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많이 걷는 사람 아니던가?

나, 경이에 젖어 걸음 멈추고
푸른 여명 속
지붕들과 나무 꼭대기들 위
완벽한 샛별 바라보지 않았던가?

나무들 위를 지나는 건 그저 바람,
누구에게나 주어진 흔한 것일 뿐인데
바람이 아니라 물살인 듯 흔들리는 나무들,
나, 그 나무들의 떨림 보고 있지 않은가? - P33

소박한 집 위에도 궁전 위에도 같은 어둠이 있어.
악한 사람 위에도 
정의로운 사람 위에도 같은 별들이 있어.
회복될 아이 위에도 회복되지 못할 아이 위에도,
같은 에너지가 흘러,
비극에서 비극으로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으로 - P35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ㅡ
가느다란 목구멍으로 피리소리 내는 이 금빛 새를 설령 내가 진화, 파충류, 캄브리아기 바다, 몸의 변화 욕구, 몸의 경이로운 기술들과 노력들, 무수한 생물들, 승자들과 패자들이라는맥락에서 생각한다 하여도 그 본연의 의미, 그 무한한 사랑스러움은 조금도 놓치지 않으리란 것. 내가 가진 재주는ㅡ 세밀한 지식과 완전히 봉인된 불가해한신비를 동시에 고려할 줄 아는 것이니까. - P63

다시 말해, 언어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만일 언어가 필수적이었다면 단순함을 유지했을 것이며, 늘 존재하는 사랑스러움과 최고조에 달하는 모호함으로 우리를 동요시키지 않았을것이다. 그 길고 흰 뼈 위에서 노래로 변신할 꿈을꾸지 않았을 것이다. - P65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부러진 나뭇가지 에디 휘트먼,
전기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크리스토퍼 스마트자살한 나의 삼촌,
강으로 가는 버지니아 울프,
구슬픈 노래 짓는 후고 볼프,
더블린의 짙은 어둠 조너선 스위프트,
다리 위로 올라가, 라인강에 뛰어드는 로베르트 슈만,
존 러스킨, 윌리엄 쿠퍼,
볼티모어와 리치먼드의 음울한 정신병원을 배회하는에드거 앨런 포—

세상의 빛, 나를 품어주오. - P83

넌 젊어. 그래서 모르는 게 없지. 넌 배로 뛰어들어노를 젓기 시작하지. 하지만 내 말을 들어봐.
팡파르도, 곤혹스러움도, 그 어떤 의심도 없이너의 영혼에 직접 말할 테니, 내 말을 들어봐.
물에서 노를 거두어 너의 두 팔을, 마음을, 너의미약한 지성을 쉬게 하고, 내 말을 들어봐. 사랑없는 삶도 있어. 그런 삶은 찌그러진 동전, 닳아빠진 신발만큼의 가치도 없지. 아흐레나 땅에 묻지 않은 개 사체만큼의 가치도 없지. 1마일쯤 떨어진,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날카로운 바위를 둘러싸고 안달하며 소용돌이치고요동치기 시작하는 소리 들리면—그 분명한 포효가 들리면 입술에 물안개가 느껴지고 높은절벽을 수증기 내뿜으며 떨어지는 긴 폭포를 예감할 수 있다면 그럼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노를 저어, 저어. - P155

나의 살과 뼈로 지어진 오두막에 사는 마음 한조각 노래하기 시작했지, 만일 태양이 노래할 수있었다면 그렇게 노래했겠지, 빛이 입과 혀를 가졌다면, 하늘이 목구멍을 가졌다면, 신이 그저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어깨와 등뼈라면, 모든 곳에서 모여든, 심지어 불타오르는 머나먼 행성들에서도, 나는 어디 있는가? 지금 거친 말들이 엉겅퀴처럼 빠르게 내게로 와 누가 너의 폭군의몸, 갈망, 탐구, 즐거움을 만들었을까? 오, 호랑이여, 오, 힘든 일이여, 오, 불타는 나무여! 나에게서 떨어져 가까이 와. - P157

친구를 만나러 피사에 갔지. 친구를 만나 화창한 오후를 함께 보냈지. 나는 이 시인을 사랑하고, 그건 여기서든 저기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내 마음속 정원과도 같지. 그러니 내 사랑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
그래서 난 그 7월 오후 피사에서의 그를 생각해. 그의 친구 헌트가 영국 친구들에 대해 뼈 있는 농담을 하자 그는 웃기 시작했지. 도저히 웃음을 주체할수 없었지. 호리호리한 몸이 흔들리고 긴 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해 건물에 기대야만 했지. 그래서 그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석조 건물에 기대어 있었지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돌벽을 붙잡고 요란하게 포복절도하며 자신의 몸을움켜쥐었지. 그 농담, 다정함, 지성, 작디작은 금빛꽃처럼 햇살 그 자체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부신 행복에 온몸이 산산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지. 헌트의 경쾌한 목소리, 피사에서 친구와 함께 보내는 단순한 오후. - P167

