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서관을 다녀오던 길 입니다. 마침 따뜻한 햇살에 걷기 좋은 날씨라서 에코백에 든 책의 무게만큼 즐겁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 바로 앞에서 두 명의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고요. 한 분은 안경을 쓰시고 긴 머리를 질끈 묶으신 좀 마르신 체형이셨고 그 옆에 분은 베이지색 바바리 코트에 단발머리가 인상적이셨던 여성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 제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걸어오시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었죠.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제 앞에 길을 막으시더니 저보고 시간이 있느냐 대뜸 물으셨습니다. 저는 귀에 꼽았던 이어폰을 빼고 대답했죠.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저보고 이야기 좀 하자시네요.
'무슨 이야기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이야기 좀 해요~'
유독 안경끼고 마른 체형의 여성분이 적극적이었습니다. 단발머리의 여성분은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으신지 한발 떨어져 계셨고요. 무튼 저는 할 이야기 없다고 손사레치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으며 곱씹어 봤지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 어떤 이치?
그리고 몇 주 후.
이번에는 체격이 통통하신 여성분과 남자분이 제 쪽으로 걸어오시는 게 수상했는데요. 역시나 저보고 이곳에 사는 사람이냐 묻더군요.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도서관이 있는 곳은 저희 집 근처가 아니니까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서요. 그랬더니 저보고 얼굴에 복이 많아 보인다며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요? 했더니 이것저것 이야기 좀 하자고 재촉하더라고요. 저는 할 이야기 없다며 이번에도 손사레치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습니다. 도대체 이 분들은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으셔서 그러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따라나설 용기는 없으니 궁금함은 묻어 두기로 했습니다.
임경선 저자의 책 <자유로울 것>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임경선 작가가 길을 걷는데 어떤 여자분이 자신과 눈을 맞추며 걸어오더란 겁니다. 틀림없이 팬일 거라며 짐작하신 작가님은 기쁘게 독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마주 섰는데요. 글쎄 이 여성분이 이러더랍니다.
' 얼굴에 복이 많아 보이시네요~~'
푸흡.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저 같은 복이 많은 든 얼굴이신가 하는 짐작도 해보고요. 물론 책 날개에 있는 작가님의 아리따운 사진은 볼 수 있지만 작가님이 자꾸 그러시는거예요. 그 사진을 절대 믿지 마세요 ~~ 라고요. 후후.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길을 막고 서는 사람들은 전국구이신가요? 어디서 교육을 받고 다니시는 건가요? 어떤 단체?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건지. 더욱 궁금증이 생겼지만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특히 여성분과 남성분이 함께 다니실 적에는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드니깐요.후후.
임경선 작가님의 에세이는 그러니까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읽을수록 더 읽고 싶은 책이 있고 이제 그만 읽어도 되겠군 싶은 책이 있다면 이 작가님의 책은 제게 전자에 해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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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솔직함, 둘째는 작가 고유의 문체, 에세이는 저자의 연한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비없는 장르의 글이다. 솔직함을 가장한 자기 포장인지, 담백하게 있는 그래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 했는지는 글의 행간에서 모두 고스란히 드러나 독자에게 전달된다. 솔직하지 못한 글에 감정 이입할 독자들은 별로 없고, 솔직한 글이 지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p51
글의 마지막 문장 ' 솔직하지 못한 글에 감정 이입할 독자들은 별로 없고, 솔직한 글이 지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표현처럼 이 책은 정말 솔직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지루해할 틈도 없이 읽어버렸고요. 작가라는 직업이 독자에게 주는 환상성이란, 뭐랄까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게 한다고나 할까요. 예를들어서 작가님이 마시는 커피와 커피 담은 잔 하나에도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거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와인의 맛과 향,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책의 판본형태, 좋아하는 작가와 애정하는 작가, 좋아하는 음식과 레시피 등등 실로 무궁무진한 취향을 갖고 계실텐데 그 취향이 독자와는 다른 감각적인 것일꺼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임경선 작가님의 일상이 너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밥을 챙기고 씻기고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보내고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을 해치우고 나서야 노트북을 든 가방을 메고 집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작가로써의 일을 시작한다고요. 그런데 오후 3시쯤이 되면 아이 맞을 준비에 정신이 없어진다고 해요. 그러니까 작가님도 여느 주부와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그 시간을 잘게 쪼개서 자신의 일을 하고 계셨더라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환상성의 파괴야 말로 독자에게 줄 수 있는 큰 응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어요. ' 당신은 할 수 있어요''당신이 잘못 된 게 아니에요'라는 의미를 함축시킨 표현 보다도, 내 삶이 곧 당신의 삶입니다. 하지만 보세요~ 저는 그 삶 속에서 제가 꿈꾸는 세계를 꾸준히 변함없이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들리는거 같았거든요. 그런 솔직함이 진솔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잊지 않으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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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한 가지 변치 않고 확실한 것은, 그 대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 보고 발을 깊이 담가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샛길이 일절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딱 그만큼의 고통을 담보로 한다는 것이다'p48
'그 과정은 딱 그만큼의 고통을 담보로 한다는 것' 이 얼마나 삶의 단비같은 이야기인지요. 꿈을 이룬 길은 꽃길 일 거라 상상합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자신의 일상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세상에 완벽한 꽃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변하지 않고 확실한 것은, 삶에 질문을 품고 샛길없는 길을 걸으면 언젠가 답을 만나게 되지만 그 만큼의 고통은 존재한다고. 그렇지만 그 고통이 아픔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이죠. 아아. 벌써 이 찰진 이야기들이 그리워집니다. 언제쯤 다음 작품으로 나와 주실지 기다려지는데요. 그 만나는 날까지 다른 책을 찾아 읽으며 그리움을 달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