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나. 예측불가능한 나. 그런 내게 일어난 일을 글로 쓰려면 누구나 고민에 빠진다. 여러 갈래의 마음이 다투고 이때의 나와 저때의 나는 다르거늘 글로 쓰면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니 쓰기에 애매하고 쓰고도 찝찝하다. p.167. 쓰기의 말들. 은유



두 달에 걸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다 읽었다. 아니 오디오북으로 들었으니 다 들었다. 작년쯤 종이책으로 1권을 읽고 미뤄두었던 나머지 이야기들을 오디오북으로 끝낸거다. 오디오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로 듣다보면 종종 연관성을 찾기도 힘든 다른 생각으로 빠지곤했다. 집에서 앉아서 혹은 누워 들으면 잠이 왔다. 이 좋은 방법을 두고 수면제가 왜 있는걸까? '노인과 바다'를 오디오북으로 시도했는데 바다에 나가자마자 표류해버린 내 집중력은 헤밍웨이를 삼류작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나폴리 4부작은 달랐다. 야한 장면 묘사가 인상적이었다는 플친의 말에 듣기 시작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하필 그 장면이 시작되었는데 마치 스피커로 그곳에 울려 퍼지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렇게 성우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소설 속으로 나를 집어삼키는 듯 했다. 나는 릴라가 되었다가 레누가 되었다. 나폴리에서 가장 빈곤한 마을에서 싹튼 우정. 그들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였지만 질시의 대상이기도 욕망의 원천이기도했다. 



      





지금껏 릴라가 한 모든 노력은 결국 자기 형태를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물과 사람을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조종했는데도 액체가 범람하면 릴라는 스스로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그럴 때면 혼돈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그렇게나 활발하고 용맹한 릴라는 사라지고 겁에 질려 무無가 되고 말았다.p.24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릴라와 레누는 이탈리아의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청춘과 중년의 시기를 거쳐 노년을 맞이한다. 릴라는 고향마을에서 이웃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엔초와 함께 나름 성공적인 삶을 이룬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했음에도 여전히 똑똑한 그녀답게 IBM사에서 일하는데 대형 컴퓨터에서 점점 데스크탑으로 변모하는 기술을 선도한다.  레누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니노 때문에 뒤늦게 많은 것을 잃게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릴라와 관계를 회복해 고향 마을에 정착한다. 전후 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치상황, 68혁명, 테러리즘과 부패 추방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둘러싼 이탈리아 현대사는 등장인물들의 삶에 많은 굴곡과 슬픔을 안긴다. 특히 고향 마을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악한 행동을 일삼았던 솔라라 형제와 파스콸레같은 인물들의 삶은 작품에 역사성과 생동감을 더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1인칭 시점인 데다 화자인 레누의 직업이 작가인 만큼 무엇인가가 되려고 애쓰는 레누의 노력의 일환으로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제 1권에서 제3권까지는 작가로서 자리 잡기까지 레누가 매력적인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어린 시절 릴라가 쓴 '푸른 요정'과 사춘기 시절 릴라가 이스키아 섬에 있는 레누에게 보냈던 편지는 향후 레누가 글을 쓰는 기준이자 지향점이 된다. P.670.옮긴이의 말



나폴리 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등장인물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심리를 잘 풀어낸 부분이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막다른 길까지 고집을 부려 달리다가 후회라는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다. 관계의 꼬인 매듭을 풀고 인생이란 퍼즐의 답을 찾고 싶어 헤매지만 실마리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대립하지 않는 다층적인 인물들의 묘사는 그들에게 살과 뼈를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현실성을 부여한다. 바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고 살아갈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산다', '누구에게 내 인생을 건다'만큼 부질없는 말은 없을 거다. 자기 자신의 내일도 확신할 수 없는데 왜 타인에게 뭔가를 건단 말인가. 그저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현재를 살아내는 수 밖에 없다. 엘레나 페란테의 그런 디테일이 좋았다. 짠하도록 생생해서 읽는 내내, 듣는 내내 위로가 되었던 선물같은 소설이었다.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 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P.167. 쓰기의 말들.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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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12-08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디오북을 ‘노인과 바다‘로 시작했는데 언제나 이 소설은 어릴 때 보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오디오북으로 듣는 조각조각 흩어진 내용들로 남아 있어요. 조만간 완전한 소설로 만나야겠어요.
글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불안하면서도 나를 돌아보고 붙잡는 역할도 하기에 써야만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폴리 4부작 얼른 읽고 싶은데 ㅠㅠ

