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누가 죽여요?" 퍼디타가 말했다. " 우리 모두가 죽이지." 지노가 말했다. "주인공 ㅡ햄릿, 오셀로, 레온테스, 돈조반니, 제임스본드ㅡ이 직접 죽이지 않는다 해도 그의 영혼을 위한 희생양이 될 뿐이야." -263



한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린데 그러므로 내 남편과 동갑이다. 내가 한창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하루는 셋이 함께 어떤 이유로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친구는 나로 인해 내 남편과 안면이 있는 정도였는데 그날 지하철에서 둘이 몇 마디 나누더니 서로 동갑인 것을 알았다.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동갑이니 서로 말 놓자고 하는 거다. 나는 속으로 '나한테 언니라고 하면서 내 남편과 친구가 되겠다고? 내 의견도 묻지 않고?' 하며 순간 둘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더러워졌다. 나로 인해서 둘이 알게 된 거니까 나를 중심으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차라리 '형부'가 맞지 않은가? 어떻게 둘이 곧장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마치 나 없이 둘이 소개팅이라도 하는 거 같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이른바 쿨하다는 서구의 문화에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지만 내 남자친구를 내 친구에게 소개해 주거나 내 남편을 내 친구에게 소개해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같이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주 잠시였지만...아마도 이런 사고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나 짐작한다. 우리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유독 엄마의 외도를 의심했다. 내가 볼 때도 우리 엄마는 섹시했다. 훗날 당시 엄마의 사진을 앨범에서 봤는데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사진 속 화사한 블라우스 차림의 엄마는 활기가 있고 젊음으로 생기가 있었다. 미드 브이에 나올 법한 여배우 같은 분위기! 그런 저런 이유로 10살이나  많은 아빠는 불안했을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는 엄마가 친구를 만나고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초조해진 아빠가 나에게 마음에 담아둔 의혹을 토로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당시에는 그렇게 믿었다) 엄마를 기다렸다. 얼마 후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거실에서 말싸움이 들렸다. 나는 숨죽이며 내 방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 때 난 아빠 편이었고 억울해하는 엄마 편이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양가적 감정이 이후 이성을 만날때 얼마간 반영이 되었다. 




연인이 있거나 배우자가 있어도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걸 탓하거나 매달려봐야 무슨 소용인가. 붙잡고 산다고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나? 그런 감정을 속이고 옆의 사람을 기만하기보다 털어놓고 헤어지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낫다. 속이고 몰래 만나는 것이야말로 최악이다. 그러므로 작은 꼬투리로 상대를 의심하기보다는 이쪽에서도 일단 믿어야 한다. 이게 내 결론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이런 최악의 기만이야말로 흥미진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심하는 사람의 고통받는 내면은 너무너무 재미있다. 킬킬거리면서 읽고 있는 나 때문에 가끔 섬뜩하다. (아빠 미안해...) 이런 내가 <시간의 틈>을 읽었다. 이쯤에서 짐작했겠지만 이 소설에는 불륜을 의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리오는 절친 지노가 자신의 아내이자 임신 중인 미미와 친근하게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의심은 붉어져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들을 주시한다. 모든 의심이 그렇듯 정작 보이는 것보다 그의 의혹의 이미지는 현실을 앞서간다. 그의 상상 속에서 두 사람은 음탕한 배신자들이다. (리오의 욕설이 섞인 노골적인 대목을 올릴 수 없어 참고삼아 무난한 장면만 인용했습니다.)



미미는 지노 곁에서 편안하다. 같이 잔 사람과만 저렇게 편할 수 있는 법이다. 미미가 꿈틀거리며 아기가 든 배 위로 드레스를 올린 다음 지노가 지퍼를 올릴 수 있도록 돌아섰다. 그가 지퍼를 올린 다음 엉덩이 부분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내 마누라 엉덩이에서 떼! ㅡ87







이런 의문을 품어 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나는 괴물일까, 아니면 이게 내가 인간이라는 뜻일까? -별의 시간




리오의 의심은 오셀로가 그랬던 것처럼,<겨울 이야기>의 시칠리아 왕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소중한 것들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선택으로 그를 몰아간다. 미미의 아기(딸)는 친자가 아닐 거라는 리오의 광적인 불신, 예기치 않은 우연의 결과들로 인해 다른 장소에서 자라게 된다. 이것은 운명이었을까? 인간은 본질 적으로 무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있는 것일까. 그 때문에 갖가지 악의를 저지르고 또는 그것을 욕망하는 걸까. 추락한 천사. 흩어진 깃털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되돌릴 수 있다. 지넷 윈터슨이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한 것처럼. 시간의 틈을 발견한다면 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만든 건 항상 자리를 비우는 신이 아니라 추락한 루시퍼 같은 인물이라는 거지. 일종의 흑천사야, 우리는 죄를 짓거나 지위를 잃은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어. 우리가 무얼 하든 그건 결국 추락이야 걷는 것조차 일종의 잘 통제된 추락이지. 하지만 실패와는 달라, 우리가 이걸 안다면 영지, 그러니까 안다는 거야 고통을 견디는 게 더 쉬울 거야."-107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읽어도 모르신다면...그건 책임지지 않....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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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2-27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중 햄릿을 길리안 플린이 쓴다고 발표한 후 여태 안 나왔더라고요 ...

청아 2023-02-27 21:10   좋아요 2 | URL
저는 미리 말하면 실천이 안되더라구요. 혹시 그 분도 그런거 아닐까요?ㅋㅋㅋ

건수하 2023-02-27 21:15   좋아요 3 | URL
그건 안 나올 것 예상하고 있더군요.. 저도 햄릿 기다렸는데 :)

청아 2023-02-27 21:17   좋아요 2 | URL
햄릿 제일 좋아하는데 부디
써주었음 좋겠네요!

서곡 2023-02-27 21:19   좋아요 1 | URL
정 안 되면 딴 작가가 쓸 수도 있는데 말이죠...

