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8 박스세트 - 전8권
허영만 지음 / 월드김영사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노마드가 유행이다.

  학문의 노마드, 사상의 노마드....

  심지어는 자게서도 노마드를 강조한다. 어찌보면 우리에게 노마드는 로망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정주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노마드는 꿈에나 그리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칭기스칸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 책들은 대부부느 칭기스칸의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칭기스칸이 어떻게 대제국을 건설했는가, 그가 성공한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등등... 칭기스칸에 관한 여러가지 책들이 있지만 선뜻 읽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책도 그런 이유로 읽지 않았다. 하나하나 안되니 이젠 만화도 나오나 싶었다. 게다가 난 허영만씨의 만화는 날아라 슈퍼보드와 망치를 최고로 치는 편인지라 그가 다루는 역사 만화는 더 읽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이 책이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권씩 사모은 책이 이젠 한질이 되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새로운 책을 구할 때마다 또 읽어서인지 이 책을 서너번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에 놀란다. 허영만씨가 이 책을 그리기 위해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자료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자료 수집을 위해서 몽골을 여행했다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이 분이 덕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은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무기라든지, 갑옷이라든지 당시의 복식과 문화에 대해서 꽤나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심지어는 전통 음식까지도 철저하게 자료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 사극으로 치자면 전통 사극이라고 하겠다. 퓨전 사극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면서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바꾸어 버리는 기존의 사극을 보면서 진저리나던 내게 이 책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이런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번째로 놀라는 점은 칭기스탄의 업적이 아닌 칭기스칸 개인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역사책들, 그리고 걸출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리는 만화나 책들은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하고 그 부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명량을 들어보자. 명량의 여러가지 정치적인 부분이라든지, 역사적인 맥락은 다 거세해 버리고 걸출한 이순신의 원맨쇼에 집중했던 명량을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명량은 그냥 이순신 원맨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편의 재미있는 전쟁 영화일 뿐이다. 이것이 영웅을 그리는 사극의 한계이다. 이러한 관점을 벗어나서 이순신의 고뇌와 정치적인 상황 같은 것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영화는 산으로 간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전쟁보다는 칭기스칸이라는 개인사에 집중한다. 그가 어떤 고난을 겪었고, 그 가운데에서 어떤 마음을 품었으며, 안도에 대해 느끼는 서운한 감정과 신뢰, 어쩔 수 없이 격돌하게 될 때의 그러한 안타까움이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전쟁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쟁이 주가 되는 느낌은 많이 약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 칭기스칸이 아닌 개인 칭기스칸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몽골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 말에서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말과 함께 태어나지는 않지만 말과 함께 자라고, 말과 함께 죽는다고 한다. 약간 과장하면 말 위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과 함께 생활하는 몽골인들을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덩치를 자랑하던 유럽의 기사들은 비웃던 몽골 군단에 의해서 박살이 난다. 그렇지만 이 아픈 기억은 로마인들이 한니발에게 배워 보병과 기병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전술을 발전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몽골인에 대한 공포와 충격에 사로잡혀서 몽골인들을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유럽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사가 전쟁을 대변하는 존재로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게 된다. 화약을 사용하는 신무기가 등장하기까지 말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새로운 변화와 도전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직시하고 배우기보다는 공포와 충격에 빠져서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우고 해체하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세월호 사건이 우리를 성찰할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해경을 해체하고, 시간 끌기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윤일병 살인 사건이, 병사들의 자살과 구타 폭행 사건이 우리를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하자 똑같은 행동 패턴을 취하지 않는가? 요즘 농담처럼 군에 입대할 친구들에게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군대 안갈지도 모른다. 문제가 되니 해경도 해체하는데 군대라고 그냥 놔두겠는가? 조만간 군대도 해체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듣는 사람도 농담으로 듣는다. 그렇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변화를 거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 지도층의 태도 앞에 몽골기병과 같은 충격이 또 안오리라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말로만 노마드를 외치지 말자. 몽골 기병과 같은 사건들은 로망이 아닌 현실이다. 그 현실이 우리 눈 앞에 다가왔을 때 외면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직면하자. 거기에서부터 노마드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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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8-27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마드'라는 말이 주는 '자유로움'이나 '구속받지 않는' 듯한 느낌 때문에 더욱 유행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한동안 자계서나 강사들이 추구하는 꿈에서 '노마드'가 빠지지 않던 것이 기억나네요. 말보다 실행은 훨씬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