미미 2022-12-08 20:02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런면에서 갈수록 쓰고 싶긴한데 두려움도 있어요. 글로 표현한다는건 많은
의미가 있는것 같아요. 오해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고 비판받을걸 감안해야 하고
서툰 전달력을 계속 다듬는 노력등등요. 제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 페넬로페님처럼
위로가 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단 마음만 굴뚝같아요.^^*

scott 2022-12-08 21:39   좋아요 2 | URL
두 분의 글 저얼대로 서툴지 ! 않습니다!

정작 다듬어야 할 사람은 저 🖐^^

페넬로페 2022-12-08 22:21   좋아요 2 | URL
scott님, 무슨 그런 말씀을요!
항상 멋진 글만 쓰시면서요^^

미미 2022-12-08 22:54   좋아요 2 | URL
스콧님 글에 영향받아 제가 구입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덕분에 관심작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scott 2022-12-08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초 대형 히트를 치니
혹쉬 은둔의 작가의 개인적인 스토리가 아닐까!
이탈리아에서 마구 마구 소문의 연기를 피웠었습니다!ㅎㅎ

나라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데
나폴리 4부작 속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에 빙의가 ^^

페란테 이 작품 이외는 확실히 휘몰아치고 공감 되는 파급력이 떨어집니다 ^^

미미 2022-12-08 22:57   좋아요 1 | URL
이탈리아 사람들의 격정적인 감정표현, 열정적 삶 등은
우리민족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때때로 빙의되는 기분!!ㅎㅎ

다른 작품은 기대를 살짝쿵 내려놓고 읽어야겠네요^^*

책읽는나무 2022-12-08 2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연작 읽기 완독이 참 힘든데 몇 년 전 나폴리 4 부작은 몰입력이 상당하여 밤 늦도록 마구 읽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말 충격적였던 작품이었어요.
덕분에 이탈리아 남자들 다시 봤죠ㅋㅋㅋ
릴라와 레누!!!
시대의 격변기에서 릴라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모습들이 안타까웠어요.
릴라가 처음엔 좀 얄미웠었는데 나중엔 어쩌면 레누의 열등감이었었구나! 싶어 레누에게도 좀 연민이 생겼었구요.
에혀~ 또 생각하니 마음이 짠~^^;;;
근데 야한 장면이 있었나요?
기억이???? 🙄
도서관에서 울렸다면??ㅋㅋㅋ

미미 2022-12-08 23:06   좋아요 3 | URL
저도 나무님 점점 빠져들어서 나중에는 몰아서 듣느라 귀가 아플정도였어요ㅋㅋㅋㅋ
중간에 책을 모두 구입하고야 말았죠 이탈리아 남자들 니노 때문에 이미지가^^;;
이 책 추천했는데 친구도 릴라가 얄밉다고 했어요 저는 릴라에게 왜그리 마음이 가던지...
아버지가 창밖으로 던졌을때부터 그냥 모든 행동이 다 이해되고 안타깝고 그러더라구요.
나중에는 아무래도 레누에게 더 마음이 갔어요.
레누랑 안토니오 사귈때요. 윌*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로 들으니 몹시 야하고 두근두근 했어요(>.<)

공쟝쟝 2022-12-14 13:26   좋아요 2 | URL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릴라가 좋았어요.......... 레누는 좀 이해 안되었지만, 대학에서 느낀 소외감이나 엄마와의 관계 톺는 부분 좋았고.... 아무튼 좀 계속 좀 왜 저렇게 까지... 그래야 하는가? 이러다가 점점 합리화 너무 해대서... 니노와 헤어지게 되는 부분에서 고소하기까지 했어요 ㅋㅋㅋ
소설 끝낸지 오래되었는 데도 저는 릴라가 너무 아파요 ㅜㅜ 음... 페란테 나폴리 시리즈... 제게는 최고의 소설이었음. 미미님도 읽고 함께 울고 웃으셨을 거 같아. 기뻐요...

