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劍
박흥용 지음 / 포이에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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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용!

 

  아마 이 이름 석자 때문에 이 책을 사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과 내 파란 세이버를 통하여 박흥용의 작품을 만난 사람들이라면 십중 팔구는 그리할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포이에마라는 출판사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박흥용이라는 이름 석자 때문에 몇번을 망설인 끝에 이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앉아서 단숨에 읽어 내렸다. 다만 책을 읽어 내리는 속도를 생각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에서 조선 최고의 칼잡이와 그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아직은 설익은 주인공 칼잡이의 이야기는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그리는 칼잡이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켠이 아렸다. 또한 시대의 모순에 천착하면서 칼잡이의 인생으로 풀어가는 그의 집요한 서술 방식은 혁명의 정당성과 과격성, 실패한 혁명의 씁쓸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다만 아쉽다면 영화화 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 진지함과 집요함이 영화의 단순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삭제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박흥용의 초창기 작품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체가 확연히 살아있기는 하지만 묘사의 디테일이 많이 생략된 점에서 그가 느꼈을 아쉬움이 손에 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여타 그의 작품에서 유지되고 있는 진지함과 성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상과 삶의 문제! 기독교인 박흥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과 삶의 문제, 머릿말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를 빌리자면 작품과 빵의 문제! 이 책은 끊임없이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안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간극을 발견하다보면 어느샌가 그 둘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만나고 하나가 된다. 삶에 대한 진지함은 이상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삶을 무시한 이상은 이상이 아니라 허상임을 발견하게 만든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욕을 먹고, 교회가 지탄을 받는가? 빵과 작품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 아닌가?

 

  주인공은 묘하게도 아름다움이나 돈을 추구하는 환도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오직 직검만을 만든다. 찌른다는 검 특유의 속성을 위해서 날카로운 직검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런 그를 아무도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미쳤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는 그렇게 직검에 미쳐서 살았다. 아버지의 직검을 보면서 끊임없이 직검에 몰두한다. 그에게 사람도, 부도, 명예도 아무 것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이 없어서 힘들고 어렵지만 그는 오직 직검만을 연구하고, 마음에 새기고 손으로 직검만을 만든다. 그런 그가 절름발이 아이를 만나고 그를 위하여 아버지의 직검으로 난생처음 검이 아닌 다른 도구를 만든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이상과 꿈이 담긴 아버지의 직검이 사라지는 순간 그는 자기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아버지의 직검을 포기하는 순간 그렇게도 찾았던 직검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미쳤다고, 사기꾼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기 영혼에 새겨진, 그리고 평생을 추구했던 직검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정에 그를 사로잡던 수많은 갈등과 고민은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는 예수의 말로 끝이 난다. 어찌보면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만의 말이 아니라 평생 직검을 추구했던 주인공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검이라는 그의 만화는 초창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앙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곱씹어 볼수록 난해한다. 한권의 철학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신앙서적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 해석도 가능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담긴 그의 고민은 말장난이 아니라 그의 삶의 근간을 붙잡고 흔드는 고민과 번민의 결정체라고 하겠다.

 

  직검을 추구했던 주인공은 박흥용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며,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번민하는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박흥용! 그는 인생을 칼로 푸는 사람이다.

빵과 만화와 죽음-

작품이냐, 양식이냐!
만화가 중에는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해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직업`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자기 존재를 느끼고 표현하는 작업`으로서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념의 담장을 더욱 높이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땅으로 성역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덮고 당장 양식을 구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기 싫은 그림을 그리는 고통보다는 배고픔의 고통이 더 비참하다는 것을 잠깐의 창작 경험으로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평을 늘어놓으며 원치 않는 작업을 하다 간혹 병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것에 익숙해져 창작욕구는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어느덧 무덤덤한 생활인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어떤 동료들은 빵과 만화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고, 또 K 형처럼 삶을 포기하기까지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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