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전사의 탄생 -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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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

  우리에겐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다. 생물교회 사건과 김선일씨 사건으로 관계를 맺은 중동의 단체들은 우리에게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우방 국가인 우리에게 있어서 이슬람 단체의 테러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존재입니다.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 기독교, 무교 등 여러 종교에 열려 있는 곳이 우리 나라이긴 하지만 무슬림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우리 나라에 전략적인 포교 정책을 벌이고 있다고 기독교계에서 들고 일어난다. 중동과 관곌르 맺을 일이 우리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중동이란 그저 과거에 일을 하러 갔던 곳, 그래서 모 드라마에서 쿠웨이트 박이라는 이름으로 최주봉씨가 나온 그런 나라일 뿐이다. 가끔 리더십을 강의하는 사람들이 두바이의 지도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정도이다. 그저 운이 좋아 기름이 나는 곳에 자리 잡은 축복받은 대상 정도로만 여겨지는 것이 중동에 대한 전부이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하여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막연한 두려움을 품을 뿐이다. 그들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왜 그렇게 과격한 무장 단체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곳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왜 이슬람교도들이 무장 활동과 테러라는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지를 가르쳐 주는 소중한 자료가 이 책이다.


  오늘날 이슬람의 무장 단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서구의 식민지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들이 과격한 무장단체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그들이 특별히 공격성을 가지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미소의 냉전이라는 역사적인 사건, 더 나아가서는 서구의 제국주의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모든 무슬림 과격 단체의 요람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탈레반에 의한, 알 카에다에 의한 911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를 막기 위한 미국의 공작정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오늘날 IS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맥락을 따라가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이 왜 미국에 대해서 그렇게 적대적인 입장에 있는지, 그들이 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지도 불사하는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해묵은 종파 갈등, 이를 부채질 하며 중동을 분할하여 통치하려던 서구의 셈법, 그리고 그때 뿌려둔 씨앗들이 오늘날 IS라는 결과물로 도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말로 할 수 없는 씁쓸함을 준다. 왜 이스람 무장 단체들은 AK-47이라는 소련제 소총을 들고 나타나는지,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그리고 말도 안되는 샤리아라는 율법으로 통치하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밝혀 준다. 더불어 만약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만약 그 때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조금만 현명한 생각을 하였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번더 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건이 오버랩된다. 오늘날 트럼프에 의한 북한 공격에 대한 메시지 말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 노선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과격한 정책으로 대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북한이라는 이름을 집어 넣는다면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약간의 차이는 나겠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레이건과 부시에 의하여 이슬람 전사가 탄생했다면 부시와 트럼프에 의해서 북한 전사가 탄생한다는 말을 한다면 지나친 논리적인 비약일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꾸 만약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며, 이와 비슷한 매커니즘을 통하여 북한이 강격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분쟁과 무장 단체의 탄생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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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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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 길었던 춘추전국이야기가 끝났다. 지난 7년 동안 공원국의 책을 기다리며 지난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춘추전국 이야기가 한때 트랜드였는지, 1권이 나오던 그 시절에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었다. 아마도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와 더불어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읽혔던 책이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였을 것이다. 그런데 12권으로 기획했다던 제자백가 시리즈는 2011년 2권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다. 여러가지로 많이 바빴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일을 통하여 강신주는 진득하니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는 학자 타입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 후에 여러가지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야불놀이야(야부리라는 단어를 쓸 수 없어서 순화하였다.)"를 했던 것들을 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학자로서의 그의 저서로 취급하지 않는다. 강신주와는 달리 공원국은 매년 꾸준하게 책을 냈고, 7년 동안 11권의 책으로 끝을 맺었다. 꾸준하게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저자의 말에서 공원국은 의도적으로 춘추전국이야기의 처음을 관중으로, 마지막을 유방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약 50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관중이 춘추전국시대의 초기 사람이며, 유방이 춘추전국시대 이후 초한쟁패의 승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원국에 따르면 둘 모두 당시 백성의 삶에 중요성을 두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1권의 부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초한쟁패라는 말에서 영웅이란 유방과 항우를 말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유방과 항우가 모두 꾸었던 꿈이 무엇인가? 천하제패가 아니던가? 모두 같은 꿈을 꾸었지만, 서로 다른 진영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엇갈린다는 단어 속에서 어느 한 사람은 천하를 차지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는 단순한 결과만을 도출해 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11권이라는 긴 분량을 통하여 공원국이 주장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의 엇갈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신념의 불일치에 기반한다. 국어 사전에서 "엇갈리다"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이나 주장따위가 일치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의미에 기반하여 둘을 비교해 본다. 무엇이 일치하지 않았는가?