책읽는나무 2022-12-14 13:47   좋아요 2 | URL
전 어릴 적 릴라와 레누의 관계에서 뭐든 잘하는 릴라!! 그 옆에서 자존감 떨어지는 레누!!!
그때 레누에게 완전 감정이입했더랬죠. 어릴 적 예쁘고 완벽했었던 친구가 생각난 바람에~^^;;;
그래서 릴라를 좀 얄미워했었던...ㅜ
근데 커갈수록 릴라에게 푹 빠져 넘 안됐어서...ㅜㅜ
최고의 소설이라 할만해요.
넘 좋아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었는데 그 책 누군가 대출해 간 빈자리 확인하면 지금도 혼자 웃고 옵니다ㅋㅋㅋ

미미 2022-12-14 14:30   좋아요 2 | URL
릴라 인생이 페미니즘 그 자체죠. 본인은 인정 안하지만 살아간 방식도 페미니즘이라고 느꼈어요. 저에게도 최고의 소설! 인생소설입니다ㅠㅠ 얼마전 도전했다 실패한 <토지>보다 와닿았는데 그건 다음에 다시 재도전^^*

햇살과함께 2022-12-0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강렬한 두 친구 스토리. 재밌게 읽었어요~
오디오북 저도 잘 집중이 안되서(물론 눈으로 읽어도 집중력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일까요.

미미 2022-12-08 23:12   좋아요 2 | URL
저도 연극 배우들이 녹음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빼고는
오디오북을 끝까지 듣기가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걸으면서 상당히 몰입하고 들었어요^^*
이런 소설을 앞으로 또 만날 수 있을지! 레누와 릴라에게 여러모로 감정이입하면서
친근감을 느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듯 해요.ㅎㅎㅎ

새파랑 2022-12-09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은 종이책! 오디오북은 야해야(?) 집중이 되는군요 ㅋ 전 이 책 두께 때문에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책꽂이에 있는데 ㅎㅎ

미미 2022-12-09 08:34   좋아요 2 | URL
저도 두께의 압박 때문에 한동안 미뤄 두었어요ㅎㅎ
야함 덕?을 보고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면서 완독했네요 다 읽고 종이 책도 훑어봤는데 이제 애착이 생겼어요^^*

기억의집 2022-12-09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심요. 오디오로 이 긴 장편을… 오디오북은 한계는 있더라고요. 저도 주로 청소할 때 들었는데 이제는 정치 유튭 듣느냐고 윌라 구독 취소 했어요. 저는 소설 중에서 사랑이야기가 제일 싫은데.. 이 책은 이탈리아 역사와 공존한다고 하니 다시 보게 되네요. 사랑 이야기인 줄 알었어요!!

미미 2022-12-09 08:41   좋아요 2 | URL
저도 가끔은 빨래 정리하며 들었어요. 처음에 소요 시간을 보고 이걸 다 들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사랑은 일부고 우리가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많은 고민,관계, 감정을 다 담았어요. 대하소설ㅎㅎ
유튭 들을만한거 많죠^^*

다락방 2022-12-09 0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권을 정말 아프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야 했습니까, 작가님? 그 일을 꼭 넣어야 했습니까, 작가님? 이러면서 작가를 엄청 원망했어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말입니다. ㅠㅠ

미미 2022-12-09 09:50   좋아요 1 | URL
그 부분 충격적이었죠. 지진도 그렇고 의외였어요. 우리나라도 형제복지원같은데서 그랬듯이
당시엔 그곳도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을것 같아요. 릴라가 출산하지 않으려고 해서
의사가 당황했던게 복선이었나 싶더군요ㅠ.ㅠ

2023-01-0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미미 2023-01-07 16:2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많이받으시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미미 2023-01-07 16: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thkang님도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thkang1001 2023-01-08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남은 휴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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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 아이와 찍은 사진이 언론의 도마위에 올랐었다. 야당 의원이 해당 사진에 '빈곤포르노'라고 명명한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보수 쪽에서는 '포르노'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어 영부인을 모욕했다고 비난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맥락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의도적,혹은 비의도적) 문해력 문제로 읽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진정성 있다고 평가받은 다른 사진들이 함께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의 취재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져 있을 정도인데 영부인의 경우 나쁜 사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영부인의 행보가 과도하게 언론의 집중을 받는것은 또 하나의 문제로 보여진다.



