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댄서 - Dancer In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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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주연 : 비욕, 카트린느 드뇌브(2001)

어렸을 때 유럽 영화를 본다는 건 대단히 낮선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유럽 영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건 내가 이제까지 봐온 허리우드 영화 아니면 허리우드 영화 문법에 충실한 (상업)영화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그렇게 유럽 영화는 다른 문법과 정서를 가지고 보게끔 만드는 뭔가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매력적으로 와닿다가도 가끔 어느 부분, 나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과 맞닥트리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억지스럽다'라는 것 외에 어떻게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다분히 나의 정서를 가지고 보기 때문일텐데, 저게 유럽의 정서란 말인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예를들면 이 영화에서는, 세를 들어사는 셀마가 집주인이자 경찰관인 빌을 죽이는 장면이 그렇다. 물론 셀마는 빌이 자신의 돈을 훔쳐갔기 때문에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빌의 집에 들어갔다가 뜻하지 않게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솔직히 안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또는 죽인다면 극도의 분노나 증오가 뒷받침이 되야한다. 하지만 죽여 달라는 빌의 말에 선량하기 그지 없는 셀마는 흐느끼며 그를 죽인다.  이해가 가는가? 난 그 부분이 참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빌은 셀마에게 불리한 누명을 씌웠고, 총부리까지 겨눈데다가, 거기에 더해 살인까지 부추겼으니 더없이 위험한 상황이다.  물론 이해 못할 건 없다. 셀마가 실명 직전의 상황이고, 자신을 방어하다 죽인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둘의 대화가 지극히 이성적이고, 인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상황에서 살인이라니? 억지스럽지 않나? 사실 그런 것만 빼면 이 영화는 꽤 괜찮은 한편의 뮤지컬 영화다. 

 

라스 폰 트리에. 영국의 영화감독을 제외한다면 유럽의 영화 감독치고 그래도 꽤 부지런히 우리에게 그 존재를 알려 온 감독은 아닐까 싶다. 니콜 키드만의 <도그빌>이나 <브레이킹 더 웨이브>같은 영화가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가 그렇듯, 영화는 뮤지컬인데 비해 그다지 밝고 경쾌한 영화는 아니다. 대신, 그의 영화는 인간의 심연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  

이 영화 같은 경우, 모르긴 해도 감독은 인간의 '성악설'을 믿는 사람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뭐 꼭 그게 아니어도 그 놈의 '돈'에 놀아나는 인간의 영혼을 생각하면, 인간은 참 어처구니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원래 셀마나 빌이나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셀마는 살인을 저지르고, 빌은 빚을 청산하고자 셀마의 돈을 훔치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쓴 삶의 굴레를 셀마를 통해  벗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셀마가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는 것과 자신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녀의 아들에게 만큼은 그 운명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모은 것인데, 빌은 셀마의 처해진 운명을 이기적으로 악용한다는 것에 있다.  

 

그랬을 때 우리가 이 영화에서 원하는 건, 셀마가 어떻게 이 위기를 풀어갈 것인가?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해피엔딩이란 감동을 선사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은 채, 셀마로 하여금 억울한 누명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며 사형대까지 몰아간다. 게다가 영화는 잔인하기까지해서, 셀마에게 어떤 선택까지 요구하게 만든다. 즉,  선택하기 따라선 사형을 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형 유예를 신청하고, 아들의 눈을 수술시켜주기 위해 모은 돈을 변호사 비용으로 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셀마는  차마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예정대로사형대에 서기로 한다. 그건 역시 모성 때문이다. 이것을 관객으로서 이해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화가 슬프고 우울한 건, 누명을 쓰고 죽는 셀마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아들 때문에 죽어야 하는 모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치의 타협도 하지 않는 거의 절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모성 그 자체로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 앞두고 고뇌하는 인간적인 셀마가 있었기에,  모성으로서의 가치가 더 강하게 인식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많은 오해와 누명속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와도 오버랩이 된다. 셀마가 사형대에서 죽기까지의 연기가 사실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모성은 원래 눈이 먼 것이며, 외눈박이'라고 말하고 싶게도 만든다. 

