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평전 - 사람을 아껴 난세를 헤쳐 나간 불굴의 영웅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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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삼국지덕후다. 삼국지 관련한 책들은 꽤 많이 섭렵했다. 시중에 나온 삼국지 책은 거의 다 보는 편이다. 물론 내가 보는 삼국지는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 연의에 기반을 둔 책들이 중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 삼국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정사 삼국지는 보지 않았지만 정사 삼국지를 비롯해서 삼국지에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적인 내용들을 점검해보면서 비평을 가하는 삼국지 관련 서적들은 꽤 많이 봤다.


  유비,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 조조, 하후돈, 하우연, 장합, 허저, 손권, 감녕, 제갈공명, 가후, 주유 등등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을 이야기하라면 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주워 섬길 정도는 된다. 이는 내가 특별하기 때문은 아니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지에 빠져살던 고등학생 시절 이문열의 삼국지를 만났다. 그리고 삼국지를 이렇게 비평하면서 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이문열은 오늘날의 이문열하고는 좀 달랐다. 게다가 평역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신선했었다. 채 1년이 되지 않아 창천항로라는 만화를 접하고 조조 중심으로 읽는 삼국지에 대해서 신선함을 느꼈다. 만약 스토리 작가가 작고하지 않았다면 대작이 되었을 것이기에 꽤나 안타까웠다. 용랑전이라는 만화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 빠져 살면서 삼국지의 전투가 어떠한 과정으로 전개되었는지 잘 모르는 중국 지도를 펴 놓고 전략 연구에 골몰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내게 유비 평전, 역사를 기반으로 실제적인 유비의 모습을 살펴보자는 책 소개는 주저없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시간을 내어서 읽게 되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삼국지 연의와 삼국지에 대한 비평 서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 신선한 내용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유비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우리가 아는 것과는 약간은 달라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비가 사람을 정말 아껴서 사람을 얻기 위해서 꽤 많은 애를 썼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등용한 사람은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이것이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던 유비가 중국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황제를 칭하게 된 비결이라고 거의 모든 자게서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유비가 사람을 아끼는 것은 맞고,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을 등용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사람을 아껴 난세를 헤쳐나간 불굴의 영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사람을 아낀다"는 부분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사람을 아낀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일단 내 사람으로 등용을 하면 전폭적으로 신뢰를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밝힌 유비의 모습은 약간 다르다. 수어지교라는 말의 주인공인 제갈량조차도 유비에게 전적인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유비의 후계자인 유선을 구해온 조자룡조차도 유비가 죽기 전까지는 황충에 비해서 한단계 낮은 대우를 받았다는 것, 촉 출신의 인사들 중에서 유비에 의해서 중용된 사람이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것은 그가 사람을 아끼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유비가 사람을 아끼는 기준은 그 사람이 언제부터 그와 함께 있었는지, 개인적으로 그와 어느 정도의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명령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라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사람을 아낀다는 것이 한 나라의 왕이 되어서도 그가 여전히 유협집단의 지도자라는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가 아낀 사람은 유협집단 시절 자기와 함께 호형호제했던 사람들, 자기에게 항상 예스맨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에 한정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유비가 한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가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이유도 분명해진다. 유비는 사람을 아낀다는 평판을 들었지만 그 평판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을 뿐이다. 한 나라를 세우는 것은 팔이 안으로 굽는 것으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로 이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천하인으로서 유비에게 부족했었던 것은 진정으로 인재를 아끼는 태도였다.