'빈곤포르노 왈가왈부는 왜 국민모독인가'-시민언론 민들레 (<-관련기사 링크)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인간들의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었고, 이때 고통의 재현물이 더 이상 교훈이나 본보기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손택에 따르면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되어버리고, 이런 이미지를 보는 행위는 (의도했든 안 했든)일종의 관음증이라는 것이다. p.111


몇년전 손택의 책을 읽고 난 뒤부터 TV에 나오는 약자들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정부의 책임은 지우고 마음약한 개개인들의 선행에 그들을 떠맡기는것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모니터로 전시되는 상황. 그들의 몸이, 여건이 그렇듯 열악하지 않았어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방송을 보고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금액이 가득 채워지면 그만인걸까?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가혹한 폭력을 당하는 여성의 나체가 화폭에 담기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과리노가 그려낸 <성 아가타의 순교>에서 아가타는 "영원히 살해 당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 처해 있고, 영원히 학대 받고 있다." (이유리,P.114)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유린 당하고 있는 아가타의 몸'그 이상이 전해질 수 있을까?



'기울어진 미술관'에 이어 또 한 권 이유리의 책을 읽었다. 이 작가의 글이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그림 속에 감춰진 맥락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어떤 몸들은 록산 게이의 표현처럼 쉽게 공공의 영역이 된다. 예를들면 여성 화가는 너무 못생겨도 문제가 되고 너무 예뻐도 문제가 되었다. 지상파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나오자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에 까지 기사자료가 되었다. 물론 남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출연하는것은 기사화되지 않는다. 왜 남성작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요소가 여성작가에게는 논란이 될까? 남편에 의해 '판매되었던 여성', '머리를 잡히고 주먹질을 당하는 여성'과 같은 그림 속 재현은 여성들이 겪어온 삶의 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것들은 그저 과거의 유물로 남았고 또 어떤 것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몸이 언제쯤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Lee Krasner,1908~1984)에 대해 미술사학자 게일 레빈(Gail Lev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크래스너가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녀의 사망 후 몇몇 지인과 작가들은 크래스너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강조하곤 했다. 크래스너의 학창 시절 동료는 그녀가 지독하게 못생겼지만 스타일은 우아했다고 말했다." 크래스너의 남편이자 '액션 페인팅'의 대가였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012~1956)을 언급할 때는 "탈모가 있었지만 야성적인 매력이 넘쳤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성 예술가의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p.157




리 크라스너와 잭슨 폴락. 출처:블로그 A Mus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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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6 1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리 크라스너 평전 읽었는데
남편 폴락보다 예술적 재능이 더 뛰어납니다 ^^

미미 2022-12-06 18:23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스콧님은
평전도 읽어보셨군요! 몇몇 작품을 찾아봤는데
시선을 사로잡는 색감이 인상적이예요.*^^*

2022-12-06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6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터라이프 2022-12-06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계나 학술적인 전문 용어를 너무 과신하거나 과용할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인 측면에서도 인정된 용어의 뜻을 멋대로 왜곡하고 그 왜곡된 의미를 다수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도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세계 다수로부터 인정받는 민주주의 국가가 정부의 수반과 그 부인을 정상적으로 비판도 하지 못한다면 저기 아프리카의 어느 독재 국가가 자신들도 떳떳하게 민주주의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드네요. 대통령 부인이 무슨 성스럽고 성역의 존재는 아니잖아요.

미미 2022-12-06 22:38   좋아요 4 | URL
사회문제에 무지한 정부라는 사실을 매번 증명하고 있죠. 안타까운 점은 그런 억지를 곧이 곧대로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과도하게 언론이 여기에만 집중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더 중요한 다른 현안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2022-12-07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7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12-08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빈곤포르노에 표절 사진들 ㅠㅠ 이죠 구도나 옷차림부터 ㅠㅠ여성이란 이름이 붙으면 자연스레 외모품평이 따르는 거 참 ㅠㅠ

미미 2022-12-08 15:40   좋아요 2 | URL
주변에 직언해주는 사람이 없나봐요 어떤 관점은 시대가 변해도 더 공고해지는것 같아 씁쓸합니다ㅠㅠ

물감 2022-12-08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프사바꾼 기념을 핑계로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지내셨는지요🙂

미미 2022-12-08 18:31   좋아요 2 | URL
네 물감님 새로운 프사가 귀엽고도 매혹적이네요ㅎㅎ 물감님도 잘 지내시죠? 올려주시는 글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기억의집 2022-12-09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정부가 80년대안에 갇혀 있는 것 같어요. 대통령 영부인 법무부 장관 등등 저런다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들 저러는 걸까요!!!

