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에 읽은 이리가레의 ‘하나이지 않은 성‘은 여러모로 어려운 책이었다. 특히 거울,고체,액체...같은 은유가 등장해 당황스러웠는데 함께 읽은 다른 분들도 아마 비슷한 구간에서 힘들었을것 같다. 이 책 ‘뤼스 이리가레‘는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안내서‘로 나온만큼 해당 인물의 저서, 그 중 핵심키워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있다. 이리가레가 말한 거울에 관해서 설명이 나와있어 함께 읽은 분들과도 공유하고 혹시 관심있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해당 내용을 올려본다.

이리가레의 ‘반사경‘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거울의 은유와 여성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옷매무새는 괜찮은지 살펴볼 때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물 대하듯이 객관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나 자신의 객관화라는 점에서, 거울은 서구 담론에서 중요한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 지성적 사고를 이르는반성(réflexion)이나 사변(spéculation)이라는 말에는 이미비추어 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근대에 들어 서양철학에서 거울은 주체가 자기 자신을 두 개로 나누어 객관화된 ‘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반성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 P2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이론에서 거울은이보다 훨씬 더 핵심적 의미를 띤다. 라캉이 인간의 주체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틀에서, 거울 단계는 아이가 마침내 자기 동일성을 획득하고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극복하여 상징계로 진입하는 드라마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하나의 전체로서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의
‘조각난 몸의 환상은 거울 단계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극복된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통해 아이는 자기 신체의통일성을 이해하게 되고, 그전까지는 완전한 합일의 상태라고 믿었던 어머니와 자신을 구별하게 된다. 아이가 거울단계의 막바지에 찾아오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무사히극복한다면, 이제 아이는 법과 질서와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로 들어가 말하는 주체, 욕망의 주체가 된다. - P3

여기서 거울의 역할은 자아의 신체 이미지를 제공해 주는 데 있다. 주체의 통일된 신체 이미지는 상상계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며, 상상계는 주체가 상징계 안에서 통일성,
조화, 자기동일성을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남자아이의 이야기, 남성 주체의 오디세이다. 어째서인가?
이때 신체의 통일된 형태를 반사해 주는 거울이 평면거울이기 때문이다. 평면거울이 반영하는 이미지는 남성 신체의 이미지다. 왜냐하면 "편평한 거울은 하나의 구멍‘을제외하고 여성들의 성 기관 대부분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Irigaray, 1974:109, note 122). 여성과 남성의 나신을 표현한 조각상이나 회화를 떠올려 보라. 남성의 것과 달리 여성의 성기는 머리카락이나 나뭇잎 따위로 가려져 있거나, 드러나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재현에 실패한다.
여성의 성 기관은 하나가 아니며 바깥쪽에도 있고 몸 안쪽에도 있기 때문이다. 평면거울이 비출 수 있는 것은 바깥에위치한 성기뿐이며, 그나마도 거울 앞에 선 채로는 드러나보이지 않는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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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30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ↀωↀ<)
응원 ฅ🐾

미미 2021-11-30 23:37   좋아요 3 | URL
스콧님 이모티콘 냐옹이 소리가 들립니당(ᴗ̤ .̮ ᴗ̤ )₎₎ᵗᑋᵃᐢᵏ ᵞᵒᵘෆ

그레이스 2021-11-30 2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런 의미에서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은 라깡의 관심을 끌만했죠
실제로 라깡이 그림을 샀다고 해요

미미 2021-11-30 23:44   좋아요 4 | URL
엄훠 😳 검색하니 바로 나오네요!!! 적나라하군요! 라깡이라고 써주시니 너무 귀엽습니다~♡ 라깡 책 빨리 주문해야겠어요!

새파랑 2021-11-30 23: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밑줄만 읽어도 전 어려워요 😅 이런책을 읽으시는 미미님 대단~!!

미미 2021-11-30 23:58   좋아요 4 | URL
‘하나이지 않은 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집니다ㅋㅋㅋ😆

mini74 2021-12-01 0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슨 드라마였는지 영화였는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다 다친 에피가 생각나요. 그러고보면 한 번도 제대로 대면해본 적이 앖는 것 같아요. 거울이 이렇게 해석이 되는군요. 전 그저 여성상징기호가 거울, 허영 나르시즘 뭐 이런식? 이었는데 객관화된 나를 본다는 것 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있둔요. 넘 잘 읽었어요 미미님 안녕히 주무세요 *^^*

미미 2021-12-01 00:22   좋아요 3 | URL
뒷부분에 남성들의 나르시즘의 의미도 있는데 너무 복잡해서 안넣었어요
거울에 관해서는 속설도 괴담도 많은게 이런 이유들 때문인가봐요ㅎㅎ미니님도 굿밤되세요~🙆‍♀️