  유비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 묘한 느낌을 받는다. 꽤 친숙하다는 것, 어디선가 많이 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매일 텔레비전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모습들이다. 정권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내 사람만으로 가능할 수 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것을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정권을 유지하고, 정권을 획득한 이후 역사에 좋은 기록을 남길만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인재풀이 넓어져야 한다. 내게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거침없이 대드는 사람들도 받아들여야 그 안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끊임없이 인재풀의 외연을 확장하기를 멈추는 순간, 그 집단은 고인물이 되고, 결국 썩을 수밖에 없다.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 있다. 인재풀 돌려막기라고도 한다. 어느 정권이고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돌려막기가 유별났다. 그런데 현 정권은 더 하다. 회전문 인사라는 말 앞에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그 회전문 인사도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급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 비극이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할 정도로 아끼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진짜 재미있는 것은 유비의 몰락을 초래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관우와 장비에 의해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현 정권의 몰락을 가져 온 것은 대통령이 그렇게 아끼던 최순실과 그 일당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비단 정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업의 가신단으로 비롯해서, 각 조직에서 조직의 수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조직이 몰락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은 조직이 몰락하고 난 다음에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 더 비극적이다. 인재를 사랑한다는 이미지 메이팅에 열중했던 유비, 그리고 거의 비슷하게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하는 정부의 수장! 이 정권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삼국지 연의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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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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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역사e를 통하여 우당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 놓았던 이회영 평전이 내 서재에 꽂혀 있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이덕일의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책을 먼저 읽고, 바로 이어서 이회영 평전을 읽었다. 이회영 평전은 이회영이라는 사람의 일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이회영과 그를 출러싼 아나키스트 그룹의 성장과 몰락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청산리 전투를 비롯해서 한국의 독립 운동사에 있어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던 항일 무장 행동들의 대부분이 이회영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왜 이 사람을 아직까지도 몰랐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흥무관학교라는 학교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이 학교가 이회영 일가가 세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우당이 그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북한과 남한 양쪽에게서 조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 진영에 투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승만을 필두로 하는 이들의 입장에 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광복을 맞기 전에 중국에서 임종을 맞이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제도권 밖의 길을 묵묵히 택했던 이회영과 그의 동지들, 그리고 그와 함께 조선을 등지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로 떠난 많은 이들. 우리가 그들에게 빚진 것은 너무 많은데 아무도 그들을 몰라준다. 오히려 나라를 팔아 작위를 하사받고 보상금을 두둑히 챙긴 사람들, 나라를 넘기고 가문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기울인 조선의 왕가에 대한 이야기들만 넘쳐난다.