미미 2022-12-09 08:50   좋아요 1 | URL
이분이 당선 되었을때 우리정치가 30년쯤 후퇴할꺼라고들 해서 불안했는데 단시간에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임기가 빨리 끝나면 좋겠는데 이건 시간이 안가네요. ^^;;
 



한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작가와 그의 작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미로를, 목적지와 출발지가 구별되지 않는 긴 순환로를 함께 걷는다. 그 길은 바로 고독이다.p.15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달간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2년 가까이 꾸준히 써오던 독후감인데 한 달이라는 공백은 '쓰기' 보다는 '쓰지 않기'에 적응하게 만들었다. 쓰고 싶지만 쓰고 싶지 않은 이중적 상태. 만일 전업작가에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떨까? 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 쓰지 못함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하는 고뇌만큼이나 고통스런 무엇이지 않을까? 마침 그 작가가 첫 작품으로 문학계를 뒤흔들어 흑인랭보라는 찬사까지 들었으나 표절논란등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자취를 감춰버렸다면?  그리고 해당 출판사가 그로인한 법적 소송으로 문을 닫았다면? 이후 그 작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표출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어갔다.



진정한 작가는 진정한 독자들 사이에 목숨 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진정한 독자들은 그래서 항상 전쟁 중이지. 부즈카시*에서처럼 엘리만의 시체를 빼앗기 위해 경기장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당장 꺼지는 게 나아. 가서 자기 오줌이 맛있는 맥주라 생각하고 허우적대다 죽어버리라지. 그런 인간은 딴 건 몰라도 독자는 될 수 없어. 작가는 더더욱 안 되고. p.18 (*말을 타고 죽은 염소를 빼앗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전통 경기)




1938년 T.C.엘리만이라는 세네갈 출신 작가가 '비인간적인것의 미로'라는 책을 출간한뒤 프랑스 문학계가 들썩인다. 백인이 주류인 문학계에서 흑인 작가의 두각은 추앙과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카루스와 같은 화려한 비상도 잠시, 여러 소설을 표절했다느니, 아프리카 특정 부족의 신화를 그대로 베꼈다느니 논란이 이어졌고 엘리만은 곧 자취를 감춘다. 그로부터 수십년 후. 디에간이라는 역시 세네갈 출신의 신예 작가는 자신의 그저그런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완벽한 소설을 남기고 사라졌던 엘리만의 베일에 쌓였던 삶과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 이 소설은 '위대한 작품'을 쓰고 싶은 디에간이 먼저 그런 소설을 쓰고 주목을 받다 한순간에 추락해 문학계에서 사라진 엘리만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동시에 식민화된 나라의 존재라는 슬픔을 안고 피정복지(본국)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이 조국에 대한 배신인지 아닌지에 대한 혼란과 고통도 다룬다. 특히 그것을 문학의 의미, 글쓰기를 활용한 존재의 증명으로 확장시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식민지화는 피식민자들에게 황폐와 죽음과 혼돈을 심어.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건ㅡ식민지화가 이루는 가장 악마적인 성공은ㅡ바로 자신들을 파괴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심는 거야.p.496



문학계에서 별이 되었다가 사라진 작가 엘리만. 그의 부모세대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비인간적인것의 미로'라는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투영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타인들의 비평으로 말미암아 비극을 이어받게된다. 글을 쓴다는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정희진이 말하듯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생각,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를 잊기 위한 글 쓰기는 오히려 과거를 마주하게 하고 고통과 쓰디쓴 재회를 해야만 가능하다. 문제의 소설'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에는 네로 왕처럼 사람을 마구 죽이는 잔혹한 왕이 나오는데 그렇듯 죽이고 죽여도 과거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완벽한 작품을 쓰겠다는 욕망역시 마찬가지다. 이전 것을 아무리 지우고 배제하고 죽인다고 해도 과거의 유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만이 남는다. 그런 전제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말이다. 이 질문은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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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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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11-30 2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평이 모두 좋네요 미미님 ~ 작가가 사라진 이유가 너무 안타까운데요 ㅠㅠ 미미님 글쓰는 솜씨는 여전히 👍