하지만 내가 보는 건, 모성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것이다. 우린 너무 모성을 이념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성은 좀 더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 있는 것을 죽음과 맞물려 위대하고 거룩한 것으로만 보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아마도 성모 마리아의 신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좀 '그럴 것 같은'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가 아쉬운 건, 셀마의 아들의 입장이나 생각을 충분히 대변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는, 셀마가 자신의 누명을 벗으려는 의지는 보여주지 않더라도, 과연 그 아들이 엄마없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해서 그것을 감사하고 행복하게 느낄 것이냐는 것이다. 때론 아무리 눈 먼 어머니라도 자신 곁에 있어주는 것이 모성일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맹인들이 자신이 맹인이라고 해서 인생을 다 불행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약자로 살 수는 있어도 그것 자체가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을 보게되길 원해 눈을 떴지만 세상에 모순과 죄악된 모습 때문에 더 불행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래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소아마비 지체장애자다. 그런데 그녀의 딸 역시 같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비장애인이 보면 안 됐다고 동정할지 모르지만, 참 묘하게도 나는 그 모녀를 보면서 오히려 같은 운명이기에 저 모녀는 일체감을 더 많이 느끼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것처럼 셀마의 아들은 오히려 엄마가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졌기에 좀 더 세상을 안정감있게 살아갈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비장애자만이 사는 세상에서 혼자 장애자로 살아간다는 건 또 얼마나 외롭고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셀마의 아들이 엄마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좀 궁금했다. 엄마 없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과 비록 불편하게 살겠지만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어떤 것이 더 현명할까?  셀마가 사형을 면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모성은 무조건적이라기 보단 현명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줘야한다고 본다.  하지만 셀마의 입장에선  시간이 없다는 점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래서 영화는 동시에 사람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영화에서 셀마를 좋아하는 제프가 묻는다. 왜 아이를 낳았냐고. 그러자 셀마가 대답했다. 아이를 품안에 안아보고 싶었다고. (셀마의) 모성은 그렇게 한 가지 이유만을 단순하게 말할 뿐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 워크가 참 독특하다. 영화를 본다기 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노래를 할 땐 카메라 각도가 정교하다. 배우가 대사를 할 땐 혼란과 갈등 등을 보여 주지만, 노래를 보여줄 땐 행복과 희망을 보여주는 교차가 참 이채로운 영화란 생각이 든다.  특히 셀마 역의 비욕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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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28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 본지 한 십년 쯤 되었나봐요. 그때는 저도 아이를 낳기 전이었는데 보고나서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 지금은 영화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어도 그 느낌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stella.K 2011-03-28 11:19   좋아요 0 | URL
영화가 참 독특해요. 그죠? 우울하고, 그러면서도 뭔가 희망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형 장면이 참 안타깝죠?
그래서 리뷰 열심히 썼는데...ㅠ
 
이스트윅의 마녀들 - The Witches Of Eastwic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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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이 영화의 정확한 제작년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우리나라 개봉관에선 개봉을 안했던 것 같다.  왜 이런 명작을 개봉을 안했던 걸까?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끝에 저기 구석진 곳에서 결국 알아냈다. 1987년 작이다.  

오래 전, 지금은 절판된 <시네마 클래식>이란 책을 산적이 있는데 부록으로 CD가 한 장 끼어 있었다. 그중 첫번째 트랙에 바로 이 영화에 삽입되었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나온다. 책 보다는 CD가 좋아 한동안 줄창 들었던 적이 있다.  역시 클래식은 클래식 자체로 듣기 보다 이렇게 영화의 삽입곡으로 들으면 더 관심이 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볼 수 없으니, 어떤 장면에서 이 음악이 사용됐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주일, 드디어 그것을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영화에서 '다산의 여왕'이라 할 만한 여자가 나오는데(그 역은 미셸 파이퍼가 맡았다), 그녀의 아이들이 풍선에 파묻혀 놀 때 이 음악이 나온다. 다소 실망이다. 누가 뭐래도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이루고'는 구애를 할 때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고작 애들이 놀 때 이 음악이 나오다니... 그래도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용서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느 크림치즈 CF에도 사용했는데 뭐. 

감독이 조지 밀러다. 조지 밀러라면 전에 재밌게 본 <해피 피트>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오호! 이제야 이 감독의 취향을 알 것도 같다. 이 영화는 다분히 판타지 요소가 강하며, 동화적이기도 하다. 어딘가 이 영화에 대한 정보에 범죄, 호러물이라고 하던데 이건 전혀 맞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어린 아이도 생각외로 많이 나오고 조지 밀러는 모르긴 해도, 피터팬 취향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해피 피트>와는 좀 달라서 너무 어린 아이가 보는 건 조금은 조심스럽다.   

