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청년 비이님과 100일 동안 글을 쓰자고 해 놓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동안 나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지만, 비이님은 한번 빠진 적이 있어 나는 덕분에 책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내가 고른 책이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선택했이었다. 막상 읽어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선물한 비이님께 좀 민망해 하는 중이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이렇다 말이없지만. 이왕 고른 책이 감명 깊었더라면 선물한 상대도 뿌듯하지 않았을까?
그 빠지던 날 왜 빠졌는지 나는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내 짐작엔 비이님은 글을 쓸 수도 있었는데 그냥 겸사겸사해서 빠지고, 나에게 책선물 하기로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난 벌칙으로 책을 선물 받게 됐다고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다. 비이님이야 어떤 사정에 의해서 빠지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마음이 차칸 것 같다. 큭! 받고도 미안해 했으니. 읽고는 더 미안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사람이 이신전심이라고 내 마음이 그런데 하루쯤 빠져서 벌칙으로 비이님한테 책선물한다고 좋아라 할 것 같지 않으니, 빠지지 말고 쓰자.
그런데 사실은 이 마음도 갖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약한 마음을 갖는데 밀미를 갖게 되니 말이다. 비이님과 좀 더 친해진 다음에 하면 좋을 걸 그랬단 생각이 든다. 왜 친구끼리 딱밤 먹이기 게임을 할 때도 친한 친구일수록 더 독하게 하는 법이 아닌가? 더구나 비이님이나 나나 너무 성실하다. 게임이 안 된다.ㅜ
하지만 솔직히, 매일 쓴다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요즘들어 절감한다(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나는 발을 뺄 목적으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니). 나만이 알아보는 비밀 일기를 쓴다면, 하루쯤 빠져도 상관없고, 괴발세발 맞춤법, 어미가 틀려도 상관없겠지만,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신경이 쓰이는 글쓰기다.
나는 지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이쯤되니 지친다. 100일? 까짓 것. 그랬는데 지금이 반환점쯤 되는 지점이니 지칠만도 하다. 왜 하지? 안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다. 못하겠다고 기권하고, 그 시간에 책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습작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은 이걸 썼다. 내일은 뭘 쓰지? 오늘의 페이퍼를 올리기 위해 나는 또 더 열심히 여기 저기 인터넷을 뒤지고 다닌다. 그런다고 뭘 얻으려는 것도, 무슨 영감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면서 써야할 글을 머리속에서 굴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고민할 것도 없이 쓰는 날도 있다. 이를테면 리뷰 같은 건 재 보지 말고 재깍재깍 써야한다. 그게 없으면 허접한 글이라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추천이 없거나, 댓글이 없는 날엔 망연자실이 되기도 한다. 그래. 난 역시 글을 못 써. 나 같은 애는 죽어야 해. 꼭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니지만, 이 비스무레한 자책감도 만만찮다(이건 정말 병이다. 직업병 같은 거. 블로그병).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물론 비이님이 그런 제안을 한 적도 있지만,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할 즈음엔 모 잡지에서 파올로 코엘로의 글쓰기에 관한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글을 쓸 때면 수시로 자기 블로그에 짤막한 글이라도 올리며 전세계 블로거들과 대화를 한다고 했다. 가끔은 인터넷에 글을 너무 부지런히 올려도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편견이겠지만. 그런데 그 할배도 그렇게 하는데, 까짓 것 나라고 못할까 싶어 한 것이다.
어떤 사람 보기엔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중간에 결론을 내린다는 건 말이 안된다. 결론은 늘 마지막에 내리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 100일을 채워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오늘은 정말 글쓰기 싫은 날이다. 솜이 물이 젖은 날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