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뒷골목 풍경 -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
양태자 지음 / 이랑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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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우리는 역사를 엘리트들의 기록으로 생각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승자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역사에 기록될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영향력도 없었던 이들의 삶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장점과 독특함이 담겨 있다. 이 책과 함께 중세의 길거리 풍경을 같이 읽어본다면 당시 일반 대중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가 시골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동네에 트럭이 한대 들어오면 어머니를 비롯하여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들었던 일이다. 그 트럭은 대체로 오징어, 고등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요즘도 야채 트럭을 가끔 동네에서 보지만 당시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에 한대 다니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물건을 사오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장날이 아닌 이상 동네 아주머니들은 생선을 파는 트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동네에 이렇게 생선을 파는 아저씨만 온 것이 아니다. 가끔은 손수레에 뻥튀기 기계를 싣고 와서 이것저것 곡물들을 튀겨 주시던 분이 계셨다. 그런 날은 동네 아이들이 마을 회관 앞에 모여서 그 아저씨를 하루 종일 구경했다. 품삯으로 돈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가끔 곡식을 받으시는 분도 계셨고, 장사가 잘 되는 날이면 아저씨는 자신이 받은 쌀이나 콩 가운데 일부를 튀겨서 아이들에게 주시기도 하셨다. 때로는 동네에서 좀 사시는 분들이 자신들이 튀긴 것 가운데 일부를 아이들에게 간식이라고 주고 가시기도 하셨다. 이러한 것들을 얻어 먹는 재미와, "뻥이요"라는 소리와 함께 자욱히 퍼지는 하얀 연기와 고소한 냄새는 동네 아이들에게는 하루 종일 쳐다보아도 질리지 않는 구경거리였다. 또 가끔은 냄비는 때워주는 분들이 오시기도 하셨다. 


  지금은 검정 고무신과 같은 만화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일들이지만 내 기억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그 당시를 추억하면서 남다른 감상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세 뒷골목의 풍경도 이렇게 오래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마을 회관 앞에, 혹은 장터에서 서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몸에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 각자 다른 어조와 리듬과 목소리로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사람, 그 앞에서 흥정하는 사람 등 상상력과 함께 이책을 읽으면 꽤 재미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억이나 경험이 없이 이 책을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읽는다면 상당히 재미없고, 별것 아닌 이야기들로 판단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느끼는 반응이 양극단으로 나온다고 해도 당연한 일일것이다.


  한 가지 부러운 것은 유럽에서는 이러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이벤트이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복식과 장사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이러한 모습들이 철저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창피한 옛 시절의 궁상 정도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된 고택을 보존하려는 유럽과 낡은 것으로 치부하여 밀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시각의 차이가 생활사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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