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라 교회에 다녀왔다. 피곤하긴 하지만 이번주 일요일까지 써야할 서평이 두권인지라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컴 앞에 앉았다.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책이 30페이지 정도 남았는지라 이것 마저 읽고 서평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컴을 켰다. 익숙한 다음 창이 뜨고(작년 촛불집회 이후로 내 컴의 메인 화면은 네이버에서 다음으로 바뀌었다.) 주소창에 ww.aladin.co.kr을 치다가 헤드라인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검찰, 한명숙 체포 영장 청구" 

  허거걱. 이건 뭐지? 잘못봤나? 검찰이 미쳤나? 왜 그래? 클릭하고 뉴스를 봤다. 총리 공관에서 5만달러를 뇌물로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고 한다. 확실하다고 한다. 요즘 정치 쪽에 촉각을 곤두 세우지 않았더니 무슨 일이 있나? "한명숙"을 치니 검찰조사라는 완성어가 만들어진다. 몇개 골라서 기사를 검색해 본다. 문제는 대한통운으로부터 5만달려를 받았다는 것인데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이틀동안 고민하다가 영장을 청구했단다. 

  자,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한명숙 전 총리가 받았느냐 안받았느냐는 잘 모르겠다. 그가 받았느냐 안받았느냐를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빠르냐는 것이다. 적법하느냐 묻고 싶다. 잘 모르겠다. 그럼 대놓고 물어보자? 공성진은? 금품수수 의혹 5만달러를 1달러 1천원 환율로 단순계산하자. 얼마인가? 5천만원. 공성진? 수억대. 공성진 게이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도 있다.  

  쉽게 말해서 죄질로 따지면 공성진이 더 무겁다. 게다가 현역 의원이다. 그럼 야인인 한 명숙 총리보다는 더 비리를 잘 저지르고 더 잘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상식적을 공성진이 먼저다. 그런데 왜 한명숙인가? 수사속도가 왜 한쪽은 KTX이고 다른 한 쪽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버린 비둘기란 말인가? 뭔가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슬퍼런 검찰의 칼날은 함부로 뽑히지 않는다.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뽑힌다.  

  검찰청에는 일급 스나아퍼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은 50년 이상의 경험을 축적한 베테랑들이다. 아무리 신입이 들어와도 확실하게 훈련시켜준다. 그런 검찰에서 법과 원칙에 의거하여 한 명숙 전 총리를 저격하려 한다. 공성진은? 그쪽은 아직 건드리면 안된다. 왜냐고? 알면서? 자살골은 안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촛불에 데었던 경험이 불순분자를 골라내게 했다. 다음으로 김제동이 아웃당했다. 돌발영상도. 시사인도. MBC도 KBS도 저격당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는 불순분자는 모조리 골라냈다. 맞다. 박원순도 있다. 그리고 진중권도 있다. 그는 계좌가 동결당했다. 우석훈씨도 조심해야 한다. 진중권씨랑 친한데다가 정권을 비판하길 잘하니. 손석희도 있다.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의 얼굴 마담인 한 명숙 차례이다. 이 시점이 공교롭다. 친 노무현 인사들이 모여 새로운 당을 창당하겠다는 발표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왜 쓸데 없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냐구? 노파심이라고? 아닐 것이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MB는 정말 솔직하다. 태생적으로 정치인이 아니라 투명하다. 다음 행보가 눈에 보인다. 한 명숙 저격으로 과연 끝이겠는가? 아니다. 마지막 명줄을 끊어야 한다. 두번다시 덤비지 못하도록.   

  이 모든 것을 감안해 생각해 보면 나오는 질문은 뻔하다. 다음은 누구냐? 민주당은 이미 안중에도 없을 것이고. 이해찬이냐? 유시민이냐? 아마도 영향력이나, 인지도나, 나이나 여러가지 감안해보면 유시민이지 않을까? 요즘들어 페이퍼를 너무 남발한다. 유감이 많은 세상이다. 유감 많은 세상에 유감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묻는다. 

  젠장...다음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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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독서본능>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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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0페이지나 되는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이 "이 책도 서평을 해야 하는가?"이다. 먼저 서평을 쓰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쓰신 서평 제목이 유달리 마음에 남는다.  

