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람시의 흔적 시·공간 넘어 뭉클
감옥에서 보낸 편지/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양희정 옮김/민음사/383쪽/1만원


 
사회주의 붕괴로 더욱 주목받는 사회주의자가 있다.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와 영원한 혁명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이다. 게바라에 관한 각종 전기들이 꾸준히 팔리고 2000년에야 국내에 번역된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가 대학생 필독서로 꼽히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웬만한 인문서의 경우 초판 1000부도 어렵다는 출판시장을 고려할 때 매년 2000여부씩 나가 1만부를 바라보고 있는 그람시의 ‘감옥편지’는 분명 ‘스테디’셀러다.

1926년 11월 8일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체포되어 담당검사로부터 “우리는 이 사람의 두뇌가 20년 동안 작동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유명한 논고를 받았다. 1928년 20년4개월5일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1년 만인 1937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그람시. 옥중에서 그는 6권으로 된 ‘옥중수고’와 함께 500편의 편지를 남겼다. 국내에서는 문화·역사·사회·철학 전반에 관한 독자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전개한 ‘옥중수고’의 일부가 번역됐고,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이론서라기보다는 개인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일종의 문학서다.

한때 ‘진지전’이니 ‘헤게모니’니 하며 혁명이론의 주요 개념으로 그람시가 논의되긴 했지만 오히려 오늘날 계속 나오고 있는 그에 관한 책들은 문화이론가로서 그람시의 탁월성을 다룬다. 혁명적인 문화변동을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기존의 보수적인 문화적 힘을 극복하는 것이 혁명투쟁에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동의하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독자들은 그의 사상에서 혁명적인 부분들을 빼내야 한다. 그러고 남는 게 별볼일 없다면 그를, 그의 책, 그의 사상과 함께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람시에게서는 혁명을 빼고 나도 그 어떤 문화이론가도 능가할 ‘역동의 문화론’이 고스란히 남는다.

여기에 인간 그람시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감옥편지’가 추가되면 금상첨화격이다. 굳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람시는 시대의 중심문제를 정면으로 고민했던 위대한 지식인이나, 감옥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번뇌하고 극복을 고민하는 의지의 철학자로 재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잘 보내지 않고 어쩌다가 짤막한 엽서만 보내는 작은아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왜 아빠에게 편지를 더 쓰지 않니?” “제발 긴 편지를 보내다오”라고 쓰고 있는 그람시에게는 연민마저 든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정치범들을 가진 나라에 살아서인지 8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쓰인 ‘감옥편지’의 시공간적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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