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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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승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뭐 나름대로 멋있는 말 한마디 구사하려다 보니 툭 튀어 나온 게 이 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라면 역사는 얼마나 슬픈 것이 될 것인가? 그것은 솔직히 정치사나 리더십의 역사에서나 먹힐만한 얘기고,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까?

역사는 다양하다. 정치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사도 있고, 미시사나 일상사도 있다. 요즘엔 그나마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과시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와, 꼭 역사학도가 아니더라도 일반독자들에게도 흥미를 가질 법해 반갑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솔직히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더랬다. 주로 80년대 저 박제된 시절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역사는 암기과목이라고만 생각해 시험 때면 줄창 외우기에만 급급했지, 역사적 사건을 봐도 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TV 역사 드라마를 봐도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의 아류작들만 쏟아져 나오고 그것은 조선 정치사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뭔가 이데올로기적 틀속에 갖혀있어 여러 많은 극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질 않았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지긴 했다. 예전 같으면 조선시대만을 다뤘을 역사 드라마가 지금은 고려나 고구려 더 나아가 발해의 역사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 같으면, 소론과 노론, 동인과 서인 패로 나뉘어져서 싸움박질 하는 것만 보여주면 채널을 돌리곤 했는데 이젠 제법 긴박성을 가지고 보게 만든다. 그러니 한마디로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건 확실히 TV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TV라고 한계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 드라마는 주인공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지마는 않는다. 그 인물이 살았을 사화적 배경에 촛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영상물이다 보니 당대 현실적 복원보단 미적 감각에 더 많은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주인공이 입은 의상이나 소품 하나, 장소 하나는 화려하고 그럴 듯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저게 원래 저 모양이었을까? 나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을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저자는 조선시대 주막은 후기 때 상거래가 발달이 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론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아무 때나 아무 시대나 주막이 보여지는 것은 좀 무리한 시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신돈>에서 보여졌던 주막과 술집과 작부들은 상당히 고급한 형태로 설정되어 있는 듯 하다.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방에 차려져 나오는 온갖 산해진미들은 너무 화려하다. 조선시대는 그렇게 못 먹고 못 살아서 죽어 나가는 양민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구라도 기생이 되어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배풀리 먹고 거드름이나 피우지 뭐 때문에 저렇게 굶어 죽어 가겠는가? 그렇게도 그 시대는 정조가 그리도 중요하였더란 말이냐? 그리고 기방에 차려 나오는 떡벌어진 술상은 결코 다 먹는 법이 없다. 주연급 배우들이 그 앞에서 주저리 주저리 몇마디 대사을 읊어주고 그 술상을 뒤로하고 나온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먹을 것이 귀했다던 그 시절에? 이런 모든 것들이 당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보다 시대의 일상사가 궁금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궁금증을 채워주는 게 또한 요즘 역사학자들의 소임이라면 소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엔 과거를 되새기며 보다 나은 미래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통해 입신양명을 이루어 보고자 하는거나, 오늘 날 판검사되 보겠다고 고시촌에 사람이 넘쳐나는거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컨닝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그 옛날 조선시대 때 거벽이라고 하는 컨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역사는 아무리 돌고 도는 거라고는 하나, 과거와 현재의 닮은 꼴을 찾는 거라면 재미없는 것이 될 것이다. 단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그 시대의 풍습이고 생활 모습이다. "어머나, 그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그러면서 허벅지를 냅다 내려칠 수도 있고, 키득키득 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가끔 역사를 생각하면 현대를 사는 모습이 서글프기도 하고 섬짓할 때가 있다. 우리 역사는 5천 년이라고 하는데 현대화는 불과 100년 안팎에 다 이루어졌다. 아니 적어도 100년 전에 서울의 공기는 이렇게 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공해와 온갖 스트레스와 그것을 이겨 보려고 하는 갖가지 행태들로 넘쳐난다. 여유란 도무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역사를 반추해 내면서 오늘의 우리네 삶을 조명하는 것은 의미있어 보인다. 더구나 역사의 큰 소용돌이의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에서 의미찾기란 제법 쏠쏠하지 않은가? 언젠가 우리네 삶도 역사의 한 귀퉁이로 밀려날텐데 우리 후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조명해 줄까?

덧붙이자면, 역사적 사료의 인용과 제법 많은 도판의 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좀 건조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읽기엔 그다지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 봄에 읽었던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란 책은 제법 읽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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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2-1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선의 미시사에 관한 것인가요? 저도 영웅이 아닌 일반 평민들의 그 당시 삶이 궁금한데 이 책도 그런 종류인 것 같네요.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도 그런 기획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암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5000년, 아니 100년 역사에 비해서도 극히 최근에야 가능해졌다는 것을 평소에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06-12-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봐야겠죠? 한번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