그런데 영화가 동화적이긴 해도 다분히 페미니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자 셋이 모이면 뭐가 어떻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면 확실히 여자 셋은 강한 연대의식과 놀라운 파워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여자들이 당대 유명한 수잔 서랜든과 미셸 파이퍼와 셰어이고 보면,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도 영화에서 묵직한 균형미를 잡아주는 건 역시 잭 니콜슨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눈매며 눈빛을 보면 그다지 성한 사람은 아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젊었을 때 그는 정상적인 배역을 맡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특히 <샤이닝> 같은 영화를 보면 섬뜩하지 않는가? 그나마 나이들고 인간미있는 노장역을 맡아 다행이긴 하지만 확실히 악역을 맡는다는 건 배우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만큼 악역을 잘 소화해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 지금은 그 계보를 잇는 배우가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그를 좋게 보기 시작한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부터인데, 이 영화가 90년대 초에 만들어지고, <이스트윅의 마녀들>은 87년에 만들어진 것을 보면 확실히 그때 그는 아직도 악역이 좋았나 보다.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놀라운 건, 보통 책이나 영화는 악마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남성으로 그리고 있으며 그것을 바로 잭 니콜슨이 맞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여성이 얼마나 소외되고 비하되어 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테고, 악한 남자는 그릴 수는 있어도, 악마에게 직접적으로 남성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마녀'는 있지만 '마남'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금기를 깼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백만장자를 가장한 악마다.  남자에게도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겠지만, 여자 또한 그런 로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백마 탄 왕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는 것. 하지만 이미 결혼은 했으나 이혼을 하거나 과부인 인생에 이런 일은 더 멀게만 느껴지지만 한편 그래서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점을 공략해 도입을 삼았다.

그렇지만 감독은 마녀란 말을 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제목 조차 그렇게 붙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마녀'는 그 부정적인 이미지는 없고, 오히려 착한 이미지며, 어찌보면 등장한 세 여자(셰어와 수잔 서랜든, 미셸 파이퍼)들은 여성성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의 고상함과 열정과 자유, 모성애 등. 그런데 이것이 다릴 벤혼이란 남자(잭 니콜슨)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이런 점이 있다는 걸 몰랐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에게 마법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가 유혹을 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것은 확실히 사랑의 힘이며, 혼자나 동성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연애를 해야하는 줄도 모른다. 사랑해야 비로소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게도 되니고, 자신을 긍정도 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이성을 만났다고 해서 자신의 잠자던 좋은 면만 일깨워지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한 남자를 두고 세 여자가 동시에 좋아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질투도 함께 일어나는 법. 그래도 나중에는 세 여자가 한 남자를 똑같이 공유한다는 것은 글쎄, 영화니까 봐 줄 만한 설정이지 그다지 바람직한 현실은 못 된다.   

그런데 이성의 구애를 받을 때 이런 상대는 주의하자. 상대의 약점을 잡아 나를 사랑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될 거라는 망상을 심어주는 약장사 같은 구애. 그것은 어찌보면 상대로 하여금 나의 약점을 사랑해 줄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의 또 다른 방법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는 사람이 좋다. 그것은 영화에서 다릴이 어떻게 여자를 유혹하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세 여자가 강한 연대의식을 발휘하게 되는 건, 사고로 계단에서 구른 마을의 여자가 영이 밝아져  다릴의 악마성과 여자들의 죄를 폭로하고 심판하려 할 때다. 여자가 자꾸 다릴을 방해를 하니 죽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런데 이 남자 얼마나 똑똑한지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고 세 여자를 통해 죽게 만든다.  영화는 다분히 주술적이기도 한데,  여자 셋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여자가 그대로 화를 입는다는 설정이다. 예를들면, 남자의 저택에서 여자 셋이 체리를 먹는데 그것을 먹을 때마다 마을의 여자는 토악질을 하는데 그것이 체리를 먹은 토사물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남편에 의해 살해 된다. 그녀들은 이 모든 것이 다릴의 짓이라는 걸 알고 복수극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확실히 통쾌하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하다. 영화에선 여자가 체리를 먹은 토사물을 내뱉았던 것처럼, 세 여자는 그대로 다릴에게 그 방법을 쓴다. 솔직히 남이 토악질을 하는 걸 보는 건 보통 괴롭고 역겨운 일이 아닌데, 여기선 다릴이 너무 심하게 정신없이 토를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 이스트윅의 세 마녀들은 자신의 동족이 남자의 교활한 수법에 의해 죽었다는 것에 복수를 감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야말로 여자를 우습게 보는 처사에 대한 응징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한꺼번에 여자 셋을 자기 휘하에 두게 됐다고 마냥 좋아할 것은 못 된다. 그 후한은 몇 배다. 더구나 양초를 녹여 다릴을 의미하는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송곳으로 찔러대고 때문에 다릴이 괴로워 하는 장면은 동서양이 참 똑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도 사극에서 보면 그 비슷한 장면을 가끔 보게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여자를 우습게 여기는 자, 저주를 받을지어다!다.  

