추전국 시대에 관한 책은 항상 관중으로부터 시작한다. 관포지교외에는 그렇게 유명하지 못한 관중이지만 춘추전국 시대의 서술을 그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춘추 오패의 첫 인물인 제환공을 모셨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그가 제환공을 춘추오패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환공을 춘추 오패의 첫 인물로 만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강신주가 말한대로 그가 철저하게 현실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관중은 인과 민을 구분하고 국읍과 비읍을 구분하여 끊임없이 구별하고 차별화하는 시대에 민과 비읍의 잠재력에 일찍 눈을 떴고 그것을 국가의 힘으로 흡수하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비록 목민이라는 그의 정치 이념이 경제적 수탈을 강화했지만 제나라를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관중은 철저하게 현실적인 정치관료였던 셈이다. 관중의 현실감각에 대해 강신주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만약 민중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면 군주는 그들이 예의나 수치를 모른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여기서 관중의 현실적 인간 이해가 돋보인다. 문화적 생활은 경제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관중의 통찰은, 기본적으로 귀족층이나 민중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귀족층은 선천적으로 귀족적인 예절이나 명예심을 갖고 태어난 선택받은 계층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얻은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이 없다면 그들이 과연 예절이나 수치심을 알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p108-109)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면 군주는 그들이 예의나 수치를 모른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말은 오늘날 정치인들이 충분히 숙고해야하는 말이다. 촛불집회만 일어나면 누가 뒤에서 조장하는가, 촛불을 살 돈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말로 이념논쟁으로 몰고가지만 모든 일의 근본원인은 먹고사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안전한 먹거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숨을 쉴만한 경제적인 요건, 대기업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정규직과 사회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생겨나는 것이고, 촛불을 드는 것이고, 하다하다 안되니 고층 크레인에 올라가고 한강다리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 정권들어서 경제 문제보다는 이념 논쟁이 더 격화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영화, 재벌, 경제문제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경제문제가 아니라 계층문제와 남북문제라는 이념 전쟁이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좌클릭했다는 말이 이러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말이 아니겠는가? 또한 차기 총선 대선 주자들이 하나같이 복지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이러한 현실에 눈을 떴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다만 걱정인 것은 그들의 정치적 식견이 관중과 같이 삶의 고난과 실패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동반되지 않아 관중의 목민이라는 개념의 찌꺼기만 가져오는 유사 현실정치인이 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서민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서민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시장에서 악수 한번하고 떡볶기 한접시 사먹고, 소에게 사료 한번 주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서민을 위하네, 민생을 위하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걱정이 깊어지는 것은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책의 후반부의 주인공인 공자는 이념주의 정치가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주례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해석하여 인과 예에 대해서 니야기하지만 그도 결국은 관료를 꿈꾸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정치가라고 하겠다. 다만 그는 현실정치보다는 가치관과 국가의 이념에 올인한 이념주의형 정치가일 뿐이다. 강신주는 공자의 사상에 대해서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이처럼 공자는 민중을 자신과 같은 존재, 다시 말해 인식과 판단의 동등한 주제초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중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가 주창했던 인이란 것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이념이었다는 점과, 그것은 단지 지배 계층에게만 국한된 귀족적 고상함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P 213)

 

  공자의 사상을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들만의 리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겠다. 주례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확고히 붙잡고 그것을 회복하기만 한다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어쩌면 강신주의 말대로 정치적인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자의 이념이 춘추전국과 같은 혼란의 시대가 아니라 비교적 장수한 제국에서 지배이념으로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공자의 가르침이 정치적인 아마추어리즘의 발로라고 평가절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관중에 대한 반동내지는 관중이 간과한 이데올로기의 힘을 발견하고 거기에 치중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물론 강신주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공자를 성인시하는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한 것은 공자의 사상은 철저하게 보수적이요, 그래서 지배계층에 의해서 오랫동안 지배 이데올로기로 소비되어 왔다는 점이다.

