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규씨의 '모든책은 헌책이다'
13년간 헌책방 순례 개성있는 40곳 소개
“버려진 책이 아니라 다시 읽힐 책이 모여”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은 헌책방 이야기를 잘 안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새책방과 달리 딱 한 권일 때가 잦아서 남에게 알려주면 애타게 찾던 책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모든 책은 헌 책이다’중에서)


▲ 지하철 청구역 근처‘헌책백화점’을 방문한 최종규씨. 그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곳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함께살기’제공

인터넷이며 영화 같은 영상 매체들이 젊은 영혼을 사로잡는 시절에 스물아홉 청년 최종규씨의 행로는 좀 색다르다. 고교시절 인천의 한 헌책방에서 절판된 독일어 문제집을 발견한 작은 사건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13년간 헌책방 순례를 해오고 있다.

“단순히 중고책을 싸게 사는 게 아니라 절판된 책을 보물처럼 찾아내는 맛”에 빠졌다는 그가 헌책방과 그곳에서 발견한 숨은 보물들 이야기를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출판사)라는 책 속에 담았다.


▲ 신촌의 정은서점 약도. 최씨는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 찾기를 기대하며 책 곳곳에 헌책방 안내 지도를 그려 넣었다.
스쳐가며 보면 다 같아 보여도 헌책방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연대 앞 정은서점은 느림을 배우는 헌책방입니다.” 바닥에 쌓은 책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볼 수 있고, 책더미 뒤에 가득한 책은 앞에 있는 책을 옮겨내야 볼 수 있다.

대형 서점 도서검색대에서 목표물을 찾아낸 뒤 곧장 책을 사서 빠져나오는 이들은 먼저 느긋하게 서점을 둘러보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용산의 뿌리서점은 ‘커피 한 잔’으로 유명하다. 주인 부부가 모든 손님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씩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대방동의 대방헌책방은 책방 임자도 팔기 싫어하는 희소성 있는 책들을 안쪽 깊숙한 책꽂이에 숨기듯 전시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1978년 삼조사에서 나온 ‘오상원 우화’를 발견했다”며 “이 책은 훗날 한 출판사에서 ‘임금님의 어금니’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는데 백인수 화백이 재미있는 삽화를 그려넣은 삼조사 판이 더 좋았다”고 평가했다. 홍제동의 대양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띈 1979년 7월 22일자 주간지에서 ‘가수 정태춘(26)군과 박은옥(23)양이 뜨거운 사이로 알려져 젊은 팬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쓴 기사를 발견하고 “옛날엔 이랬네” 하면서 빛다른 재미를 느낀다고도 했다.

헌책방에서 절판본을 찾아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대전의 육일서점에서는 1977년 까치에서 펴낸 ‘독점소수의 노예’를 만났고, 서울 서대문역 앞 어제의책 서점에서는 홉스봄의 저서 ‘의적의 사회사’를 발견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광장’처럼 수십년을 살아남은 책은, 그 초판본을 찾아내 발간 당시의 자취를 느껴보는 것도 헌책방 나들이의 즐거움이다. 헌책은 새로운 의미를 덧입기도 한다. 박몽구의 시모음집 ‘십자가의 꿈’(1986)에 적힌 ‘금서 해금일에 1987.10.20 이근후’라는 짧은 메모는 6월 항쟁 이후 금서해제라는 민주화조치를 반영한 기록이란 점에서 이 책을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권이 되게 한다.

그는 “책방 순례를 통해 서울에서만 150여곳의 헌책방을 찾아냈다”고 했다. 헌책방 문화운동을 펼치다 헌책방 모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지난해 결혼까지 했다. 2001년부터는 ‘최종규의 함께살기(hbooks.cyworld.com)’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헌책방 정보와 답사기, 헌책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싣고 있다. 입소문을 타며 모인 회원만 3200여명이라고 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찍은 사진을 모아 주기적으로 전시회도 연다.

그가 찾아낸 헌책방 가운데 40~50곳이 문을 닫았다. 혼자 애지중지하던 정보를 공개한 이유도 “몇몇 사람이 즐기던 헌책방마저 줄어들고 책을 읽는 사람이 줄다 보니 이러다 헌책방이 없어지고 말겠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 위기감은 책의 말미에 마치 부고를 알리듯 따로 기록한, 사라진 헌책방 이름들에 절절이 드러나 있다. 살아남은 곳이 버텨내길 바라며 전국의 헌책방 이름과 전화번호를 안내하고 복잡한 곳은 직접 지도를 그려가며 헌책방 사랑을 호소했다.