서곡 2023-02-27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 그렇다면 출판사랑 계약할 때 비밀보장조건을 달았어야 ㄷㄷㄷ 미미님 좋은 밤 되시길요 ㅋㅋㅋ

청아 2023-02-27 21:15   좋아요 2 | URL
ㅋㅋㅋ서곡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2023-02-27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7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7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7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금메달을 따신 미미님!^^

청아 2023-02-27 23:14   좋아요 3 | URL
2022년 메달요?🏅
소듕소듕한 금이 벌써 2개입니다 헤헷 ^^*

페넬로페 2023-02-27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의 경험이 들어 있는 글의 내용에 공감백배입니다. 어머니 닮아 넘 예쁘실듯 한데요. 지금에사 우리가 페미니스트라 자처하지만 어릴땐 엄마가 친척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것도 좀 싫었던 것 같아요.
참 이율배반적이죠 ㅎㅎ

이 책 시리즈 좋네요~~
읽을 책이 넘쳐 행복합니다^^

청아 2023-02-27 23:34   좋아요 3 | URL
저에겐 오드리 헵번만큼 완벽하지만
고슴도치가 자식 생각하듯
저희 엄마라서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ㅎㅎㅎ
네! 어린 시절 생각하면 누구보다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도요ㅎㅎ
나머지 시리즈도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요~^^♡

난티나무 2023-02-28 0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미미님처럼 아빠 미안해, 못 할 것 같아요..ㅠㅠ 제 경우에는… 100퍼 엄마 편, 그리고 엄마를 못미더워하는 마음이 그 100 안에 한 10퍼… 아빠는 여지없이 0 입니다…^^;;;;;;;

청아 2023-02-28 10:30   좋아요 1 | URL
그럼요 ㅠㅠ 저도 아빠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요 난티나무님^^* 아마 많이들 그럴 거예요. 엄마편 100퍼일 수 밖에 없는 일들요.
난티나무님 어릴 때에도 엄마에게 든든한 딸이셨을듯^^♡

책먼지 2023-02-28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형부”가 맞다고 생각합니다(크릉)!!

청아 2023-02-28 10:35   좋아요 2 | URL
제 앞에서 번호도
교환 했습니다ㅡ..ㅡ(이르는 중)ㅋㅋㅋ

책먼지 2023-02-28 11:23   좋아요 1 | URL
그 동생분 선 넘네요??? 델꾸 오시면 제가 참교육을!!! (실제론 쭈글)

청아 2023-02-28 11:4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책먼지님~♡(훌쩍)

기억의집 2023-02-28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후배분 엄청 무례한 겁니다. 친구분 예의를 지켜야죠. 저는 저의 남편하고 사겼을 때나 결혼해서도 친구들에게 남편 소개 안 시켜 줬어요. 저 또한 친구들 남친이나 남편 소개 받을 생각도 안 했고요…

그런데 불륜 맞나요? 저 인용한 문구만 보면 불륜 맞기도 해서…

청아 2023-02-28 11:41   좋아요 0 | URL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당사자와 잘지내야지 굳이 배우자나 애인까지는 불필요하게 느껴져요. 그 소개가 진짜 소개팅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요ㅋㅋㅋ

불륜 아니었어요 참고로
지노는 게이였고 리오도 그걸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도 놀랍습니다ㅋㅋ

기억의집 2023-02-28 11: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읽어야 하나요 !! 궁금하긴 합니다~

청아 2023-02-28 11:48   좋아요 1 | URL
딱 맞으실지 장담은 못하지만 저는 간만에 재밌게 읽었어요^^*

바람돌이 2023-02-28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가장 친한 남사친은 제 친구와 결혼했고(제가 연결해준건 아닙니다), 둘 다와 사이가 좋아 둘 모두의 전번이 저에게 있지만 저는 그 남사친을 친구 없이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습니다. 둘다 안다는 이유로 그 부부의 사생활에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지도 않고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잘 모르고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요. 당연히 매우 기분이 나쁩니다.

청아 2023-02-28 16:49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은 글을 봐도 잘 대처하실것 같으세요.
저는 당황하면 아무말 못하고 속만 상했었던 과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에혀ㅋㅋ 요기다 하나씩 풀면서 뒤늦게 해소중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8 18:13   좋아요 1 | URL
아무말 못하고 집에 와서 이불킥하는 이불킥고수입니다ㅡ ㅠㅠ

새파랑 2023-02-28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이름이 미미군요 ^^

저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하는데 ㅋ

미미님의 다양한 독서범위는 언제나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청아 2023-02-28 22:38   좋아요 1 | URL
네ㅋㅋㅋ주인공 이름이
미미라길래 더 읽고 싶었어요^^

새파랑님이 훨 대단합니다.
3월에는 소설을 좀 더 읽어볼까합니다^^*

베터라이프 2023-03-01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미미님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형부가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지인분이 꽤나 개방적이신 모양이네요. 보통은 아는 언니 남편한테 그렇게 친근하게 하기 어려운데요. 보기보다 꽤 어려운게 현실이죠. ^^

청아 2023-03-01 18:2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고맙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공감해주시니 위로가 됩니다. 웃으면서 한 마디 해주었음 좋았을텐데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 당황했었어요. ^^*

레삭매냐 2023-03-03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중간에 들어가 있는 빔 벰더스
의 <베를린 천사의 시>는 왜
일까요.

너무 궁금해서요.

청아 2023-03-03 21:50   좋아요 2 | URL
아 일단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서 지붕에 있다가 추락한 천사에 대해 몇번이나 언급하는데 이 장면이 떠올랐습니다.ㅎㅎㅎ

2023-03-08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3-03-18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배를 버려요, 그대여, 너무 늦기 전에 배에서 뛰어내려요. 그대여, 기다리지 말아요.
위협은 당신의 것이 아니에요. 나의 것이에요. 우리는 시간의 틈에갇혔어요.‘
맨 위에 <퍼디타>라고 휘갈겨 적혀 있었다. - P159

 미미는 지노 곁에서 편안하다. 같이 잔사람과만 저렇게 편할 수 있는 법이다. 미미가 꿈틀거리며 아기가 든 배 위로 드레스를 올린 다음 지노가 지퍼를 올릴 수 있도록 돌아섰다. 그가 지퍼를 올린 다음 엉덩이 부분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내 마누라 엉덩이에서 떼! - P87

"딸은 누가 죽여요?" 퍼디타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죽이지." 지노가 말했다. "주인공-햄릿, 오셀로,
레온테스, 돈조반니, 제임스본드-이 직접 죽이지 않는다 해도그의 영혼을 위한 희생양이 될 뿐이야." - P263

우리가 사가는 이 세상을 만든 건 항상 자리를 비우는 신이 아니라 추락자루시퍼 같은 인물이라는 거지. 일종의 흑천사야, 우리는 죄를 짓거나 지위를 잃은 게 아니야,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어. 우리가 무얼 하든 그건 결국 추락이야 걷는 것조차일종의 잘 통제된 추락이지. 하지만 실패와는 달라, 우리가 이걸안다면 영지, 그러니까 안다는 거야 고통을 견디는 게 더쉬울 거야." - P107

지노는 지나친 친밀함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는 외롭고 내향적이었고 열정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열정을 사교성과 착각했다. 지노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고, 사람들을 신경 썼고, 정말친절했고, 곁에 있을 때는 온전히 곁에 있었다. 그러나 지노는 밤에 문을 닫는 것이, 또는 혼자인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 P105

"들어 봐! 이건 은유야 경쟁심, 금지된 욕망, 가족 로맨스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 - P208

 다른 이야기,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지.
살다보면 후회는 금방 와
후회를 찾아다니지는 말라고." - P215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보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죠." - P252