걸쇠에 손대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주목하며 한 걸음 한 걸음내딛지 않고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외벽의 돌에 감탄하거나 반하지 않고 안쪽 방을 볼 사람이어디 있을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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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2-24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라색 바탕 위에 흰 글자. 예쁩니다...
뽑아 주신 문장들, 좋네요.

청아 2023-02-24 14:50   좋아요 1 | URL
흰 바탕에 구성이 뭔가 딱딱해 보여서
분위기를 바꿔봤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고립된 섬에 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 살아감(living -with)'이다. 성찰하는 것이란 나의 삶만이 아니라 타자들, 그리고 우리가 몸담은 사회와 세계에 대하여 성찰해야 함을 의미한다. ㅡ질문빈곤사회, 강남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다 말았었는데 <질문 빈곤 사회>의 프롤로그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여러 사상가들에게 아직까지도 학문의 초석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철학.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누구보다 질문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질문'의 관점에서 보니 이건 상징적 사건인 듯 보인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그로인해 질문한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또 위험하다는 상징 말이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소크라테스도 그로 인해 죽음을 당했는데 일반인들에게 질문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지만 질문은 사유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사유는 그런 의미에서 무지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뼈대가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악(evil)'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 (...) 소위 '선량한 사람'이 비판적 사유를 하지 않을 때, 왜곡된 정치적 이데올로기 또는 왜곡된 종교적 가치에 의해 '선동'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인류에 대한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늘 상기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다. ㅡ 질문빈곤사회



'질문하기'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인식 세계를 넓힘은 물론 타자와 세계를 보는 시각 또한 확장했다. 그 결과 다양한 의미의 '포용의 원(circle of inclusion)'을 확대 할 수 있었고 이는 질문하기를 통한 중요한 정신 세계의 발전이다. 이러한 발전은 사회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발전과 맞닿아 있다. (...) 노예제도의 폐지, 인종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폐지, 여성에 대한 제도적 성차별의 인식과 개선, 성소수자 차별을 넘어서는 제도적 평등의 모색 등 다차원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새로운 질문을 묻기 시작하는 이들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ㅡp.8



한국은 가정교육은 물론 공교육에서도 질문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다. 주입식 교육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입시제도는 질문을 봉쇄하는 문화를 지속시키고 강화한다. 더 나아가서 가족, 친척, 직장, 군대 등 도처에서 작동되는 '장유유서'의 변형된 관계관과 가치관은 가정, 학교, 직장은 물론 사람 간의 위계주의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p.9





독서라는게 만능은 아니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질문은 특정한 사람들, 뭔가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거라는 의식이 내 안에 있었고, 동시에 위압감 같은 것이 보이지 않지만 공기중에 떠 있다고 느꼈다. 지금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제기를 하는 것, 어떤 것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글로 써 내는 것은 아직도 용기가 필요하다. 숨겨두었던 것을 사람들 앞에 전시하는 셈이니까. 비판받을 것을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하고 이해받지 못함이나 오독도 감안해야 한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같다. 어떤 식으로든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많은 면에서 여성들은 그런 두려움이 더 강한것 같다. 감추는 것에 더 익숙하고 능숙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해야 하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은 때로 외부의 힘에 굴복을 의미하니까.





질문의 가능성은 위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프고 경직된 사회일수록 그렇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기준 밖의 질문에 예민하다. 그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그 경계에서 벗어난, 즉 권위가 없는 이들의 질문은 '도전'이고 그 자체로 '문제'시 된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지하는 세계는 '전부'가 아니니까. 인간은 볼 수 있는 것들만을 겨우 보고 인지한다고 하지 않나. 품고 있는 질문들이 밖으로 나와 모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어디에서, 어디에서 당신의 영혼은 무너지나요? p .265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글쓰기에 관해 내가 들은 견해 중 가장 무용했던 말은 글을 쓸 때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의 목소리가 작동할 준비가 된 자동 피아노처럼 우리 내면에 숨어 있다는 듯이. 개성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의 존재야말로 세계와 나의 상호작용에 달린 것인데. p.23 . 세라 망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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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3-02-18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저에게도 의미 있는 글인데요. 살면서 3번 정도 독서 모임에서 토론 책으로 집중해서 읽었음에도 머릿속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이건 마찬가지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그러한데요. 역시 독서인들은 삶에서 책 내용을 그대로 자주 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이네요.... ㅜㅜ.