  "서평을 서평하라고? 글쎄다. 난 이 서평 반대일세."  

  맞는 말이다. 나도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서평을 쓰는 것을 반대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고 쓴 서평에 대한 서평이라? 왠지 사족을 붙이는 것 같아서 싫다. 더군다나 알라딘의 면장으로 대우해준다는 파란 여우님의 서평이라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괜히 조화롭게 잘 짜여진 곳에 돌을 하나 던지고 뱀에 다리를 붙이는 것 같아서 싫지만 어쩌랴 알라딘 서평단의 의미인 것을. 게다가 이 책은 나에게 올 운명이었는지 알라딘 서평단에서 서평 도서로 책을 받은 그 날 나비님께서 보내주셔서 두권이나 된다. 물론 이 책은 나비님이 주신 책을 읽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는 책상 한 구석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책에 대한 서평을 써보려고 한다. 졸작이되더라고 파란 여우님께서는 어린 백셩을 어엿삐 여겨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책을 읽으면서 한 없이 부러운 것은 그 내공이다. 5년 동안 천권의 책을 읽으려면 대충 1년에 200권인데 그 무지막지한 분량에 한번 놀란다.(한번 놀란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더 대단한 분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파워 블로거 중의 하나이신 글샘님이다. 예전에 1년동안 400권을 읽으셨다는데...) 나는 기껏해야 올해 77권을 읽었다. 이 책이 77권째이다. 물론 신앙서적이나 기타 학문을 위한 서적을 읽은 것까지 포함하면야 100권은 넘어가겠지만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카운트를 하지 않으니 내가 읽은 것은 77권이다. 그마나 올해 목표가 50권이었는데 초과 달성했다는 혼자만의 만족감이랄까? 5년 뒤에 내가 천권을 읽을 가능성은?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30%미만? 게다가 모든 분야를 탐독할 확률은 10%미만...인문, 사회과학, 철학, 역사 쪽에 편중된 나인지라 문학 분야를 읽을 일은 에세이 집이 아니면 1년에 소설 책 2~3권? 책을 읽으면서 그 내공에 질려버리고, 한 없이 부러워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포스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이 서평 모음집이라는 것이다. 내용이 훌륭하고 내공이 남다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평을 쓰기를 주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의 생각이 충분히 들어 있고, 예리한 사시미칼 같지만 서평은 서평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다.  

  예전에 이런 농담이 있었다. "너 로미오와 줄리엣 읽어봤어?"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이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바빠서요. 로미오는 읽어봤는데 줄리엣은 아직 못 읽었네요." 이게 한국의 현실이 아닌가? 입시를 위해서, 면접 시험을 위해서 원전을 읽기 보다는 원전을 요약해 놓은 책들을 달달 외우는 20대들에게 이 책이 또 하나의 암기용 도서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우가 든다.  아무리 저자의 생각이 잘 요약되어 있고, 파란 여우님이 그것들을 잘 캐내었닥 할지라도 그것은 파란 여우님의 필터를 통하여 걸러진 것들인데 그것이 정답인양 달달 외우지는 않을는지... 

  솔직하게 책을 읽는 내내 상당부분에서는 공감을 하지 못했다. 왜냐? 내가 읽은 책이 얼마 되지 않아서...물론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이면 내 생각과 비교해 보고 "이렇게 이해하기도 하는구나, 맞아 이 부분은 내가 틀렸어. 이 부분은 내가 더 잘 이해한 것 같은데." 하면서 활기를 띠지만 안 읽은 거의 대부분의 책들에서는 오로지 파란 여우님의 생각을 골라내다가 끝을 맺었다. 그러니 책의 원래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를 수밖에.  