 

  우선 국가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다. 항우는 진 이전의 봉건 체제로, 유방은 진 이후의 군현제로 국가 체제를 설계하였다. 물론 둘다 있는 그대로 따라간 것이 아니라 거기에 여러가지 제도들을 더하여 개량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항우와 유방의 사고 방식은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나아감만큼이나 달랐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항우는 끊임없이 자기 주변에 있는 이들을 의심하고 깎아 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반면 유방은 최대한 사람들을 얻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항우는 죄를 지으면 가차없이 처단하고, 자기에게 반항하면 수십만명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매장해 버리는 위인이었다. 반면 유방은 죄를 지었어도 자기에에 필요가 있다면 용서한다. 종종 실제로 그렇게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렇지 않은척 할 수 있는 위선이 유방에게 있었기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이러한 유방의 태도는 천하를 차지하고도 변함이 없어서 법률이 있지만, 필요를 위해서라면 법을 어기면서라도 일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한은 사람을 얻었고, 400년의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잃는 자와 사람을 얻는 자, 이것이 항우와 유방의 엇갈린 삶이요, 그들의 미래가 엇갈린 결정적인 이유이리라. 그리고 공원국이 말한 진의 솔직함보다 한의 위선이 더 사랑스럽다는 말의 의미이리라.

 

  사람을 얻는자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 오늘날 정치인들이 기억해야할 말이다. 한국의 보수가 왜 몰락하고 있는가? 그들은 사람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이익과 권력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항우처럼 수십만의 생명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고영주 전 MBC 이사장 같은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다 빨갱이고, 자기만이 애국자라는 논지의 말을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진보는 어떤가? 마찬가지다. 생각의 진보는 조금도 없는데, 분열의 진보는 어마어마하다. 생각이 다채롭다는 의미의 분열이면 좋겠지만, 선을 긋고 나와 다르다, 그러니 너는 꼴통 보수다라고 선언하며, 청산의 대상이 적폐로 공격하는 것이 환상적이다. 그러니 이쪽도 사람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다스리고 싶다면, 정권을 창출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함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줌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 젊은이들을 갈아넣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이 소중함을 깨닫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실로 할 수 없다면 위선이라도 좋다. 사람을 얻는 자, 세상을 얻게 된다. 11권의 긴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묵직한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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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10 - 천하통일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0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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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구호 중에 가장 유명한 구호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가 있다. 미국의 대선을 단번에 빨아들인 구호였다. 이 구호로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를 물리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로 거의 20년 이상이 지났다. 당시는 대입과 씨름을 하던 학생이었지만 이제는 유권자가 되어서 투표를 앞두고 있다. 학생이었던 그때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져서인지 지금은 이 구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일까? 모든 대선후보들이 경제 정책을 가지고와서 공약을 남발하는 것을 보면 경제라는 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일까? 그래서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서 MB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우리의 10년을 그들에게 주었던 것일까? 처음 MB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첫 아이의 손을 붙잡고 "아빠가 미안해"라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내가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았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5년이 너무 우울해서 그랬다. 다시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투표소로 갔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냥 있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4년이 흘렀다. 어느덧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내 30대는 MB와 박근혜로 채워졌다. 누구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앞세워서 당선된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우리의 살림살이에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론 10년전보다 잘 살게 된 것은 맞다. 사회적인 불평등은 늘어났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어졌지만 현재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것들만 보면 분명히 나아졌다. 10년 전 큰맘 먹고 샀던 아이폰은 이제는 필수품이 되어버렸고, 스마트폰이 대중에게 보급된 것만 봐도 분명히 살림살이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60대 이상의 어른들이 젊은이들이 배가 불러서 그런다고 하는 말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과거에 특별한 사람들이 누리던 것은 이제는 특권이 아니라 일상 생활이 되었다는 것이다. 50년전과 절대치를 놓고 비교하면 나아졌지만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먹고 사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 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인들은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외치면서 나를 뽑아달라고 한다. 얼마전 박지원 의원이 했던 연설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휴대폰을 가지고 우리가 20년 먹고 살게 해줬던 것처럼 안철수가 우리에게 20년 먹고 살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니 지지해달라는 취지의 연설을 들으면서 피식했다. 도대체 이 시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퇴물이 아직도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웃겨서였다. 약간 곁길로 빠지지만 내가 민주당을, 지금은 국민의 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의 80%는 박지원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적 박지원인가? 박근혜에게 김기춘이 있다면, 민주당에는, 국민의 당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정치인들이 정말 이 시대와 소통하고 싶다면 경제가 아니라 자유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지만 이젠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먹고 살기를 원하지, 통제 받으면서 배급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여전히 국민들을 통제를 하면, 찍어 누르면, 간간히 먹을 것을 던져주면 꼬리를 흔드는 파블로프의 개로 생각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굳은 신념에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진시황을 보자. 그는 중국을 통일했다. 전란을 멈추었다. 도량형을 통일했다. 그를 단순히 폭군으로 보지 못할만큼 그는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한 많은 일들은 오늘날에도 하기 힘든 일들이요, 중국이 아시아를 호령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최고의 폭군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제국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몰락한 이유가 무엇인가? 후계자가 멍청해서, 간신들이 넘쳐서, 그가 식견이 짧아서?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획일성이 사람들의 정신에까지 적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번 자유가 무엇인지 맛본 사람에게는 자유의 달콤함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진시황은 그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몰락한 것이다. 이 책은 이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노무현을 통하여 자유를 맛보았다. 일개 평검사가 대통령에게 맞짱뜨는 모습을, 이러자면 막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말을 통하여 일개 평검사와 논쟁을 벌이는 대통령을 보았다. 임기를 마친 후 밀짚모자 쓰고 담배 한대 물고, 막걸리 한잔 마시는 대통령을 보았다. 대통령을 탄핵할 자유도, 씹을 자유도 이미 맛보았다. 그런 우리에게 먹고 살게 해줄테니까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 말 잘들어라고 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따를 것인가? 아직 태극기 흔들고, 애국가가 나오면 국민의례를 행하는 국제시장 세대가 남아 있기에 한동안은 먹힐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10년만, 20년만 지나보자. 그때고 그럴 수 있을까? 대선 후보들은 며칠 안남은 선거 운동 기간을 지나면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자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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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승민 곁에 김무성이 있다는 것도 꺼림칙합니다.

