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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ㅣ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정민호 씨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그것도 왕초보 여행자를 위한 여행기. 부제에도 달려있지 않은가?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고행 800km'라고. 그런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아 들고나서, 문득 내가 과연 이런 여행기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가 묻게 되었다. 대답은 "아니"다. 왜냐구? 평소 여행을 거의 안하는 내가 그런 여행기를 읽으면 이건 확실히 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가끔 TV를 통해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꾸 답답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저 카메라 바깥에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할텐데 나는 이렇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보여 주는 것만 볼 수 있구나, 회의가 드는 것이다. 내가 저길 가 보지 않고 이렇게 앉아서 저 세상이 넓으면 얼마나 넓은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보질 않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소설은 일본스러워서 싫고, 추리소설은 살인이 나오고, 인간의 이상심리가 묘사가 되서 싫다. 이렇게 이 책은 이래서 싫고, 저책은 저래서 싫으면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긴 하 것인가?
정민호 씨가 알라딘에서 한창 <정군>으로 서평활동을 하고 있었던 작년 가을무렵, 갑자기 스페인 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훌쩍 떠나고 말았다. 아, 이런, 여행이라니... 그리고 금세 내 속의 나와 마주친 것이 있으니 그것의 이름은 질투! 였다. 쳇~! 누가 질투의 화신이 아니랄까봐... 그래. 돈 좀 있나 보지? 영어나 스페인 좀 되나 보지? 누구는 떠나는데 너는 뭐니? 그래도 내가 누군가? 떠나는 사람에게 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예의 아냐? "잘 갔다와요! 정군님!" 모르긴 해도 우아하게 이런 인사 남겼을 거다. 그리고 10월.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이상 기온 속에 나는 그의 여행기록을 야금야금 읽었다. 그런데 읽다 포기했다. 그건 앞에서 밝힌 여행기에 대한 편견 때문마는 아니었다. 눈이 아파 읽을 수가 없는 거다. 확실히 웹상에서 글을 읽는다든지 쓰는 건 눈에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생각하면 정군님한테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으로 나왔으니 좋긴 좋다. 정군님께 덜 미안하다고 해야할까? 확실히 전자책이 나오더라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아는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는 건 남다르다. 여행서에 관한 나의 안 좋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술술 잘 읽힌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웃음보가 터져 "까르르" 웃었던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이거 너무 웃는 거 아냐? 내가 정군님을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웃음이 나올까?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놀라운 건 읽으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머리 아플 때는 여행서를 읽으라고 했는데 그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유익했던 건, 정군님이 여행고수 였다면 나는 아마도 꽤나 부러워하고, 역시 고수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 하며 그냥 읽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외여행 초짜였고 읽으면서도 "어, 정말?" 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 였는데, 하나는 언어가 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다는 것. 이를테면 보디랭귀지 + 국적불명의 언어를 사용해도 궁하면 통한다고 상대가 알아 듣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린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지간에 떠나 보기도 전에 "언어"란 부분에서 막혀 망설이는 것일까? 또 하나,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하기엔 불리하다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 책에선 그것을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 정말?"이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정군님은 말한다. 산티아고에서의 여행은 안전하다고.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정군님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여행자' 또는 '여행객'으로 부르지 않고, "순례자"로 통칭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정군님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게 좋아서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순례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란 그저 좋은 경치나 보고, 맛있는 것이나 먹는 것이 여행이 아니다. 그런데 우린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이 여행을 간다면 "보신 여행" 간다고 하지 않는가? 몸에 좋은 거라면 나라 밖 여행도마다치 않는 근성이란.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콘도나 펜션이 그곳에 있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여행의 백미는 역시 배낭여행인 듯 싶다.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을 느끼고 나와 다른 인간들에서 하나됨을 느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재인식하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가 맞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후 얼마 안 있다 그의 취직소식을 들었다. 평소 원하던 직장을 들어간 것이다. 귀한 여행 후 원하던 일을 한다. 확실히 근사한 그림이다.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행복도 행운도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 어디에선가 정군님은 자신에 대해서 말하길, 그 여행 후 허둥대는 것이 없어졌고 무엇을 하든지 즐겁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여행은 바로 사람에게 이런 것을 선물하는가 보다.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어떻게 떠날까? 나는 언듯 드는 생각이, 사이판에 친구 하나 있는데 이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안 오겠냐고 묻는 친구다. "어, 갈게. 무슨 날 비행기 뜬다! 기다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여행이 아니구나 싶었다. 떠나면 있을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여행에서 돌아 온 그 안온함이 느끼고 싶었다. 아무리 여행을 안 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몇 번 안되는 여행을 했었다. 그때마다 난 무사히 도착해서 늘어지게 자는 잠을 얼마나 좋아했던지.그런데 이것도 순례자가 되기엔 결격사유가 있어 보인다. 정군님은 맨마지막 부분에서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란 말고 끝맺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글의 맺은 여행의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맺음이 좋다!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