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토리 오브 와인 - Story Of Wi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런 영화가 있었나? 이 영화가 실제로 개봉관에서 개봉했었나? 2008년도 작이다. 그해라면 나는 되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공부하겠다고 한창 동부서주했던 때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전까지 없던 영화에 대한 관심을 바짝 끌어올리기에 좋은 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개봉한 것을 모를 리 없을텐데 왜 이제야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영환데 의외로 좋다. 또 그러니만큼 아깝게 묻힌 영화였구나 싶기도 했고. 하긴 아깝게 묻힌 영화가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 무렵이면 이미 유명한 <신의 물방울>은 물론이고, 와인을 소재로한 드라마도 만들어졌던 해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 개인적으론 시나리오를 가르쳤던 사부님이 동시에 와인 강사로도 활약하고 계셔서 없던 와인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오죽했으면(?) 나의 사부님은 당신의 이름을 딴 '와인예찬'이란 책을 선보였을라고. 그 책은 독특하게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써서 와인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전문가는 몰라도 나 같은 초짜들이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에 좋은 입문서이기도 하다.아, 그러고 보니 그해는 이래저래 와인의 해였구나.
스토리텔링이란 말이나와서 말인데, 이 영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옴니버스식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그 많은 와인 중 딱 세 가지만 소개된다고도 볼 수가 있다.
이야기는 '스토리 오브 와인'이란 와인바가 오픈 1주년을 맞아 기념 파티를 열면서 시작한다. 주인은 민성(이기우 분)이다. 그 와인바에 민성을 이끌어줬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유명한 소믈리에가 초대되어 왔는데, 와인 리스트를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지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민성 나름에 사연이 있는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를테면, 와인바를 오픈하고 기억나는 손님을 중심으로한 그런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민성이 처음 와인바를 오픈하고 그의 샵에서 와인을 정기적으로 사 갔던 어느 외국인에 관한 얘기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나라 어느 야구단의 선수였던 것이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선수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외로울까? 그를 응원하기 위해 민성은 그만을 위한 특별한 와인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그때따라 자주 오던 그가 오지 않고 와인을 전달해 줄 방법이 묘연해진다. 물론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선물을 전달해 주고, 그가 차츰 유명해지자 어느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성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더불어 그 와인바가 소개되고 민성은 이를 보고 좋아한다. 여기서 퀴즈, 그렇다면 민성이 그 외국인 야구 선수에게 준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두번째, 민성이 그의 애인 화연과 와인바를 열 때의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와인바를 연다고 했을 때 다른 애인은 반대했지만, 그의 지금의 애인만은 적극 찬성을 해 함께 개업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의기투합이 잘 될 것만 같은 둘의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화연이 자꾸만 샵에 대해 참견하고 집착해 결국 관계가 악화되고 만다. 그래도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노력했고 처음엔 그렇게 노력한만큼 잘 되나 보다했지만, 화연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와인바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실은 와인바의 이름도 처음부터 '스토리 오브 와인'은 아니었다. 민성의 와인바에 이름이 정해지기까지 얼마나 실랑이를 버려야했는지 그 풀스토리도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단 내가 이 두번째 이야기에서 발견한 건, 사람이 온전히 상대만을 사랑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있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민성이 애인과 싸우고 화해할 때 같이 마시려고 했던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세번째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랑이야기다. 민성이 가게를 오픈하고 제 집 들나들듯이 드나들었던 후배 진주와 조용히 책만 보다가는 NGO에서 일하는 혁준. 이 둘을 맺어주려고 민성이 힘을 쓰는데 거기에 와인이 빠질리 없다. 그때 민성이 썼던 와인은 무엇이었을까? 재미있는 건 거기에 썼던 와인의 뜻은 '중매쟁이'란다. 이 역시 영화를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사랑에 빠져 드는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선 당연 와인이다. 이렇게 서로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매개가 되어 사랑이 빠질 수 있다는 공식은 만고불변의 법칙처럼도 보인다. 둘이 와인을 두고 사랑하는 장면을 영화는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질투나리만큼. 참고로, 얼마 전 어느 님의 서재에 가봤더니 소설 <토마토 랩소디>에 대한 서평에서 와인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와인하면 프랑스나 칠레산을 생각하지만, 이태리 역시 빠질 수 없다. 거기서 나오는 '산지오베제'라는 와인이 있단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이건 19금이긴 한데 여느 와인을 먹고 키스를 하면 텁텁하단다. 그런데 이 와인을 먹고 키스를 하면 과일향이 은은히 퍼져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와인은 남자 보단 여자들이 더 찾는다고 한다. 뭐 꼭 달콤한 키스만을 위해서겠는가? 은은한 과일향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영화 속 진주와 혁준이 사랑에 빠져 달콤한 키스를 나눌 때 마셨던 와인은 과연 '산지오베제'였을까? 사실 이들의 사랑은 너무나 달콤해 보여 굳이 '산지오베제'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참고하실 분은 참고 하시라. 단 19세 이상만 가능함을 나 또한 강조하는 바이다.ㅋ