청아 2023-02-18 21:06   좋아요 2 | URL
저도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재독할때 새로운 책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ㅎㅎㅎ
베터님 3번이나 읽어보셨다니 조만간 나머지 부분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사랑의 기술>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읽고 에리히 프롬에게 반해서 사두었습니다. 미드나 영화에서 기억력이 뛰어나 한 번 읽은 책 페이지까지 기억하는 천재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3-02-19 0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칼날같은 문장이 많더라고요~~
한국의 현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좋았어요^^

청아 2023-02-19 09:36   좋아요 3 | URL
오~♡ 페넬로페님도 읽고 계시군요! 네~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어 시원시원 합니다^^*

은오 2023-02-19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매주 질문 5개씩 만들어오는게 과제였던 교수님 수업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게 정말 괴로웠어요..... 진짜 다른 어떤 과제보다도 더 공부하게 만드는 과제 ㅠㅠ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질문도 생기게 마련이니.... 대충 읽으면 또 그냥 책 내용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질문 있는 학생? 했을때 아무도 대답이 없는건 빨리 수업을 마치고 싶어서도 있지만 공부를 안해서 궁금한 것도 안생겼기 때문입니다 교수님.... 결론: 읽고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질문도 생긴다! 생각하며 읽기 -> 질문 -> 깊은 사유!

청아 2023-02-19 15:46   좋아요 2 | URL
헉...5개씩이라면 적지 않은데요! 과제라면 질적으로도 적절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고통이었을것 같아요. 그래도 덕분에 지금의 은오님이 되신 것 아닐까요? 그 과제가 물론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은오님 나름의 방식으로 읽고 또 생각해서 써 올리신 글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때가 많았거든요. 저에겐 어려운 점인데 내 관점을 가지며 읽고 쓰기로 발전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3-02-1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질문도


뭔가 알아야 할 수 있더라구요 ㅋ 전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단 잘모르면 가만히 있습니다 ㅎㅎ

아는게 힘인거 같습니다~!!

청아 2023-02-19 18: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그렇죠!!
새파랑님 은근히 핵심을 찌르십니다.^^*



난티나무 2023-02-19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 책 저 어제 샀어요!!^^

청아 2023-02-19 18:22   좋아요 0 | URL
난해한 편인데 해체적 글쓰기라고 할까요? 리스펙토르만의 색깔을 경험하실 수 있으실거예요.^^*
난티나무님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난티나무 2023-02-19 18:33   좋아요 1 | URL
<달걀과 닭> 읽고 있거든요.^^ 두어 개 읽고 바로 주문! ㅋㅋㅋ 그런데 종이책이라 언제 받을지는 몰라요.🙄

청아 2023-02-19 18:56   좋아요 0 | URL
두어 개 읽고 바로 주문하셨다니 난티나무님 너무 멋집니다~♡ 이 난해함을 이해하셨다는 의미니까요!!
<달걀과 닭>이 급 궁금해지는걸요?^^* 저에게는 <G.H.에 따른 수난>이 있는데요. 부분적으로 읽어봤는데
이 책에도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어요!

jtkk9004 2023-02-2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BG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 대산세계문학총서 180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김진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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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독일어 책을 항상 내게서 멀리 잡고 있었다. "너는 책이 필요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어차피 봐도 넌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이유를 대도 나는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양 내게 책을 숨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게 독일어 문장을 하나 읽어주고 그 문장을 반복하게 했다. 내 발음이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듣기에 괜찮다 싶을 때까지 나는 그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내 발음 때문에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절대로 참을 수 없는 게 어머니의 조롱이었기에 나는 노력했고, 그래서 곧 제대로 발음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먼저 내게 그 문장이 영어로 무슨 뜻인지 말해줬다 그러나 뜻 설명은 절대로 다시 해주지 않았다. 문장의 의미를 나는 단번에 기억해야 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매우 빨리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p.137




<군중과 권력>으로 잘 알려진 카네티의 자서전 시리즈 중 1권이다. 두 살 때부터 16세 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서전이라기 보다 성장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위태롭다. 15살 정도의 어린 보모의 품에 안겨 있던 두 살배기 카네티는 아마 보모의 애인이었을 듯한 남자로 부터 혀를 자르겠다는 위협을 받는다. 어린 마음에 꽤나 두려웠을 그는 이후에도 10년간 이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의 혀는 시작부터 그렇게 위협 받았지만 가슴은 언어에 사로잡힌다. 불가리아에 사는 스페인계 유대인 사업가의 장남이라는 조건 때문에 스페인어는 물론 불가리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었던 것.  