 "나이는 갑자기 들어,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가
네가 향해 가고 있는 해안이 처음에 목표했던 해안이 아니라는걸 깨닫는 것과 같지." - P257

커다란 방의 두 벽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으로 가득했다. 낡은 책, 비싼 책. 자연사, 과학, 건축, 전기, 먼지투성이 벽난로 앞에는 세월에 닳은 깊숙한 가죽 팔걸이의자가 두 개 있었다. "책을좋아하시는구나."퍼디타가 말했다.
"응, 좋아하지. 책은 다 읽고 나면 치워 버려도 되고 다시 만나자고 요구하지도 않으니까." - P283

삶이 비극적인 건 영광과 기회, 낙관주의, 용맹함, 희생, 투쟁, 희망, 선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야.  - P293

 우리를 가두는 순간의 힘보다 우리가 더 강해져야만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거야.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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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8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다 읽고 나면 치워버려도 되고 다시 만나자고 요구하지도 않으니까. 이 부분 무지 찔렸어요. 이래서 책을 좋아하나 잠시 생각했어요 ^^

청아 2023-02-28 10:33   좋아요 2 | URL
저도요!ㅋㅋㅋㅋ찔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ㅋㅋ
 

   


         











<살림비용> 얇아서 2 주면 읽을 줄 알았는데  6장, 7장이 지루했다. 조금씩 읽어서인가? 원서랑 읽으려니 그런 건가? 필사까지 욕심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원서 읽기도 번역서 읽기도 자꾸만 미루고 미뤘다. 책이 두껍지 않으니 언제라도 몰아서 2월 내엔 클리어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도 이제 며칠 안 남았네. 요 며칠 공기질도 머리가 띵할 만큼 나쁜 데다 공기청정기는 필터를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거 검색 하는 게 귀찮아서 미루고 있다. 책 사는 거 빼곤 뭐든 이렇게 잘도 미룬다. 그래도 미루는 게 너무 많아지면 곤란한데...때문에 요즘 집에서도 나쁜 공기와 씨름 중이다. 




거기다 사랑이(츄츄 본명)가 어제오늘 아파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선생님은 또 이번이 고비라고. 그래서 새벽에 그렇게 끙끙대고 뒤척였던 거였어. 위액으로 짐작되는 점액이 응아랑 같이 나왔는데 나이가 들어서 이것저것 검사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여기 선생님은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보호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한 번씩 대기가 길어져도 뭐라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테니까. 사랑이가 아프니 기분이 꿀꿀해서 서브웨이에 다녀왔다. 에그마요로 한 끼를 해결하려고. 이제는 제법 여러번 사먹어서 주문에 익숙해졌는데도 '소스를 어떻게 하실꺼냐?'는 질문을 들으면 매번 '추천'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그냥 "골라주세요~"라고 대답하는데 그럼 저쪽에선 마치 내 잘못을 꼬집어 주듯 "네~ 추천 소스로 해 달란 말씀이시죠?"라고 재확인한다. 그냥 확인하는 거겠지만 그럴 땐 조금 부끄럽고 아마추어가 된 기분이다.  프로페셔널하게 살고 싶은데 내 인생은 늘 아마추어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부는 걸 보니 공기가 좀 나아질 것 같다. 바람의 마법인지 에그마요의 힘인지 <살림비용>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사랑 없이 사는 건 시간낭비다. 나는 글쓰기 공화국이자 어린이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시몬드 보부아르가 아니니까. 그래, 난 그와는 다른 정거장(결혼)에서 하차해 역시나 다른 승강장(자녀)으로 이동했다고 봐야했다. 그는 내 뮤지였지만 나는 명백히 그의 뮤즈가 아니었다. -84


제발 파리를 버리고 시카고로 와 함께 살자고 올그런이 사정했을때, 보부아르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난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 살 수 없어. 내 글쓰기와 일이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곳일지도 모를 이곳에서 계속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걸 단념할 순 없어." -87








남들 한창 결혼할 때 이런 확신을 가졌던 보부아르. 사랑, 안정된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확고했다. 또 다른 남자 올그런이 저렇게 사정했는데도 보부아르는 알았다. 자신이 잃을게 더 많다는 사실을. 한 친구는 오래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반해 꽃다발을 안겨주던 남자와 덜컥 결혼했다. 그 애는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반한 누군가를 선택한 거였다. 뒤늦게 그 차이를 알았고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이해했다. 어떤 선택들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 개인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삶도 있다.







김옥빈과 유태오란 배우가 티키타카 로맨스를 선보이는 <연애대전>이란 드라마를 봤다. 다락방님이 페미니즘 한 스푼이라고 하셔서 골랐는데 내가 보기엔 한 국자 이상 들어가 있다. 클리셰를 깨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비혼 주의자인 변호사 김옥빈은 태권도에 합기도 쿵푸등이 조금씩 다 가능한 싸움의 고수인데다 원나잇도 하는 등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다. 면허는 1종이고 주차된 차량으로 더 좁아진 골목길도 잘만 통과한다. 인기 있는 배우로 등장한 유태오는 어색한 한국어 발음 탓인지 어딘지 발연기 같아서 처음에는 살짝 거슬렸는데 볼수록 개성있고 매력있는 타입이다. 실제로 서울대 중퇴인가? 독일어도 수준급이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배우들 극혐하는 캐릭터다.  무명시절 같은 업계 종사하는 첫사랑에게 매몰차게 차인 후유증 비슷한 이유였다. 그는 스캔들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 여배우와 불화 스캔들이 늘 골칫거리일 정도다. 이런 두 사람이 싸우다가 정이 든다. 이건 로코의 뻔한 지점이지만 전체 분량 중에서 절반이상이 갈등이라 좋았다. 물론 여성의 자유가 남성과 똑같아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남성적인게 유일한 '다른 여성'은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클리셰를 깨려고 애썼지만 이 드라마는 1차원적이다. 기본적인 인식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다른 가능성을 향한 도약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고 봤다. 여배우에 심쿵 한 적 별로 없는데 김옥빈에게 흔들렸다. 이런 드라마가 많이 나오길 그래야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할테니!!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집안의 천사 역할을 전면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와 경제적 자립을 요구한 신여성. 그러나 신여성은 가정을 벗어나자마자 대중매체의 자극적인 이미지화를 거치면서 재빨리 버릇없고 성적으로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이며, 재미를 추구하며, 그러면서도 자석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플래퍼가 되고 만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영화 '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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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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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2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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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3-02-2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츄츄 주사맞고 좀 편안해지길요…

오, 마지막에 나오는 책 읽고 싶네요. 일단 땡투했고 3월이 되길 기다려야겠어요 :)

청아 2023-02-24 20:28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오늘 찜했어요!^^* 3월 구매할 책들이 벌써 여러권 쌓였네요.