  이 책을 접하면서 몇개 건진 책들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읽은 보람이 있다. 특히 농사를 짓는 분인지라 그런지 몰라도 환경과 농촌 쪽의 책들은 정말 주옥같다. 권정생님의 우리들의 하나님, 녹생평론에서 나온 쌀과 민주주의, 우석훈씨의 아픈 아이들의 세대 등은 꼭 사볼 책이다. 물론 지금은 밀려있는 수십권의 책을 읽어야 하지만. 서평단 활동하면서 받은 책들 서평 올리는 것이 힘에 겨워서. 그래도 아직은 이렇게 강제로라도 꾸역꾸역 집어넣어야할 단계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서평까지 스는데 5년 후에 최소한 500권은 읽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알라딘의 모든 주민들이 소통하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불통의 시대에 소통을 가져다 줄 독서의 실크로드, 사유의 실크로드로 첫발을 디딘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명박산성으로 대비되이게 저자의 생각이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어설픈 서평을 마친다. 

  실크로드는 결국 사람의 길이다. 사람이 섞이고 문화가 섞이고 문명을 다듬으며 만든 길이 실크로드다. 그들의 고향은 모두 다르지만 실크로드가 하나의 세계문명 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문명의 융합이 성공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456페이지 인용)  

ps. 432페이지와 431페이지는 내용이 바뀌었다. 432페이지가 먼저이고 그 뒤를 이은 내용인 431페이지이다. 또한 432페이지의 내용은 헌 책방 아벨과는 상관이 없다. 433페이지부터 헌책방 아벨의 내용이다. 다음 판에서는 이부분을 교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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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월요일에 드디어 아이폰을 샀다. 아이팟 터치를 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아내를 설득해서 허락을 받은 다음 구입을 했는데 이것이 무척 재미있는 물건이다. 무선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무료로 인터넷이 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그동안 인터넷에 혹시라도 접속이 될까봐 네이트 접속 버튼을 잠궈 두었던 나같은 소시민에게 비록 스마트 폰이지만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다이어리 기능에 전자수첩 기능, 게임까지.... 세상에 이런 장난감이 또 있을까? 소형 가전에 유달리 마음이 약한 나에게 아이폰은 최고의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이것저것 깔아도 보고 싶고. 여하튼 들든 기분으로 열심히 써보고 싶었다. 

  얼마전 국방부에서 440억의 예산을 편성하여 아프간 재파병을 건의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프간 철수가 국방부에게는, 특히 극보수 강격주의자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나보다. 440억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다시 파병시켜달라는 건의를 국회에 했다니 말이다. 물론 그 안에 정치권과 경제계 등과의 모종의 관계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순수하게 국방부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건의했다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믿지 않을테니 말이다. 물증은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심증을 굳히고 있는 일이라고 해야할까? 

  아이폰과 아프간 재파병이라는 문제는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어보이는 별개의 문제인데 왜 이 두가지를 함께 이야기하는가? 분명히 나에게 그렇게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내가 아이폰을 갖고 노는 것과 같은 마음을 스케일을 조금만 키워 놓으면 국방부에서의 경우에도 꼭 들어맞는다고 말하고 싶다. 말인즉슨 내가 아이폰을 가지고 신기해하며 쓰고 싶고, 이런 저런 기능을 연구해 보고 싶듯이, 국방부에서도 신무기들을 실제로 전쟁터에서 운용해 보고 기능들을 확인해 보고 싶고, 성능을 개량해 보고 싶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말이다.  

  밀리터리 매니아는 아니지만 대개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무기와 군사 쪽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문명이라든지 삼국지 시리즈, 스타 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이 쪽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가끔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무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넋을 잃고 쳐다볼 때가 있다. 그 중에 유달리 흥미를 끄는 것은 미래형 무기인데 우리 나라에도 미래형 무기들이 몇 가지 있다. 외국에서 사오는 이지스 함이나 조기 경보기 같은 것들 말고 그동안 국방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무기들이 있다. 보병 무기로는 K-11소총이 있고, 전차로는 흑표(얼마 전에 기계적인 결함이 벌견되어 문제가 발생했음)가 있으며, 자주포로는 K-9(외국에 많이 팔아 먹은 기종. 우리 나라에서도 실전 배치가 되었고 탄약을 보급하는 장갑차가 세트로 있음)이, 비행기로는 무인 정찰기(아이 모리 포함)가 있다.  

