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시대 - 출판인 한기호의 열정 인생
한기호 지음 / 교양인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그 남자 팔자 한번 되게 부럽네!

이 책 어디엔가 보면 저자 자신의 사주 이야기가 나온다. 글을 아주 많이 써야할 팔자고, 남 돈 벌어다 주는데는 운이 있는데, 자신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벌린다나 뭐라나. 그런데 솔직히 이거 내가 갖고 싶은 팔자다. 흔히 팔자 좋다는 말이, 돈 많이 벌어 편하게 떵떵거리며 살면 장땡인줄 알지만 그것만이 좋은 팔자겠는가? 내가 원하는 일을하고, 나 보다는 남을 성공시키는 운명이라면 평생 직장에서 짤릴 걱정 안해도 되고 어딜가든 환영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자기 사업 또는 자기 일을 갖지 못해 안달 난 사람도 있지만, 좋기로는 이런 한기호 같은 사람이다. 게다가 이 남자 처복도 있다. 자기 같은 월급쟁이가 어떻게 내집을 꿈이나 꾸겠냐, 다 아내가 알뜰살뜰 살림해 준 덕분에 내집도 갖게 됐다고 자랑이다. 거기까지면 또 말도 안한다. 토끼 같은 딸래미 둘이 영특하기가 이를 때 없다고 칭찬이다. 이 사람 팔불출 아냐?

애틋했던 80년 대.

저자가 58년 생이니 개띠일테고, 80년 초에 대학을 다녔을 것이다. 다 알겠지만 80년 대 가방끈 긴 사람들 시국사범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대열에 저자도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 나의 삶을 돌아 보건데, 나는 한번도 데모에 가담해 본적이 없다. 최루탄 가스 피하느라 코 막고 거리를 뛰어다닌 적은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난 왜 그리 인생을 소극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대학 때 잠시 알았던 친구 하나 역시도 한때 잠시운동에 가담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짜식이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운동 한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으셨을 거다. 그래도 80년 대, 그 시절은 암울했고, 치열했으며, 낭만이 있었고, 애틋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국에 대해 그런 것이 느껴지질 않으니, 내가 무뎌진 걸까? 아니면 시대가 그런 걸까? 아참, 그래도 하나 있다. 작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응원석에서 집채만한 태극기 올라갔을 때 말이다. 그때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이토록...! 하며 가슴이 벅찼다. 비록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나도 80년 대를 사랑한다. 저자만큼은 아닐지라도.   

베스트셀러는 한때 베스트셀러인가?

이 책의 저자 한기호는 출판에 마케팅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온 책이, <소설 동의보감>, <창비 시선집>,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등등. 그 시절, 우리가 신문 책광고란만 들쳐도 눈에 훤히 띄는 것 거의 대부분이 그에 의에 나온 책들이었다. 근데 저자가 입에 올렸던 책들 중에 나는 <소설 동의보감>외엔 뾰족하게 읽어낸 책이 없다. 에고, 어쩌자고 난 그렇게 책을 안 읽었을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그래도 <소설 동의보감> 은 진짜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한기호의 열정시대 때 그에 의해 나온 책들을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안 읽을 것 같다. 물론 못 읽을 것도 없는데 마음이 가질 않는다. 정말 베스트셀러는 한때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대한출판협회 같은데서 집계한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목록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그 책들 중 몇권이나 완독했지? 아님 몇권이나 완독할 것인가? 그런데 난 극히 몇권을 제외하고, 아직 그것들을 완독할 계획이 현재없다. 그렇다고 아쉬워 하진 않는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오늘 읽는 나의 책이 앞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끼게 될런지. 그러니 베스트셀러 읽어내지 못했다고 너무 자책하진 말자.

백세주 좀 사 줘요!

아주 오래 전, 김정환 시인이 하는 문학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임헌영 선생님과 심산 선생님께 창작을 배웠는데 그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땐 선생과 제자 자격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저자와 독자의 만남일수도 있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창작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늘 있어 왔으니까 상관없을지 모르나,  나는 일개 학생이요 독자의 입장에서 사석에서 듣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술 없이 그분들의 입에서 맹숭맹숭 그냥 나올리 없다. 그때 나도 그나마 없는 주량 억지로 늘려놓긴 했다만, 그래도 못 마시는 거 티 안 낼려고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아무한테나 개기듯, "백세주 좀 사 줘요!"하고 꼬리치고 다닌다. 왜냐구?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좀 마실 줄 아는 게 백세주거든.  솔직히 난 술 먹는 사람 안 좋아한다. 술 안 마시는 사람들은, 주당들이 취중에 하는 말 그거 믿어도 되는 말이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 때 많다.  하지만 이 책 보면 한기호는 자신을 상당한 주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문인들 중에 왜 그처럼 주당들이 많은지 새삼 알 것 같다. 그것이 사람 사귀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문학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꼭 술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나도 이제부터 주량 좀 키워야 하지 않을까? 호연지기를 배우는 마음으로 말이다. 