  얼마 전 덕혜 옹주라는 영화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영화를 통하여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건을 잘못 알게 된다는 말을 하면서 입에 게거품을 물고 평론을 해대던 많은 평론가들이 있었다. 그들의 글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반응을 해야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영화를 영화 이상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사람들도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난 영화는 그냥 영화로 생각해야지,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려고 하는 순간 영화를 이데올로기라는 감옥에 갇힐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덕혜옹주를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서 난 그 영화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힐 뿐이다. 이름만 빼고 무엇하나 역사에 근거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덕혜 옹주를 보고 영화 평론을 통하여 사람들을 계몽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대중들의 생각을 너무 짧게 봤다고 말하고 싶다. 약간 각도가 다르긴 하지만 그들도 대중을 개돼지 정도로 보는,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엘리트 주의에 경도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지만 학교에서 이 책을 한번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독립 운동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려면 공산진영, 자유진영, 그리고 아나키스트 그룹의 독립운동사까지 전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가 이 세 그룹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리고 모든 독립 운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장소의 주인이자, 그 장소를 마련해 준 이회영이라면 더더욱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독립운동을 다루는 영화가 또 나온다면, 이회영을 중심으로 제작해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회영 평전이 이회영 개인의 삶에 집중한 경향이 있다면 이 책은 이회영을 둘러싼 아나키스트 그룹에 대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덕일답지 않게 날카로운 비평은 없지만, 이회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아나키스트라는 독립 운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류에 대해서 알게 해준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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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평전 - 항일무장투쟁의 전위, 자유정신의 아나키스트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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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아직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이 주장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라는 것이, 식민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민족주의 사관을 살펴보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해보았지만 놀랍게도 이회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약산 김원봉의 경우도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지금까지 한국의 양반들은 일제에 부역했던 존재들이었으며, 몇몇 사람 정도만 을사늑약에 저항하여 자살했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렇지만 이 책은 우당 이회영과 그의 일족의 삶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양반으로 태어나서 아나키스트라는 특이한 길을 걸어간 그의 이력은 내게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좌도 우도 아닌 아나키스트의 삶을 살아갔기 때문에 그가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것에 비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일제와의 투쟁을 통하여 우리 민족은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자유주의 진영,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 진영! 사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공산주의 진영에 투신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주의 진영에 투신하였다. 아니다 자유주의 진영에 투신하였다기 보다는 공산주의 진영에 투신하기를 거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유주의 진영에 투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회영처럼 제 3의 길을 걸은 사람이 있다. 물론 약산 김원봉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원했다. 이들은 힘도 없으면서 외교적인 독립운동을 진행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며, 설령 독립이 된다고 할지라도 일제에서 미국으로, 혹은 소련으로 지배의 주체만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시간을 보내면서 독립을 준비하자는 주장도 일축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일제에게 맞서서 지금 할 수 있는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무장 행동이다. 다만 무장 행동은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수단이지 다른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 민족은 물론 당시 일본과 싸우고 있던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본과의 투쟁을 위해서 그어느 단체와도 사심 없이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이회영과 같은 거목이 중심을 잡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로이면서도 아랫 사람들을 다스리지 않고, 강압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오해를 사서 자신이 지도했던 단체에 의해 암살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의 신념을 한번도 꺾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달려갔다. 대접받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절대로 책임자의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순수한, 그리고 진실한 독립 운동가의 대명사, 그가 우당 이회영이다. 자신의 재산을 다 처분하여 독립운동에 바쳤고, 그 결과 형제들과 그 가족들 가운데 아사자가 있었고, 병으로 죽고, 투옥당하고, 살해당하고. 부인과 생이별하고, 자녀들을 무장투쟁의 길로 인도하고. 개인적으로 그가 겪었을 그의 아픔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글의 행간에서 읽힌다. 그렇지만 이런 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오늘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나라 걱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진실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회영 선생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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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도시, 베네치아 - 500년 무역 대국
로저 크롤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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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이 열리기 전에 낭만의 도시는 베네치아였다. 도시를 연결하는 수로, 곤돌라, 아름다운 건축물 등등. 지금이야 낭만의 도시 하면 프라하를 꼽지만 내겐 아직도 베네치아다. 게다가 코에이사의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계 지도를 외운 나에게 베네치아는 남다른 도시다. 안드레아 도리아라는 제독, 지중해를 가로질러 달리는 베네치아 갤리온. 대항해 시대2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최강의 범선 쉽과 최강의 전투선 철갑선이 나오기 전에 획득할 수 있는 최고의 전함은 베네치아 갤리온이다. 게임을 시작하면서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해서 베네치아 갤리온을 뽑아서 지중해를 누비면서 해적들에게 삥뜯기를 시작할 때의 감격이란...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여튼 내게 베네치아는 학창시절부터 남다른 도시였다. 그러다가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통하여 베네치아의 역사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베네치아에 대해서 약간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 야만족을 피하여 도망간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가던 베네치아가 어떻게 그렇게 강국이 되었는가?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지만, 베네치아에 관련된 책들은 대개 강국이 된 베네치아, 그리고 몰락하는 베네치아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 베네치아의 시작과 그들이 해상 제국으로 성장할 때의 시대를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도대체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해상 강국으로 성장한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그 작은 도시가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유럽의 강대국들과 오스만 제국과 전투를 하면서도 쉽사리 멸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이 책을 읽어가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베네치아가 강국, 로마 시대 뒤를 이어 해상 제국으로 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베네치아가 선택했던 묘한 정치 제도에서 찾는다. 베네치아는 겉으로야 어떻든 간에 권력이 대물림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집안의 부와 권력은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지만, 국가의 권력은 사유화될 수 없다. 베네치아는 철저하게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애를 썼다. 간혹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서 오랜 세월동안 베네치아를 이끌어 간다고 해도, 막대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해도, 정치 제도적으로는 여러표 가운데 한표를 행사하는 존재일 뿐이다. 국가의 권력을 잠시 위임받아서 도시를 이끌어가는 대리자일뿐이다. 어찌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와 닮은 점이 많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베네치아가 오늘날의 대한민국보다 나은 점은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들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는 것?


