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괴뢰 정부가 감히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 우리는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

 

  남한에서 북으로 대북전단(삐라)을 살포할 때마다 북한에서 떠드는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백두산 혈통은 감히 쳐다 보지 못할 존엄 그 자체이다. 김정은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그 나이에 도대체 무엇을 보여줬다고 벌서 성급하게 판단하겠는가?) 그가 타곤나 백두산 혈통이 그를 최고 존엄이 되게 하였다. 이 무슨 구석기 시대 돌가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우리 나라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북에 백두산 혈통이 있다면 남에는 금오산 혈통이 있다. 금오산에 어린 전설(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그 전설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전설임이 분명하다)은 백두산 형통 못지 않은 존엄을 박근혜에게 주었다. 감히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그 앞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남측의 최고 존엄은 그 앞에서 졸기만 해도 바주카포로 처형당하게 만드는 북한의 최고 존엄과 쌍벽을 이룬다.

 

  최고 존엄은 최고 존엄이지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대변인의 언급을 일컬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운운하는 새천년 민주당의 반박은 전혀 신선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 최고 존엄과 일반의 차이는 양반과 쌍놈의 차이보다 더한 것이기에 홍길동 비유는 완전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이야기와 짝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성경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출애굽기 20장 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부르지 못하고 여호와라고 기록된 부분을 아도나이(나의 주)라고 읽었다. 모르긴 몰라도 청와대 내부에서도 박근혜라 적고 "금오산 혈통, VIP, 아도나이" 중 하나로 읽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삼성과 신세계의 작명 센스를 빌려와서 GH라고 적을지도 모르겠다.

 

  기사를 읽으면 읽을 수록 청와대에서 불편해 하는 것이 박근혜가 공동발의한 법을 그대로 제출하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새천년 민주당의 정치적 행태가 아니라 최고 존엄의 이름을 감히 옆집 강아지 부르듯이 부르는 것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 물론, 각하는 절대 그럴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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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 두 개의 시선, 또 하나의 미래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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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서평단의 어느 분께서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쓰셨다. 난 이 제목을 살짝 비틀어서 영화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적어 본다. 내가 그 분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가끔 책을 읽을 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생각을 한다. 다른 서평단 분들은 이 책에 대해서 좋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솔직하게 내게는 별로였다. 일단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책이라든지, 혹은 대담형식의 강의를 책으로 옮겨놓은 것이라든지 하는 형식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난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적 책읽기와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에 대해서는 꽤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팟캐스트를 통하여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상당히 불편하게 느꼈었다. 김어준하고 친해서일까? 그의 말투와 화법은 지극히 마초적이며,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이 책이 재미가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고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걸작선 25가지 중 내가 본 것은 채 5편이 되지 않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떠들어댄다고 해도 내가 몰입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고 말하는 책에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영화는 확실히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봤다면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토론을 한다면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지도 않은 영화를, 그것도 자기들이 잘 났다고 온갖 현학적인 말들로 기록하고 있는 책을 보고 있으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담컨대 난 이 책을 앞으로 펴보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봤을지라도 말이다.

 

  영화에 대해서 플롯을 이야기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남들에게 무엇인가 나의 유식함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재미있게 보고, 돈이 아깝지 않다, 혹은 이 영화는 잘못 택한 것 같아 정말 돈이 아까워 이 정도의 평가만 내린다고 할지라도 영화를 즐기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굳이 재미도 없는 고전 영화를 걸작이라고 굳해서 보고 싶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떠드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고, 이 서평을 마무리한 후에 신나는 코미디 영화나 봐야겠다.

 

  영화를 읽으려고 하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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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2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서평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를 읽게’ 됩니다. 한 번 본 장면을 다시 봐야 영화 내용이나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서평을 작성할 때가 제일 어렵습니다.

saint236 2015-06-29 22:38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 좋아서 감상을 적어야 하는데 감상을 적기 위해 영화를 보니 재미보다는 부담감만 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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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여지도 - 두 발과 땀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
박점규 지음 / 알마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2010 - 4110

  2011 - 4320 

  2012 - 4580

  2013 - 4860

  2014 - 5210

  2015 - 5580

  2016 - ?

 

  위의 숫자가 나타내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가? 앞의 숫자는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뒤의 숫자는 최저 임금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2013년까지 최저임금 수준이 5천원을 넘지 못하다가 2014년 갑작스럽게 5천원의 벽을 돌파했다. 이는 순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공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억력이 약간이라도 좋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2년 대선후보 시절에 최저임금이 얼마냐고 묻는 사회자의 말에 "한 5천원 넘나요?"라는 말을 했다가 된통 당했던 일을 말이다. 아마도 그 일이 마음에 걸렸던지,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서 최저 임금을 5천원 넘게 해 주셨다. 2013년까지 200~300원대 사이에서 오르던 최저임금은 2014~2015년 사이에는 자그만치 300~400원 사이에서 오르게 되었다. 물론 퍼센티지를 따지자면 비슷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만큼 오르게 된 것은 각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각하의 은총이 너무 과하다 생각한 경영계에선 2016년 최저임금을 올해와 동일한 5580원으로 하자고 한다. 더 이상 올리면 기업해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아마도 그들은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하셨던 MB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번면 노동계에서는 1만원으로 대폭 올려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경영계의 말대로 4420원을 더 올려준다면 이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 될까? 문든 그런 궁금증에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기로 했다. 2015년 비정규직을 850만이라고 잡았는데 이 비율이 전체 노동인구의 45.2%라고 한다. 그럼 단순 계산으로 폭 넓게 잡아도 1800만이 넘지 않을 것이다. 30일 풀로 하루 8시간 일한다고 계산해보자