그는 책에서 “헌책방은 버려진 책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다시 읽힐 만한 책이 모이는 곳”이라며 “헌책방이 변두리 문화가 아닌 고급스러운 문화향수 마당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 집과 작년 8월 타계한 아동문학가 이오덕의 생가가 있는 충주를 오가며 고인의 유고집을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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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5-30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삘이 팍 꽂히더군요. ^^ 작년 <전작주의자의 꿈>에 이어 또하나의 헌책방 탐방기. 이번에는 좀더 본격적인 듯하군요. 전작주의자..에서는 뭔가 아쉬운 감이 남아 있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걸 낱낱이 공개한다니 기대됩니다. 전 비록 헌책방 가서 책은 잘 안 사지만 구경하는 건 굉장히 좋아해요. 책이 많은 장소는 다 좋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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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꽤 괜찮은 걸요? ^^

stella.K 2004-05-28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거 하나 있으면 딱 좋겠어요. 그죠?

*^^*에너 2004-05-2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자연과 함께 즐기는 컴터라...

진/우맘 2004-05-2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이쁘다.^^
 


몸안의 전체적인 에너지 균형 잡아줘
다이어트 여성에 좋고 장도 튼튼하게



‘비타민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 건강에 대한 다각적인 관심이 일면서 비타민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 여성들의 핸드백을 열어보면 비타민 한두 가지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을 정도다. 최근 비타민 영양제는 단순히 비타민만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용층에 맞춰 비타민 성분을 강화하고 있다. 체지방 감소, 면역기능 강화, 성장 촉진, 피부노화 방지 등 기능성을 추가한 제품들이 인기다.

‘아로나민’은 일동제약이 1970년 내놓은 국내 최초의 비타민 영양제. 일동제약은 혈액순환 개선을 필요로 하는 40·50대 여성들을 겨냥해 항산화작용을 하는 비타민E, 엽산 등을 추가한 ‘아로나민 이에프’를 출시했다. 젊은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아로나민 씨플러스’는 유해산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비타민C, 뼈를 튼튼하게 하는 철분, 셀레늄 등을 보강해 피부 미용과 빈혈 예방을 돕는다. 셀레늄은 노화, 피부질환 예방, 항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항산화 영양소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영양소.

CJ뉴트라의 ‘셀렌 비타민C 500’도 비타민과 셀레늄을 결합해 유해 산소 차단 효과와 면역력 증대 효과를 강화시킨 제품이다. 또한 장에 좋은 유산균도 함유돼 있다. 치아 건강을 고려해 설탕이 아닌 자일리톨로 단맛을, 레몬·딸기·포도의 천연 과일향으로 향기를 더했다. CJ홈쇼핑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알로에와 홍삼 성분이 함유된 남양알로에 ‘에너밸’은 몸속에 쌓인 필요 없는 열량, 즉 지방을 태워주는 ‘똑똑한’ 비타민이다. 에너밸에 함유된 홍삼 성분인 ‘UG-10’은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일등공신으로,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의 과잉 영양상태로부터 전체적인 에너지 균형을 잡아 준다. 또 독성 없는 알로에 성분인 ‘액티브알로에’는 에너밸에 들어 있는 각종 유효성분을 온몸 구석구석까지 운반, 신체가 유효성분을 빠르게 흡수하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이용률을 극대화한다. 불규칙한 식생활이나 다이어트로 영양 불균형 상태이거나, 높은 운동효과를 원할 때, 피로를 자주 느낄 때 섭취하면 좋다.

롯데제과㈜ 헬스원에서 개발한 ‘헬스키드’는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비타민 영양제. 성장판의 연골세포를 증식, 분화시켜 뼈의 성장을 촉진하는 천연성장인자(IGF-1)가 다량 함유돼 있다. 여기에 해조칼슘과 눈에 좋은 비타민A, 에너지 대사와 조혈작용을 하는 비타민B군 8종, 비타민C,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D, 비타민E가 함유돼 성장기 어린이의 균형 잡힌 영양공급을 돕는다.

태평양 비비프로그램의 ‘퓨어C 밸런스’는 비타민C에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인 콜라겐과 레드와인 추출물, 플라보노이드를 추가한 제품이다. 콜라겐은 신진대사를 활성화해 피부 미용에 좋고, 플라보노이드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 기미로 고민하는 여성이나 과일·채소 섭취가 부족한 사람에게 좋다.

(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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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5-29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요새 비타민 C 중독에 침몰하는 중이어요...
천 밀리그램 비타민 두 알을 먹으면, 두통약 먹는 것 보다 훨씬 효과가 있답니다.
원체 약을 싫어하는 제게 비타민 C는 약이 아닌, 생활 필수품 처럼 돌변하고 있지요...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비타민 C 두 알을 하루에 세 번 복용하면
감기를 물리칠 수 있다는군요...

언제나 좋은날 되시기를...^^

stella.K 2004-05-2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중요한 정보 감사합니다. 님도 좋은 나날 되시길...^^
 

프랑스 대혁명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꼽을 수 있다. 근대 민주주의 시대를 연 이 혁명의 원인을 놓고, 계몽 사상가들이 제시한 인민주권론의 영향이나 부르주아 계급의 발흥, 프랑스 평민들의 기아 사태 등을 제시하지만, 루이 16세 왕실의 사치와 방탕도 결정적으로 한 몫 했다.

앙투아네트는 그런 왕실의 추문을 한 몸에 뒤집어썼다.