사실 이 영화는 유쾌하게 볼만하지만, 남자를 초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만큼 여자는 혼자 살아도 남자는 혼자살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고. 다릴은 그렇게 여자들에게 혼쭐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그녀들은 각각 다릴의 아기를 낳아 잘 사니 말이다.  여자는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즉 자신 안에 뭔가의 능력이 발견되면 남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존재.  그런데 그것이 남자에 의해 발견되어진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리고 발견되어지면 남자는 버림을 받는다는 설정은 확실히 진화론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릴을 닮은 아이 셋이 여자의 품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건 뭔가 시사하는 바는 있는 것 같다. 다릴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악마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도 이채롭고. 뭐 꼭 이런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그 자체로도 지루하지 않게 볼만하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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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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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좋다. 그러나 너무 친절해 약간 지루해져버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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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 Good&Bye -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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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타키타 요지로
주연 :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2009년)

참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또 어찌보면 인간의 다양한 직업을 소재로 이렇게 따뜻한 휴머니즘을 구사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본의 영화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셈도 난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드라마나 영화를 다룰 때 굉장히 한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다소 정형화되고 캐릭터가 주는 맛이 반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을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을 갖게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여기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 역시 그런 점에서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그는 오케스트라 첼로주자다. 괜찮은 아니 멋져 보이기까지 하지 않는가? 첼로 주자로서 그의 꿈이 컸을지 작은지 큰지는 알 수 없다. 컸다면 이제 막 입단한 오케스트라에서 시쳇말로 잔뼈를 굵혀 더 큰 무대로 나가기를 바랄 수도 있고, 작았다면 그냥 오케스트라가 망하지 않고 이대로 현상유지만 잘해서 1억8천만원이나 하는 빚을지고 산 첼로 값을 청산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앞으로 자식 낳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비이락이라고, 오케스트라는 해체를 맞는다. 그래도 그에게 착하고 이해심 많은 아내가 있다는 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첼로를 팔아버리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낙향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우연히 신문에서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적성에도 잘 맞겠다 싶어 무작정 회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웬걸, 그 여행 도우미는 우리가 생각하고 다이고도 상상하는 그런 여행 도우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쇄가 잘못되서 탈자가 있는 여행도우미였다. 망자의 저승에로의 여행을 도와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더 정확히는 납관 즉 죽은이에게 염습을하고 관에 넣은 어찌보면 장례식의 가장 첫 절차를 담당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었다.  돈은 많이 준다기에 순간 혹했지만 그런 일은 왠지 직업으로 하기는 선듯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천직으로 아는 다이고의 고용인 이쿠에이에게 차출되다시피 일에 매이게 되고 헤어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빠져들고 만다. 

             

 흔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오늘 날 자본주의화된 사회에서 이말에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확실히 그 사람의 가진 직업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훌륭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며, 천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혼까지 천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도 자신을 고용한  이쿠에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다이고를 이 일에 무릎꿇게 만든 건 다시 이쿠에이에게 붙들려 찾아간 어느 아내를 잃은 남자의 집을 찾았을 때다. 이쿠에이가 너무도 엄숙하게 한치의 흩트러짐 없이 염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매료당한다. 그리고  이쿠에이의 염습하는 모습을 보고 다이고가 하는 고백이 제법 의미심장하다.                        

                             "차갑게 식은 사람을 치장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는 행위
                         그것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고, 
                         동시에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고인을 배웅한다.
                         고요와 평온함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손놀림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도 이런 고백을 할 정도라면 이쿠에이의 염습은 달인의 경지였을 것이고, 그것은 남아 있는 자들에게 적지않은 위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간 집의 주인장은 아내를 수십 년 봐왔지만 오늘이 제일 예뻤다고 말했을 정도니 이쿠에이는 확실히 장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염하는 모습은 너무나 진지하고 완벽해 보이기까지해 보는 나도 빠져들 것만 같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20년 전 세상을 떠나간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마지막 만나러 갔을 때, 아버지는 베옷을 입고 계셨다. 지금은 망자에게도 화장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아버지는 화장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긴, 살아계셨을 때도 사시사철 스킨과 로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르시지 않으셨는데 망자가 되셨다고 새삼 화장을 좋아하셨을리 없다. 그때 슬픔에 한없이 울고 있던 중에도 과연 누가 아버지께 저런 옷을 입혀드렸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영화에서처럼 가족도 염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은 유적들에겐 공개되지 않았고, 괜히 애꿎은(?) 문상 온 사람들과 조화에서 위로를 받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염습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지도 못했다.    