 

  1800만 * 4420원 * 30일 * 8시간 * 12달 = 229조 1328억원

 

  1년 동안 229조 1328억원이 추가로 더 소요된다는 말인데(이것은 말 그대로 단순 계산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맞는 것은 아니다.) 과연 이것이 기업들에게 힘든 일일까? 2013년 자료에 의하면(2015년 자료를 못찾았다.) 우리나라의 외부 감사를 받는 법인 23000개의 사내 유보금이 1102조 4천억원이란다. 쉽게 말해서 투자도 안하고 그냥 자기 지갑에 넣어둔 돈이 1102조 4천억원이라고 하는데 2014년이나 올해에는 더 늘어났을 것이고, 내년에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2013년 사내 유보금만 가지고 최저임금 1만원을 주는 것이 단순계산으로 4년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자는 말이냐? 먼저 파이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고 있는 기업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시대,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죽을 때까지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 3포 세대가 아니라 5포 7포인 시대에서 과연 우리의 노동은 안녕한가? 이 책은 우리에게 이것을 묻고 있다.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전국 각지의 노동 현장을 돌면서 작가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묻는다. 그리고 안녕하다는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돌아오는 거의 모든 대답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MB처럼 젊은이들이 쓸데 없이 눈이 높다고 눈을 낮추라고 나도 해봐서 안다고 이야기를 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지 않는다. 다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간혹, 정말 간혹 우리의 노동을 안녕하게 만든 사람들을 소개해줄 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희망이 되고 고맙고, 감동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이야기하면 빨갱이가 된다. 못된 놈이 된다. 직업적인 데모꾼이 된다. 노동 운동 출신 국회의원드링 몇명이나 배출된 이 시대에 말이다. 이 시대에 우리의 노동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노동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인가? 진지하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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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땅히 관심이 가는 책들이 하나도 없다.

 

  꼭 고르자면 송곳 정도? 내가 책 욕심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요즘 나오는 책들이 그렇게 흥미를 끌만한 책들이 안나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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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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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23일!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날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속상한 날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승리의 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 2009년 5월 23일이 어떤 날인지 제대로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09년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날이다. 전직 대통령이, 그것도 광우병의 역풍을 명박산성으로 간신히 막았던 현직 대통령과 항상 비교가 되던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건 과정 중에 담배 한 개비 찾다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그가 가족들의 잘못 때문에 뛰어 내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어떤 이들은 언론의 비열한 플레이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덮어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획적으로 뛰어내린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직 대통령에게 엿먹이려는 고단수의 정치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그의 투신을 두고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한데, 난 이 책을 통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해서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논리가 작동했고, 이 논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퇴임한 후에 그는 꽤 존경받는 대통령이었다. 누구처럼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지도 않았다. 아방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동네 청소를 하고, 농사를 짓고, 손주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담배 한개피 피우고 돌아오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존경을 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통령에 비하여 너무나 소탈했기 때문이리라. 그 또한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자부심도 오래가지 못했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정치인이 검찰 조사 받는 것이야 무엇이 대수겠는가? 김대중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도, 노태우 대통령도, 전두환 대통령도 모두 조사를 받았고, 형을 구형받았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곧 퇴임 후 검찰 조사로 직결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걸어야할 통과 의례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왜 뛰어 내렸을까?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잔인한 언론의 플레이 때문이리라.

 

  당시 검찰 조가사 신문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원색적인 제목의 기사가 난무하기도 했다.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 논두렁에서 1억짜리 시계를 주우러 봉하마을로 가자 등등의 상식 이하의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자녀들에 대한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무엇이며, 그의 측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이 무엇일까? 그가 느꼈을 감정은 수치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측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은 혐오감이리라. 이유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역시 빨갱이, 좌파라는 말로 그를 공격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혐오감과 여기에서 느껴지는 수치심 이 두 가지가 상승작용을 일으켰고, 결과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났다. 물론 오늘까지 일베는 그에게 수치심을 주면서 혐오감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그만의 문제였다면 좋겠지만,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혐오감과 수치심, 이를 통한 차별화와 이등국민화, 편가르기는 계속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지방 대학생에 대한, 혹은 같은 대학이라도 외국인 전형이냐 농어촌 전형이냐라는 문제들로 혐오감과 수치심이 난무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적인 감정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법이라는 공적인 가치관에도 침투하기 시작한다. 상대방 진영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의 밑바탕에는 혐오와 수치심이 자리잡고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수꼴, 좌빨이라는 말, 어린 것이, 꼰대 등등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상대방을 법적으로 고소하고, 조롱하고, 처벌하려고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법은 혐오와 수치심으로 작동하면 안된다.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가치관 속에서 집행되면 안된다. 그런 법은 없느니만 못한 악법이 된다. 제발 법관들이, 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만이라도 읽고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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