책읽는나무 2021-12-01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울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던데...평면형 거울은 남성의 시선과 성기 남성의 관점을 비춰주고,입체형 거울 또는 반사되는 거울은 반대로 여성의 시선,몸,관점을 비춰주는 것...제대로 해석한 게 맞는 건지? 책을 읽었어도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네요?ㅋㅋㅋ
이해하기 쉽게 나왔다고 하셔도 읽어 보니 이것 또한 쉽지 않네요..ㅜㅜ
문해력이 참.....ㅋㅋㅋ

미미 2021-12-01 08:18   좋아요 3 | URL
어려운 책이었지만 거울의 그런저런 기능을 이번기회에 알게되어 큰 수확이었지않나 싶어요ㅋㅋㅋㅋ나무님 12월도 즐거운 독서생활 함께해요^^♡

수이 2021-12-01 0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사경은 지금 번역중이래요 12월에 안 나오면 내년에 나올듯요, 미미님의 부지런하고 꼼꼼한 독해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미미 2021-12-01 08:25   좋아요 1 | URL
오~타이밍이 좋네요! 미스터리를 캐네는 느낌이예요ㅋㅋㅋ비타님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1-12-01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 군데 어려웠지만 거울이 단연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어려워서 포기할뻔..ㅋㅋ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미미 2021-12-01 10:12   좋아요 1 | URL
여성을 표현한 액체도 좀 더 알고싶었는데 이 책에는 없는듯 해요ㅋㅋㅋ거리의 화가님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1-12-01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울 이미지는 여러가지로 변주되어 활용되지요. 예는 많겠지만 영화 블랙스완에서도 오페라의유령에서도 저는 거울 이미지에 매료되더군요. 전자는 여자, 후자는 남자의 거울인데 압도적인 이미지였어요 제겐.
미미 님의 정리 최고입니다*^^*

미미 2021-12-01 10:38   좋아요 2 | URL
아 블랙스완 좋아서 두 번 봤어요. 오페라의 유령에도 거울이 등장했군요! 이제 거울 나오면 더 눈여겨 볼 듯 해요.ㅎㅎ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오거서 2021-12-01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울을 보는 의미를 사유하고 해석해본 적이 없는데 미미님이 공유해주시니 거울, 이미지, 객관화, 욕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독서에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미미 2021-12-01 12:55   좋아요 2 | URL
이 부분 읽고 좋아서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오거서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쁩니다^^♡

공쟝쟝 2021-12-0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동영상인가 뭐시기 만든다고... 완전 하얗게 잊고 있었다.. 이리가레 페이퍼.... 써야하는데 (한숨...)

미미 2021-12-02 13:20   좋아요 0 | URL
쟝쟝님의 페이퍼 저도 기둘리고 있음요👍^^♡

페크pek0501 2021-12-02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시리즈도 좋군요. ^^

미미 2021-12-02 13:56   좋아요 1 | URL
지난번에 주디스 버틀러편 읽어봤는데 알기 쉽게 쓰여져 입문용으로 딱이예요.전부 사고 싶어요^^♡
 

이리가레가 철학자가 되기 이전 저서들은 정신분석학과언어에 관한 것이다. 그중 『치매환자의 언어(Le Langagedes déments)』(1973)는 치매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언어적기능의 주된 장애가 대화 상대자에게 적절히 반응하여 타자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반응을 낳는 주체적 발화 능력의상실임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이리가레는 남성 중심적인 상징 질서 내에서 여성의 위치가 바로 이와 유사하며,
훗날 자신의 주요 개념이 될 ‘성차‘가 언어 안에 존재함을예기치 못하게 발견하게 된다.
- P2

페미니스트 철학자로서 그녀의 학문적 삶이 크게 변화한 것은 1974년 철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반사경, 여성으로서의 타자에 대하여(Speculum. De lautre femme)』(이하 『반사경)를 제출하면서다. 논문 심사 과정에서 곤란을겪은 뒤 출간한 『반사경』은 기존 프랑스 학계에는 꽤나 당황스러운 텍스트였음이 분명하다. 이 저작은 서양의 사상적 아버지들인 수많은 남성 철학자들과 대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의 대상이 된 남성 이론가들의 목록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라캉도 포함되어 있었다(라캉을 위한 장을 별도로 마련하거나 직접 언급하지는않았지만, 라캉의 방식으로 해석된 프로이트를 독해하고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리가레는 정신분석학이 성차에무지하고 무관심한 남근중심주의 담론이라고 날카롭게비판한다.
- P3

이 일련의 사건은 이리가레가 특히 초기 저서에서 보여주듯이 상징 질서에서, 무엇보다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담론을 자처하는 철학에서 여성의 관점과 목소리가 어떻게 배제되고 삭제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 P3