주사 맞아서 지금은 편안해 보이는데 이후가 걱정이긴 해요.
아 수하님 프로필 사진에 냥이 왕관 근사해요ㅋㅋㅋㅋ

DYDADDY 2023-02-24 2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가 노견인가 보네요. 어서 나아지기를 바라요. ㅠㅠ

청아 2023-02-24 20:55   좋아요 2 | URL
노견이라 한군데씩 문제가 생기네요 부디 잘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대디님^^*

stella.K 2023-02-24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태오 멋지죠. 잘 안 나온다 했더니 여기 나오는군요.
벌써 결혼도 했더군요. 연상이랑.
언젠가 유키즈에 나왔는데…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둘이 좋으면 그만이지 뭐 어쩌라고…ㅋㅋ

에고, 사랑이 아프다니까 마음이 그러네요.
전 요즘도 가끔 다롱이 꿈 꿔요. ㅠㅠ

청아 2023-02-24 21:26   좋아요 2 | URL
웨이트를 많이 했는지 근육이 커서 제 타입은 아닌데요.
눈빛도 날카롭고 타고난 배우라고 느꼈어요. 저음으로 말할때 두근두근ㅋㅋㅋㅋ
외국어는 수준급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어는 아직 조금 어색하더라구요.
유키즈에 나왔었군요? 찾아보니 해외 제작 영화로 요즘 호평받고 있대요.

사랑이 이번에는 정말 힘들 수 있다고 선생님이 자꾸 강조하시네요.
여러번 기적적으로 살아주었는데 어떻게 될지...
다롱이가 꿈에 스텔라님 만나러 오나봐요ㅠ.ㅠ

책먼지 2023-02-25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자고로 서브웨이는 스위트 어니언입니다(진지)!!
사랑이는 씩씩하군요 주사도 잘 맞고요!! 부디 이번 고비도 잘 넘기길요ㅠㅠ

청아 2023-02-25 07:41   좋아요 1 | URL
스위트 어니언 기억해 둬야겠네요!!(역시진지)
사랑이는 늘 씩씩한데다
뽀뽀쟁이랍니다. ^^*

책먼지 2023-02-25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유태오는.. <머니게임>에서 정말 미친듯이 섹시하게 나옵니다..

청아 2023-02-25 07:43   좋아요 1 | URL
미친듯이 섹시하다니..
궁금합니다!! 찾아볼께요ㅋㅋㅋ

새파랑 2023-02-25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가 많이 안좋나보네요 ㅜㅜ 빨리 괜찬하지길 바라겠습니다~!!

여전히 미미님은 책사는 것도 열심히시군요. 역시 👍

청아 2023-02-25 13:19   좋아요 1 | URL
사랑이 그래도 주사 맞고 와서 밤에는 잘 잤어요 고맙습니다 새파랑님ㅜㅜ

아 마지막 책은 아직 구입하진 않았어요. 다음달에 사려고요. 정희진님도 참여하셔서^^*

바람돌이 2023-02-25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가 나이가 많군요. 오래도록 같이한 반려동물의 늙어감을 보는것도 사람과 똑같이 서러울듯.... 아직은 좀 더 사랑하고 살자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일거 같아요.
책읽을 시간이 없어서 드라마는 다 패스하는데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보고, 심지어 원서도 읽고.... 슈퍼우먼이십니다. ^^

청아 2023-02-25 13:58   좋아요 1 | URL
저희 집에서 아마 가장 나이가 많을 거예요. 사람처럼 새치도 나고 털도 점점 백색에 가까워지더라구요. 아픈 곳이 많아지고 걷는 것도 불편해져서 서러워하는게 옆에서 느껴질 정도예요. ^^*
바람돌이님 요즘 바쁘신가보군요! 저도 이번달은 생각만큼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3월에는 더 바빠지실텐데 그래도 봄 기운받아 힘나셨음 좋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2-25 14:01   좋아요 1 | URL
논다고 바빠서 약간 민망합니다. ㅎㅎ

청아 2023-02-25 14:03   좋아요 1 | URL
더 좋은 일이죠!ㅎㅎㅎ

잠자냥 2023-02-25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가에도 스무살 넘은 강아지가 있는데 볼때마다 늙어가는 모습 보면 참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츄츄가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랍니다.

에그마요에 저는 랜치 스위트칠리 조합 좋아해요~

청아 2023-02-25 18:02   좋아요 1 | URL
본가에서 잘 돌보셨나봐요. 강아지로 만수를 누리고 있군요?!
고맙습니다 잠자냥님^^*

다음주에는 랜치 스위트칠리로 먹어볼께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2-2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스토리가 있는 페이퍼네요.
그 중 저와 강력히 동질적인 것을 발견했어요.
저 역시 프로페셔널하지 않고 아마추어같은 제 모습에 매번 당황합니다~~
요즘에 더 그런 현상이 나타나 맘 다잡고 저를 리셋시키려 노력하고 있어요.
사랑이 고비 잘 넘기면 좋겠습니다^^

청아 2023-02-27 16:1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도 그러시군요~^^♡
프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네요ㅋㅋㅋㅋ
사랑이가 아파서 또 밤낮이 바뀌었어요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2023-02-26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옥빈 좋아합니다. 아스달 연대기나 박쥐 같은 영화에서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자유로운 그녀들의 캐릭터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녀들의 모습이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가끔 저도 저대로 살고 싶은데 주체적인 여성은 꼭 이런 모습인가? 할 때가 있거든요.

사랑이가 고비를 잘 넘기면 좋겠습니다. 좋은 주인에게 사랑받는 강아지네요. 행복할 거예요.

저는 추천보다는 골라주세요가 더 좋습니다. 쉬운 말이 좋아요^^

청아 2023-02-27 16:17   좋아요 1 | URL
요정님 프로필 사진 간지 좔좔 흐릅니다😍
김옥빈에 관한 말씀 백번 공감합니다.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 다양성이 주어질때 지금의 갑갑함이
많이 사라지겠죠?