사실 인간이 가장 성숙해지는 때는 꿈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겪어봤거나 죽음을 목도했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늘 남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직업적 속성상 두 사람의 삶은 겸허할 수밖에 없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일을 하면서 다이고는 여러 가지 인간의 죽음의 군상을 보게 된다. 물론 죽음 자체는 살아있는 자에겐 많은 슬픔과 회한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죽은 이유도 제 각각이어서 어떤 사람은 가스로 질식해 자실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병으로 죽기도 하고, 또 누구는 가족의 사랑과 축복속에 세상을 마감하기도 한다. 거기서 깨닫은 것은 죽음이  그렇게 마냥 고통스럽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슬프게 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삶과 죽음이라면 정말 참 좋겠다. 그렇게 남의 죽음을 목도하고 염습을 하다보면 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미워하다가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인간의 애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이고가 이 일을 하므로해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은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영화는 그게 정말 잘 표현 되어있다.  

그러나 역시 다이고는 아직 산 사람이다. 그렇게 죽음에 예를 갖추는 일을 하고  마음을 비우며 겸허한 태도로 살려고 해도 순간 순간  위기는 다가온다. 아내에게만은 한없이 멋진 남편이고 싶은 다이고.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일을 숨길수만은 없었던 그도 결국 기로에 선다. 아내냐, 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던 다이고는 아내가 집을 나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그런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가까운 친구마져 등을 돌린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떠났던 아내가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온다. 이젠 모든 것이 잘될 줄만 알았는데 더 큰 복병을 만난다. 그것은 아내가 임신을 한 것.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묵묵히 지켜봐주는 아내는 고맙지만,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따돌림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그는 당장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역시 직업은 사명이며 그 일을 할 수 밖에 운명지어졌다면 그건 또한 천명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렇게 다이고의 몇번의 위기와 몇번의 갈등이 또 너무나 당연한 귀결처럼 풀려서 다시 한번 그 일이 자신의 천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시나리오는 흠잡을 때없이 완벽해 보인다.  

   

 세상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세상엔 나를 잡아끄는 일. 또는 그 일을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결국 다시 붙들게 되는 일이 있다. 가끔은 그 일이 뭔지 나 또한 알고 싶다. 나는 아는데 안하는 것인지,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 헷갈릴 때가 너무 많다. 어떤 사람은, 하다보면 그게 내 일이지 운명 같은 일은 없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과 좋은 경력 쌓겠다고 이 줄에서고 저 줄에서고, 심지어는 세상에 평생 직업이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리하게도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느껴진다.  그래서 스펙이야 넓어질지 모르지만 그 일에 다이고나 이쿠에이처럼  자신의 전 생애와 영혼을 걸게는 안 될 것 같다. 돈을 쫓지말고 (남을 유익하게 만드는) 일을 쫓으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고 싶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천히 여기는 직업이라고 해서 그 직업이 정말 천한 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예를들면 환경미화원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의 환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대접 받는 일이 아니다.  또한  각광 받는 직업이라고 해도 소위 말하는 3D 분야는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자신의 전 생애와 인격과 영혼을 바친 일이기에 나중에 누군가는 알아주고, 누군가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직업엔 귀천이 없다.  

지금 자신의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고, 부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강추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간의 삶과 죽음에 통찰을 주는 영화는 흔치 않으며 일부러라도 창겨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 착한 영화다. 누구도 모나고 악한 사람이 없다. 더구나 다이고는 착하다 못해 약간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진지하다. 첼로 켜는 염습하는 사람.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선 나름 멋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이고의 스승격인 이쿠에이가 가장 볼만하다. 어쩌면 한결 같이 정중동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지 역시 빛바래지 않는 노장의 연기가 멋지다. 미장센도 뛰어나고. 특히 죽은 사람의 사체가 사실감이 느껴진다. 영화의 흐름은 마치 소설을 보는 것 같다. 보면서 소설 '애도하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이 애도하느라 그 고생하지 말고 염습하는 사람이 됐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2009년 몬트리올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는데 과연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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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1-01-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참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여러 생각도 들고요. 감동으로 눈물도 흘리고...