saint236 2017-05-07 17:30   좋아요 0 | URL
꺼림직한 것이 한둘인가요...
 
역사 ⓔ 5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5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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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욕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신이 왜 살아야하는지 삶의 의미를 알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인정의 욕구가 무너질 때 사람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예전에 자살방지 교육과 상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행해진 교육이 나에게 가르쳐 줬던 것은 내가 만나는 내담자에게 삶의 목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삶의 목적을 발견한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 교육의 핵심은 교회에서 부르는 축복송처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속 주지시켜 주는 것이다.


  역사e 시즌 5에서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도중에 하차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큰 포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희생을 했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혹은 아주 약간의 것만 얻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려서인지 이 책에 기록된 사람들에 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5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였지만 현실의 팍팍한 삶에 쫓겨 콩나물을 팔다가 요절한 여인 최영숙,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인생의 후반기를 아버지의 나라에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우장춘. 마지막 그에게 주어진 훈장을 받고 "드디어 조국이 나를 인정"해 줬다면서 병상에서 눈물 흘리던 우장춘. 왕의 여인으로 평생을 살면서 궁중 음식 문화를 이어왔던 궁녀들, 여러가지 정치적인 상황에 밀려 이용당하고, 혹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다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보부상, 지금은 이름도 희미해진 돈의문. 새문안이라는 이름이 돈의문을 기점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서글픔이란...조선 최고의 기술자이지만 신분의 벽을 넘지 못했던 장영실....일본의 오니로 둔갑되어 버린 한국의 도깨비...