영국에서의 삶을 원했던 카네티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가업을 잇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나겠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저주를 내린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대인 사회에서 아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경우는 아주 아주 드문 사례. 그 저주 때문인지 영국 생활 1년만에 어린 카네티의 아버지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유산으로 남긴채로. 본래 연극배우를 꿈꾸던 아버지는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와 빈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은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도 둘만의 언어인 독일어로 사랑을 속삭이며 그들만의 추억을 공유했다. 아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제는 크나큰 상실이었지만 독일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의 언어인 독일어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카네티에게 한 달간 혹독하게 독일어를 교육을 시킨다. 빈에 있는 학교에 들여보내기 전 자기가 직접 언어를 가르친거다. 아들에게 쉬운 학습 도구인 책 조차 넘겨주지 않고 말이다. 그녀는 '언어는 구술로 익혀야 하며 그 언어에 대해 뭔가를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책이 무해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p.139 그렇게 어린 카네티에게 고된 한 달이 지난 후 문제집이 주어진다. 이제 그는 마음껏 독일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그는 평생을 독일어로만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범생이의 학창시절을 낯설고도 부러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다양한 언어에 친숙했던 가정환경, 독일어로 사랑을 나누었던 부모님. 이런 자극이라면 외국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친밀감과 동경 비슷한 마음을 갖을 수 있었겠지? 누군가에게 뭔가를 하고 싶게 하려면 그걸 즐기는 모습을 보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이 그 드라마틱한 모범 사례였다. 20세기 전쟁과 인종주의로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언어와 문학에 심취했던 한 소년의 삶을 지루할 틈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머지 시리즈도 출간되는대로 읽어보고 싶다.




이 시절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하고 흥분되며 특별했던 것은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던 저녁 시간과 매번 읽은 내용을 가지고 나눈 대화였다.(...) 내가 결코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이 시절부터, 그러니까 열 살 때부터 내 신조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끌리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는 데에는 이 시절 접한 인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내게 소금과 빵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본질적인 것, 즉 내 은밀한 정신적 삶이었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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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2-16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카네티 책이 새로 번역되었군요 제가 전에 읽던 어떤 책에 카네티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기회 되면 페이퍼로 올리겠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청아 2023-02-16 15:17   좋아요 4 | URL
<군중과 권력>읽어보고 싶은데 두꺼워서 걱정입니다.ㅎㅎ어떤 일화일지 궁금해요^^*

2023-02-16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6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3-02-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제 모습과 태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네요… ^^;;;;;

청아 2023-02-16 19:33   좋아요 1 | URL
난티나무님 함께 책 읽어주는 엄마~^^♡

바람돌이 2023-02-16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말이죠. 뭔가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을 만들어내려면 부모가 좀 이상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막 들어요. 왜 훌륭한 작가 중에는 평범한 가정에서 그냥 평범하게 사랑받고 자란 그런 인물이 이토록 드문 것일까요? 결핍이 부족해서인가? ^^;;

청아 2023-02-16 23:02   좋아요 2 | URL
오! 그러네요. 아니면 평범한 경우의 사례는 너무 평범해서 많이 읽을 것 같지 않아 책으로 출간되지 않는 것 아닐까요? 또는 작가들 말처럼 결핍과 고통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말이죠. 이것도 토론할만한, 생각해볼만한 주제네요^^*

새파랑 2023-02-17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카네티


첨들어봅니다 ㅋ 카네티의 인생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네요 ^^

어린애한테 협박하는 나쁜놈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군요 ㅋ

청아 2023-02-17 14:22   좋아요 3 | URL
저도 이번에 첨 알았어요ㅋ
재밌는 일들이 많이 담겨 있었어요 이후 이야기도 꼭 번역되었음 좋겠어요

유모 누나가 건달을 사귀었던것 같아요ㅋㅋ

잠자냥 2023-02-17 14:35   좋아요 1 | URL
유모 누나 건달의 꼬임에 넘어가서 카네티 혀 짤릴 뻔........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3-02-17 14:44   좋아요 2 | URL
아... 만일 그랬음 전혀 다른 클라스의 자서전이
탄생했겠죠?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2-17 15: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어도 버벅 거리는 저에게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정말 대단해 보여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환경도 부럽고요.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그 남자, 정말 무서운 말을 하는군요 ㅠㅠ