미미 2022-11-30 22:22   좋아요 3 | URL
상황이 조금 복잡한데도 재밌게 읽었어요 미니님! 소설인데 밑줄친 문장이 꽤 많았어요.
부분적으로 에세이 느낌도 나는,여러모로 색다른 소설이었어요.^^*

새파랑 2022-11-30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미미님의 심경이랑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읽으신거 같아요~!!
과거는 지우는게 아니라 안고가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미 2022-11-30 22:52   좋아요 3 | URL
네ㅎㅎ 새파랑님 역시👍제 상황에 적용되는 면이 있어서 더 좋았어요 삶에 대한 제 태도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페넬로페 2022-11-30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앞부분 읽은 감상은 문학이란, 글을 쓰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같이 읽혀요.
아무튼, 미미님 돌아오셔서 넘 좋아요.
웰컴^^

미미 2022-12-01 07:50   좋아요 4 | URL
네~♡ 앞쪽에 좋은 표현이 많더라구요.
페넬로페님도 이 책 읽고 계시다니 저는 그것도 좋네요*^^*

책읽는나무 2022-11-30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간간히 자주 올라오던 책이었어요.
미미님도 읽으셨군요^^
글을 쓰고 싶지만, 또 쓰고 싶지 않은 이중적 감정. 충분히 이해될 듯 합니다.
고민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시간이 다 치료해 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미미 2022-12-01 08:02   좋아요 3 | URL
500쪽이 넘는 조금 두꺼운 분량인데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차서 쓸 꺼리는 제법 있었지만
안써지더군요. 그런데 마침 처방약 같은 책을 만났던 기분입니다.ㅎㅎ
네 나무님! 시간도 약이죠 그쵸*^^*

다락방 2022-12-01 0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문장,
<식민지화는 피식민자들에게 황폐와 죽음과 혼돈을 심어.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건ㅡ식민지화가 이루는 가장 악마적인 성공은ㅡ바로 자신들을 파괴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심는 거야.p.496>
가 너무 좋네요, 미미 님!

아니 에르노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자리, p.127)>

우리는 우리가 멸시하는 바로 그 세계로 진입하고 싶은건가 봐요. 우리에겐 그런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가 봐요.
이 책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잠자냥 님 서재에서도 리뷰를 읽었었는데 미미님 서재에서 또 보네요. 저도 봐야겠어요.

미미 2022-12-01 08:13   좋아요 2 | URL
아, 어쩜 아니 에르노의 문장과도 연결지점이 있네요!
다락방님의 이런 면이 참 좋아요.
다른 책이나 영화와의 고리를 잘 찾으시는거요. 저에게도 늘 영감을 주거든요.
저는 <남자의 자리>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1일부터 덕분에 의욕이 납니다.ㅎㅎ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2-12-01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엘리만의 비극은 가슴이 아프네요. 그걸 끄집어내려한 디에간도 놀랍구요.
인용하신 문장들이 참 좋네요. 글쓰기과 삶에 대한 태도를 곱씹게 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그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과 사유를 적어내려가는 것이라는 점 참 멋지네요. 저도 그런 글을 적어내려가고 싶습니다.
미미님이 읽는 책들, 삶에 대한 경험들과 사유가 미미님을 더 깊이 있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네요. 항상 배울 거리를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미 2022-12-01 10:13   좋아요 3 | URL
엘리만의 소설로 발생한 일들도 안타까운데 가족사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 책이 결국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는데 그 과정을 잘 풀어냈다고 느꼈습니다.
정희진의 글 화가님께도 닿았군요! 화가님과 저 방향성이 닮은 듯해 늘 든든해요.
읽을수록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늘어가네요. 화가님~♡ 계속 함께 채워가요*^^*

바람돌이 2022-12-01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되는 책이라는 도장을 팍팍 찍어주시는군요. 이 책 읽을까 어쩔까 고민중이었는데 미미님 덕분에 읽는다로 바로 갑니다. ^^