『반사경』과 『하나가 아닌 이 성(Ce sexe qui n‘en est pasun)』(1977)으로 대표되는 첫 단계는 비판의 시기다. 여기서는 서구의 자기중심적이고 단성적인 남성 주체가 세계를 구축하고 이해하며 해석해 온 방식을 분석하고 타자인여성의 관점에서 이를 비판한다. 특히 『반사경』은 철학의주체 개념이 다른 모든 타자들을 남성적 주체와의 관계로환원해 버린다는 것을 폭로한다.
- P4

그에 비해 이리가레의 글은 난해하다. 정신분석학, 철학,언어학의 개념들과 사상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기때문만은 아니다. 이리가레에게는 글쓰기 양식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철학적 전략이자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촘촘한 논리적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끝없는 의문문과비약이 있고, 주어와 술어가 문장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대신 시적 표현이 난무한다. 자기가 대결하고 있는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분쇄하여 ‘그의 말과 그녀의 말을 뒤섞어 놓음으로써, 어디까지가 남성 주체의 언어이고 어디부터가남성의 타자로서 여성의 메아리인지, 혹은 이리가레 자신의 주장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글쓰기 전략을 엘리트주의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이리가레의 글쓰기 스타일은 중성적인 인간주체를 자처하는 남성 주체성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단일한 주체의 말에 적극적인반대 주장을 대립시키기보다는 질문들을 쏟아 냄으로써,
이리가레는 남성 주체의 단단한 동일성에 금이 가게 하여대화가 가능한 간극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 P9

장르는 글의 맥락에 따라 어떤 때는 젠더로 번역될 수 있지만 대체로 문법적 성의 의미를 품고 있으며, 환원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성적 차이를 가진 두 성을 지시할때 사용된다. 즉 사회문화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구성된 것으로서의 젠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새롭고 낯선 용어와 언어유희는 이리가레의 글을 면밀히 살핀다면오히려 그녀의 문제의식과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역할을 할 수 있다.
- P11

존재론적인 차이로서 성차 개념은 섹스, 젠더 이분법에대한 반성을 고무했다. 비판적 무기에서 어느새 불가침한강령처럼 되어 버린 페미니스트들의 반(反) 본질주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게 되었다. 성들 사이의 차이는 섹스와 젠더라는 이원화된 지대를 넘어 생물학, 자연, 욕망,
무의식, 언어와 상징 질서가 복잡하게 또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생성 중인 것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정치학과 인식론에 집중되어 있던 페미니스트 이론은다양한 층위와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자신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할 가능성과 그 실제 사례를 갖게 되었다.
- P12

여성 철학자로서, 또한 페미니스트로서는 드물게 별도의 학회(이리가레서클(The Irigaray Circle)]가 만들어졌다.
는 데서 우리는 이리가레의 영향을 더욱더 실감할 수 있다.
흔히 철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 들뢰즈주의자처럼 한철학자의 사상을 따르는 학파가 형성되고 새로운 쟁점과개념들을 발굴하여 현대의 문제들과 연결 짓기 위해 고전을 반복하여 연구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고 태생적으로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기 때문인지 그러한 작업이 드물다. 반면 이리가레의 철학에 관한논문과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학회가 설립됐다는 것은이리가레 철학의 특수한 위상을 짐작케 한다.
국내의 경우 이리가레에 대한 대중적 수용은 과거에 비해 감소했지만, 전문 연구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성철학 혹은 페미니스트 철학이라는 분야가 철학연구자에게도 그 이름조차 낯선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극소수이긴 하나 전공자도 조금씩 불고 있고, 더불어 여러분야에서 이리가레에 대한 연구도 늘고 있다.
- P13

반사경


이리가레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의 동일성을보장하기 위한 거울 역할을 한다. 남성은 여성을결핍된 존재로 설명함으로써 남성 자신의동일성과 우월함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이리가레는 남성 중심적 담론에서 여성이어떻게 타자가 되고 배제되는지 폭로한다.
반사경은 여성을 타자화하는 남성 담론을 비춰보여 주는 거울이자 여성의 입장에서 세계를분석하기 위한 도구이며, 나아가 여성의 거울역할을 동요시키고 여성 자신을 재현하기 위한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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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나타난 계급의 첫번째 대립은 일부일처제 안에 있던 남자와 여자 사이의 대립의 발전과 일치하고, 최초의 계급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 -엥겔스'가족 사유 재산제,그리고 국가의 기원' p.105