 

  제자백가의 귀환 2권을 읽으면서 자꾸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의 결론과도 같은 말이요,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에 부합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제나라가 패자로 인정받아 규구의 회맹을 개최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제나라가 다른 제후국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로 주나라로 상징되는 예의 질서를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없어진다면, 패자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특히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측면, 즉 이데올로기적 측면이다. 만약 이 힘을 상실한다면, 제나라는 패자는커녕 다른 여러 체후국들의 연합군에 의해 국가 자체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p 84)

 

  관중과 공자는 서로 다른 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을 떼어 놓으면 양쪽 모두 가치를 잃어버린다. 제대로 된 이념이 없는 현실정치는 물질 만능주의를 만들어내고,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이념은 배고픈 민중을 양산한다. 물론 양측 모두 독재자와 전체주의 탄생의 아주 좋은 토양이 된다. 전자가 남한이라면 후자는 북한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둘 다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한제국의 길을 되풀이하지 않겠는가?

 

  무분별한 복지정책, 무분별한 먹고사니즘, 무분별한 이데올로기 전쟁 속에서 국민의 한 사람인 나를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고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인 정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꼭 이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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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2-02-2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중이라는 인물은 상당히 신기합니다. 포숙아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기감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활자로 접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활자로도 위기감이 보이거든요.

삼국지의 제갈공명에서 관중과 공자의 이야기라니...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이 책도 보관함으로 가야겠네요~ 추천 날리고 갑니다.^^

saint236 2012-02-21 21:24   좋아요 0 | URL
그래서 강신주는 관중의 현실적인 감각은 여러번의 실패를 통해 얻게된 관중의 힘이라고 평합니다.

차트랑 2012-02-2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개월 후의 독서목록인데...
흠미롭습니다^^

saint236 2012-02-21 21:23   좋아요 0 | URL
저도 사놓고 한동안 묵혔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더 흥미로운건 제가 했던 리뷰의 내용이 춘추전국이야기 4권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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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혀간다가 요즘 유행이다.

 

  "BBK를 말하는 자 잡혀간다."(정봉주)

  "데모 하는 자 잡혀간다."(유모차 부대)

  "촛불을 드는 자 잡혀간다."(촛불 시위자들)

  "농담하는 자 잡혀간다."(박정근, 시사IN 기사 제목)

  "꿈꾸는 자 잡혀간다."(송경동)

 

  이 외에도 잡혀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바야흐로 자기 검열의 시대이다.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다. 그냥 소설을 써 보는 것이다."라는 꼼수로 자기 검열을 피해가지 않으면 잡혀가는 시대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집권자들이 통 크게 놀지 못한다. 통큰 것은 롯데마트에서 파는 피자 뿐이다. 그나마 통크게 놀던 치킨도 잡혀갔다.

 

  "송경동"

 

  낯선 이름이다. 솔직하게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저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지 않게 시를 쓰고, 글을 쓰는 독특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안다. 그 판에서야 유명한 사람인지 몰라도 나에겐 아주 생소한 사람이다. 그저 이 책을 통해서만 접했을 뿐이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절망이 선뜻 책에 손을 대지 않게 만든다. 그러다가 존경하던 선생님(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특별히 존경하는 교수님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대한 글을 보았다.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하시던 그 분의 글 때문에 책을 펴고 읽었다.

 

  역시 제목 답게 답답하다. 절망스럽다. 사무실에서 보다가 꺽꺽 숨직이며 울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남몰래 눈을 깜박였다. 뻔히 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꿈을 꾸는 저자가 불쌍해서 울었고, 그 정도의 꿈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회가 답답해서 울었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포기 하지 못하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저자가 불쌍해서 다시 울었고,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생각 나서 또 한번 울었다. 이 글을 보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무엇이라 할까 겁이 나서 자기 검열을 떠올리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서 마지막으로 울었다.

 

  그게 가능할 거냐고? 이건 단지 꿈일까? 그렇다라도 좋다. 진정한 문화 예술은 아직 오지 않은 꿈을 꾸는 일이니까. 퇴락한 시대를 핑계로 사람들은 가능치 않을 거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하며,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로운 세계를 향해 오늘도 고단한 영혼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일이니까. 가난하고 핍박받더라도 영혼을 팔지 않는 일이니까.

  모두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자. 꿈은 꾸는 순간 절반은 이루어지니까.(p 138)

 

  왜 난 송경동씨처럼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느새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겁해 보인다. "꿈은 꾸는 순간 절반은 이루어지니까"라는 말이 눈에 아프게 들어와 박힌다.