선생님이 일주일에서 열흘 보고 있대요. 여태 많은 고비를 잘 넘겨왔기에 저는 큰 걱정 안하는데
남편이 자꾸 울어요^^;;

저 계속 골라달라고 할까봐요!ㅋ.ㅋ

그레이스 2023-03-03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지금 드라마 잠깐 보고 왔어요.
읽을 책이 산더미인데,,,,ㅎㅎ
밥하면서, 화장실 갈때마다 봐야하나 고민중입니다.
ㅋㅋ

청아 2023-03-03 15:07   좋아요 1 | URL
재밌죠!ㅋㅋㅋㅋ
그레이스님~♡ 저 처럼 한꺼번에 다 보시면 책태기 올지 모르니 조금씩 나눠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투명하고 그녀의 글은 때때로 핏빛이다.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만일 죄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과오였으며, 그녀는 헛된 존재였다. P.31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들은 무엇인가. 채운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손에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빠르게 흘러내리는 건 아닐까. 어떤 때에는 이런 형태로 균형을 이루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그저 일렁이는 바람 한 점 처럼 흩어져버려서 뭐라고 규정짓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모든 순간은 조각조각 나서 연금술사를 기다리듯 멍하니 늘어지지만 또다시 조화를 거부하고 미끄러져 의미를 잃어간다. 그렇게 여러 형태의 반복이다. 사방에서 의미들이 요동친다. 주아나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균열을 낸다. 초연하게. 그런 그녀의 파열음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불면증과 난독증 비슷한 상태를 겪고 있다. 비웃을지도 모르지만...한 달에 15권도 읽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정말 나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다독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도 안다. 그런데 읽는 재미를 늦게 알면 ㅡ늦다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지만ㅡ 그걸 모르고 보낸 세월이 너무 아쉽고, 후회되고,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더하기 더하기가 되면서 조급해진다.  그러다 보니 일단 많이 읽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는 거. 독서는 어쩜 사람을 만나는 것과도 비슷해서 진득하니 한 사람씩 만나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텐데 영 한 곳에 마음이 집중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집중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해결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고 방치해둔 골칫거리들 때문인가. 정리되지 않은 책상, 정리되지 않은 노트, 정리되지 않은 관계, 정리되지 않은 생활 방식, 정리되지 않은 계획들 거기에 또 더하기 곱하기가 되어 잡념을 낳는다. 쓸어 담을 수도 없는 잡생각들. 많은 친구들, 많은 음식들로 공허를 채우는 엄마는 음식을 먹어 치워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나는 나대로 치워야 할 것을 채워 놓는거겠지. 벌써 지난달에 읽어치운 리스펙토르를 다시 집었다. 줄거리로 가두 듯 설명할 수가 없는 책이다. 이 어지러운 책도 잡념의 결과인가. 어쩌면. 



칼날은 그 선면한 생각을 타고 그녀의 웃고 있는 허파 속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파고들었다. 왜 이미 일어난 일을 거부해야 할까? 동시에 많은 것을 소유하고, 여러 방식으로 느끼고, 다양한 근원들을 통해 삶을 인식하고....그렇게 충만한 삶을 살려는 사람을 누가 막아설 수 있겠어? P.219



주아나 혹은 리스펙토르의 삶의 조각들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 버릴 수도 있었다. 치워질 수도 있었다. 잊힌 기억으로 낡고 색이 바래 구석에 처박힌 필름처럼. 움직임을 잊은 서랍 속 시계처럼. 작가는 구겨진 종이를 펴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매듭을 짓는다. 인연이 얽힌 사람과 그녀를 다녀간 사랑과 그 사랑의 사랑까지 한자리에 모이도록. 그렇게 조각들이 비로소 사건이 될 때 이야기는 심장을 타고 흐르고 고통의 기억들은 운율을 이뤄 마침표에 가닿는다. 조각들이 비로소 사건이 될 때.



그, 이 남자 숨겨진 원천에서 솟구친 불안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밀려들었고, 모든 세포들을 채웠고, 그녀의 비참한 고독을 침대 아래로 밀어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후, 그녀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며, 숨을 헐떡거리며, 굴복의 부드러운 기름이 온몸에 부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마침내 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ㅡ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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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2-23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읽고 싶은 건 많은데 … 저는 읽는 활동 자체도 잘 안하는 거 같기도 하지만요. ㅠㅠ 저번에 알라딘에서 독서통계 할 때 백살까지 산다면 이 속도로 몇 권 더 읽을 수 있다고 해줄때 엄청 충격 받았었어요. ㅋㅋㅋ

scott 2023-02-23 23:22   좋아요 3 | URL
교묘한 알라딘 우리 알라디너의 생애 주기를 책 구매를 부추키는 데이터 통계로 페르소나님에게 충격을 ㅋㅋ

청아 2023-02-23 23:23   좋아요 4 | URL
좋아하는 작가들도 쉬지 않고 신간을 내고 이웃들 리뷰 읽음 또 따라 읽고 싶기도 하고요 아웅ㅋㅋㅋㅋ
제 경우엔 욕심이 과해서 한번씩 무기력해지나봐요. 엄청 충격이셨다니 페르소나님 몇 권 나오셨을까요?^^ 일단 집에 있는 책들만 다 읽어도 속이 좀 후련할 것 같아요. 당장은요. 음...그래도 페르소나님 은근 많이 읽으셨잖아요. 원서도요! 저는 제대로 된 책 읽은지 얼마 안되요ㅋ

persona 2023-02-23 23:59   좋아요 3 | URL
이렇게 책이 많은데 아직도 나올 책이 많다니 😱는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저는 다독가가 아니다보니 ㅋㅋㅋ 30-50권정도 읽어왔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알라딘에서 앞으로 백살까지 산다면 2천권인가? 도 안되게 읽을 수 있다고 했어요. 천팔백몇 권인가 ㅠㅠㅠㅠㅠ
헐! 저 대학 4년동안 천권읽기, 편입하고 또 천권읽기 해서 이미 20대때 천권읽기 두번 달성하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30대 내내 책 한권도 안 읽은 해도 있고요. ㅠㅠ 근데 대학때 읽은 책만큼도 평생 못 읽는다고 생각하니 암 선고 받은 거 같더라고요? 안 읽은 건 자기자신이면서.
또 저희 집안에 백세까지는 커녕 요절하신 분들이 더 많은데 그럼 나머지 시간동안 거의 책을 안 읽는 건가 싶고 눈도 점점 안 보일텐데 오래 살아도 60세 이상이면 책 읽기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고 조바심 나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럴 때 읽는 책은 다 함량미달인 거 같고… 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20년간 읽을 수 있는 책을 보니 몇백권 안되더라고요… 아놔.
안돼! 아니야! 이거 아니야!
뭐 이런 파괴본능과 약속시간에 헤매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독서 하게 되고 한동안 그랬어요. ㅋㅋㅋ

청아 2023-02-24 00:21   좋아요 4 | URL
와~ 페르소나님 그 주제로 글 써주셔도 재미날것 같아요~♡
어쩐지 제 예상대로 이미 많이 읽으셨네요!! 그래도 앞으로 2천권이 안된다니 놀라셨겠어요. 두 번이나 달성하신거 알라딘이 알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천권읽기 너무너무 멋져요^^* 저도 사는 동안 내가 생각하는 필독 도서들 클리어 할 수 있을까, 다독 욕심에 정작 읽고 싶은 책 미뤄두고 있는 건 아닐까 막상 죽을때 ˝아놔~ 00를 못 읽었네!!˝ 하고 후회함 어쩌나 별 생각 다해요ㅋㅋㅋㅋ

우끼 2023-02-24 14:10   좋아요 2 | URL
와악… 4년에 천권 가능한가요 ㅠㅠㅠㅠㅠㅠ 대단하십니다…..