  자원이 부족한 베네치아는 무역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공업 원료도, 심지어는 식량도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는다면 한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베네치아 발전의 원동력이자 몰락의 주된 원인이기도 한다. 이 또한 대한민국과 닮았다. 다만 대한민국이 베네치아에 비하여 훨씬 더 커다란 영토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내수 활성화라는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해상 제국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베네치아는 선견지명이 있는, 그리고 지혜는 물론 결단력까지 있는 지도자를 만나 해상 제국의 길을 걷는다. 이를 위해 베네치아는 정보 수집과 수집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해상 교통망 설치에 목숨을 건다. 터키와 싸워서 영토를 잃을 때에도 베네치아가 목숨걸고 사수하려고 했던 것은 해상 교통망이었음을 떠올린다면 그들이 얼마만큼 정보의 수집과 취합, 그리고 이를 통한 외교 정책 수립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외교에 나서는 베네치아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통털어 가장 현대적인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터키의 궁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 일이 어떤 파장을 끼칠 것인지 몇번씩이나 고민하고 점검하여 외교를 벌이는 모습을 보노라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모 측근의 막연한 희망인 2년 안에 북한이 몰락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 운운한 우리나라가 그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베네치아의 국정 운영과 협의 프로세스를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들이 무역에 목숨을 건다는 점을 본다면 베네치아는 국가라기보다는 주식회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 누구도 권력을 사유화할 수 없고, 가진 무게만큼 발언권을 갖는 주식회사. 모 그룹처럼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그룹을 좌지우지할 수 없고, 대물림이 아닌 시민들과 지도층의 신임을 묻는다는 점도 주식회사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다만 현대의 주식회사와 차이가 있다면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의 유무 정도?


  내가 베네치아의 역사를 읽어가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묻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과거 누가 말한 것처럼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CEO에 의해서 주식회사의 미래가 영향을 받는 것처럼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나라의 앞날이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권력이 독점되지 않도록, 권력된 독점도 절대로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온갖 장치들을 둔다. 혹 이러한 장치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기업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CEO를 해임한다. 올바른 전략을 세우기 위하여 기업의 전략을 연구하고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관을 설치하고, 온갖 정보를 수집, 취합, 가공하며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이 기본만 지켜진다면 기업은 구성원들의 충성은 물론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다. 시민들은 평시에는 큰 발언권을 얻지 못하지만 국가의 존망을 걸고 맞서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갖는다. 이것이 베네치아가 500년을 갔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혼란한 이유가 무엇일까? 베네치아가 오랜 세월동안 지켜왔던 원칙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유화, 정보 수집과 취합, 그리고 가공의 아마추어리즘, 국민들의 발언 무시 및 재갈물리기. 장기적인 비전의 부재. 작은 도시 국가로 시작하여 해상 제국을 설립한, 그렇지만 결국에는 한계에 부딪쳐 몰락한 베네치아의 500년 역사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본다. 주식회사 베네치아의 500년 역사 앞에서 대한민국의 앞날을 묻는다.


  번역이 깔끔하여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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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6-11-24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세인트님의 베네치아 지식 습득과정이 저랑 거의 동일하신..... ^^;

saint236 2016-11-24 22:16   좋아요 0 | URL
그럼 연식이...ㅎㅎ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 김춘추에서 노무현까지
이덕일 지음 / 마리서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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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절이 하수상하다.

 

