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독서본능>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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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0페이지나 되는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이 "이 책도 서평을 해야 하는가?"이다. 먼저 서평을 쓰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쓰신 서평 제목이 유달리 마음에 남는다.  

  "서평을 서평하라고? 글쎄다. 난 이 서평 반대일세."  

  맞는 말이다. 나도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서평을 쓰는 것을 반대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고 쓴 서평에 대한 서평이라? 왠지 사족을 붙이는 것 같아서 싫다. 더군다나 알라딘의 면장으로 대우해준다는 파란 여우님의 서평이라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괜히 조화롭게 잘 짜여진 곳에 돌을 하나 던지고 뱀에 다리를 붙이는 것 같아서 싫지만 어쩌랴 알라딘 서평단의 의미인 것을. 게다가 이 책은 나에게 올 운명이었는지 알라딘 서평단에서 서평 도서로 책을 받은 그 날 나비님께서 보내주셔서 두권이나 된다. 물론 이 책은 나비님이 주신 책을 읽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는 책상 한 구석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책에 대한 서평을 써보려고 한다. 졸작이되더라고 파란 여우님께서는 어린 백셩을 어엿삐 여겨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책을 읽으면서 한 없이 부러운 것은 그 내공이다. 5년 동안 천권의 책을 읽으려면 대충 1년에 200권인데 그 무지막지한 분량에 한번 놀란다.(한번 놀란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더 대단한 분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파워 블로거 중의 하나이신 글샘님이다. 예전에 1년동안 400권을 읽으셨다는데...) 나는 기껏해야 올해 77권을 읽었다. 이 책이 77권째이다. 물론 신앙서적이나 기타 학문을 위한 서적을 읽은 것까지 포함하면야 100권은 넘어가겠지만 그런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카운트를 하지 않으니 내가 읽은 것은 77권이다. 그마나 올해 목표가 50권이었는데 초과 달성했다는 혼자만의 만족감이랄까? 5년 뒤에 내가 천권을 읽을 가능성은?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30%미만? 게다가 모든 분야를 탐독할 확률은 10%미만...인문, 사회과학, 철학, 역사 쪽에 편중된 나인지라 문학 분야를 읽을 일은 에세이 집이 아니면 1년에 소설 책 2~3권? 책을 읽으면서 그 내공에 질려버리고, 한 없이 부러워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포스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이 서평 모음집이라는 것이다. 내용이 훌륭하고 내공이 남다름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평을 쓰기를 주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의 생각이 충분히 들어 있고, 예리한 사시미칼 같지만 서평은 서평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이다.  

  예전에 이런 농담이 있었다. "너 로미오와 줄리엣 읽어봤어?"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이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바빠서요. 로미오는 읽어봤는데 줄리엣은 아직 못 읽었네요." 이게 한국의 현실이 아닌가? 입시를 위해서, 면접 시험을 위해서 원전을 읽기 보다는 원전을 요약해 놓은 책들을 달달 외우는 20대들에게 이 책이 또 하나의 암기용 도서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우가 든다.  아무리 저자의 생각이 잘 요약되어 있고, 파란 여우님이 그것들을 잘 캐내었닥 할지라도 그것은 파란 여우님의 필터를 통하여 걸러진 것들인데 그것이 정답인양 달달 외우지는 않을는지... 

  솔직하게 책을 읽는 내내 상당부분에서는 공감을 하지 못했다. 왜냐? 내가 읽은 책이 얼마 되지 않아서...물론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이면 내 생각과 비교해 보고 "이렇게 이해하기도 하는구나, 맞아 이 부분은 내가 틀렸어. 이 부분은 내가 더 잘 이해한 것 같은데." 하면서 활기를 띠지만 안 읽은 거의 대부분의 책들에서는 오로지 파란 여우님의 생각을 골라내다가 끝을 맺었다. 그러니 책의 원래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를 수밖에.  

  이 책을 접하면서 몇개 건진 책들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읽은 보람이 있다. 특히 농사를 짓는 분인지라 그런지 몰라도 환경과 농촌 쪽의 책들은 정말 주옥같다. 권정생님의 우리들의 하나님, 녹생평론에서 나온 쌀과 민주주의, 우석훈씨의 아픈 아이들의 세대 등은 꼭 사볼 책이다. 물론 지금은 밀려있는 수십권의 책을 읽어야 하지만. 서평단 활동하면서 받은 책들 서평 올리는 것이 힘에 겨워서. 그래도 아직은 이렇게 강제로라도 꾸역꾸역 집어넣어야할 단계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서평까지 스는데 5년 후에 최소한 500권은 읽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알라딘의 모든 주민들이 소통하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불통의 시대에 소통을 가져다 줄 독서의 실크로드, 사유의 실크로드로 첫발을 디딘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명박산성으로 대비되이게 저자의 생각이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어설픈 서평을 마친다. 

  실크로드는 결국 사람의 길이다. 사람이 섞이고 문화가 섞이고 문명을 다듬으며 만든 길이 실크로드다. 그들의 고향은 모두 다르지만 실크로드가 하나의 세계문명 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문명의 융합이 성공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456페이지 인용)  

ps. 432페이지와 431페이지는 내용이 바뀌었다. 432페이지가 먼저이고 그 뒤를 이은 내용인 431페이지이다. 또한 432페이지의 내용은 헌 책방 아벨과는 상관이 없다. 433페이지부터 헌책방 아벨의 내용이다. 다음 판에서는 이부분을 교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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