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왔다. 제갈공명이 북벌을 진행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첩자를 통해 제갈공명의 건강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된 사마의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제갈공명의 운명을 점치다가 그가 죽은 것을 알게 된다. 침착하게 철수하던 촉나라 군대의 뒤를 추격하던 사마의는 제갈공명의 계략대로 그의 인형을 내세운 촉나라 군사의 행동에 깜박 속아 넘어가게 된다. 제갈공명의 허허실실 전법이라는 판단을 내린 사마의는 촉나라군을 괴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를 두고 후세의 사람들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라고 평했다.
이번 선거를 한마디로 평하자면 "죽은 정희가 산 철수를 이겼다."라고 평할 수 있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기분나쁘겠지만 기분 문제를 뒤로 젖혀두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보자는 것이다. 박근혜 캠프와 문재인 캠프의 핵심 선거 정책이 무엇인가? 설마 경제민주화니, 재벌 개혁이니 이런 것으로 믿고 있는가? 내가 판단하기에 그것은 구색맞추기다. 선거의 초반에 사람들에게 나는 이 정도 정책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대통령직에 출마했다 보여주기 위한 포장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오버라고 생각하는가? 선거의 중반을 넘어서 막판으로 달려갈수록 그 어느 캠프에서도 정책 대결은 보여주지 못했다. 강지원씨가 썩은 정치와 썩은 선거 운운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선거의 초반에야 정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쏟아냈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정책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온갖 흑색 선전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는 두 가지면에서 효과가 있다. 첫째, 젊은이들에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군이라는 느낌을 주기 딱 좋다. 둘째 비교적 장년 층에 속하는 새누리당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다른 때와는 달리 투표율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서 패패한 이유는 세대별 투표율을 보면 알 수 있다.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높지만 50대와 60대의 투표율에 비할 것이 못된다. 특히 거의 90%에 육박하는 50대의 투표율은 한동안 깨어지지 않을 기록이 될 것 같다. 이야기가 딴길로 빠지지만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정희 시절을 경험한 50대들이, 그것도 당시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을 거치는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들이 박정희의 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선거에서 정책이 핵심이 아니었다면 각 선거의 핵심 선거전략이 무엇이었는가? 내 판단에는 세일즈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캠프는 열심히 박정희를 팔았다. 주변에 3공과 5공 시절의 인물들이 포진하면서 7인회니 뭐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네 공주와 일곱 좀비"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이미 일선에서 물러났어도 한참 전에 물러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썼다. 박근혜의 모든 말은 아버지로 통한다. "아버지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되는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 이게 박근혜의 연설의 핵심이다. 50대 이후의 장년층들이 박근혜에 열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가 말을 잘해서, 그녀가 토론을 잘해서, 그녀가 무엇인가 정책을 보여줘서 그녀를 택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외신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했는가?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와서 그렇게 망신창이가 되고도 "이 토론회를 통해서 누구를 뽑을지 판단했으리라 믿는다."라는 준비된 멘트 외에는 날리지 못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15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박근혜를 지지한 이유는 한가지밖에 없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가 다른 후보에 비해서 유일하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새누리당 캠프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박정희를 열심히 팔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핵심 선거전략은 무엇인가? 단일화이다. 안철수와 단일화를 하면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안철수를 압박했던 것이 민주당의 핵심 선거 전략이다. 천신만고 끝에 안철수와 단일화를 이루게 되자 마치 선거에서 이긴 것처럼 김치국을 마셨던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자 안철수에게 보다 직접적인 지원 유세를 해달라고 압박했던 것이 민주당의 모습이다. 안철수 세일즈로 일관한 것이 민주당 선거 전략의 핵심인데 이것가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던가? 난 이부분에서 민주당의 삽질 정신의 발현되었다고 본다. 민주당 선거 전략은 안철수 세일즈가 아니라 문재인 세일즈여야 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비교해보자. 누구를 택할 것인가? 누가 더 경쟁력 있는 후보인가? 텔레비전 3차 토론회를 떠올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함께 있으면 이명박이 똑똑해 보이는 박근혜와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문재인, 예상 외의 질문에는 당황하면서 왜 이런 것을 묻느냐며 불편해 하는 박근혜와 한결 여유 있게 받아치는 문재인, 경호원들에 둘러싸여서 사람의 벽을 쌓는 박근혜와 사람 속으로 들어오는 문재인! 누가 더 경쟁력 있고, 누가 더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가?
민주당은 안철수 세일즈가 아니라 문재인 세일즈를 해야 옳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확실하고 경쟁력 있는 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한 눈을 파니 누가 민주당을 찍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선을 위해서라면 안철수와 단일화를 놓고 시간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단일화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문재인이 정말 경쟁력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문재인이 사람들에게 어필할 때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후보 문재인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안철수에 목을 매게 되고, 그런 당의 후보를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러니 단일화 또한 무리하게 진행되지 않았는가? 깔끔하고 아름답게 단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당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조직이 없는 안철수를 찍어 눌렀다는 느낌을 충분히 그의 지지자들에게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만이 아니라 텔레비전 토론회라든지 후반기 선거 전략을 통하여 문재인의 경쟁력, 정책에 대해서 부각시키기보다는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말려들어 네거티브 공세를 하지 않았는가? 네거티브 공세는 장외에서 해야지 본인들이 직접하면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민주당은 확실하게 삽질당이 되는 것이다.
선거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이제 와서 이런 저런 말 늘어 놓는 것이 쓸모 없어 보이지만 답답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다. 난 문재인은 지지한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는다. 언제적 박지원, 언제적 이해찬이 전면에 등장해야 하는가? 정책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확실한 전투 의지도 없고, 외연을 넓히기 보다는 호남이라는 자기 기반을 두고두고 울궈먹는 그런 모습이 새누리당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자기가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죄송합니다."라고 내려오는 문재인을 바라보면서 민주당이 이 정도의 진심을 가졌으면 이사태가 오지 않았겠다 싶다. 민주당의 삽질은 이렇게 진정성있는 후보를 박정희와 안철수라는 프레임 속에 밀어넣음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번 선거는 박정희, 노무현, 안철수의 선거였고, 이명박과 문재인은 실종된 선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