인종차별은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보다 오래된 차별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이 사실은 더 명확해진다. 전쟁시(위기상황) 연합군에 타인종이 섞일 수는 있지만 여성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도 분쟁국가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즉 안보를 위협하는 적이 나타났을 때 다른 인종과는 연대할 수 있어도 여성과는 연대하기 힘들 뿐더러 오히려 여성의 성은 더욱 위협받는상황이 된다.(위안부는 그 중의 한 가지 사례이지. 전부가 아니다)  뤼스 이리가레는 이 세계의 역사와 규칙은 오직 남성들에 의해 쓰여졌으며 성(性)에 있어서도 오직 한 가지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머니 · 처녀 창녀, 이것들이 여자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들이다. (이른바) 여성 성욕의 특징들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즉 번식활동과 영양 공급에 대한 가치 부여, 정절, 정숙함, 무지, 게다가 쾌락에 대한 무관심, 남성들의 활동‘ 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소비자들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한 유혹, 그러나 자신은 누리지 않으면서 이 욕망에 필요한 물질적 기반으로 자신을 바친다. 어머니도 처녀도 창녀도 아닌 여성에게는 자기 쾌락에 대한 권리가 없다. - P242


이 세계에 중심된 성이 하나이기 때문에 철학과 언어,역사에 그런 남근중심적 규칙과 사고방식이 담겨있고 계승되어지고 있다. 남근중심주의는 여성의 쾌락에 대해서도 남성적 사고방식의 분석과 담론을 이어왔다. 정신분석학에서 대표적으로 이리가레는 프로이트를 예로 든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여성은 어린시절 남성과 동일했지만 발육을 거치며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상실감을 느낀다. 여성의 쾌락에 대한 설명이나 여성끼리의 동성애에 관한 시각에서도 마찬가지로 남근중심적이다. 그리고 그의 정신분석은 남성세계의 규칙과 일치한다. 


프로이트는 사실 어떤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그는 여성의 성욕도, 게다가 남성의 성욕도 완성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도로서 이해할 뿐이다. 문제는 그가 자신이 다루는 산물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결정되었는가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자기에게 드러나는 여성의 성욕을 규범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의 병적 상태가 사회적·문화적 상태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묻지 않은 채, 개인사에 따라 여자들의 질병과 증상 · 불만족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요구 사항을말하지 못하게 하면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자들을 아버지의 지배적인 담화에, 아버지의 법에 굴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P91


이리가레에 따르면 주체인 남성들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쾌락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들의 쾌락을 위한 쾌락으로만 측정된다. 그래서 여성은 그들과 함께하고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고 그들 사이에 교환되는 상품으로 존재한다. 착취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성 착취가 아직까지 많은 국가에서(전시상황이 아닌경우도 마찬가지로) 성산업으로 만연한 것도 그 단적인 증거다. ㅡ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성범죄도 여성이 그 대상이다. ㅡ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일부의 주장도 그런 배경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성범죄자를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는데도 성판매 여성들을 위해 성매매를 합법화하자고 말한다. 마치 이 여성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남성들의 성욕해소를 필수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유독 이 매매의 수요와 공급에서 공급자는 늘 여성이란 점이다. 




'성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신매매는 나쁘지만 '자발적인 성매매'는 괜찮다고 한다. 성착취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나쁘지만 '성매매' 자체는 괜찮다고 한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나쁘지만 성인의'성매매'는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성착취를 용인할 수 있는 성매매와 그렇지 않은 성매매로 나누는 것은 상업화된 성착취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위함이다. -성노동,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 박혜정. p.113


여성의 성폭력 피해나 남성의 '꽃뱀 피해'모두, 성의 주체는 남성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즉, 여성의 성은 여성의 몸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여성의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에서 폭력 ,매매,협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남성의 성은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ㅡ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p.175


사실상 성노동을 인정하자는 주장은 이렇듯 물화된 여성의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그것을 유지하자는 의미다. 이리가레는 쾌락을 중심으로 여성을 상품화하고 억압하는 지배적 담화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 남성편향적인 이 세계에서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언어, 역사, 담론, 거울, 심지어 쾌락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남성들이 고체라면 여성들은 액체로서 형태도 없이 흐른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 이리가레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비판한 뒤 학회와 대학에서 축출당했다. (여기서 비롯된 분노가 책의 후반부에 조금 담겨 있다.) 이런 지식인의 의견조차 묵살당하고 배척당하는 이 상황이 더욱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읽는 동안 해체적 접근법이 어렵고 난해해 힘들었지만 주디스 버틀러를 읽었던 경험 덕분인지 그래도 비교적 짧은 시일내에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소 강한 어조가 담겼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을 끌어내주었던 글이어서 좋았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라캉과 데리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도 공부할 필요를 느낀다. 