persona 2023-02-24 07: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학점을 포기하면 가능합니다. ㅠㅠ ㅋㅋㅋㅋㅋ

2023-02-23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3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3-02-24 05: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가 비웃는단 말씀이세요.ㅠㅠ 미미님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얼른 괜찮아지시길요~~~~
저도 미미님 생각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잡념….ㅎㅎ 저는 요새 새벽에 자꾸만 깹니다…@@

청아 2023-02-24 07:37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이 글 쓰고 불면증은 조금 나아졌어요ㅋㅋㅋ 머리속이 시끄러운 나날입니다. =ㅁ= (수하님께 배운ㅋ)

책읽는나무 2023-02-24 0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왠지 공감가는 글이네요.
읽고 싶어 읽었는데, 문득 현타가 와서 책에 체한 듯한 느낌이 들면 난독증 같은 현상이 오는 증상. 저도 한 번씩 겪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인가?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지고, 나를 의심하게 되고...나중엔 당분간 손을 놓게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독서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요ㅋㅋㅋ
근데 한 번씩 찾아오는 난독증은 가장 힘든 권태기인 것 같아요ㅜㅜ
그래도 미미님은 권태기를 잘 극뽁하시는 것 같아요^^

청아 2023-02-24 07:51   좋아요 3 | URL
감정도 습관이라던데 이것도 그런걸까요? 종종 오네요. 저도 어떤 책이 시작이었던것 같고 (용의자 아닌 용의책이 있음ㅋ) 그게 다른 잡념으로 이어져서 뭘 읽어도 눈에 안들어왔어요 이 책 저 책 읽다 만 책이.... 불면증에 책을 읽을 수 있음 딱인데 말입니다 하필ㅋㅋㅋㅋ 나무님 공감해주시고 ‘극뽁‘이라 해주시니 잘 털어내고 싶어집니다^^*

기억의집 2023-02-24 0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욕심은 많은데.. 유튭을 보면서 집중도가 떨어지긴 해요. 예전에는 하루 종일 책 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유튭과 인스타 릴스 보고 앉아 있더라고요….

청아 2023-02-24 10:45   좋아요 1 | URL
아 제 경우는 그런의미에서 드라마 시리즈 한번에 쭉 본 영향도 있나봐요! 영상 볼때 뇌가 책 읽을 때 뇌의 상태가 다르니 말입니다. 완결 된건 궁금해서 몰아 보곤 하는데 이걸 고쳐야겠어요!! 유튭은 취향대로 영상이 뜨니까
빠져들기 쉽더라구요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2-25 23:33   좋아요 1 | URL
조금 전까지, 유튜브로 신해철님 영상 샅샅이 훑고 온 저는 뜨끔...

내일은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지만, 대출해온 책의 10%정도만 완독한 지라..

욕심에 비해, 스크린 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제 문제 같아요.
미미님처럼 불면도 함께 오고...

청아 2023-02-26 09:26   좋아요 1 | URL
저도 대출한 책들 빨리 안 읽어서 기간 연장도 하고 그러다 그냥 반납하기도 해요ㅋㅋㅋ

영상 시청이 길어지면
독서력은 확실히 떨어지나 봅니다.

알라님 저랑 함께
영상 시청은 줄이고 책으로 돌아가시죠^^*

다락방 2023-02-24 09:35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독서는 어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비슷한 의미로 그래서 책과 내가 만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아무리 사놓고 쌓아두어도 안만나게 되는 책들도 있고 어떤 책들은 지금 당장 서점 가서 사가지고 읽게 되기도 하고 또 묵혀둔 책들 중에서 먼지를 털고 읽게 되는 책들도 있고요.

독서에 집중이 안된다면 그건 또 그럴 때인게 아닌가 싶어요, 미미 님. 그 때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다시 또 막 읽고 싶어지는 때가 오고 그러는 것 같아요.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 제 책상이 이렇게 지저분한건지도 모르겠네요...

잠자냥 2023-02-24 09:47   좋아요 3 | URL
응.

햇살과함께 2023-02-24 10:45   좋아요 2 | URL
ㅋㅋㅋ 한방에 끝내는 자냥님.

다락방 2023-02-24 10:48   좋아요 3 | URL
쳇!

청아 2023-02-24 10:53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은 역시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세요~♡♡
제가 책과의 관계에 아직 서툰 시기인가봐요ㅋㅋㅋㅋ
인간 첫 사랑 아니 두번째 사랑과도 그래서 실패했는데!!ㅠㅠ 여기에도 적용되네요? 이 사람..아니 이 책을 그만 놓아주어야 하나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잠자냥님// 티키타카 너무웃깁니다ㅋㅋ은근 츤데레이심!ㅋㅋㅋㅋ

그레이스 2023-02-24 17:42   좋아요 1 | URL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요^^

레삭매냐 2023-02-24 1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오는 족족 사지만 다 읽은
책은 하나도 없다는.

그랬다고 합니다.

청아 2023-02-24 10:56   좋아요 4 | URL
하...저도 그렇습니다
이곳이 문제예요ㅋㅋㅋ

다음달 구매할 책도
벌써 정해놨다고 합니다
🤦‍♀️🤦

stella.K 2023-02-24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인세대신 책 100부라니!
그럼 나중에 제대로 계약을 갱신했을까요?
이래서 에이전시가 필요한 것 같은데 억울한 일이 없었는지 모르겠어요.
책 읽어보고 싳긴하군요. 제목도 근사하고.
나이들면 집중력이 떨어지긴 하죠.
조금이라도 뇌가 싱싱할 때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할 것 같긴한데
그게 날마다 꿈깥은 일이긴 해요. ㅋㅋ

청아 2023-02-24 14:48   좋아요 2 | URL
자신의 글에 그만큼 확신이 없었던 거겠죠?
그래도 덕분에 길이 열렸고 독창적인 필력도 인정받았으니
괜찮은 것 같아요. 이야기는 꿈을 풀어낸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한 구석이
많아요. 그런데 인상적인 문장들이 때로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까지 이어져서
감탄이 나온답니다. ^^*
나이든 탓일까요? 학교 다닐때도 집중력이 그닥 좋진 않았는데
요즘은 확실히 양상이 다르긴 합니다.ㅋㅋㅋㅋ
맞아요!! 뇌가 조금이라도 싱싱할때!!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2-24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어제 진작 이 글을 읽었는데 답변이 늦었습니다^^;
저도 2023년 들어와서 뭔가 정체기 같은 느낌이 들어요ㅠㅠ 저 스스로 좀 덜 집중하는 느낌이라 내가 너무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항상 생각하는 겁니다만 스스로에게 가장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저는 미미님께서 여전히 열읽기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좋아서 몇 번이고 읽었어요. 미미님 때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읽었던 책 또 읽는 것도 좋은 듯 싶습니다. 아니면 아예 만화를 봐도 좋구요. 저는 좋아하는 만화책 시리즈가 집에 있는데 가끔 또 읽고 또 읽고 합니다. 그러면 기분 좋아지더라구요!ㅎㅎ