청아 2023-02-17 15:38   좋아요 3 | URL
능력치의 관점에서 너무나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문학과 언어에 심취하는 모습을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유대인이라 차별받는 장면들도 좀 있었는데 2~3권에는 그런 장면들이 아마 더 늘어날듯 해요. 자서전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싶었어요~^^♡

베터라이프 2023-02-1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중과 권력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일전에 중고서점에서 발견했던 이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안나더군요 ㅠㅠ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가브리엘 타르드를 떠올리면 꼭 읽어보고 싶긴한데 마음먹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 아침에 라면 하나 뚝딱하고 누워서 미미님 글에 댓글 남기는 중입니다. ^^ 모쪼록 즐건 주말 되소서~

청아 2023-02-18 11:03   좋아요 2 | URL
<군중과 권력> 베터라이프님도 찜해두셨군요! 언급하신 두 학자도 저는 궁금하네요^^
카네티 자서전을 다 읽은 후에 그의 학업적 자취를 더 찾아보니 <군중과 권력>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타인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는데
사회문제를 어떻게 분석했을지 기대가 큽니다. 저는 점심으로 너구리를 먹어야겠어요ㅎㅎㅎ유쾌한 주말 되시길요^^*

그레이스 2023-02-18 14: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군중과 권력은 제게 있습니다.
이 책도 장바구니로!

청아 2023-02-18 15:18   좋아요 3 | URL
오! 역시 그레이스님👍
이 책도 <군중과 권력>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엄청나게 과대 평가된 책'을 읽기 전에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책들은 스스로 구분하고 알아 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구분 하려면 어느 정도 그런 책도 이런 책도 읽어야하는 딜레마가ㅋ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동은의 적 박연진의 남편(하도영)이 비가 오는 날 운전기사와 함께 집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린 하도영에게 운전기사는 선물로 들어온 고가의 와인을 건낸다. 하도영은 100만원 정도 하는건데 맛이 괜찮을거라고 가져가 마시라고 한다. 운전기사는 자신은 와인맛도 모른다고 이런 비싼 와인 마셔 본 적도 없다며 극구 사양한다. 하도영은 ˝그럼 편의점에 가서 치즈랑 만원짜리 와인 한 병을 구입해요. 그리고 집에가서 그 와인과 이 와인을 마셔봐요. 차이가 느껴질겁니다.˝라고 말한다. 와인 맛 잘 모르는 나는 ‘와! 저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하고 감탄한다. 그런데 비교할 100만원 짜리 와인은 언제 구한담...


뭐든 그런 것 같다. 비교해 보면 차이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비교해 보려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많이 경험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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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2-15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재미도 없고 이해도 잘 안된다 하셔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미미님도 같은 느낌을 받으셨나봅니다. 아직 읽지 않은 저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생각하시고 마음 푸시기 바라요.

청아 2023-02-15 16:13   좋아요 2 | URL
오 아닙니다ㅋㅋㅋㅋ 이 책은 아주 재밌어서 아껴읽는 중인데요. 그림에 나온 것처럼 고전 중에서도 과대평가된 책들에 대해 잘 구분하고 싶다는 의미로 쓴거예요ㅋㅋ 말씀 듣고보니 제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이게 썼네요. 수정하고 싶은데 지금 밖이라 누명 쓴 책에 별점만 줬습니다 ^^*

DYDADDY 2023-02-15 16:27   좋아요 2 | URL
제가 잘못 이해해서 죄송해요. 읽어야 할 책 리스트의 인디케이터가 몇분 계신데 그중에 다락방님과 미미님이 있습니다. 두 분의 평가가 엇갈린다면 직접 맛을 보는 수 밖에 없겠군요. ㅎㅎㅎㅎ

청아 2023-02-15 18:02   좋아요 2 | URL
대디님이 알려주셔서 바로잡았는걸요! 그림만 보고 짧막하게 한 마디 쓰려다보니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헷갈리게 적어놓았어요ㅋㅋㅋㅋ 저 이런 오류 지적해 주시는 거 좋아합니다.
저도 대디님 오늘 올려주신 책 한 권 담았습니다.😆

레삭매냐 2023-02-15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반해서, 낭중에 중고책방에
나오게 되면 사서 쟁여 둘까
싶습니다.

두고두고 볼 만한 책입니다.