미미 2022-12-01 17:00   좋아요 3 | URL
저는 흥미롭게 읽었는데 바람돌이님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잘 맞으신다면 저보다 훨 잘 정리하실테니 기대되기도 하고요*^^*

scott 2022-12-02 00:16   좋아요 1 | URL
그츄 미미님이 북플계 존재 하시는 걸
증명 하기 위해

땡투 날려 드려요!~~˚₊· ͟͟͞͞⍢⃝━☆゚. ҉*・。゚ ҉*:.。

미미 2022-12-02 08:21   좋아요 1 | URL
캄사해요 스콧님(>.<)

독서괭 2022-12-02 14: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미미님 리뷰, 반갑습니다!!
˝과거의 유령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 이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네요.
잠자냥님 퀴즈 때문에 머리 쥐어뜯은 책인데(결국 못 맞춤ㅠㅠ) 읽어보고 싶어요..흐규

잠자냥 2022-12-02 15:31   좋아요 1 | URL
조만간 제 퀴즈의 답을 알려드릴게요~ ㅋ

미미 2022-12-02 18:2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괭님^^* 저도 그 퀴즈 답을 모르겠어요ㅠ.ㅠ(심지어 읽었는데ㅋㅋㅋㅋ)
음...갑자기 하나 생각난거 있는데 가서 달아봐야겠어요.

미미 2022-12-02 18:28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제가 이 책 포함 3권 땡투했답니다ㅎㅎㅎ

잠자냥 2022-12-02 20:28   좋아요 1 | URL
어머나 미미님 천사!

2022-12-06 16: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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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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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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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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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17: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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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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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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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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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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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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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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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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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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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4: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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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쓸까? 알 수 없다. 어쩌면 알 수 없다,가 바로 우리의 대답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 희망 없이 그래도 쉽게 체념하지 않으면서, 집념과 탈진과 기쁨을 맛보며 세상을 더 낫게 만들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 쓴다. 눈을 부릅뜨고 전부 보고 하나도 놓치지 말 것. 눈을 깜빡이지 말고, 눈까풀 아래서 쉬지도 말고, 모든 것을 보려다가 자칫 눈이 망가질 수 있다는 위험까지 감수할 것, 하지만 증인이나 예언자와는 다르다. 그렇다 그렇게는 아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련하게 혼자 서서 떨고 있는 보초, 자신의 죽음과 도시국가의 종말을 알리는 섬광이 솟아오를 어둠을 지켜보고 있는 보초처럼 보아야 한다. p.62


한동안 이곳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에 짐이 있었는데 그걸 안고 아무렇지 않은 척 글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처음에는 그러려고 애쓰다가 버거워져서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려놓으면서 숨을 돌리면서 걸으면서 읽으면서. 그러고 나자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머릿속에 질문들로 채워지면 어떤 글을 읽어도 그 질문들의 실마리로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냥 텅빈 상태로, 질문까지 놓은 상태로 있고 싶은 때에도 읽는 다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나에게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낙엽들, 눈앞에서 살랑이며 떨어지는 낙엽들에 고요한듯 고요하지 않은 가을이었습니다. 안부 물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뭐라 답변해 드리고 싶었는데 할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즈음에는 설명한다는게 다 가식으로 느껴졌으니까요. 그렇게 마음만 주섬주섬 받았네요. 천천히 다시 기지개를 펴 보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드립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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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11-27 1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환영합니다!!!
힘 내세요!!!

미미 2022-11-28 10:33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페크님^^*

2022-11-28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8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22-11-28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작성하신 날이 23일이군요. 이제야 알다니.. 힘내세요!!!

미미 2022-11-28 19:08   좋아요 2 | URL
네 기억의집님 고맙습니다^^*

2022-11-29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30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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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들뜬 세상
내 술은 허옇고
밥은 거멓다

서문에 "근심 속에 있어야 진정한 술맛을 알고, 가난해야 돈의소중함을 안다.""는 문구가 있다. 세상은 벚꽃놀이로 들떠있는데 나는 흐린 탁주를 들이켜고 검은 꽁보리밥을 먹으며독거하고 있다. 극도의 빈한함에 대한 자조와 그 가운데서비로소 자적하는 삶을 맛볼 수 있다는 자부(自負)가 교차되어
‘허옇고‘와 ‘거멓다‘의 대조로 나타난다. 계어는 ‘벚꽃‘(봄). - P14