청아 2023-02-24 18:11   좋아요 1 | URL
저도요! 부끄럽지만 이런 상황을 끄집어 내니 좋은 말씀들을 해주셔서
원인 찾는데 도움이 되었네요^^* 어디선가 자기에게 기대가 높은 사람은 남들에게도 기대가 높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듣고도 적용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독서 정체기를 겪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쉼을 얻게 되고 되돌아보게되어 좋네요. 다시 읽으면서 기분 전환이 되었어요!
만화도 좋지요ㅋㅋㅋㅋ 다정한 말씀 감사해요 화가님.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세요~♡
 

아, 그때 내가 느끼는 건 연민이다.
연민은 내 방식의 사랑이다. 내 방식의 증오이고 소통이다. 어떤 사람은 욕망으로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살아가듯, 세상 속의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연민이다.  - P28

그녀는 어릴적의 욕망 - 힘 - 기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공식은 연거푸 되풀이되었다. 어떤 걸 소유하지 않고 느끼기.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가볍고 순수한, 공복의 상태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건 마치 날아다니면서, 그러니까 발아래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지극히 소중한 것을, 이를테면 한 아이를 품에 받아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게임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조차느끼지 못했다ㅡ그럴 때면 자신이 자신의 모든 생각들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두려워졌다. 그녀는 바다를 원했고 침대 시트를 느꼈다. 하루가 흘러가고 그녀는 홀로 뒤에 남겨졌다. - P29

그녀는 멍하니 누군가를 떠올렸고ㅡ틈새가 벌어진 커다란 치아와 속눈썹 없는 눈ㅡ
자신의 독창성을 확신하던 그 누군가는 진지한 어조로이렇게 말했었다. 내 삶은 엄청난 야행성이야. 그는 그말을 마치고는 거기 그냥 한밤중의 소처럼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그는 가끔씩 아무런 논리도, 목적도 없이머리를 까딱이다가 다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는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아, 그래, 그남자는 그녀의 어릴 적 기억 속에 있었고, 그와 함께 떠오르는 건촉촉이 젖은 제비꽃 무리, 지천으로 피어 떨리던…………. - P30

그건 아주 작은 열기였다. 만일 죄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과오였으며, 그녀는 헛된 존재였다.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는 어디 있었을까?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이었던 여자들은 어디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어렸을 때 시작한것들은 무엇을 통해 지속돼왔을까? 아주 작은 열기를통해서. 그 지난 날들이 맺은 결과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똑같은 대상을 거부했다가 사랑하기를 천 번쯤반복했다. 어둠과 정적 속에서 보낸 그 밤들, 높은 곳에서 반짝이던 작은 별들. 그녀는 주의 깊은 시선을 머금은 채 어스름 속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흐릿한 흰 침대가 어둠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피로가 그녀의 몸으로 스르르 기어들고, 맑은 정신은 그 문어를 피해 달아났다. 너덜너덜한 꿈들, 환상들의 시작, 오타비우는 다른 침실에서 살고 있었다. 기다림이 가져다주던 나른함은 갑자기 응축되면서 빠르고 초조한 몸동작으로, 침묵의 외침으로 변했다. 그 다음엔 추위가, 그리고 잠이. - P31

어떤 것들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 P45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았고, 그 모든 순간들이 어떤 고난, 혹은고통스러운 경험의 정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들에 감사해야 했다. 마치 자신의 바깥으로 벗어난 것처럼, 초연한 태도로 시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 P47

눈을 반쯤 떴다. 저 아래에 바다가, 양철의 물결처럼 반짝거리며, 깊고, 거대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짙은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이며 제 몸을 휘감았다. 바다는 고요한 모래밭 너머에, 사지를 뻗고 누워있었다…………. 살아 있는 몸처럼 누워 있었다. 잔물결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바다. 바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조용히 말했다. - P55

음악의 특정한 순간들, 음악은 생각과 같은 범주에 속해서, 이 둘의 진동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음악은 생각처럼 몹시 내밀해서, 그것은 들려올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를 드러냈다. 그것은 생각처럼 몹시 내밀해서, 누군가가 그 소리가 지닌 약간의 뉘앙스라도 흉내 내면, 주아나는 어느새 그 음악이 침범당하고 흩어진 느낌을 받고는 놀라곤했다.  - P65

그녀는 희미하게 깨달았다.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더 자유로워지고, 모든 것들에게 더 많은 화가 났으며,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너무도 강력한 사랑이어서 그 열정은 증오의 힘으로밖에 억제되지 않았다. 이제 난 혼자있는 독사야. 그녀는 선생님과의 관계가 진짜로 끝났음을, 그런 대화를 나눈 뒤에 그를 다시 찾아갈 수는 없음을 상기했다 - P94

꿈들은 나를 무의식의 늪에 빠뜨리는 현실보다 더 완전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뭘까?
사는 것? 아니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아는 것? 몹시도 순수한 말들, 작은 크리스털 방울들. 나는 촉촉이 반짝이는 형상이 내 안에서 뒹구는 것을 느낀다.  - P107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고갈된 걸 알았고, 처음으로 고통받았다. 자신이 진짜 둘로 쪼개졌기 때문이었다. 쪼개진 두 부분은 서로를 마주했고, 그녀를 응시했으며, 쪼개져나간 상대가 더 이상 줄 수 없는 것들을 소망했다. 사실 그녀는 늘 둘이었다. 그녀가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아는 하나와, 실제로 심오하게 존재하는 하나. 단지 그때까지는 그 둘이함께 작용하면서 구분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이제그녀의 존재를 인식하는 한쪽이 단독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그건 그 여자가 불행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뜻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지어내려고 생각을 해보려고,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소용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사는 법밖에 몰랐다. - P120

그녀는 삶 혹은 죽음이라는 본질을 위해 태어났으니,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은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 P121

무엇보다도, 그 여자는 삶을 이해한다. 삶을이해하지 못할 만큼 지적이지 못하니까. 논리적 사고가 무슨 소용인가…………. 설령 도중에 미쳐 버리지 않고삶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그 앎을 지식으로 보존하기란불가능하다. 삶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앎을 하나의 태도, 삶의 태도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토대를이루는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게너무 적었다 - P122

그녀를 이토록 불타게 하는 건 무엇일까? 권태…
그래,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는불이 있었다. 그 불은 심지어 그것이 죽음을 뜻할 때에도 거기 있었다. 어쩌면 이게 삶의 기쁨인지도 몰랐다. - P127

