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 제국의 소멸 100년, 우리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
강상훈 외 지음 / 효형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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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의 야심찬 계획인 4대강 사업이 시작되었다. 저항하는 국민들의 의견은 가볍게 묵살하고 "나를 따르라. 잘 살게 해주겠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국가적인 토목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에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들이 현실화 되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토목과의 르네상스가 시작될거라는 농담이 현실화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곳곳에서 환경단체들과 경찰들과 건설업체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불과 1주일 전에도 두물머리에서 충돌이 있지 않았던가? 그린사업을 외치면서 유기농 농경지를 측량하고 개발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정부의 똘끼에 환경단체들이 실력으로 맞선 것이다.  

  안타깝고 속 상한 것은 이러한 일이 두물머리 한 곳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4대강 사업 권역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가 않는다. 새만금 이후 최대의 토목 사업이기에 걸린 이권들도 많을 것이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는데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했다.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제국 소멸 100년, 우리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에 대하여 철저한 역사적인 고증과 추적을 통하여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책이다. 고궁을 유달리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 책을 통하여 처음 알게된 궁궐이 있을 정도로 잊혀지고 침묵하는 궁궐의 역사. 왜 우리 나라 국민은 버킹엄 궁전이나 베르샤유 궁전같은 궁궐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버킹엄 궁전이나 베르사유 궁전같은 궁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도 있고,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많은 궁전들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청덕궁과 창경궁, 덕수궁을 헷갈려 하면서도 버킹엄 궁과 베르사유 궁에 열광하는가? 경복궁에서 일어났던 을미사변은 뮤직비디오에나 등장하는 비극적이고 로맨틱한 사건으로 기억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가치는 왜 그리 외우고 다니는가? 로베스피에르는 알면서 미우라는 왜 모르는가?  

  궁궐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다. 위에서 넋두리하듯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두 여기에 있다. 궁궐은 그 궁궐이 지어지고 소실되고 복원되고 훼철되는 모든 역사의 순간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대한제국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우리 궁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건축물은 그것이 지닌 본래의 용도와 기능에 따른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지어지고 사용되는 동안의 사회•정치•역사적 맥락에서 따라서도 여러 가치가 부가된다. 특히 궁궐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개별적인 건축물 자체가 갖는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사회 및 건축을 대표하는 궁궐 건축과 대비되어 지어졌다는 상대적 관계에서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중화정에 대비되는 석조전이나 근정전에 대비되는 조선 총독부 청사의 모습은 명동 성당이나 러시아 공사관만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P.240 ~ 241) 

  일본 제국주의의 필요에 의하여 우리 궁궐은 철저하게 훼손돼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박람회와 공진회를 개최하고 대동아공영이라는 구호를 외치기 위하여 훼철되기 시작하였다. 한 나라의 궁궐 건물이 무단으로 철거되어 민간에 팔려가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그것도 정작 궁궐의 주인이 아닌 일본인에 의하여 경매에 붙여지고 일본인에게 불하되는 것이,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수익금이 일본 제국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자본금이 된다는 것은 국권 상실이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만이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왜 일제는 그렇게도 조선의 궁궐을 훼철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가? 일본의 식민지배는 곧 근대화이며, 조선은 곧 전근대라는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선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오늘날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이상하리만큼 똑같은 것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인가? 일제의 자기 정당화와 이익 창출을 위해서 주인을 잃은 궁궐은 훼철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궁궐의 훼철은 어느 정도인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훼철의 예는 다음과 같다.  

  경전본정 종점에서 정남으로 보이는 남산 지맥에 한 종루가 있으니 차는 일본인의 조계사다. 그 중문은 원래 평양이궁의 황례문(황건문)으로 대정 14년에 이건하였고 그 문내 좌측에는 큰 암석상에 '동악선생사단'육자를 각하얏스니 전일 선조 때 유명한 문장 이동악 안눌 선생의 유지다. 그리고 그 사의 본당인 조선식이 건물은 원 광해조가 건축한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으로 대정 15년에 이축한 것이다. 그 사는 조선 고적의 집합소라 하여도 가하다.(P.126 별건곤 23호 재인용)  

  풍경궁은 애초 행궁의 규모나 역할을 지녔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황건문만큼은 이궁에 버금가는 건축적 위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장대하고 기품있던 황건문은 사라졌다. 남한 내 남아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었던 황건문은 철거되고, 지금 그 일대에는 볼품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섰다.(P.146)   

  이 책을 통하여 풍경궁에 대해서, 황건문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헐려 나갔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만행이라 질타했지만, 풍경궁과 황건문은 그보다 더한 만행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슈도 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해졌던, 그것도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의해서 자행된 만행이 아닌가? 일제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입된 근대와 전근대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궁궐의 훼철은 어떤 수순으로 진행되었는가?  

  그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상대가 신성시하는 장소에 근대의 문화 시설을 배치한다. 근대의 배치를 위해서 과거의 공간은 선별적으로 남겨지고 대부분 사라진다. 과거의 기억은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대중은 과거를 향수하면서 동시에 무시하고 그 위에 중첩된 근대를 향유한다.(P.232 ~ 233) 

  신성의 일상화, 그리고 철저한 타자화와 경제논리에 의한 왜곡, 그리고 과거의 변형과 새로운 기억의 주입이 그 수순이다. 황제가 거하던 신성한 궁궐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일상적인 위락 시설로 변하였고, 경제적인 논리에 의하여 판매될 수 있는 동산으로 이해되었고, 그 과정의 마지막은 조선은 전근대의 상징이며 역사의 반동이요, 일제의 국권침탈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일황의 大恩이 되지 않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궁궐의 운명과 4대강의 운명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인 일인가? 지금 4대강 사업 역시 궁궐이 타자화 되고 이동이 가능한 동산으로 취급되면서 불하되고 사라져 그 자리에 콘크리트만 남는 과정을 똑같이 밟고 잇는 것이 아닐까? 우리 국토의 젖줄이라 부르며 역사의 고락을 같이 한 4대강이 주민 위락시설, 생활의 질이라는 말로 일상화 되고, 위락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개발 가능한 곳으로 타자화 되고, 경제 논리에 의해 파헤쳐지고 정비되어지는 것이 4대강 사업의 본질이 아닌가? 역사성과 생명공존이라는 가치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오로지 개발 가능한 가용 공간으로 인식되어 콘크리트로 포장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무책임한 개발 논리는 서민 경제를 생각하는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大恩으로,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전근대의 화신으로 포장되고 주입될 것이다.  

  아마 "4대강의 눈물, 5년의 침묵-MB집권 후 5년, 우리 4대강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후속작이 등장하지는 않을런지?   

ps. 건물에 대한 일본의 보고서나 한자 상소문은 한글로 번역해 줬으면 좋을 것 같다. 궁궐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맘에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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