장마 내리네
물통 테 터지는
한밤의 소리

밤늦도록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만 들리는한밤에 어디선가 물통 테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무로 엮은 물통이쉴 새 없이 내리는 비에 불어 테가 터진 것이다. 장마철의 음울한적막감이 더한다. 계어 ‘여름 장마‘. - P52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

오쿠노 호소미치 여행 도중에 들른 릿샤쿠지(立石寺) 절 주위에바위가 많다. 한적한 절간에 매미 소리만 바위를 뚫을 듯이들려온다. 매미 소리로 인하여 산사의 정적감은 더욱 깊어진다.
왕적(籍)의 "매미 울어 숲은 점점 고요해지고 새가 지저귀니산은 더욱더 그윽하다"와 같은 세계. "바위에 스며드는 표현에서차가운 바위의 감촉과 매미의 가늘고 맑은 소리 (씽씽매미로추정)가 연상되어 여름 산사의 청정(淸澄)함이 강조된다. 계어는
‘매미‘(여름). - P63

반딧불이여
사공이 취했으니
이를 어쩌나


밤 나룻배를 타고 세타의 풍물인 반딧불이 구경을하며 선상의 주흥이 한창 무르익는데, 사공도 손님에게 한 잔두 잔 얻어 마신 술로 취해 버렸으니 허 그 참 걱정되네! 캄캄한여름밤 허공을 날며 반짝이는 반딧불이는 고전 시가에서는
‘사랑으로 가슴 앓는 마음의 불‘의 은유(metaphor)였다. 그러나여기서는 어지러이 나는 반딧불 빛을 한판 술자리의 흥과 연결해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서민 하이쿠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계어는
‘반딧불구경‘ (여름), - P69

암수 사슴
털에 털이 뒤엉켜서
털이 부숭숭

언어유희적인 초기 하이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사슴은 가을이 교미기여서 암수 한 쌍이 서로 몸을 부비며놀고 있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사슴은 전통 시가에서는단풍철에 암사슴을 찾는 수사슴의 ‘울음소리‘를 작자의 심경에빗대어 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서는 사슴들이 엉키는모습을 직접 형용한 것이 하이쿠적이라 할 수 있다. 털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케‘ 음의 리듬감을 살리고있다. 바쇼는 젊은 시절 이러한 말놀이적인 하이쿠에 심취한 적이있었으며, 비록 심오한 의미는 없었으나 가벼운 재치를 즐기며서민들이 하이쿠에 친숙해지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이쿠는 원래해학에서 출발했다. 계어는 ‘사슴‘(가을), - P79

수염 흩날리며
늦가을을 탄식하는
그는 누군가


서문에 "두보를 생각하며"가있다. 소슬한 추색(秋色)에"듬성한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며 늦가을을 탄식하는 사람은 대체누구인가‘라는 의미. 두보의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세상을탄식하는 자는 누구뇨. 피눈물을 하늘에 흩뿌리며 흰 머리를돌리네." 라는 시구를 연상하여 노시인의 고독한 시(詩)에바쇼 자신의 심경을 중첩시키고 있다. 계어는 ‘늦가을 - P83

첫눈 내리네
수선화 잎사귀가
휘어질 만큼

기다리던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라 수선화 잎사귀가 조금휘어질 만큼만 얇게 쌓였다. 수선화의 청초한 기품과 더불어첫눈 내리는 날의 맑고 싸늘한 공기가 코끝에 전달된다. 계어는
‘수선화‘(겨울).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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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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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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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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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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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11-02 1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쇼의 하이쿠는 이 계절에 읽기 딱 좋은 것 같아요.
17자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지 놀라워요.
11월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미미님~^^!

2022-11-04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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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 2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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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1-0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째 미미님글이 안 보이는데 내가 못봤나 해서 들어왔어요. 무슨 일이 있으신건지.. 어서 돌아오시길 기다립니다~!

모나리자 2022-11-09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요즘 뜸하시네요~
차가워진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곧 돌아오세요~^_^

건수하 2022-11-18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무슨 일 있으신가봅니다... 곧 뵐 수 있길 바래요.
건강히 지내세요.

베터라이프 2022-11-18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미미님이 북플에 뜸하셨군요. 큰일 아니시길 빕니다.

2022-11-21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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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2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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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1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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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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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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