청아 2023-02-15 17:53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에 반했습니다!ㅋㅋㅋ
잊을만 할때(아마 읽자마자 그렇겠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짧막한데도 생각꺼리가
주렁주렁 달리네요^^*

2023-02-1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2-15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인은 정말 잘 모르겠다는 ㅋ 전 위스키도 비싼거랑 싼거랑 차이를 잘모르겠더라구요, 비싼거 마실때는 그냥 기분만좋은? ㅋ

비교도 경험이 받춰줘야만 되는거같아요~!!

청아 2023-02-15 20:17   좋아요 2 | URL
저는 파리 사람들이 건강하고 날씬한 이유가 와인 때문이라길래 늘 한 두병 집에 있어요. 저도 맛은 모르는ㅋㅋㅋ

경험 많은 사람 존경합니다. 나쁜 경험이라도 그 사람이 그걸로 성장했다면! ^^*

은오 2023-02-15 2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또 남이 좋아하는 책도 저에겐 별로인 경우가 있고, 남이 별로라고 해도 저한테는 좋은 책이 있어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취미든 많이 경험해야 취향과 선호가 선명해지고, 그렇게 되면 고른 게 실패할 확률도 점점 줄더라고요. 이 과정이 재밌기도 한 것 같아요 ㅋㅋㅋ

청아 2023-02-15 20:44   좋아요 3 | URL
그쵸! 남이 별로인데 저한테 좋은 책은 더더 귀하고요ㅋ
그나저나 은오님 글이 뜸하시네요. 바쁘시더라도 한번씩 올려주세요!!😉

scott 2023-02-15 23:16   좋아요 2 | URL
미미님 말씀에 동감!

은오님 서재, 알라딘 댓글 맛집 인뎅 ʚ(>ᴥ<)ɞ

페넬로페 2023-02-15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통 제가 선호하는 경향의 책을 읽어 매번 감동받아요~~
저는 먹는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성비를 조금 중요시해요.
그러니 좀 멋이 없어져요 ㅠㅠ

청아 2023-02-15 21:05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이 감동하신 책들은 지금껏 저에게도 다 좋았어요! 가성비 갑은 역시 책이죠~♡
알라디너들이 추천한 책

바람돌이 2023-02-16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장면에서 빵 터졌어요. ^^
우리가 100만원짜리 와인은 못 구해도 좋은 명작, 엄청나게 과대평가된 명작 뭐 다 구할 수 있잖아요. ^^
가난한 내게도 언제든 책은 구할 수 있으니 말이죠. ㅎㅎ
오늘 자료로 필요한 책이 있는데 이게 절판인데다 중고도 하나도 없어서 어쩌지 하다가 도서관 검색햇더니 부산 지역 도서관 중 딱 2군데에 있는거예요. 그 중 가까운 곳에 뛰어가서 책 빌려오면서 뿌듯 뿌듯... ㅎㅎ 100만원짜리 와인보다 좋아요. ^^ 물론 이건 제가 100만원짜리 와인을 안 먹어봐서 하는 소리입니다만....ㅠ.ㅠ

청아 2023-02-16 08:1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말씀에 완전 공감입니다ㅎㅎㅎ 100만원짜리 와인 못마셔도 100만원어치 책을 읽으면 되지요ㅎㅎ
게다가 도서관 이용하면 돈도 들지 않는!! ^^*
필요한 책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난티나무 2023-02-16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만한 서점 지기 말 넘 좋아요!!!! ㅋㅋㅋㅋ 딜레마 동감!!!! ㅎㅎㅎ

청아 2023-02-16 08:16   좋아요 0 | URL
완전 팩폭이지요?ㅋㅋㅋㅋㅋㅋ
 


    




부르디외는 파업 지지 운동 같은 정치 참여를 통해, 결코 공적인 삶의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되는 작가의 책무를 몸소 보여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사회학자가 사회투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그의 목소리를 곁에서 듣는다는 것은 내게 무한한 기쁨과 해방감을 선사했다. 쥐페가 우리에게 허리를 굽히기를 원했다면, 부르디외는 우리에게 당당하게 고개를 들도록 했다. 