최영미의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가 원래 제목이 그것이 아니었다며?      

책은 저자에서 시작해서 독자로 마치는 물건이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내가 <소설 동의보감>을 읽었을 때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한기호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난 그냥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보고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회자가 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책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책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납득이 간다. 나도 그 허접한 글에 제목 뽑아 내느라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제목 다는데야 오죽 고민과 갈등이 많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최영미의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가 원래 제목이 그것이 아니었다며?

그렇다면 일주일이면 수백 권의 책이 나온다고 한다. 그중 내용은 좋은데 제목 하나 잘못 달아서 재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런 책 있으면 독자들이 살려내면 안 될까? 지금도 가끔 영화는 너무 좋은데 홍보가 안되서 간판 내린 영화들 관객들의 노력으로 다시 상영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얘기들으면 기분이 좋다. 비록 영화 관계자는 아니지만 사장되어 묻혀버릴 수도 있는 것이 햇빛을 본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우리나라엔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효가 없으면 사장되는 거야 당연한 거라고는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쓰나? 나도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책을 알고 있다. 그리고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책 한 두권쯤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거 출판 해줘요!" 1인 시위라도 하면 어느 출판사가 좀 해 주려나? 요즘엔 출판이 너무 쉬워져 오죽하면, 개나 소나 책 낸다고 할까? 막상 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쨌거나 그런 세상에서 절판된 책이 있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독자들의 노력으로 작은 불씨 하나 살려내는 뭐 이런 가상한 사례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에도 잠시 다뤘지만, 우리나라는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한다.  과연 그게 정말 그럴까? 외국에선 저자가 몇백 또는 몇천 부만 팔려도 대박 났다고 좋아라 한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십만 부 혹은 그 이상 팔려야 대박났다고 하지, 1만 부만 팔려도 성공했다고 보질 않는다. 그건 왜 그럴까? 내가 모르는 뭔가의 출판구조가 있는 걸까? 어디 출판만 그러겠는가? 영화도 보면, 몇만은 고사하고 몇십 만 관객 가지고는 아예 숫자에 넣지도 않는다. 세자리 수는  되야 매스컴에서 조금 띄워준다. 그러니까 이런 숫자 놀음에 거품이 많은 거 아닌가? 오늘 신문에도 "책값"에 대해 다룬 쪽지 기사를 보았다. 책 값이 그렇게 싼데 안 사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끼워팔기까지 한다지 않는가? 그래서 실제로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그것이 책 자체가 좋아서인지 끼워서 싸게 팔아서 그런 건지 나중에 따져 볼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저러한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 책 안 읽는다는 거 거짓말 아닌가 그런 의혹도 든다. 하지만 심리적인 것도 있는 것 같다. 하도 안 된다, 안된다 하니 정말 다 안 되는  그런 패배주의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좋은 것도 1위고, 나쁜 것도 1위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책을 뽑아내는 기술도 탑클래스일 것도 같은데 책이 안된다고 하는 건  뭐란 말인가?  

 정열의 사람 한기호.

예전에 신문에 이 사람이 쓴 일종의 책의 이면에 관한 글을 연재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책에 대해 신기해 한 적도 많았다. 기왕 책을 만드는 것 같으면 작가나 출판사 편집인 아니 차리리 사장님이 되실 일이지 웬 마케팅인가? 누가 알아 준다고. 솔직히 책이 잘 팔리면 일반독자의 입장에서 그책의 저자만 기억하지 시시콜콜하게 그 사이의 사람을 기억하는가? 그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좋고 신비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 사람 출판사 사장님만 안했지, 해 볼 건 다해 본 사람이다. 그런 그의 정열이 가히 부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거의 대부분은 자기 분야에서 아직 실력발휘를 재대로 안 한 거지, 못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리 옛 가요, "감격시대"만큼이나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그렇듯, 저자의 인간적인 내면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읽는 거지만, 저자와 교분을 가졌던 당대 지식인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읽을 수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저자는 막상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특히 죽은 친구 생각이 많이나서 울었다고 썼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더듬어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은 더 하겠지. 그래서 그런 사람은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짧고 굵게 살면 좋은 거지. 길고 굵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다. 그런데 나는 점점 가늘고 오래 살 궁리만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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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7-03-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이 책 읽고 무지 "필" 받으셨나 보다....그죠?^^
stella님 글에서도 "열정"이 느껴지네요.
오늘 아침 이상하게 쳐졌었는데 stella님 서재에서 에너지를 얻고 갑니당.^^

stella.K 2007-03-0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선님! 수선님 밖에 없어요! 넘 고마워요. 정말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댓글 남겨주는 분이 없어서 내심 기운이 빠졌었어요. 저는 수선님 땜에 에너지를 얻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