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즘 CF의 문구이다. LG 광고의 문구로 기억하는데 요즘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광고 문구가 아닐까 한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착각한다. 창조론으로 대변되는 기독교 신앙을 비롯하여 종교적인 가치들을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오직 물질과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과학만이 신의 위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라는 우상을 타파하면서 과학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세우는 격일까?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사건이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일까? 내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것을 아는 과학 선생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당시 수업은 진화론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분이 그렇게 무식할 줄은 몰랐다. 감수성이 한참 예민한 중3 남자애를 세워 놓고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다. "**아 진화론이 옳으냐 창조론이 옳으냐?" 내가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반 아이들은 내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해했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가면서 무슨 대답을 해야할 지 모르는 나에게 과학 선생님은 결정타를 날리셨다. "어떻게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믿는 비이성적인 사람이 있지? 저혀 과학적이지 안잖아." 그 이후 나에게 과학은 정말로 짜증나는 과목이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물리학에 재미를 들려서 중3때 고등학교 물리책을 구해서 나중에 물리학도가 되겠다는 야심찬 꿈까지 꾸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과학과는 상관이 없는 문과대학을 갔고, 신학과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곁가지로 진화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상처는 잊혀져 갔지만 다른 이유로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왜 아무 말도 못했던가? 왜 그 정도의 인품과 과학에 대한 맹신을 가진 사람이 과학 선생님이 되어 있는가? 물론 아직도 어딘가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계실터이다.  

  지금까지 과학은 자기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과학적인 맹신에 빠져 있었다. "개인 자신, 개인의 기쁨, 슬픔, 기억, 야망, 정체 의식, 자유 의지는 실은 신경세포와 그와 관련된 분자가 결합하여 활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P.252)"는 저자의 지적은 과학이 이미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리기화 되었고 신앙화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과학적인 맹신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본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학적인 맹신이 아니라 진화론에 대한 맹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진화론이 원래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어 점점 거시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져 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오류가 되는 것들은 가볍게 무시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들을 확대해석 하는 방향으로 과학을 왜곡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오류가 명확해져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깊어질수록 자연의 신비에 대하여 경탄하게 되고 신을 더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핵물리학과 유전과학을 비롯하여 최첨학문에 종사하는 과학자 중에 종교인, 특히 세상의 창조를 주장하는 기독교인이 많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사람의 가치에 대하여 논한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몸을 공업제품으로 환산해보자. 체중63kg 인 성인의 육체로 무엇을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 지방분으로 비누7개를 제조할 수 있다. 인으로 성냥개비 머리 2천 2백개와 마그네슘으로 설사약 한 봉지를 만든다. 인체에 포함된 철로 못 한 개와 탄소로 2천 자루의 연필심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5만원 정도에 불과 하다. 그러면 인체의 수분을 제거하고 화학약품을 만들면 그 값은 얼마나 될까? 화학자들은 인체를 재료로 수 십 억원의 약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인슐린 알부민 콜라겐 등은 매우 진귀한 것들이다. 인간 DNA와 호르몬 등은 수 억 원의 가치가 있다. 

  만약 사람의 가치를 이렇게만 판단한다면 너무 비정하고 차갑다고 사람도 아니라고 니난할 것이다. 진화론이 꼭 이렇다.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에 대한 것, 비 물질적인 것에 대한 것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치를 매기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과학의 정신일까? 정글의 법칙으로 사회를 설명한다면 너무 비정하지 않는가? 실제로 역사상 진화론를 맹신한 나머지 인종 청소라는 인류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국가의 강제에 의하여 약자를 거세하는 비인간적인 만행이 자행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과학이 좀더 인간적이길 원한다. 따뜻하길 원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길 바란다. 진화론이라는 맹목적인 우상을 타파하길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갖게 된 작은 바램이다.(물론 내가 기독교인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ps. 재미있다. 일반 과학서 보다 쉽게 쓰려고 노력한 것은 분명하다. 읽다가 발견한 오타 한 부분 297페이지 2번째 단락 3번째 줄 "조건을 부여했다. 주었다. => 조건을 부여했다. 혹은 조건을 주었다."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 옷을 가지고 놀다가 그 안에 들어가게 된 진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합니다.  
"엄마 따죠"  
과자 봉지도, 야쿠르트도 뭐든지 따달라고 합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루체오페르 2010-03-10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아빠 안녕하세요~ 정말 귀엽네요.^^