영화만큼이나 멋지고 잘 어울리는 리뷰글 잘 봤습니다. 추천~!^^

stella.K 2011-01-17 17:03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넘 좋죠? 정말 감동이었어요. 시나리오도 좋고.
추천 고마워요.^^

hnine 2011-01-1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이 별 다섯개 주는 일이 흔치 않은데, 이 영화가 영예의 별 다섯개를 받았군요.
20년 전이라니 아버님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셨네요. 전 그 무렵 함께 살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제 집에서 돌아가셨고 장례식장을 거치지 않고 제 집에서 마지막 모든 절차를 치뤘음에도 염습하는 과정은 보질 못했어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영화를 한번 보면서 저도 직접 느껴봐야겠어요.

stella.K 2011-01-18 10:2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를 좀 아시는군요. 그렇죠? 제가 왠만해서 다섯개 주는 일이
거의 없는데 말이죠. 시나리오가 더 이상 더하거나 뺄게 없어요.
예전에 시나리오 배울 때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고 말씀하셨던
샘 말씀이 기억이 나요. 더 정확히 말하면 수학 같은 과학이라고나 할까?ㅎ

그렇죠. 보내드릴 아무런 준비도 안 되었는데 그렇게 가시더라구요.
그때까지 한번도 남의 죽음을 목도해 본 적도 없고 그냥 삶을 배반한 것이
죽음이겠구나 했는데 너무 어렸어요. 그래서도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지 못했던 지난 세월이었구요.
이런 일 하는 사람이 참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싶더라구요.
꼭 한 번 보세요.^^

양철나무꾼 2011-01-18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얘기, 여기 저기서 들었었는데...이렇게 님의 리뷰로도 만나게 되네요.
언젠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될 즈음, 꼭 보고 싶어요.^^

stella.K 2011-01-18 11:14   좋아요 0 | URL
영화 보면서 담담히 받아 들이는 연습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ㅎ
그러고 보니 다 하지 못한 말도 있네요.
영화 보면서 참 뭉클했는데, 다 보고 나니 또 울엄마는 어떻게 보내드리나
울컥하더군요. 생각만 해도 그렇긴 하죠?ㅠㅠ
하지만 유머도 있고 너무 우울하게 볼 건 아니어요.
영화 <철도원> 같은 분위기도 나고, 좋아요.^^

진주 2011-01-1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는 안목이 꽝인 저는 스텔라님 말씀만 듣고도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어요^^

stella.K 2011-01-19 12:23   좋아요 0 | URL
오, 이거 정말 강추입니다.
진주님도 좋아하실거라고 확신합니다.^^
아니면...제가 차 한 잔 사 드리죠.ㅋ

진주 2011-01-19 13:35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근데 저는 영화보다 차가 더 끌리는데 어쩌죠? ㅎㅎ
영화 거의 안(못)봐요. 가장 최근에 영화관 간 것이..5년은 넘었을 듯...

기억의집 2011-01-1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디비디 장바구니로 넣었다가 혹시나 싶어 토토에 갔더니 있네요. 지금 다운받고 있는 중, 다운 받는데 꽤 걸릴 것 같아요. 저는 스텔라님 말 중에서 첫 문장 절대 공감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제가 한국영화나 소설을 안 읽은 게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거에요.
요즘 일본영화 한편 보고 싶었는데. 이거 봐야 겠어요.

끝문장 읽고 포복절도 했습니다.

stella.K 2011-01-19 11:52   좋아요 0 | URL
끝문장에요...? 아니 제가 뭘 어쨌다구.ㅎㅎ
지금쯤 다 보셨겠는데요. 어떠셨나요?^^
 
스토리 오브 와인 - Story Of Wi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이철하
주연 : 이기우, 박그리나

이런 영화가 있었나? 이 영화가 실제로 개봉관에서 개봉했었나?  2008년도 작이다. 그해라면 나는  되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공부하겠다고 한창 동부서주했던 때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전까지 없던 영화에 대한 관심을 바짝 끌어올리기에 좋은 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개봉한 것을 모를 리 없을텐데 왜 이제야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영환데 의외로 좋다. 또 그러니만큼 아깝게 묻힌 영화였구나 싶기도 했고. 하긴 아깝게 묻힌 영화가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 무렵이면 이미 유명한 <신의 물방울>은 물론이고, 와인을 소재로한 드라마도 만들어졌던 해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 개인적으론  시나리오를 가르쳤던 사부님이 동시에 와인 강사로도 활약하고 계셔서 없던 와인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오죽했으면(?) 나의 사부님은 당신의 이름을 딴 '와인예찬'이란 책을 선보였을라고. 그 책은 독특하게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써서 와인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전문가는 몰라도 나 같은 초짜들이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에 좋은 입문서이기도 하다.아, 그러고 보니 그해는 이래저래 와인의 해였구나.  

스토리텔링이란 말이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옴니버스식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그 많은 와인 중 딱 세 가지만 소개된다고도 볼 수가 있다. 