다 알다시피,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딸로 태어난 앙투아네트 공주는 1770년 루이 16세와 혼인했고, 1774년 18세로 왕비가 되었다. 1776년 첫 아이를 낳은 뒤 그녀는 노름과 사치에 빠져들었다.

대중의 평판이 좋을 리 없는 가운데 1783년 루브르 궁에서 열린 살롱 전시회에 출품됐던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는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속의 그녀는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던 흰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채 손에 장미꽃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모슬린 드레스는 ‘속옷’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옷차림을 한 왕비의 초상화는 대중들에게 음탕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미 시중에는 왕비가 색녀이고, 루이 16세의 정력을 소진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남자들을 침실로 불러들인다는 내용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책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 뤼사르스키가 그린 36세의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혁명기에
그린 이 그림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둘러싼 희대의 사기극이 터지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앙투아네트의 입장에서는 억울했던 사기극은 이른바 ‘왕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으로 불린다.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인 라 모트 백작 부인은 평소 왕비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던 로앙 추기경에게 접근, 왕비가 거액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원래 루이 15세에게 팔려고 보석상이 만든 목걸이였지만,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린 소녀와의 성관계로 얻은 병 때문에 사망한 바람에 팔지 못했다.

루이 16세의 왕실은 미국 독립 전쟁을 지원하느라고 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사치를 좋아하는 왕비라도 구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라 모트 백작 부인이 거짓으로 꾸민 왕비의 편지에 속은 로앙 추기경은 보석값을 대신 지급했고, 그것을 라 모트 백작부인의 하수인에게 맡겼다. 추기경은 왕비가 목걸이를 받았을텐데도 아무런 내색을 비치지 않자 자신이 사기를 당했음을 알게 됐고, 그 소문이 왕실에도 들어갔다.

사기범들과 추기경이 재판에 회부됐지만, 대중은 오히려 사기극의 엉뚱한 피해자였던 왕비를 비난했고, 사기범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만큼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국내 학계에서 대표적인 프랑스 문화사 연구자인 주명철 교수(교원대)가 쓴 이 책은 당시의 고문서를 일일이 뒤져 혁명 이전 시대에 앙투아네트가 어떻게 ‘소문의 벽’에 갇혔는가를 재구성했다.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육담으로 꾸며진 문학 작품부터 재판 기록, 후대 역사학자들의 평전들을 두루 참조해 앙투아네트의 실제 사치상도 지적하지만, 그녀가 중상모략과 헛소문의 피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그 사실에 덧씌워진 신화와 허구를 벗겨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책이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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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그람시의 흔적 시·공간 넘어 뭉클
감옥에서 보낸 편지/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양희정 옮김/민음사/383쪽/1만원


 
사회주의 붕괴로 더욱 주목받는 사회주의자가 있다.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와 영원한 혁명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이다. 게바라에 관한 각종 전기들이 꾸준히 팔리고 2000년에야 국내에 번역된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가 대학생 필독서로 꼽히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웬만한 인문서의 경우 초판 1000부도 어렵다는 출판시장을 고려할 때 매년 2000여부씩 나가 1만부를 바라보고 있는 그람시의 ‘감옥편지’는 분명 ‘스테디’셀러다.

1926년 11월 8일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체포되어 담당검사로부터 “우리는 이 사람의 두뇌가 20년 동안 작동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유명한 논고를 받았다. 1928년 20년4개월5일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1년 만인 1937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그람시. 옥중에서 그는 6권으로 된 ‘옥중수고’와 함께 500편의 편지를 남겼다. 국내에서는 문화·역사·사회·철학 전반에 관한 독자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전개한 ‘옥중수고’의 일부가 번역됐고,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이론서라기보다는 개인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일종의 문학서다.

한때 ‘진지전’이니 ‘헤게모니’니 하며 혁명이론의 주요 개념으로 그람시가 논의되긴 했지만 오히려 오늘날 계속 나오고 있는 그에 관한 책들은 문화이론가로서 그람시의 탁월성을 다룬다. 혁명적인 문화변동을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기존의 보수적인 문화적 힘을 극복하는 것이 혁명투쟁에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동의하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독자들은 그의 사상에서 혁명적인 부분들을 빼내야 한다. 그러고 남는 게 별볼일 없다면 그를, 그의 책, 그의 사상과 함께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람시에게서는 혁명을 빼고 나도 그 어떤 문화이론가도 능가할 ‘역동의 문화론’이 고스란히 남는다.

여기에 인간 그람시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감옥편지’가 추가되면 금상첨화격이다. 굳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람시는 시대의 중심문제를 정면으로 고민했던 위대한 지식인이나, 감옥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번뇌하고 극복을 고민하는 의지의 철학자로 재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잘 보내지 않고 어쩌다가 짤막한 엽서만 보내는 작은아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왜 아빠에게 편지를 더 쓰지 않니?” “제발 긴 편지를 보내다오”라고 쓰고 있는 그람시에게는 연민마저 든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정치범들을 가진 나라에 살아서인지 8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쓰인 ‘감옥편지’의 시공간적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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