  어지보면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의미와 열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결국 시대를 잘못만난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박복했던 것인지 역사의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최선을 다했지만 박수받지 못한 인생.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은 고사하고 박수조차 받아보지 못한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과 행적을 하나씩 곱십어 보면서 그들이 결코 실패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누구도 그들의 가치를 알아 주지 못했고, 감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날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최선을 다하고, 헌신과 희생을 했지만 아무도 몰라준다. 오히려 그 일 때문에 남겨진 이들이 힘겨워 한다. 전태일, 김구, 이회영, 장준하, 역사의 현장에서 스러져 버린 많은 사람들, 수십, 수백만의 촛불들...


  우리 삶을 바꿀 정도로 많은 역할을 했지만 그들은 박수 받지 못하고, 이름 석자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아니다. 이름 석자 남긴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리라. 이름도 없이 무명씨로, 혹은 숫자로 기록된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는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종북이라,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불순 세력이라 공격을 받아도 오늘도 불을 밝히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 앞에 감사한다. 비록 박수를 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들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 희생 앞에 감사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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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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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도도 아닌 내가 이 책을 읽고 한무제에 대해서 한줄의 평가를 내린다면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이다.


  황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먼 10번째 아들로 태어난 유철이 황제로 등극한 것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그가 황제로 등극하는 과정만 가지고도 영화를 만들 정도이다. 권력이 사람을 얼마나 치졸하고, 음험하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황제로 등극한 다음 그의 행로는 권력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무제를 지금의 중국의 영토와 시스템을 만든 사람으로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사람의 야망과 권력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흉노족에 대한 정벌, 한 사군 설치 등은 그의 정복욕과 권력욕, 그리고 오만함을 보여준다. 물론 그러한 권력욕으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한둘이겠냐만 그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던 것은 그가 억세게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의 시대에 그렇게도 많은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그가 행운의 사나이였다는 것으르 보여준다. 굳이 그의 공로를 찾아보자면 그가 인물을 알아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점이리라.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그가 황제로서 등극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만약 그의 치세가 10년만 짧았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의 말년을 둘러싼 광기와 비극이 없지 않았을까? 날카롭던 그의 인재 선별 시각도 그의 말년에는 무뎌졌다. 이 때문에 그는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장성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으며, 자기가 말년에 사랑했던 후궁도 죽여야 했다. 자기의 아들과 후궁까지 죽여가면서 유지해야했던 권력이란 무엇일까?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세종에게 안정적인 권력을 물려주기 위한 태종의 인간적인 고뇌도 그의 삶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마음껏 누리다가 죽은 불쌍한 사람만이 발견된다. 권력에 휘둘리다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죽은 불쌍한 사람만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무제를 중국의 위대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가르쳐 준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가운데 알렉산더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와 대단하다, 이렇게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다니."라는 생각으로 그가 위인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난 후 도대체 알렉산더가 왜 위인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그는 땅끝까지 정복하겠다는 정복욕에 사로잡혀 권력을 마음것 휘둘렀다. 한무제와 차이가 있다면 그는 요절했다는 정도? 만약 알렉산더가 장수했다면 어땠을까? 여러가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인전에 등장하기를 했겠지만 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무제를 꿈꾼다. 경제영토 확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용어를 통해서 제국주의를 표방한다. 이런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뜬금없이, 그리고 억울하게 광개토대왕이 소환된다. 아마 중국에서는 한무제를 소환하지 않을까? 거대 제국 건설이라는 포장지를 한꺼풀 벗겨내면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다가 권력의 노예가 되고, 권력에 미친 광인이라는 불쌍한 사람인데 그를 소환하여 그 사람을 본받자라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추구하는 우리의 추잡한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권력에 미쳐 돌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한무제를 다시 평가하는 것은 꽤나 유의미한 작업이 아닐까? 여하튼 왕뤼친과 같은 이야기꾼을 키워낸 중국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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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을 사람을 미치게 한다.. 올해 청와대 병신년을 보면서 느낀 제 감정이었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aint236 2016-12-28 20:56   좋아요 0 | URL
참 권력이란 것이 무엇이라고 저렇게 미치는지 모르겠네요

transient-guest 2016-12-30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친 사람들이 권력을 잡는 것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거대한 권력이나 재물이 주어지면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최근 한국의 문제는 권력이나 재물이 주어지지 말아야할 사람들이 중심부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aint236 2016-12-30 07:01   좋아요 0 | URL
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권력이 주어지지 말아야할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진 것도 그 권력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