어떠한 쾌락인가? 누구의 쾌락인가? 누구와 누구 사이의 쾌락인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쾌락은 결코 관계 속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같은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스로 유일하다고 믿기 때문에 주인은 자기 중심적 쾌락을 절대자의 쾌락과 혼동한다. p.135




읽어볼만한 글 

https://femiwiki.com/w/%EB%A4%BC%EC%8A%A4_%EC%9D%B4%EB%A6%AC%EA%B0%80%EB%A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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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28 23: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은 오랫동안 그저 소비의 주채이면서 어리석고 순종적 존재, 아내는 정숙하며 자신들의 성적판타지는 직업여성에게란 남성위주의 2분법으로 억압당한 역사가 너무 긴 것 같아요. 미미님덕에 어려운 내용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미미님은 꼭 학교 다닐때 필기 잘하고 요점 요약에 설명 잘 해주는 그런 친구 같아요. ㅎㅎ

미미 2021-11-28 23:32   좋아요 4 | URL
아유 감사합니다 미니님 ^^♡ 근데 그건 저도 똑같이 미니님한테 느끼는거ㅎㅎㅎ 읽으면서 감동을 제대로 글로 옮기고 싶었는데 좀 한가지에 치우친것 같아요. 읽어봐 주셔서 감사해요ㅎㅎ

다락방 2021-11-28 2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미미님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근사하게 정리까지.
여성주의 책 읽을수록 제 안의 생각이 더 뚜렷해지고 방향도 잡히는 것 같아요. 미미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12월에도 만나요! 🙋‍♀️

미미 2021-11-28 23:36   좋아요 2 | URL
네! 다락방님 이런 훌륭한 책을 골라 주셔서 이번달도 넘 감사해요👍 다 이해는 못했지만 여러 대목들 앞에서 감동받았고 말씀대로 조금씩 길이 열리는 듯 해서 설렙니다. 다음달도 아자아자! ^^♡

그레이스 2021-11-28 23: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에 관한 내용은 제2의 성에서도 말한 것이네요.
내용을 보니 쉽진 않았을텐데 거기서 감동까지!
미미님 👍

미미 2021-11-28 23:47   좋아요 3 | URL
네!그레이스님! 특히 초반에 보부아르가 아른거리는 대목들이 나오더라구요. 나중에 재독시 좀 더 이해하게 되면 더 감동적일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1-11-28 23: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담론을 적어 주셨네요~~
지금에도 별로 변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위치에 대해 좌절할때가 많아요. 법의 테두리조차 너무 불공평해요~~
읽기 힘든 책, 읽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미미 2021-11-28 23:49   좋아요 4 | URL
네 그런 면에서 보다 적나라하게 핵심을 찔러주는 면이 있어서 읽으면서 조금 슬프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훌륭했습니다 감사해요 페넬로페님^^♡

난티나무 2021-11-29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짱!!!!!!!! 👏 👏 👏

미미 2021-11-29 07:54   좋아요 1 | URL
난티나무님^^♡ 감사해요!!!!👆

새파랑 2021-11-29 0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의 플래그와 밑줄 보니까 학자처럼 느껴집니다~! 이대로 박사논문까지 내셔도 될거 같아요 ^^ 이제 어려운 책도 금방 뚝딱 하시른 미미님 👍

미미 2021-11-29 08:0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감사해요 새파랑님^^♡ 좋았다는 걸 어필하려고 사진을ㅋㅋ 이해 못한 구간도 많았지만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11-29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워요~~~ 미미님 대단하세요. 입 쩍 벌린 채 히야~~ 이걸 다 소화해내고 반추까지 하다니. 별 다섯!!!^^

미미 2021-11-29 17:30   좋아요 1 | URL
솔직히 60프로 정도 소화한것 같아요ㅋㅋㅋ너무 어려운 부분은 그냥 눈으로 읽기만 했어요. 거울,액체,고체가 나오는데 영..ㅋㅋ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 위주로 써봤습니다. 감사해요😅✌
 