   

 이야기는 '스토리 오브 와인'이란 와인바가 오픈 1주년을 맞아 기념 파티를 열면서 시작한다.  주인은 민성(이기우 분)이다. 그 와인바에 민성을 이끌어줬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유명한 소믈리에가 초대되어 왔는데, 와인 리스트를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지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민성 나름에 사연이 있는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를테면, 와인바를 오픈하고 기억나는 손님을 중심으로한 그런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민성이 처음 와인바를 오픈하고 그의 샵에서 와인을 정기적으로 사 갔던 어느 외국인에 관한 얘기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나라 어느 야구단의 선수였던 것이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선수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외로울까? 그를 응원하기 위해 민성은 그만을 위한 특별한 와인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그때따라 자주 오던 그가 오지 않고 와인을 전달해 줄 방법이 묘연해진다. 물론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선물을 전달해 주고,  그가 차츰 유명해지자 어느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성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더불어 그 와인바가 소개되고 민성은 이를 보고 좋아한다. 여기서 퀴즈, 그렇다면 민성이 그 외국인 야구 선수에게 준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두번째, 민성이 그의 애인 화연과 와인바를 열 때의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와인바를 연다고 했을 때 다른 애인은 반대했지만, 그의 지금의 애인만은 적극 찬성을 해 함께 개업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의기투합이 잘 될 것만 같은 둘의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화연이 자꾸만  샵에 대해 참견하고 집착해 결국 관계가 악화되고 만다. 그래도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노력했고 처음엔 그렇게 노력한만큼 잘 되나 보다했지만, 화연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와인바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실은 와인바의 이름도 처음부터 '스토리 오브 와인'은 아니었다. 민성의 와인바에 이름이 정해지기까지 얼마나 실랑이를 버려야했는지 그 풀스토리도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단 내가 이 두번째 이야기에서 발견한 건, 사람이 온전히 상대만을 사랑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있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민성이 애인과 싸우고 화해할 때 같이 마시려고 했던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세번째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랑이야기다. 민성이 가게를 오픈하고 제 집 들나들듯이 드나들었던 후배 진주와 조용히 책만 보다가는 NGO에서 일하는 혁준. 이 둘을 맺어주려고 민성이 힘을 쓰는데 거기에 와인이 빠질리 없다. 그때 민성이 썼던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재미있는 건 거기에 썼던 와인의 뜻은 '중매쟁이'란다. 이 역시 영화를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사랑에 빠져 드는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선 당연 와인이다. 이렇게 서로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매개가 되어 사랑이 빠질 수 있다는 공식은  만고불변의 법칙처럼도 보인다. 둘이 와인을 두고 사랑하는 장면을 영화는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질투나리만큼.  참고로, 얼마 전 어느 님의 서재에 가봤더니 소설 <토마토 랩소디>에 대한 서평에서 와인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와인하면 프랑스나 칠레산을 생각하지만, 이태리 역시 빠질 수 없다. 거기서 나오는 '산지오베제'라는 와인이 있단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이건 19금이긴 한데 여느 와인을 먹고 키스를 하면 텁텁하단다. 그런데 이 와인을 먹고 키스를 하면 과일향이 은은히 퍼져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와인은 남자 보단 여자들이 더 찾는다고 한다.  뭐 꼭 달콤한 키스만을 위해서겠는가? 은은한 과일향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영화 속 진주와 혁준이 사랑에 빠져 달콤한 키스를 나눌 때 마셨던 와인은 과연 '산지오베제'였을까? 사실 이들의 사랑은 너무나 달콤해 보여 굳이 '산지오베제'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참고하실 분은 참고 하시라. 단 19세 이상만 가능함을 나 또한 강조하는 바이다.ㅋ  

영화를 보니 역시 2008년도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거의 6개월의 과정을 마치고(원래는 5개월인데 휴강을 하는 바람에) 종강파티를 했다. 선생님이 와인 강사이기도 했으니 당연 선생님이 "와인은 내가 책임진다."하여 강의실에서 파티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에 약한 나는 와인에 관심 있을리 만무하다. 솔직히 뒤돌아서면 잊어먹기도 했으니 뭔들 내 머리속에 남아 있을라고?  그런데 그 종강 날 난 뭐 때문인지 취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종강이 아쉬워서, 그리고 그 바로 전 주에 워크샵 작품을 냈다가 완전 개망신당한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 더구나 우연히 좋아하게 된 같은 남자 수강생과도 이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여러가지로 복잡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그날은 술 좀 받는다 싶었는지 거의 벌컥벌컥 와인을 들이마신 것이다.  평소  술취한 상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기가 올라온다 싶으면 나는 얼른 술을 그만 둔다. 그런데 난 순간적으로 안 취할 자신이 있다고 자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취기가 팍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내 발이 땅에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붕 떠있는 느낌이랄까? 아, 이래서 술을 마시고 취하는가 보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갈증이 났다. 물을 한 없이 들이키는데 물 조차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내 몸에서 술과 물이 분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생각이 났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난다.

