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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광대 - 김명곤 자전
김명곤 지음 / 유리창 / 2011년 12월
평점 :
요즘 연예인이 대세다. 잘 키운 연예인 열 중소기업 안부럽다고 장나라, 장윤정 같은 인기 연예인 한명만 잘 키우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한다. 부와 인기와 권력을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슈스케, 보코, 위탄, K-팝 등 오디션 프로가 넘쳐난다. 이 프로들은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예능인 스타킹과는 달리 실력을 갖춘 절박함이 묻어 있다. PD들과 심상위원들은 이들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는데 사용한다. 슈스케의 악마의 편집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오디션 프로가 참 불편하다. 나도 김지수와 장제인의 신데렐라, 울랄라세션의 스윙베이비를 보고 열광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연예인이 되고 싶고, 가수가 되고 싶은 그들의 목적 의식에 대한 불편한 인식 때문이다. 내가 혼자 삐딱하니 바라보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말이다.
"나는 딴따라다 태어났을 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고 그게 자랑스럽다."
"장관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벗어버리고 이제 천직인 광대로 탈바꿈해야죠.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허허."
위의 말을 누가 했는지 혹시 아는가? 전자는 박진영이 했고, 후자는 김명곤이 했다. 전자는 상업과 서구 음악의 최첨단을 달리는 JYP 프로덕션의 사장이요, 후자는 비상업성과 한국적 음악에 천착한 순수 예술인이라고 하겠다. 살아온 삶의 궤적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도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인데 그 둘에게는 공통된 점이 하나 있으니 딴따라 의식이다. 김명곤의 표현으로 하자면 광대의식이다.
딴따라! 연예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다.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대체로 나팔 소리의 의성어 "따따따"에서 유래한 말로 받아들인다. 과거에 딴따라를 하겠다면 부모님들이 발벗고 나서서 말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내 기억에 이선희 씨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서 가발쓰고 변장하고 강변가요제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명곤의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박진영이 1집과 2집으로 활동하던 그 시절에도 연예인 특히 가수에 대한 편견은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았다. 물론 박진영의 파격적인(!) 무대의상이 한몫 거들었지만 말이다. 가수니, 대중 예술가니, 대중 음악가니 하면서 조금은 고상하게 자신들의 자리매김을 시도하던 사람들 틈에서 발칙하게도 그는 "나는 딴따라다"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자조적인 웃음을 섞으면서 자학하면서 스스로는 딴따라로 비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나는 딴따라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라는 당당함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박진영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가 많이 올라갔다.
김명곤의 "나는 다시 광대다"라는 말도 박진영의 딴따라 선언과 동일하다. 한문으로 "廣大"라고 쓰고 김명곤은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지만은 광대의 원래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광대는 순우리말로 옛날의 사당패나 풍물패와 같은 예능인들을 지칭했던 말이다. 요즘에도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을 광대라는 말로 부르면 비하하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지만 김명곤은 당당하게 나는 광대라고 선언한다. 박진영의 딴따라 선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는 일을 즐거워 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순수한 열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하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타협하지않는 광대기질! 김명곤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이만한 말이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광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 확고한 광대의식, 박진영 식으로 말하면 딴따라 의식이 있기 때문에 김명곤은 아직도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요,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길과 산홍에게서 무릇 광대는 이러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잡게 된다.
논어에 이르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비록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들 내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공길)
내 비록 천한 기생의 몸이지만 일본에 나라를 판 오적의 두목에게 몸을 팔지 않겠다.(산홍)(63p)
요즘 광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여의도의 뭇 의원들은, 스나이퍼를 자청하면서 개콘의 씹을거리로 전락해 버린 모 의원들을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서편제를 통해서 화려하게 등장한 김명곤의 뒤편에는 수천 시간, 수만 시간의 어둠의 시간이 존재함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그리고 인간 김명곤에 대해서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내게 판소리의 아름다움과 흥과 한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김명곤씨가 앞으로도 아름답고 꿈꾸는 광대로 남길 기도한다.
ps. 이 글을 쓰면서 리쌍의 광대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