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들뜬 세상
내 술은 허옇고
밥은 거멓다

서문에 "근심 속에 있어야 진정한 술맛을 알고, 가난해야 돈의소중함을 안다.""는 문구가 있다. 세상은 벚꽃놀이로 들떠있는데 나는 흐린 탁주를 들이켜고 검은 꽁보리밥을 먹으며독거하고 있다. 극도의 빈한함에 대한 자조와 그 가운데서비로소 자적하는 삶을 맛볼 수 있다는 자부(自負)가 교차되어
‘허옇고‘와 ‘거멓다‘의 대조로 나타난다. 계어는 ‘벚꽃‘(봄). - P14

장마 내리네
물통 테 터지는
한밤의 소리

밤늦도록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만 들리는한밤에 어디선가 물통 테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무로 엮은 물통이쉴 새 없이 내리는 비에 불어 테가 터진 것이다. 장마철의 음울한적막감이 더한다. 계어 ‘여름 장마‘. - P52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

오쿠노 호소미치 여행 도중에 들른 릿샤쿠지(立石寺) 절 주위에바위가 많다. 한적한 절간에 매미 소리만 바위를 뚫을 듯이들려온다. 매미 소리로 인하여 산사의 정적감은 더욱 깊어진다.
왕적(籍)의 "매미 울어 숲은 점점 고요해지고 새가 지저귀니산은 더욱더 그윽하다"와 같은 세계. "바위에 스며드는 표현에서차가운 바위의 감촉과 매미의 가늘고 맑은 소리 (씽씽매미로추정)가 연상되어 여름 산사의 청정(淸澄)함이 강조된다. 계어는
‘매미‘(여름). - P63

반딧불이여
사공이 취했으니
이를 어쩌나


밤 나룻배를 타고 세타의 풍물인 반딧불이 구경을하며 선상의 주흥이 한창 무르익는데, 사공도 손님에게 한 잔두 잔 얻어 마신 술로 취해 버렸으니 허 그 참 걱정되네! 캄캄한여름밤 허공을 날며 반짝이는 반딧불이는 고전 시가에서는
‘사랑으로 가슴 앓는 마음의 불‘의 은유(metaphor)였다. 그러나여기서는 어지러이 나는 반딧불 빛을 한판 술자리의 흥과 연결해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서민 하이쿠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계어는
‘반딧불구경‘ (여름), - P69

암수 사슴
털에 털이 뒤엉켜서
털이 부숭숭

언어유희적인 초기 하이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사슴은 가을이 교미기여서 암수 한 쌍이 서로 몸을 부비며놀고 있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사슴은 전통 시가에서는단풍철에 암사슴을 찾는 수사슴의 ‘울음소리‘를 작자의 심경에빗대어 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서는 사슴들이 엉키는모습을 직접 형용한 것이 하이쿠적이라 할 수 있다. 털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케‘ 음의 리듬감을 살리고있다. 바쇼는 젊은 시절 이러한 말놀이적인 하이쿠에 심취한 적이있었으며, 비록 심오한 의미는 없었으나 가벼운 재치를 즐기며서민들이 하이쿠에 친숙해지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이쿠는 원래해학에서 출발했다. 계어는 ‘사슴‘(가을), - P79

수염 흩날리며
늦가을을 탄식하는
그는 누군가


서문에 "두보를 생각하며"가있다. 소슬한 추색(秋色)에"듬성한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며 늦가을을 탄식하는 사람은 대체누구인가‘라는 의미. 두보의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세상을탄식하는 자는 누구뇨. 피눈물을 하늘에 흩뿌리며 흰 머리를돌리네." 라는 시구를 연상하여 노시인의 고독한 시(詩)에바쇼 자신의 심경을 중첩시키고 있다. 계어는 ‘늦가을 - P83

첫눈 내리네
수선화 잎사귀가
휘어질 만큼

기다리던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라 수선화 잎사귀가 조금휘어질 만큼만 얇게 쌓였다. 수선화의 청초한 기품과 더불어첫눈 내리는 날의 맑고 싸늘한 공기가 코끝에 전달된다. 계어는
‘수선화‘(겨울).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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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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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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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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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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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11-02 1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쇼의 하이쿠는 이 계절에 읽기 딱 좋은 것 같아요.
17자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지 놀라워요.
11월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미미님~^^!

2022-11-04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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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 2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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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11-0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째 미미님글이 안 보이는데 내가 못봤나 해서 들어왔어요. 무슨 일이 있으신건지.. 어서 돌아오시길 기다립니다~!

모나리자 2022-11-09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요즘 뜸하시네요~
차가워진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곧 돌아오세요~^_^

건수하 2022-11-18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무슨 일 있으신가봅니다... 곧 뵐 수 있길 바래요.
건강히 지내세요.

베터라이프 2022-11-18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미미님이 북플에 뜸하셨군요. 큰일 아니시길 빕니다.

2022-11-21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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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2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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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1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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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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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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