기억의집 2010-03-1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냄 이쁘네요. 인사 잘 받았고요, 너무 이쁘게 인사한다고 전해주세요^^

saint236 2010-03-12 11: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제는 미끄럼틀을 생일 선물로 사줬는데 "아빠 봐요"이러면서 하루 종일 탑니다.
 

 

아이폰으로 찍은 영상입니다. 

며칠뒤면 두돌이 되어 가는 진이가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이 녀석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웃네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억의집 2010-03-1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나중에 미스코리아 내 보내도 될거 같은데요.
저는 막내가 9살인데도 쭉쭉거리며 사는데, 세인트님은 오죽하시겠어요^^
세인트님의 피로회복제가 따로 없겠는데요.^^

saint236 2010-03-10 10:29   좋아요 0 | URL
이 녀석 때문에 웃으면서 삽니다.
 
<리영희프리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하게 리영희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78년 생, 97학번인 나는 리영희에 대해서 모른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NL과 PD의 구분마저 모호해져있던 시대에 우연치 않게 PD계열의 서클에 들어갔고, 또 우연치 않게 복학하게 된 80년대 학번들로부터 학습을 받았다. 그리고 90년대 학번의 끝자락인 99학번 녀석들에게 T를 강요해 사구체와 자본론, 맑시즘, 공산당 선언 등 온갖 빨갱이 서적(?)을 읽히고 학습한 특이한 90년대 학번이다. 내 동기들은 락을 하고, 풍물을 하고, 도서관에 박혀 공부하는 동안에 나는 음습한 지하실에서(왜 그리 운동권 써클은 지하실에 위치해 있는지) 빨갱이 서적을 읽고 있었고, 철학서적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내 책장에는 이 당시 읽은 을지서적에서 나온 철학개론이 꽂혀있다. 물론 사구체와 나중에 어렵게 모아들인 비봉사의 자본론도 꽂혀 있다.(절판된 것을 서점 아저씨께 부탁드려 몇 년 동안 간신히 모은 것이다. 아직도 반품된 책들 있냐고 수시로 비봉사에 전화 걸어 챙겨주신 아저씨께 감사를 드린다.)

  남다른 학창 시절과 써클을 전전한 나에게 리영희가 생소하니 다른 친구들에게야 듣보잡일 것이다. "리영희 프리즘 보내주세요."라고 애원하는 글샘님의 글을 보고도 “누구야? 누군데 글샘님이 저렇게 애원하지?”라는 단순한 호기심과 서평을 올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길 몇 페이지 했을까? 말 그대로 정수리에 차가운 물 한바가지가 끼얹어진 경험을 했다.  

  이상을 공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지능보다도 용기를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그렇다. 우리가 우리에게 던져진 전제와 근거에 따라 추론하는 것에 머물 때, 우리는 '기계 부품'에 머무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때 생각이 없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 '감히 알려 하고', '감히 문제 삼으려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칸트의 답변이 그것이다.(P.24)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지능보다도 용기를 요하는 것이다.”라는 리영희 선생의 말이 내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도대체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가, 왜 폴리페서들이 넘쳐나는데 정책은 초딩만도 못한지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던 나를 깨우는 사자후였다. 그렇다. 사회가 역행하고, 소통이 되지 않고,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서 나라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굴러가는 것은 지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지성이 없어서, 학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멸사봉공(滅私奉公)할 용기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386이라는 사람들이 정치권의 실세로 등장한 지난 10년간에도 부정과 부패와 온갖 게이트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고 정당화 시켜주는 제사장들은 많이 있지만, 사회의 부조리와 악에 대항하여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하수처럼 흘러야 함을 당당하게 외칠 선지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타협하지 않는 광야의 선지자를 꿈꾸고,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꾸었던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타협하고 살면서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도 내가 감당해야할 몫을 감당하지 않았기에 사회가 이렇게 흘러오게 만든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다.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그래서 소위 고학력자(?)에 들어가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소홀히 했으니 인텔리겐차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덥잖은 개인의 잡소리이지만 서평의 초반에 이렇게 길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나에게 리영희 선생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선가 “지식인이란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는 사람이다. 깨어난 사람에게는 스승도 제자도 없고, 동지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요지의 글을 읽었다. 리영희 선생이 생각하는 지식인이 이런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리영희 선생을 이 시대의 세례 요한이라고 칭하고 싶다. 시대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사람, 재물에 얽매이지 않고 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지만 정신만은 자유로운 사람, 도무지 권력이 길들이지 못하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길들이지 못하는 사람. 리영희 선생님에게 딱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리영희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 세례 요한에게 예수가 있어 행복했듯이, 리영희 선생에게 누가 있어서 행복할까? 그게 이 시대 리영희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후진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리영희 선생이 있어서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행복하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도한다. 