에밀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중에서 유일하게 해피엔딩인 작품이다. 지금의 백화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130년 전 파리의 화려한 백화점 모습을 디테일하게 펼쳐놓았다. 백화점은 여성들을 위한 소비무대다. 대부분의 그 안을 채우는 물건들이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으며 판매 상품 뿐 아니라 그 외의 눈부신 내부 장식들도 여성들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여성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이런 현상의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의문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특히 맥시멀리스트인 어머니 덕분에 미니멀리스트가 된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현상을 경계하는 편이다. (올해 책 구매 기록 때문에 좀 많이 찔리지만..) 남성과 달리 주로 가정에 속한 여성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꾸미는 것과 가정을 가꾸는 방향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더욱 사회적 진출이 막힌 상황에 놓였던 여성들은 그런식으로 자신의 미적인 감각을 뽐내며 존재를 드러내고 때때로 억눌린 욕망과 슬픔을 일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터키, 아라비아,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가 그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궁전을 모두 비워내고, 모스크와 바자르를 약탈이라도 해온 듯했다. 낡은 옛날 카펫들속에는 황갈색을 띤 금빛이 주된 색조를 이루고 있었고, 퇴색한 빛깔들은 불 꺼진 화덕의 잔해처럼 어두운 열기를 간직하고있었다. 나이 든 대가의 그림 속에서처럼 그윽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전해주는 색조들이었다. 태양과 해충의 나라에서 온 오래된 양털이 간직한 강렬한 내음이 너른 공간을 가득 메운 가운데, 야성적인 예술이 과시하는 화려함 뒤로 동양의 꿈들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P153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 둘을 떠안은 주인공 드니즈는 생존을 위해 파리에 상경한다. 하지만 그녀를 돌봐주기로 했던 큰아버지는 운영하는 실크매장 건너편에 생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때문에 사업이 위기를 맞은 상태로 이제 그녀를 도울 형편이 아니라고 말한다. 드니즈는 눈치가 보였지만 결국 큰아버지를 몰락시키고 있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게 되고 판매원들간의 극심한 경쟁과 시기로 꾸준히 괴롭힘을 받게 된다. 프랑스의 제2제정기 철로의 확장과 함께 급속한 산업화를 상징한 백화점은 이 작품에서 사장 무레의 끝없는 욕구로 거대한 몸집을 더욱 키워나가며 주변 상권들을 거침없이 삼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집과 거대 자본의 횡포로 경쟁에 밀린 소상공인들은 힘없이 짓밟히며 피를 흘린다. 이 괴물의 힘은 여인들의 끝없는 사치였고 무레는 이런 여성들의 심리를 꽤뚫어보고 있었다. 


여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레의 우아한 몸짓 뒤에는 여성의 살을 파운드로 떼어 팔고자 하는 유대인 상인의잔인함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여성을 위해 신전을 세우고, 수많은 직원들로 하여금 여성을 위한 향을 피우게 함으로써 새로운 숭배 의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자나 깨나 오직 여성만을 생각했으며, 끊임없이 더 효과적이고 강렬한 유혹의 방식을 생각해내기에 바빴다. P134 . 


백화점의 연이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남의 가정이 파탄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상인들을 오히려 백화점 확장의 걸림돌로만 여기던 무자비한 무레는 여성들과 방탕한 관계를 즐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호감을 느끼게 된 드니즈가 그를 계속해서 거부하자 재능과 열정으로 부를 쓸어모으던 삶에 점차 회의를 느끼며 그녀를 향한 욕망만이 상대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탐욕적인 백화점의 생리를 이어받아 서로를 물고 뜯는 백화점 내부의 판매 직원들간의 심화된 경쟁구도,외부의 쓰러져 가는 소상공인들의 모습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들의 면면을 오늘날과 비교하며 생각해볼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파리의 '봉 마르셰'를 모델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이는 사랑과 욕망의 상징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드니즈는 결국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단 한번 바람피우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무레의 급변이 어색했고 동생의 거짓말에 한없이 돈을 뜯기던 순진한 그녀의 갑작스러운 이런 승리도 조금 난감했지만 졸라의 완벽한 심리묘사를 따라 가느라 그런대로 재밌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 여전히 사는 게 즐겁나?" 무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즉시 이해하지 못했다.그러다 예전에 삶의 공허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의미한 고통에 대해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던 것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난 여태 지금처럼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적이 없었네. "오! 이보게 친구, 날 비웃지 말게나.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은 순간조차 더없이 소중한 거니까 말일세!" 그는 눈물이 덜 닦인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면서 애써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략)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거라면, 지루해서 죽는 것보다는 무언가에 미쳐서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나."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 P537


지금까지 에밀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중에서 '목로주점','제르미날','인간짐승'그리고 이번에 읽은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으로 총 4권을 읽었는데 완성도에 있어서는 '제르미날'과 '인간짐승'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궁금해 찾아보니 시기적으로도 이 순서로 이어지며 작품이 나날이 발전해 나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작품의 주요 인물인 사장 '무레'의 이전 이야기가 '살림'에 나온다는데 최근에 '집구석들'이란 새 이름으로 재출간 되어 사두었는데 무척 기대된다. 문학동네에서 '대지'도 번역되어 예약구매를 해두었는데 이번주에 집으로 올 예정이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루공 마카르 총서의 일부가 하루 빨리 발행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읽을 에밀졸라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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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09 19:17   좋아요 3 | URL
thkang님!항상 함께해주시고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12-09 2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미미 2021-12-09 21:33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설레는목요일입니다ㅎㅎ 굿밤되세요~😉

bookholic 2021-12-09 23: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12월 되세요~~

미미 2021-12-10 00:11   좋아요 2 | URL
네~감사해요ㅋㅋㅋ 북홀릭님도 행복한 12월 되세요!!😄

건수하 2021-12-10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에밀 졸라의 책이 이렇게 많군요!
급 궁금해집니다.