대게 장기간의 혹독한 파업은 일상의 흐름을 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1995년 파업의 특이한 점은, 일부 시민이 자가용 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일터로 출근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 연대하고, 각종 기발한 묘수를 생각해냈다. 즉흥적으로 카풀을 조직했고, 자전거 판매율도 급증했다. ㅡ아니 에르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에는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악은 일단 외모부터 평범하지 않았고 행실도 나빴으며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었다. 선은 그 반대였다. 독자인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지 어떤 아이가 되어야 하는지 동화책에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악이라고 늘 악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선이라고 늘 선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악에는 선함이 선함에는 악이 공존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이쪽이 두드러지고 어떤 때에는 저쪽이 좀 더 두드러지는 그런 정도의 차이였다. 내 주변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그런 양상은 더욱 복잡해 보일 때가 많다. 특히 한국 정치는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따져 뭐가 더 나은지 함께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는 되도록 문제 그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편가르기, 갈라 치기로 피로감을 높이는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기본적인 것부터 합의가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장애인이, 노동자가, 여성이 기득권자라는 말을 듣고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약자였을지 모르나 요즘의 그들은 기득권이라고. 마치 그 안에 무수한 다양성, 개개인은 없고 단일한 것으로만 가득차 있는 것처럼. 



어제 팟케스트에서 <정희진의 공부> 2월 호를 들었다. 결국 사람들이 똑똑해져야 똑똑한 리더가 나온다고.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져도 멍청한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불의의 목소리가 더 크면 가능한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은 멍청이들도 재력이 뒷받침되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으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지 않은가? 용기 있고 훌륭한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용기 있는 행동을 하다가 피해를 입을까봐 미리 겁을 집어먹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서주기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넘어져 있는 사람을 일으키려고 하면 주변에서 저 사람 위험한 사람이라고 괜히 도우려고 건드렸다가 소송에 휩쓸린다고 말하면 나서려다가도 주저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어떤 행동을 해야 옳을지 분명하지 않을 때, 헷갈릴 때, 혼란스러울 때, 도와야 한다고. 이럴 때  주변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행동하는 사람,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용기도 비굴함도 전염되니까 감정도 전염되니까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한계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계몽이든 낭만이든 모든 좋은 것은 언제든 나쁜 것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긴장을 놓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직시하는 것, 그 분열됨에 머물러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ㅡ <철학책 독서모임>



얼마전 유수님 글에서 찾은 인용문. 요즘 내가 갖고 있는 질문들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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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2-13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저 지금 <캘리번과 마녀>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 글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아요ㅜㅜ 다음엔 저게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행동해야해 / 그러니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사려야해, 에서 대부분은 후자로 기울 것 같거든요.. 사실 누군가 용기있게 나섰을 때 그 뒤를 따르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고요.. 저도 2월 호 인상깊게 들었는데, 앞으로 멍청하단 말대신 몰명지단 말로 바꿔써야지, 고급지다, 이러고만 있었어요(반성합니다)

청아 2023-02-13 16:30   좋아요 3 | URL
책먼지님 반갑습니다^^*
몰명지단 표현을 방송에서 들었는데 멍청이가 아직 더 친근하네요ㅋㅋㅋㅋ
저에게도 꽤 고민거리예요.
뭘,어떻게, 얼만큼... 모든 면에서요. 고민 꺼리라서 이런 대목이 더 와닿고 그런 의미에서 끄적여봤습니다. 제도 아직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누군가는 이걸보고 더 정리가되고 또는 새로운 의문이 들어 나름의 길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캘리번과 마녀>저도 읽고 싶은 책이예요!

건수하 2023-02-13 20:26   좋아요 3 | URL
책먼지님/ 몰명지다는 말 저도 잘 기억해 두려고요 ㅎㅎ

미미님/ 캘리번과 마녀 안 읽으셨어요? 당연히 읽으셨을 줄 알았어요!

청아 2023-02-13 20:36   좋아요 2 | URL
저 안 읽은 책 많아요 수하님!ㅋㅋㅋㅋ새싹이라고요ㅋㅋㅋ 집 어디에 있을텐데 되도록 빨리 읽어보겠습니다. 😉

건수하 2023-02-13 20:45   좋아요 1 | URL
그 그럼 전 씨앗….? 🤭

청아 2023-02-13 21:1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수하님🤣

DYDADDY 2023-02-13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권에 대한 사회 의식이 높아져 약자에게 디딤할 수 있는 정책을 특권이라 칭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사람들이 기득권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우리가 아닌 저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는가 라는 물음은 공정 논란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공정 논란을 부추기면서 연대를 깨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이겠죠. 약자들이 연대하여 반항하면 기득권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니까요.
연대는 처지가 다르더라도 감정적으로 상호 공감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시내가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 불의를 보고 ‘저것은 불의다!‘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의 계산적이 아닌 감정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용기도 비굴함도 감정도 전염된다는 구절이 좋아 글을 남깁니다.

