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 영화, 문학을 만나다
이대현 지음 / 다할미디어 / 2016년 10월
평점 :
영화를 먼저 볼까 책을 먼저 읽을까라고 딱히 고민해본 적은 없는거 같다. 영화를 보다가 좋으면 책을 읽었고 책을 읽고 좋으면 영화를 찾아봤으니까.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굳이 따질 필요 없이 모두 냠....냠(글로 쓰니까 꽤나 잔인한걸!)
그러나 내가 읽어서 좋았던 원작이나, 영화가 있다면 그 내용이 똑같길 바랬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영화를 보면 원작에 충실해서 너무 즐겁게 볼 수 있었던거 처럼.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그대로 그려주는 영화나 원작이 무척 좋았더랬다.
그런데 영화가 소설의 내용을 똑같이 그린다면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이대현 씨다.
영화 <인셉션>처럼 때론 그 영상의 창의성을 통해 글보다 섬세하고 생생한 심리와 의식까지 표현한다. 소설이 긴 문장으로 설명하고 묘사한 것들, 복잡하고 긴 사건을 영화는 단 한 컷의 영상, 배우의 표정, 소품 하나로 더 강렬하고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따라해야만 한다면, 많은 부분을 영상대신 글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소설에는 소설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고, 영화에는 영화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다. 장르적 특성과 경계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같은 이야기라도 서로 다른 작품이 된다. 둘의 차이를 단순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낫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도 없다.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니까, 그래서 우리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프롤로그)
소설은 소설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고, 영화는 영화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말에 조금은 놀랐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면 어느정도 원작에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영화라는 특수성으로 장르적인 특성과 경계만으로 구성되어 진다는 것에 조금은 그럴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예를들어 저자가 제시한 영화들 중에서 <허삼과 매혈기>란 작품은 질타를 <마션>이란 작품엔 찬사를 했는데 나는 두 개의 영화 모두 부족하다 생각했더랬다. <허삼관 매혈기>는 어떤 내용을 그리고 싶어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려서 아쉬웠고 <마션>는 원작의 깨알 재미를 모두 빼버려서 너무 심플한 영화가 되었다고 실망했는데 그런 부분까지 바랬다면 과욕이라는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귤이 회수(중국의 화이수이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돼지간볶음을 순대로, 국수를 만두로, 간염을 뇌염으로, 상해를 서울로 바꾸기만 하면 귤이 그대로 귤로 다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시대와 시간의 생략과 단축, 중요한 모티프의 포기,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부족, 내면화 하지 못한 배우들의 연기로는 영화의 허삼관이 소설의 허삼관이 결코 될 수 없다. (p24)
그러나 독자와 관객은 모두 과학자가 아니니 솔직히 이런 영화와 소설 앞에서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얕은 과학적 지식으로 영화와 소설이 가진 상상력의 재미를 스스로 반감시키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는그 상상이 어느 날 현실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미래의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읽고 보면 더 짜릿하다. 어쩌면 과학은 그 엉뚱한 상상을 조금씩 현실로 만드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그렇게 했다.
영화 <마션>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의 소설가답게 독백도, 대사도, 서술도 직설적이고 날렵하다, 감정의 숨김이나 은유도 없다. 그래서 이야기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화성의 중력만큼이나 가벼워진다. 그러면서도 500여일 동안 마크가 기록한 일지에는 미래에 우리가 현실로 만날 화성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 들어있다. 영상이라면 몰라도 이를 영화에까지 다 담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도 알고 있기에 욕심내지 않았고, 그것이 영화의 무게 역시 가볍게 해 사뿐히 착륙하게 만들었다. 거장은 거장이다.(p35)
그래도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영상으로 표현한 이미지나 상상을 새롭고 구체적인 언어적인 서술로 풍성하게 만들고 플롯도 영화보다 훨씬 자유로워야 한다. (P173)
이렇게 풍성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에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모습에 빠졌다면, 풍성한 서술과 플롯에 흠뻑 즐거웠다면) 그 부분을 영상으로 볼 수 있길 바라는게 독자의 심정은 아닐런지. 왠지 이 책에는 작가와 감독에 관한 이야기는 잔뜩 있어도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빠진듯 아쉬움이 남는다.
무튼 나는 똥꼬집이라서 내가 좋아하게 된 작품 (그게 원작이랄지 영화랄지)이 많이 변형되지 않는 선에서 나와줬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그 작품이 좋아진 계기가 있을터. 그런데 그 계기가 사라져 버린다면 왠지 김빠진 맥주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