미미 2021-12-10 13:53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수하님!😆 안맞으시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들만큼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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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그이게 만들어주었던 모든 것이 이제는 그를 미치광이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최악의 연기로 무대에 서 있다는 걸 매 순간 의식했다. 예전에는 연기할 때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훌륭한 연기는 본능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 이제 그는 온갖 생각을 했고, 거침없고활력 넘치던 모든 것이 죽어버렸다. 그런 것들을 생각으로 통제해보려 했는데, 오히려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 P10

무대에 오르는 것이 두려워졌다. 시작신호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들으며 자신이 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시작되는 순간의 해방감과 진짜 그 인물이 되는 순간을 기다렸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자신이 연기하는 바로 그 인물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대신 완전히텅 빈 채,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를 때나 할 법한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 있었다. 그는 온전히 쏟아내지도 못했고, 자제하지도 못했다. 그의 연기에는 유려함도 없었고 절제도 없었다. - P12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누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에 그가 매료된 것은 서너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애초부터 자신이 연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연기력이 떨어지는 배우는 목청만 높이지만, 그는 주의 깊게 듣고 집중하는 힘을 활용했다. 무대 밖에서도 그의 그런 능력은 힘을 발휘했다. 특히 그가 젊었을 때,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그녀들만의 이야기와 목소리,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그가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여자들과 상대할 때 그랬다. 그 여자들은 액슬러와 함께 여배우가 되었고, 자신들의 인생에서 여주인공이 되었다.  - P12

그는 케네디 센터에서 푸로스퍼로와 맥베스 를 연기해달라는요청을 받았다. 두 편에 동시에 출연하다니, 이보다 더 대단한 기회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는 두 배역 모두 실패하고 말았는데, 특히 맥베스 역이 심했다. 그는 별로 격하지 않은 셰익스피어 작품도 잘해내지 못했고, 대단히 격한 셰익스피어 작품도 잘해내지 못했다. 평생 셰익스피어 작품을 해왔는데도, 그가 연기한 맥베스는 우스꽝스러웠고, 그의 연기를 본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으며, 보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까지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 사람들은 날 모욕하러 굳이 극장까지올 필요도 없는 거야." 그는 말했다.  - P13

무너져내리는 인물을 연기할 때 거기엔 체계와 질서가 있다.
그러나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지켜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연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일이다.
그는 스스로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자신이 푸로스퍼로 혹은맥베스라는 것을 납득시키지 못했듯 자신이 미쳤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그는 미치광이로서도 가짜였다. 그가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은 어떤 역을 연기하는 역할뿐이었다.  - P14

 아침마다 그는 몇 시간씩 침대에 숨어 있곤 했는데, 그런 역할에서 숨는다기보다는 단순히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에 대한 게 전부였지만, 자살을 흉내내지는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였으니까.
- P15

한편 푸로스퍼로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주 최근에 그가 완전히 망친 대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찌나 자주 되풀이되었던지, 완곡한 의미조차 없고 어떤 실재도 가리키지 않았음에도 그 대사는 얼마지나지 않아 개인적인 의미가 충만한 주문 같은 힘을 지닌 아우성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의 잔치는 다 끝났다. 말한 대로 이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다. 이제 다 흔적도 없이,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혼란스럽게 되풀이되는 "흔적도없이"라는 두 마디를 머릿속에서 도통 몰아내지 못한 채 아침 내내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 있었고, 그 두 마디는 점점 의미를 잃어가면서도 뭔가 모호한 비난의 분위기를 띠었다. 그의 복잡한전인격全人格이 "흔적도 없이" 라는 말에 완전히 휘둘렸다.
- P16

지금 무엇이 그의 자신감을 파괴해버린 걸까? 그는 이 병실에서뭘 하고 있는 걸까? 전에는 존재한 적 없는 자기 희화화가 생겨났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기 희화화, 그가 바로 자기 희화화자체인 이런 일이 어쩌다 일어났을까? 그저 흐르는 세월이 가져다준 쇠퇴와 몰락일 뿐인 걸까? 그저 노화의 징후일까?  - P19