  132만이나 되는 숫자가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과거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대통령이 탄핵되었던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나서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지는 이승만 대통령 이래로 처음이다. 흔히 100만이 모였다는 87년 민주항쟁도 대통령이 물러가라는 말이 아니라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다. 물론 "전두환은 물러가라 울라~울라~"라는 노래가 불려졌지만(나는 그때 초딩이었기 때문에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다만 대학생 때의 집회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분명히 불렀을 것이다.) 이 노래는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동의하지 않는다는 측면이 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국민들이 외치는 대통령 하야는 순수하게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문구 "내가 이러려고 ~이 되었는가라는 자괴감이 듭니다."라는 유행어, "#그런데 최순실은"이라는 말은 오늘날 일어난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마음이 어떤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정치인들이, 검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차와 과정은 다르지만, 야당 모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검찰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통령을 탈탈 털겠다는 의지를 슬쩍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솔직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순수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들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국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이야기하니 거기에 붙어서 자기들의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검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가지 우병우 밑에서 숨죽이고 있었고, 조선일보 기자에게 저격을 받았는데 이 기회에 잘 처신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겠다는 계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복잡다단한, 그리고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다시 역사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오늘날의 국민들의 요구가 성공한 개혁이 될지, 아니면 양은 냄비 끓듯이 끓어 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실패한 개혁이 될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씩 살펴본다. 그러던 차에 이미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작성하지 못한 이 책을 끄집어 내어 다시 읽고 끄적거려 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한국사에서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성공한 개혁군주들의 이야기, 성공한 법안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결국은 실패한 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을 신라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의 차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중 내가 동의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젠다 설정이요, 다른 하나는 생활 밀착형 제도이다.

 

  첫째 아젠다 설정이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 신라의 통일과 숙종의 왕권 강화책을 통하여 이덕일은 아젠다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장한다. 삼국 중 가장 외진 곳에 있고,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삼국통일이라는 분명한 아젠다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 아젠다를 따라서 정책을 세우고 실천해 갔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신하들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이 일을 왜 해야하는지 분면하게 보여주었기에 그 개혁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숙종의 왕권 강화는 아무런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왕권을 강화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고, 아젠다가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권강화라는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개혁이란 사라들에게 이상을 보여주고 그 이상을 향하여 나가자고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이상, 즉 정책의 의제 설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진보 진형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9년의 세월을 돌아본다. 난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과거 10년간 진보 진영에서 집권을 했다. 그런데 10년의 집권 동안 무엇을 했던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주었던가? 그렇지 않다. 결국 그 실패가 전권 교체를 불러왔다. 잘 살게 해주겠다, 경제 민주화라는 지키지는 않을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사람들에게 달콤한 이상을 보여줘었기에 새누리당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오늘날 국민들이 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가? 지난 9년동안 제시했던 아젠다가, 비전과 이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고, 의제를 잘 설정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그 사람을 뽑아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반기문이든, 유승민이든, 김무성이든 말이다. 그런데도 소위 말하는 진보라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제를 설정하지도 못한다. 먼저 치고 나가지도 못하고 매일 뒷북을 친다. 그러니 종북 프레임, 나는 빨갱이가 아니오라는 해명만 하다 끝난다. 진정 재혁을 하고 싶다면 국민들에게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 설득하라. 그저 박근혜 반대 효과만 바라보지 말고 말이다.

 

  둘째 생활 밀착형 정책이 개혁의 성패를 가른다. 선공한 제도 개혁을 살펴보면 그것이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대개 지도층이나 집권층의 이익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반발을 받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생활 밀착형 정책들은 결국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오늘날 국민들이 무엇 때문에 폭발했는가? 단순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때문일까?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만 난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쌓여왔던 것이 이번 게이트를 통하여 밖으로 촉발된 것이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주택 정책 실패 등등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책들이 모두 실패했다. 그 결과 헬 조선이라는 말, 지옥 불반도라는 말, 수저 계급론이라는 말이 이 시대를 사로 잡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랑스러운 우리 나라를 비하하는 그런 말은 사용하지 말라면서 국민들을 훈계했다. 국민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면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만 한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북한의 위협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고 치자. 정권이 교체다 되었다고 치자. 국민들이 왜 정권을 교체했을까? 생활을 좀 바궈보라는 것이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국민들에게 외면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진보 진영 측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생활에 밀착한 정책들에 대한 체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살게 해주겠다는 MB의 말에 혹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정치인은 통일, 북핵, 세계 평화라는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청년 취업, 일자리 창출, 주택 문제와 같은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국민들에게는 후자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오늘날 현실이 복잡하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다음에는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하듯이 정권 심판론에만 머물러 있다면 정권교체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교체되어 국정 운영에 난맥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성공한 개혁이라는 역사적인 족적을 남기고 싶다면 위의 두 가지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저자로서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독자가 각자 판단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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