PS. 여러 사람들의 글을 모아 편집했기 때문에 깊이가 깊지는 않다. 그렇지만 곱씹어 볼만한 글들이 여럿있다. 읽다가 발견한 오타이다. "28p 스승인 아닌자 => 스승이 아닌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대문도서관 2010-07-2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강의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blog.daum.net/ddmlib/63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 제국의 소멸 100년, 우리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
강상훈 외 지음 / 효형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명박 정부의 야심찬 계획인 4대강 사업이 시작되었다. 저항하는 국민들의 의견은 가볍게 묵살하고 "나를 따르라. 잘 살게 해주겠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국가적인 토목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에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들이 현실화 되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토목과의 르네상스가 시작될거라는 농담이 현실화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곳곳에서 환경단체들과 경찰들과 건설업체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불과 1주일 전에도 두물머리에서 충돌이 있지 않았던가? 그린사업을 외치면서 유기농 농경지를 측량하고 개발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정부의 똘끼에 환경단체들이 실력으로 맞선 것이다.  

  안타깝고 속 상한 것은 이러한 일이 두물머리 한 곳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4대강 사업 권역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가 않는다. 새만금 이후 최대의 토목 사업이기에 걸린 이권들도 많을 것이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는데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했다.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제국 소멸 100년, 우리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에 대하여 철저한 역사적인 고증과 추적을 통하여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책이다. 고궁을 유달리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 책을 통하여 처음 알게된 궁궐이 있을 정도로 잊혀지고 침묵하는 궁궐의 역사. 왜 우리 나라 국민은 버킹엄 궁전이나 베르샤유 궁전같은 궁궐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버킹엄 궁전이나 베르사유 궁전같은 궁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도 있고,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많은 궁전들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청덕궁과 창경궁, 덕수궁을 헷갈려 하면서도 버킹엄 궁과 베르사유 궁에 열광하는가? 경복궁에서 일어났던 을미사변은 뮤직비디오에나 등장하는 비극적이고 로맨틱한 사건으로 기억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가치는 왜 그리 외우고 다니는가? 로베스피에르는 알면서 미우라는 왜 모르는가?  

  궁궐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다. 위에서 넋두리하듯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두 여기에 있다. 궁궐은 그 궁궐이 지어지고 소실되고 복원되고 훼철되는 모든 역사의 순간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대한제국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우리 궁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건축물은 그것이 지닌 본래의 용도와 기능에 따른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지어지고 사용되는 동안의 사회•정치•역사적 맥락에서 따라서도 여러 가치가 부가된다. 특히 궁궐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개별적인 건축물 자체가 갖는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사회 및 건축을 대표하는 궁궐 건축과 대비되어 지어졌다는 상대적 관계에서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중화정에 대비되는 석조전이나 근정전에 대비되는 조선 총독부 청사의 모습은 명동 성당이나 러시아 공사관만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P.240 ~ 241) 