영화를 보면 한 가지 주제 의식이 흐르는데, 무엇보다 와인바 주인인 민성에게서 주인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주인은 먼저 와인을 팔려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와인을 팔기 전에 고객에게 마음을 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비단 와인에만 국한된 일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와인은 어느 만치 살기가 좋아졌을 때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지난 밀레니엄 전후로 와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것으로 아는데, 지난 세기는 먹고 사는데 여념이 없느라 그런 것들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와인바는 여느 술집과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나름 꽤 고급한 직종 중의 하나로 인식되기도 한다. 와인의 상도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세기는 그렇게 돈을 벌기위해 주인과 고객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면, 이젠 심장을 팔고 영혼을 파는 자세로 고객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돈을 쥔 쪽은 고객일테니. 모든 와인바 주인들이 민성이 같은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성과 같다면(!) 와인도 와인이지만 와인의 상도를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이기우를 좋아한다. 영화에서 화연과 다시 잘해 보려다 뜻대로 안 되자 디켄팅된 와인을 머리에 들어 붓는 장면이 나오는데 참 인상적이다.  나는 이 배우가 왜 다른 여타의 배우에 비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지 좀 아쉽다. 영화 <클래식>에 어리버이한 까까머리 고등학생 역을 맡을 때부터 이 배우를 나름 지켜봐 왔다. 아마도 본인이 지나친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것을 사려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간간히 영화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그 존재감을 잊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영화는 좀 풋풋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느 노련한 감독 같으면 트릭을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써도 나름의 세련미를 추구했겠지. 하지만 누가봐도 이렇게까지...? 하며 약간의 뜬금없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나리오 덕을 톡톡히 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사도 좋지만 시나리오 중간중간 와인에 대한 지식이 잘 녹아져 있다. 이 영화는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데, 와인이 젊은이들만 마시는 술이 아닌 만큼 나중에 어느 중견 감독이 같은 소재의 영화를 다르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정말 일본의 <카모메 식당>에 필적할만한 것으로 말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대로 볼만한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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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1-01-10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도 있었군요. 독특한듯 합니다. 글 잘 봤습니다.^^

가끔 알라딘에 들러서 브리핑에서 짤려서 위에 보이는 글들만보고, 보고난 다음에도 그 글만 보고 나오고 있습니다. 스텔라님의 서재처럼 이런 좋은 글들을 보면 지나간 못본 글들도 다 보고 싶어지고 그러다보면 정말 몇시간은 장난이더라구요. 참아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방문이 늦거나 뜸하고 합니다.ㅋ

주말 잘 쉬셨길 바라며 다음 주도 아자!!

stella.K 2011-01-10 12:00   좋아요 0 | URL
이 영화 꼭 보세요.
저의 허접한 서재를 좋아해 주신다니 저도 루체님이 좋아요.ㅋ
하지만 최근엔 추천도 저조하구, 댓글도 별로 없구.
그냥 근근히 쓰고 있네요. 긁적 긁적~
정말 시간 금방 가죠? 그래서 저도 절제하느라 애좀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루체님 글 올리시면 당장 가서 읽어볼텐데...
루체님도 또 한 주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1-01-10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찾아서라도 보고 싶어요.
카모메 식당에 필적할 만하단 말이죠?^^

술을 못 드시는군요?
그래도 육체이탈이 아니고, 술과 물이 분리 되는 거여서 다행이셨어요~^^

stella.K 2011-01-10 18:14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영화는 카모메 식당에 조금은 못 미치는데
보면서 그 영화를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조금 더 인생을 풀어내는 그런 스토리텔링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감독이나 작가가 아직 젊은 사람인 듯합니다.
하지만 정말 볼만해요. 묻혀있는 영화를 본거라 뿌듯했어요.

취기가 오를 땐 물을 많이 마셔줘야한다더군요.
그런데 아무리 물을 많이 마셔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 그 황당함이란...
취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더군요. 구름위의 산책이라고나 할까?ㅋㅋ

2011-01-10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1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1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0 2011-02-1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stella.K 2011-02-16 15:50   좋아요 0 | URL
개봉관에선 끝났구요, dvd나 다운 받으셔서 봐야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