영화를 보니 역시 2008년도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거의 6개월의 과정을 마치고(원래는 5개월인데 휴강을 하는 바람에) 종강파티를 했다. 선생님이 와인 강사이기도 했으니 당연 선생님이 "와인은 내가 책임진다."하여 강의실에서 파티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에 약한 나는 와인에 관심 있을리 만무하다. 솔직히 뒤돌아서면 잊어먹기도 했으니 뭔들 내 머리속에 남아 있을라고? 그런데 그 종강 날 난 뭐 때문인지 취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종강이 아쉬워서, 그리고 그 바로 전 주에 워크샵 작품을 냈다가 완전 개망신당한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 더구나 우연히 좋아하게 된 같은 남자 수강생과도 이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여러가지로 복잡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그날은 술 좀 받는다 싶었는지 거의 벌컥벌컥 와인을 들이마신 것이다. 평소 술취한 상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기가 올라온다 싶으면 나는 얼른 술을 그만 둔다. 그런데 난 순간적으로 안 취할 자신이 있다고 자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취기가 팍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내 발이 땅에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붕 떠있는 느낌이랄까? 아, 이래서 술을 마시고 취하는가 보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갈증이 났다. 물을 한 없이 들이키는데 물 조차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내 몸에서 술과 물이 분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생각이 났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난다.
영화를 보면 한 가지 주제 의식이 흐르는데, 무엇보다 와인바 주인인 민성에게서 주인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주인은 먼저 와인을 팔려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와인을 팔기 전에 고객에게 마음을 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비단 와인에만 국한된 일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와인은 어느 만치 살기가 좋아졌을 때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지난 밀레니엄 전후로 와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것으로 아는데, 지난 세기는 먹고 사는데 여념이 없느라 그런 것들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와인바는 여느 술집과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나름 꽤 고급한 직종 중의 하나로 인식되기도 한다. 와인의 상도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세기는 그렇게 돈을 벌기위해 주인과 고객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다면, 이젠 심장을 팔고 영혼을 파는 자세로 고객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돈을 쥔 쪽은 고객일테니. 모든 와인바 주인들이 민성이 같은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민성과 같다면(!) 와인도 와인이지만 와인의 상도를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이기우를 좋아한다. 영화에서 화연과 다시 잘해 보려다 뜻대로 안 되자 디켄팅된 와인을 머리에 들어 붓는 장면이 나오는데 참 인상적이다. 나는 이 배우가 왜 다른 여타의 배우에 비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지 좀 아쉽다. 영화 <클래식>에 어리버이한 까까머리 고등학생 역을 맡을 때부터 이 배우를 나름 지켜봐 왔다. 아마도 본인이 지나친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것을 사려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간간히 영화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그 존재감을 잊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영화는 좀 풋풋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느 노련한 감독 같으면 트릭을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써도 나름의 세련미를 추구했겠지. 하지만 누가봐도 이렇게까지...? 하며 약간의 뜬금없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나리오 덕을 톡톡히 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사도 좋지만 시나리오 중간중간 와인에 대한 지식이 잘 녹아져 있다. 이 영화는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데, 와인이 젊은이들만 마시는 술이 아닌 만큼 나중에 어느 중견 감독이 같은 소재의 영화를 다르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정말 일본의 <카모메 식당>에 필적할만한 것으로 말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대로 볼만한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