 

한국군의 미래형 소총 K-11 가불 주재 대사관에 실전 배치 된단다. 



K-9 자주포 군생활하면서 보고 싶었는데 보병부대라 못봤다. 기계화사단에는 배치되었음. 



리모아이 무인정찰기. 아프간에 배치될 예정임. 중대급 제대에서 운영 예상

  노무현 대통령의 위업이라면 위업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무기를 이렇게 표현하면 안되겠지만 참 신기한 장난감들이다. 전쟁을 진두 지휘하는 사람들에게 이만큼 신기한 장난감은 없는 것이고, 써 보고 싶어 좀이 쑤실 것이다. 그리고 성능을 보여줘야 외국에 팔아 먹을 것이 아닌가? 외화벌이라는 정당성까지 확보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전쟁 때마다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이 얼마나 큰 이익을 보는가?  

  실제로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인정찰기를 사용하고, K-11을 사용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아프간 파병을 밀어 붙이기 위한 구실로 보인다. 미군은 우리 나라 군대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한 첨단 무기를 가지고 이라크에 들어가고 아프간에 들어갔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다. 아무리 첨단 무기가 있으면 뭐하는가? 게릴라 전에는 방법이 없는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던 것이 무기가 딸려서가 아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쿠바에서 철수한 것이 무기가 후져서가 아니다.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게릴라 전에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흡사 보디 블로를 계속 허용해서 나중에 다리가 멈추는 복서처럼 게릴라 전을 통해서 한명씩 두명씩 죽어가는 병사들의 수와 군수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첨단 무기를 이용하겠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어떻게든 써볼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국방부의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실전이 오랜 세월 동안 없었던 국군에게 아프간이나 이라크는 실전을 경험하기 위한, 그리고 실제 장비를 운용해 보기 위한 최고의 기회가 아니던가?  

  단언컨대 아프간 파병이 국회에서 처리가 된다면 1년~2년 내에 위에 있는 무기 중 어떤 것들을, 혹은 재수가 좋으면 모두다 외국에 판매했다고, 우리나라의 군수산업도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고 외화 벌이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고, 나아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대서특필 될 것이다. 부디 바라기는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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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증이 나는 오전이다. 사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다. 비록 어제 장례식 장에 다녀오느라고 새벽 기도를 못갔지만 제때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했다. 앉아서 무엇인가 끄적그적 해놓고 회의 자료 만들어 놓고, 잘못된 것 없이 흘러갔다. 특별히 짜증날 일도 없었고, 안만들려고 노력했는데 방금 전에 폭발했다. 같이 일하는 후배 때문이다.  

  난 유달리 여자 후배들을 싫어한다. 지금까지 함께 일하면서 재미가 좋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랄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옆에서 바람을 빼는 말을 꼭 한마디씩 던진다. 오늘도 일부러 일을 시키지 않고 내가 했다. 이 일을 맡겼을 때 반응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인사문제에 대한 것은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도 안되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윗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특히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농담이라도 한마디 흘리면 안되고, 절대로 평가는 금물이다. 후배의 성향을 할기 때문에, 꼭 한마디씩 던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했는데 자료를 수합하는 과정에(자료는 대부분 여자 후배가 가지고 있는데 그 자료도 정리가 잘 안되어 있어서 애를 먹는다.) 한 사람의 이름이 새어 나갔다. 그러자 바로 나오는 이야기가 "어떻게 할려고 그러냐?"는 말이다. 왠만해서는 혼내지 않고 넘어가는 나이지만 지금은 잔소리를 해주고 넘어갔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판단은 윗사람이 하는 것이니 우리는 그저 만들라는 서류 만들어서 올려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한마디 해주니 자기는 별다른 뜻이 없다고 뭐라고 그랬냐고 발뺌을 한다. 항상 이런 식으로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한참 바람 빼놓고 뭐라고 그랬냐는 식이다. 무슨 일을 맡기면 자기는 상관없지만 어느 사람이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묻는다. 조만간 사임하게 되는데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서 향후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면 향후 계획을 세우는 것은 후임이 하는 것이라고. 내가 사람을 자꾸 삐뚜루 보니 그런가? 이기적인 모습이 눈에 거슬인다. 속으로 또 다짐해 본다. 이래서 여자 후배하고는 왠만하면 일하지 말아야 해. 아니다. 그것보다는 사람은 잘 안바뀌는구나라는 철저한 진리를 깨달았달까?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없으니.... 