청아 2023-02-13 16:38   좋아요 2 | URL
예! 그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 미국에서 린치에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흑인강간‘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던것 처럼요. 점점 교활한 방식으로
연대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요. 그게 곳곳에서 효과를 보이는게 느껴지구요. 어수선한 글 읽어봐 주시고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3-02-13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분법을 주장하고 다양성을 억압하는 이유는 생각하기 편하고(머리 복잡하지 않으니까) 이 방법이 결국 먹혀들 것 같아서 위에서 가져다 쓰니 심화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민주당이고 국힘이고 간에 둘 다 선이 아니고 악 같지만...
동화가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이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문화 가정도 많아지고 인구 구성 자체가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청아 2023-02-13 18:12   좋아요 3 | URL
정치를 보면 인간사의 모순이 다 담겨있는 것 같아요. 갈수록 양상이 더 복잡해져서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고요. 그럼에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겠다는 걸 느끼게도 해주네요. 요즘 동화는 예전과는 좀 달라보이지만 그럼에도 화가님 말씀처럼 많은 변화를 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미래도 조금 더 긍정적일 수 있겠죠? ^^*

페넬로페 2023-02-13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사회, 정치 참여를 제대로, 똑똑히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리더도 멍청하고 그 리더 옆에 있는 사람들은 충성만 하는 작금의 현실이 걱정이 됩니다^^

청아 2023-02-13 19:34   좋아요 3 | URL
네!^^* 똑똑한 노동자들, 선생님들, 장애인들, 주부들이 더 정치에 더 참여하고 판검사 출신들은 이제 좀 빠져주면 좋겠어요. 정치권을 보면 우리나라에 법조인들만 잔뜩 사는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3-02-14 1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백번 맞는 말씀이십니다. 똑똑하면 뭐하나. 정작 중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소리내지 않는데....그런 똑똑한 분들이 많으니, 한국의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정희진의 공부> 저는 정기구독 안하지만 주변에서 계속 듣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네요

청아 2023-02-14 14:52   좋아요 2 | URL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 시민의식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옳은 방향을 가르쳐주는 용기있는 지식인들, 언론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막말과 왜곡이 큰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

<정희진의 공부>좋아서 듣고 또 듣고 있어요. 강추입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02-14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나 블로그에 올리는 글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는 함부로 올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적인 삶의 방관자가 돼서는 안된다는 작가의 책무! 작가가 아닌 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글쓰기가 어려운듯요

청아 2023-02-14 21:43   좋아요 2 | URL
저는 정치에 있어서 꼭 모두가 사회 운동가, 활동가가 되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말로만 떠든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우선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자기 주변에서 차츰 공론화 시키는거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막말도 서슴치 않는데 그들의 말은 언론을 장식하잖아요. 다수인 시민들은 서재나 블로그에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죠. 여기가 우리의 최소한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잖아요 이런 소통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나 싶어요.

그레이스 2023-02-14 22:26   좋아요 1 | URL
그렇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지기만 합니다.^^;;
저 자신의 실천이 문제겠죠.;;

청년 2023-02-14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양비론이나 이분법적인 사고와 행동이 아닌 비판적 사고와 행동으로 ~ 건전한 사회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는 조금이라도 깨닫는 사람들의 몫 아닐까요?

청아 2023-02-15 13:56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북플에서 글을 나누어 주시는 분들 보면 충분히 건강한 사회란 생각이 들어요.^^*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사회 갈등은 대체로 말 섞을 공간이 없어 그런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3-02-15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부터 정희진샘 매거진 들었어요.
자동으로 뜨는 줄 알았는데 찾아가서 클릭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더군요?^^;;;
똑똑한 사람이 앞서서 리더하는 게 맞다에 저도 고개 끄덕끄덕!
나 잘난 똑똑함이 아니라, 진정한 똑똑함, 리더십의 똑똑함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도 같구요. 나 잘난 똑똑함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우세하니...뭐가 뭔지? 참~ 일단 더 계속 듣겠습니다.

청아 2023-02-15 13:56   좋아요 1 | URL
나무님도 이제 팟빵에서 들으시는거겠죠? 저 팟빵을 이번에 처음 써봤어요.
팟빵에서 속도 조절이 가능해 듣기가 더 수월하더군요. 2부 끝에 토크 콘서트 들어보니 실제
정희진 쌤 말씀하시는 속도가 제게 딱 맞는ㅋㅋㅋㅋㅋ
똑똑한 분들에 대해 제가 요구사항? 이 좀 많은 편인데 언젠가 좀 더 제대로 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 똑똑함과는 상관없는 간신들이 많은 이유를 생각해보게됩니다.

정희진쌤 매거진 들어도 들어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