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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ㅣ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현덕은 서서가 여망과 장량에 비견될 선비를 추천하니 목을 빼고 다시 서서에게 묻기를
“그분의 재주는 선생과 비교하면 어떠합니까? 번거롭지만 나를 위하여 말해 주시오.”
“서서는 그분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지 꼭 비교해야 한다면 그분이 기린이라면 서서는 비루먹은 조랑말에 불과합니다. 그분이 봉황이라면 서서는 한 마리 까마귀에 불과한 몸입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을 말하기를 관중이나 악의에 비교하지만 관중이나 악의도 그분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분은 經天緯地(경천위지) 할 재주를 가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당금의 천하에서 그분과 비교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봉추가 있다 하나 저의 견해로는 복룡이 더 윗길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대목을 잘 알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책사를 얻었던 유비가 조조의 계략에 의해 그를 떠나 보내면서 그렇게 아쉬워했고, 유비의 마음을 알아차린 서서가 제갈공명을 추천한다. 삼국연의의 메시급 사기 캐릭 제갈공명의 등장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주의할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제갈공명이 스스로를 공자같은 위인이나 손자같은 병법가가 아니라 관중과 악의라는 춘추 전국시대의 관리와 무장에 견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등장하겠지만 악의는 뛰어난 무공을 자랑하지만 끝모를 자신감과 그를 질시하는 이들의 참소로 죽음을 당한 연나라의 장수로, 관우와 비슷한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제갈공명은 정치에서는 관중이요, 무공에서는 악의를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갈공명이 관중과 악의를 닮고 싶었던 것은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가 살던 시대가 춘추 전국 시대와 너무나 닮아 있던 후한의 혼란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관중과 악의와 같은 현실정치와 부국강병을 통해 천하를 안정시키고 싶었던 것이 어찌 보면 제갈공명의 속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신주는 관중과 공자라는 춘추시대의 두 인물을 통하여 현실정치와 이념정치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난 후 중국은 전란과 혼란의 시기로 접어든다. 존왕양이의 기치를 걸고 패자를 추구하는 춘추 오패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전국칠웅의 시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이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따로 구분하여 부르지 않고 일반적으로 춘추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혼란의 시대 가장 처음 등장한 인물은 관중이라는 관료이다. 일반적으로 춘추전국하면 유가의 공자와 맹자와 순자, 법가의 상앙과 한비자, 병가의 손자, 묵가의 묵자, 도가의 노자와 장자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놀랍게도 춘추전국 시대에 관한 책은 항상 관중으로부터 시작한다. 관포지교외에는 그렇게 유명하지 못한 관중이지만 춘추전국 시대의 서술을 그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춘추 오패의 첫 인물인 제환공을 모셨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그가 제환공을 춘추오패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환공을 춘추 오패의 첫 인물로 만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강신주가 말한대로 그가 철저하게 현실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관중은 인과 민을 구분하고 국읍과 비읍을 구분하여 끊임없이 구별하고 차별화하는 시대에 민과 비읍의 잠재력에 일찍 눈을 떴고 그것을 국가의 힘으로 흡수하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비록 목민이라는 그의 정치 이념이 경제적 수탈을 강화했지만 제나라를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관중은 철저하게 현실적인 정치관료였던 셈이다. 관중의 현실감각에 대해 강신주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만약 민중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면 군주는 그들이 예의나 수치를 모른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여기서 관중의 현실적 인간 이해가 돋보인다. 문화적 생활은 경제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는 관중의 통찰은, 기본적으로 귀족층이나 민중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귀족층은 선천적으로 귀족적인 예절이나 명예심을 갖고 태어난 선택받은 계층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얻은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이 없다면 그들이 과연 예절이나 수치심을 알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p108-109)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면 군주는 그들이 예의나 수치를 모른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말은 오늘날 정치인들이 충분히 숙고해야하는 말이다. 촛불집회만 일어나면 누가 뒤에서 조장하는가, 촛불을 살 돈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말로 이념논쟁으로 몰고가지만 모든 일의 근본원인은 먹고사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안전한 먹거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숨을 쉴만한 경제적인 요건, 대기업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정규직과 사회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생겨나는 것이고, 촛불을 드는 것이고, 하다하다 안되니 고층 크레인에 올라가고 한강다리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 정권들어서 경제 문제보다는 이념 논쟁이 더 격화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영화, 재벌, 경제문제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경제문제가 아니라 계층문제와 남북문제라는 이념 전쟁이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좌클릭했다는 말이 이러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말이 아니겠는가? 또한 차기 총선 대선 주자들이 하나같이 복지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이러한 현실에 눈을 떴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다만 걱정인 것은 그들의 정치적 식견이 관중과 같이 삶의 고난과 실패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동반되지 않아 관중의 목민이라는 개념의 찌꺼기만 가져오는 유사 현실정치인이 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서민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서민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시장에서 악수 한번하고 떡볶기 한접시 사먹고, 소에게 사료 한번 주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서민을 위하네, 민생을 위하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걱정이 깊어지는 것은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책의 후반부의 주인공인 공자는 이념주의 정치가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주례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해석하여 인과 예에 대해서 니야기하지만 그도 결국은 관료를 꿈꾸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정치가라고 하겠다. 다만 그는 현실정치보다는 가치관과 국가의 이념에 올인한 이념주의형 정치가일 뿐이다. 강신주는 공자의 사상에 대해서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이처럼 공자는 민중을 자신과 같은 존재, 다시 말해 인식과 판단의 동등한 주제초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중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가 주창했던 인이란 것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이념이었다는 점과, 그것은 단지 지배 계층에게만 국한된 귀족적 고상함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P 213)
공자의 사상을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들만의 리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겠다. 주례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확고히 붙잡고 그것을 회복하기만 한다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어쩌면 강신주의 말대로 정치적인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자의 이념이 춘추전국과 같은 혼란의 시대가 아니라 비교적 장수한 제국에서 지배이념으로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공자의 가르침이 정치적인 아마추어리즘의 발로라고 평가절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관중에 대한 반동내지는 관중이 간과한 이데올로기의 힘을 발견하고 거기에 치중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물론 강신주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공자를 성인시하는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한 것은 공자의 사상은 철저하게 보수적이요, 그래서 지배계층에 의해서 오랫동안 지배 이데올로기로 소비되어 왔다는 점이다.
제자백가의 귀환 2권을 읽으면서 자꾸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의 결론과도 같은 말이요,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에 부합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제나라가 패자로 인정받아 규구의 회맹을 개최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제나라가 다른 제후국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로 주나라로 상징되는 예의 질서를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없어진다면, 패자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특히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측면, 즉 이데올로기적 측면이다. 만약 이 힘을 상실한다면, 제나라는 패자는커녕 다른 여러 체후국들의 연합군에 의해 국가 자체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p 84)
관중과 공자는 서로 다른 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을 떼어 놓으면 양쪽 모두 가치를 잃어버린다. 제대로 된 이념이 없는 현실정치는 물질 만능주의를 만들어내고,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이념은 배고픈 민중을 양산한다. 물론 양측 모두 독재자와 전체주의 탄생의 아주 좋은 토양이 된다. 전자가 남한이라면 후자는 북한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둘 다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한제국의 길을 되풀이하지 않겠는가?
무분별한 복지정책, 무분별한 먹고사니즘, 무분별한 이데올로기 전쟁 속에서 국민의 한 사람인 나를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고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인 정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꼭 이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