그녀는 다시 작게 되뇌었다. 그녀는 기도가 자신을 구해 줄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고통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 같은 구제책 모르핀처럼 효과를 보려면 계속 복용량을 늘려야 하는 구제책. 아니,
그녀는 고통을 발견하고, 견디고, 그 안에 있는 신비를다 파헤칠 수 있도록 완전히 소유하기를 원했지, 비겁하게 기도를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완전히 지치진 않았다.  - P128

자기 바깥에 있는 신을 찾지 않으면 결국 자연스러운 경로에 따라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자신의 고통을 탐색하고,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고, 자기가 떠올린 생각들 속에서 피난처와 따스함을 찾게 될 터였다.
예술 작품이 되기를 열망하며 태어났지만 결국 흉작기의 반쯤 상한 음식 노릇을 하게 되는 생각들 속에서 아니면 아예 고통 속에 자리를 잡고 그 속에서 자신을 체계화할 위험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악이요 신경 안정제가 될 터였다. - P129

"그래, 난 알아" 주아나가 말을 이었다. "감정과 말의 분리. 이미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어. 가장신기한 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이 오면 내가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느꼈던 게서서히 내가 말하는 걸로 변해 간다는 거야. 아니면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건 내 느낌이 아니라 내 말들이라고. 그건 정말 확실하다고." - P151

그녀는 너무도 육체적이었으므로 순수한 정신이될 수 있었다. 그녀는 형태 없는 상태가 되어 사건들과시간들의 틈바구니를 순간의 가벼움으로 빠져나갔다.
- P154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그녀는 자신을 더발견하기를 갈망했다. 이제 그녀는 강하게 자신을 불렀으며, 숨 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행복이그녀를 지우고, 또 지웠다………. 벌써 자신을 다시 느끼고픈 마음이 들었다. 설령 고통이 함께 하더라도. 하지만 그녀는 깊이, 더 깊이 가라앉기만 했다.  - P159

단 한 가지 익숙해지지 않은 건 잠뿐이었다. 잠은하나의 모험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생활이 머물던 편안한 명확성으로부터 어둠을 가로지르며 추락하는 일이었다. 매일 밤, 늘 똑같은, 어둡고 서늘한 신비 속으로 죽었다가 새로 태어나는. - P159

난 그를 떠날 거야, 그녀는 다시 되뇌었고, 이번엔 그 생각에서 가느다란 실들이 뻗어 나와 그녀에게 연결되었다. 이제부터 그 생각은 그녀 안에 머물 거였고, 그 실들은 점점 더 두꺼워져서 뿌리를 형성할 터였다. - P177

"그래서 고통을 겪은 시인들의 시는 달콤하고 다정하죠. 반대로 불우한 삶을 산 적이 없는 시인들의시는 고통으로 불타오르고, 저항적이죠." - P181

그, 이 남자 숨겨진 원천에서솟구친 불안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밀려들었고, 모든세포들을 채웠고, 그녀의 비참한 고독을 침대 아래로밀어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후, 그녀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며, 숨을 헐떡거리며, 굴복의 부드러운 기름이 온몸에 부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마침내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 P213

나는 고통이 오케스트라가 내지르는 비명처럼 터져 오를까 봐 늘 두려워해 왔었다. 내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아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 P246

"그건 천사의 눈물같은거야. 천사의눈물이 뭔지알아? 작은 수선화의 한 종류인데 아주 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굽지. 랄랑드는 밤바다이기도 해.
아직 아무도 해변을 보지 않았을 때의 바다, 아직해가 떠오르기 전의 바다. 내가 ‘랄랑드‘라고 말할때마다 당신은 시원하고 짭짤한 바닷바람을 느끼고, 아직 어둠에 싸인 해변을 천천히, 벌거벗고서걸어야만 해. 그러면 곧 랄랑드를 느낄 거야………….
내 말을 믿어. 나는 바다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 중하나니까." - P271

그녀는 말할 때, 미친 듯이, 미친 듯이지어냈다! 텅 빈 공간만큼 거대한 충만함이 그를 가득채웠고, 그의 고통은 수면 위에 펼쳐진 드넓은 공간처럼 선명해졌다. 왜 그는 늘 그녀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달빛에 잠긴 하얀 벽처럼 망연해지는 걸까? 아니면, 어쩌면 그는 갑자기 깨어나서는 소리칠 수도 있었다. 이여자는 누구지? 이 여자는 내 삶에서 버거운 존재야!
난 도저히………… 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그는 갑자기 겁에 질렸고, 길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 P272

그녀는 자신에게 저주였던 그 이상한 자유, 그녀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연결시켜 준 적이 없었던 그자유야말로 자신의 본질을 밝혀 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영광의 순간들이 거기에서 나오고, 미래의 모든 순간들 역시 거기에서 창조된다는것도 알아차렸다. - P316

프로푼디스….....자신의 말을 들어!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가볍게 춤추는 저 덧없는 기회를 잡아. 데 프로푼디스, 의식의 문을 닫아. 처음엔 썩은 물을, 어지러운 말들을 지각하지만, 그다음엔 그 혼란 속에서 순수한 물줄기가 거친 벽을 타고 떨리며 흐른다. 데프로푼디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첫 물결이 다시 밀려들게해 데 프로푼디스………….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어렴풋한 그늘만 보일 뿐이었다. 생각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희미하고 붉은 윤곽을 지닌 가늘고 움직임 없는형상이 보였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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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3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밤중의 소처럼 조용히 앉아 있다....
이 부분 맘에 드는데요?

문체가 좀 읽기 힘들거 같긴 한데 궁금한 책이에요 :)

청아 2023-02-23 14:29   좋아요 1 | URL
응?ㅋㅋㅋㅋ수하님 은근 재밌으심요~♡ 다 읽었는데 밑줄 친 부분만 다시 보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난해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문장들이 한번씩 나와서 이틀만에 읽었어요🤭

건수하 2023-02-23 14:31   좋아요 1 | URL
그녀는 바다를 원했고 침대 시트를 느꼈다…

이런 문장도 재밌네요. 역시 읽기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

청아 2023-02-23 14: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시적인 분위기예요 전반적으로 독특해서 추천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리스펙토르의 책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요^^*

2023-02-2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2-23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작년 가을에 나오자마자
샀는데 여적 안 읽고 있어서
오늘 가방에 넣어서 개지구
왔는데... 반갑네요.

청아 2023-02-23 16:54   좋아요 2 | URL
아아 매냐님 지금 갖고 계시군요! 개성 있는 작품인데 독후감을 쓰기 힘드네요. 지난 25일에 또 한권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

페크pek0501 2023-02-24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것들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 P45
: 없을 것 같습니다. 공짜는 없는 법. 대가는 치르게 되어 있는 법...이라고 봅니다.

청아 2023-02-24 14:52   좋아요 2 | URL
네!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당함을 다시 확인하네요.
이런 말 꽂힙니다. 되도록 덜 소유하기에 관심이 가는건 소유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