파 박사는 매주 두 번있는 면담 시간에 액슬러에게, 박사 자신이 "보편적인 악몽"이라고 묘사한 증세가 갑자기 나타나기 이전에 액슬러의 삶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되짚어보라고 했다. "보편적인 악몽" 이라는 말은 곧, 이 배우가 극장에서 겪은 불운이, 즉 무대에 서긴 했으나연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실패에 충격을 받은 일이사이먼 액슬러처럼 전문 배우가 아닌 꽤 많은 사람들도 꾸는 스스로에 대한 뒤숭숭한 꿈의 내용이라는 의미였다. 무대에 서긴했으나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모든 환자가 한 번쯤은털어놓는 흔해빠진 꿈의 유형에 속했다. 그런 꿈과,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의 대로를 알몸으로 걷는 꿈, 혹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었는데 준비를 전혀 못한 꿈, 혹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 P20

고통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마련이다. 설사 그 설명이 무엇 하나해명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한 또하나의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는사실을 알더라도.
- P21

몇몇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자신을 엄습한 느낌이 사이코패스가살인을 저지를 때 느낄 법한 쾌감과 유사했다고 묘사했다. 한 젊은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한테도 주변 모든 사람한테도무기력하고 완전히 무능한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세상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하기 어려운 걸 실행하기로 마음먹을 수있어요. 그게 기분을 돋워주죠. 기운나게 해주고요. 행복감도 느끼게 해줘요."  - P23

 "자살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창작한 역할이에요." 그는 말했다. "우리는 그 글 안에 존재하면서 그 역을 연기하는 겁니다.
모든 게 신중하게 연출되지요. 자기 시신이 어디서 발견될 것인가, 어떻게 발견될 것인가."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단, 공연은 한번만 가능합니다."
- P24

"이보게." 제리는 말했다. "누구나 못하겠다‘는 느낌이 어떤건지 알고, 자신이 엉터리라는 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어떤 건지도 알아. 배우라면 다들 느끼는 공포감이야. 사람들이알아채고 말았어. 들켰어. 까놓고 말해 나이가 들면 한 번쯤 패닉에 빠지는 게 사실이네. 난 자네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여러해 동안 그런 문제를 겪어왔네. 그중 하나가 갈수록 느려진다는걸세. 모든 면에서, 읽는 것조차 느려지지. 내가 지금 뭔가를 빠르게 읽는다면 아주 많은 부분을 기억 못할 걸세. 말하는 속도도느려지고 기억력도 느려지지.  - P45

장서에 둘러싸인 채 그는 그곳에 앉아, 등장인물이 자살하는 희곡들을 떠올려보았다. 「헤다 가블러의 헤다. ‘영애令愛 줄리‘의줄리, ‘히폴리투스‘의 파이드라, ‘오이디푸스 왕‘의 요카스테,
안티고네 의 거의 모든 인물들,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 모두가 나의 아들의 조 켈러, 얼음장수 오다의 돈 패릿.
「우리 타운」의 사이먼 스팀슨, 「햄릿」의 오필리아, 오셀로의 오셀로, 「줄리어스 시저」의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리어 왕의 고너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안토니, 클레오파트라, 이노바부스, 차미언, 「깨어나 노래하라!」의 할아버지, 「이바노프의 이바노프, 「갈매기」의 콘스탄틴, 이 놀라운 목록은 한때 그가 연기했던 작품들만 꼽은 것이었다. 더 많았다. 훨씬 더 많이 있었다.
- P48

 자살은 기원전 5세기 이래로 극작가들이 경외감을 가지고 숙고해온 주제다. 이 대단히 예외적인 행위를 고취할 수 있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인간들이 매혹되어온 주제이기도 하고, 그는 이 작품들을 억지로라도 다시읽어봐야 한다. 그래, 소름끼치는 모든 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한다. 그 누구도 그가 이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다고 말할수 없도록.
- P49

그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던 일을떠올렸다. 그처럼 집중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은 오랜만에 연기를 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건 어쩌면 그가 회복되는 데도 도움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랬다, 그는 그녀를,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그녀가 남편을죽여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기억했다.  - P51

영화에서는 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돌아다니지만, 그런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는 관객의 99.9퍼센트가 사람을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그것도 없애버리고 싶어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 정도로 어렵다면, 상상해보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성공하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 P52

그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무적의 분위기를 풍겼고, 비록 원형은 선머슴 같은 말괄량이였지만, 배우인 어머니의 발성법을 본받기라도 한 듯 사람의 마음을 끄는 억양으로 말했다.
- P59

우린 늘 캠핑과 하이킹을 갔어요. 심지어 눈이 오는 날씨에도요. 매년 여름이면 알래스카 같은 데로 떠나 하이킹과 캠핑을 했죠. 재밌었어요. 뉴질랜드에도 가고 말레이시아에도 갔어요. 대담하게 전 세계를 함께 돌아다니는 게 난정말 좋았지만, 그런 우리에겐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어요. 우린 두 명의 도망자 같았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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