 

  문득 언젠가 위에 언급한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났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은 글로 볼 것이 아니라 직접 들어야 한다. 시간이 되면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봐라." 책을 덮고 연설을 찾아서 들었다. "I have a dream"이라는 유명한 연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주 부드럽고 아련한 목소리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 것이라 상상했지만 실제 연설은 정반대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하는 내내 그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같이 섞여서 나온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옳소"하고 선동하는 것처럼, 감격하는 사람, 동의 하는 사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목소리도 부드럽지도, 그리고 아련하지도 않다. 힘이 있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처럼 열변을 토한다. 아마 조현오 총장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특유의 목소리로 "물대포 쏴"하고 외쳤을 지도 모르겠다. 메이저 언론에서는 "빨갱이 목사, 선동가, 폭력 시위 유발자"라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달면서 사회면 톱으로 다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열정적이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격정적이다. 전율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옆에서 헤드셋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데모하는 영상을 듣냐고 물어본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듣고, 생각 난 김에 인터넷에서 송경동씨의 추모시 낭독 영상을 찾아본다. 용산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면서 쓴 시를 낭독하는데 차마 마지막까지 듣지 못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다. 피를 토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나는 네번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는 시인의 절규가 새파랗게 날 선 칼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힌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렇고 송경동 시인도 그렇고 아직 꿈을 포기 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렇게나 열정적인가 보다.

 

  이제 나도 조금 더 꿈을 꿔보기로 한다. 희망 고문? 좋다. 고문을 고문이라고 느끼는 것도, 아픔을 느끼는 것도, 절망감을 느끼는 것도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직 내가 세상과 야합하지 않은 증거가 아니겠는가?

 

  밤새워 노래와 춤과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농담과 해학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환대와 우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힘이 될 거냐고?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사람이고자 하는 마음만큼 강한 것은 없다. 역사 이래 그 어떤 총칼과 억압과 배제도 '사람의 말들', '사람의 절규들', '사람이고자 하는 희망의 몸부림들'을 막지 못했다.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때론 외롭고 힘들더라도 그 길에 '사람'이 있다면 어디서든 빛이 비칠 것이다. --- (중략) ---  이 견딜 수 없는 절망들에 휩싸여 있는 게 너무나 힘들었던가 보다. 그 강인하던 눈에 눈물이 흐르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감고 있었다. 말은 안해도 얼마나 많은 절망과 패배가 쌓였으면 저럴까. 속으로 복받치는 분노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절망을 넘어보자고, 가장 아래에서 고통받으며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희망버스를 만들게 되었다. 거기 수많은 마음들을 얹어주신 분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p 242 - 243)

 

  좌우 우를 나누고,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고, 네 편과 내 편을 갈라 파편화시키고 점령하는 이 시대에 사람이고자 하는 꿈을 꿔보련다. 대동하고, 화합하는 꿈을 꿔본다. 설령 희망 고문이 될지라도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다면 그 또한 고문보다는 희망에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 송경동 시인처럼, 마틴 루터킹 목사처럼 "I have a Dream still"이다.

 

ps. 다행히 이 책을 다 읽었을 때(2월 9일) 송경동 시인이 보석이지만 풀려났다.

      오타- 185p 밑에서 세번째 줄 퍼세트->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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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2-1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의 페이지에 마침 이런 말이 나오네요.
'인생의 비극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달성할 목표가 없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지만, 달성할 목표가 없는 것은 치욕이라는 말인데, 역사 속의 위인이 한 말이 아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영 선수가 한 말이라더라고요. 요는... 꿈이 있다는 게, 멋져요. 남은 인생을 던져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말 같아서.

saint236 2012-02-16 00:03   좋아요 0 | URL
꿈을 찾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라는 김예슬씨의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습니다. 무슨 책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책은 널리 알려 사람을 이롭게 하셔야지요...

차트랑 2012-0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경동님의 시가 많은 분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나봅니다.
이러다가는 결국 읽고 말게되지요~

saint236 2012-02-15 23:51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 결국 시란 마음에 와닿는 것이 오래 남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