  일본 제국주의의 필요에 의하여 우리 궁궐은 철저하게 훼손돼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박람회와 공진회를 개최하고 대동아공영이라는 구호를 외치기 위하여 훼철되기 시작하였다. 한 나라의 궁궐 건물이 무단으로 철거되어 민간에 팔려가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그것도 정작 궁궐의 주인이 아닌 일본인에 의하여 경매에 붙여지고 일본인에게 불하되는 것이,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수익금이 일본 제국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자본금이 된다는 것은 국권 상실이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만이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왜 일제는 그렇게도 조선의 궁궐을 훼철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가? 일본의 식민지배는 곧 근대화이며, 조선은 곧 전근대라는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선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오늘날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이상하리만큼 똑같은 것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인가? 일제의 자기 정당화와 이익 창출을 위해서 주인을 잃은 궁궐은 훼철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궁궐의 훼철은 어느 정도인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훼철의 예는 다음과 같다.  

  경전본정 종점에서 정남으로 보이는 남산 지맥에 한 종루가 있으니 차는 일본인의 조계사다. 그 중문은 원래 평양이궁의 황례문(황건문)으로 대정 14년에 이건하였고 그 문내 좌측에는 큰 암석상에 '동악선생사단'육자를 각하얏스니 전일 선조 때 유명한 문장 이동악 안눌 선생의 유지다. 그리고 그 사의 본당인 조선식이 건물은 원 광해조가 건축한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으로 대정 15년에 이축한 것이다. 그 사는 조선 고적의 집합소라 하여도 가하다.(P.126 별건곤 23호 재인용)  

  풍경궁은 애초 행궁의 규모나 역할을 지녔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황건문만큼은 이궁에 버금가는 건축적 위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장대하고 기품있던 황건문은 사라졌다. 남한 내 남아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었던 황건문은 철거되고, 지금 그 일대에는 볼품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섰다.(P.146)   

  이 책을 통하여 풍경궁에 대해서, 황건문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헐려 나갔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만행이라 질타했지만, 풍경궁과 황건문은 그보다 더한 만행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슈도 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해졌던, 그것도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의해서 자행된 만행이 아닌가? 일제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입된 근대와 전근대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궁궐의 훼철은 어떤 수순으로 진행되었는가?  

  그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상대가 신성시하는 장소에 근대의 문화 시설을 배치한다. 근대의 배치를 위해서 과거의 공간은 선별적으로 남겨지고 대부분 사라진다. 과거의 기억은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대중은 과거를 향수하면서 동시에 무시하고 그 위에 중첩된 근대를 향유한다.(P.232 ~ 233) 

  신성의 일상화, 그리고 철저한 타자화와 경제논리에 의한 왜곡, 그리고 과거의 변형과 새로운 기억의 주입이 그 수순이다. 황제가 거하던 신성한 궁궐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일상적인 위락 시설로 변하였고, 경제적인 논리에 의하여 판매될 수 있는 동산으로 이해되었고, 그 과정의 마지막은 조선은 전근대의 상징이며 역사의 반동이요, 일제의 국권침탈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일황의 大恩이 되지 않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궁궐의 운명과 4대강의 운명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인 일인가? 지금 4대강 사업 역시 궁궐이 타자화 되고 이동이 가능한 동산으로 취급되면서 불하되고 사라져 그 자리에 콘크리트만 남는 과정을 똑같이 밟고 잇는 것이 아닐까? 우리 국토의 젖줄이라 부르며 역사의 고락을 같이 한 4대강이 주민 위락시설, 생활의 질이라는 말로 일상화 되고, 위락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개발 가능한 곳으로 타자화 되고, 경제 논리에 의해 파헤쳐지고 정비되어지는 것이 4대강 사업의 본질이 아닌가? 역사성과 생명공존이라는 가치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오로지 개발 가능한 가용 공간으로 인식되어 콘크리트로 포장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무책임한 개발 논리는 서민 경제를 생각하는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大恩으로,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전근대의 화신으로 포장되고 주입될 것이다.  

  아마 "4대강의 눈물, 5년의 침묵-MB집권 후 5년, 우리 4대강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후속작이 등장하지는 않을런지?   

ps. 건물에 대한 일본의 보고서나 한자 상소문은 한글로 번역해 줬으면 좋을 것 같다. 궁궐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맘에 들었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