  점심먹으러 가기 전에 좌절금시 그림이나 한번 더 보고, 노라조의 슈퍼맨, 내도소, 고등어 메들리를 들어야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엔....돌....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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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 (반양장)
정양모 지음 / 두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다석 류영모... 

  참 유명한 분이다. 학교에서 주워 들은 풍월이 있는데 다가, 선배 중에도 이분의 사상을 연구하겠다고 책을 산 사람도 있다. 또 다석의 사상을 연구하는 분들 가운데 이정배 교수님의 이름이 이 책 가운데 나오는데 그분 밑에서 종교철학도 배웠다. 이대 명예 교수님이신 김흥호 할아버지(우리는 친근함의 표시로 이분을 교수님이나 선생님이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로부터 동약철학에 대해서 배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축복받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한 선배가 수업 시간에 김흥호 할아버지로부터 십우도에 대하여 강의를 듣고 내려와서 열변을 토하던 일이 기억이 난다. 낯선 동양의 철학이지만 이것을 기독교 신학과 접목시켜서 하는 강의는 우리에게 신학의 새로운 지평에 대하여 눈을 뜨게 만들어 줬다. 이 분의 스승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석 류영모는 충분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알라딘에서 다석 류영모의 사상에 관한 책을 받았고, 알라딘에서 이런 책도 준다고 신기해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게 진리를 찾는 단계를 소를 찾는 목동으로 비유한 십우도이다.(5단계 목우의 그림)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젠장이란 말이 입에서 끊이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에 물들어 와서 욕을 하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젠장이라는 말은 무척이나 심한 실망감의 표현이다. 동경의 대상이던 다석 류영모에 관한 책을 펴고 읽는 순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분은 천주교 신자고 나는 개신교 신자라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동양 사상 자체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다. 도무지 유, 불, 선 사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 나에게 공부가 많이 부족한가보다. 또한 다석 특유의 말장난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다석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이정배 교수님을 포함해서 책의 저자인 정양모 신부님까지) 깊은 영적이고 신학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에게 그의 신조어들과 말들은 조금 이해하기 쉬운 외계어 정도이다. 그의 글을 쓰고 밑에 가다듬어 다시 기록한 글을 보는 순간, "이게 그말이야? 어떻게 이렇게 다시 고쳐 쓸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표음문자인 한글을 표의문자처럼 이해하고 파자해 놓은 모습을 보면서 장난스럽다는 생각, 그리고 너무 나가셨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연구하는 분들에게 이 또한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테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드는 것, 그리고 마음 한 켠이 불편한 것은 예수에 대한 다석의 생각이다. 그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예수 사상은 참신하고 교리라는 틀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함석헌 신부같은 분은 다석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지만 나같은 범인에게 있어서 다석의 생각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양모 신부는 종교다원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배타주의 포괄주의가 잘못되었다고 그것 때문에 종교 전쟁이 발생한다고, 그래서 다석의 예수상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가 없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원자라는 지금의 예수상을 부인해 버린다면 기독교가 기독교일수가 있겠는가? 타종교와의 관계를 위해서 기독교의 본질을 버리고 술렁술렁 넘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슬람교에 가서 알라신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불교에 가서 부처의 깨달음을 부인한다면 그게 이슬람교이고, 불교이겠는가? 구세주 예수상은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다른 종교들에 전투적인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종교다원주의를 배우고, 고고학을 배우고, 신학을 배우지만, 동서양의 고전을 배우지만 결국 포기하지 못한 예수상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다석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데 읽은 것은 과욕인 듯 싶다. 탐진치를 버리라는 다석의 말 한마디만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남는다.  

ps. 솔직히 다석의 사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석의 사상을 번역하고 주를 달아 놓는 선에서 마무리 지은 것 같다. 논문도 아니고, 그렇고 원전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셔닝이 문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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