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려고 가방에 책을 넣기 위해 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책장 위에 살포시 놓인 아담한 책 한 권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가방인데도 책을 가뿐히 넣고도 텅텅 빈듯해서 무척 좋았다. 드디어 읽고 싶은 책을 고민 없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나쓰미 소세키의 이 작은 책은 내 지루한 일정에 작은 활력을 넣어줄터다
이 책은 민음사에서 펴낸 쏜살문고 시리즈다. 1966년 창립 연대의‘활쏘는 사람들‘이라는 정신을 계승하고자 만든 총서라고 하는데 문고본이 사양길로 한번 접어 들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좀 더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이야기로 오랜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책을 가지고 병원으로갔다. 총 예상 진료시간은 3시간 가량이라고 했지만 환자도 많아 예상 시간을 넘겨버렸다. 그러나 나는 화가나지도 짜증나지도 않았다.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하다며 만세를 불렀다. 링겔을 꼽은 왼손이 불편했지만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라 상관없이 책을 읽었다.
행복했다.
민음사에서 나온 문고본 중에 이 책을 첫 타자로 삼은건 바로 이 첫 문장 때문이였다.
˝ 유리문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서리막이를 해 놓은 파초, 빨간 열매를 맺은 낙상홍 가지, 멋대로 우뚝 서 있는 전봇대 같은 게 바로 눈에 띄는데, 그 밖에 딱히 손에 꼽을 만한 건 거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재에 있는 내 시야는 아주 단조로우면서도 아주 좁다˝
(유리문 안에서 p7)
요즘들어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내 서있는 자리 만큼으로 생각하고 말을하고 행동하고 있다 느끼던 참이기에 서재에 누워 유리에 비친 모습만을 바라보는 소세키의 시선이 나와 같구나 생각이 들었던 참이다.
문고본을 한 손에 쥐고 읽다보니 속도가 붙어 읽으면 읽을수록 걱정스럽기 까지했다. 140페이지 가량의 짧은 수필이 간간히 그림과 어울어져 브레이크를 걸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결국 단숨에 읽어버렸다.
1915년대에 아사히 신문에 기고했던 수필이자 지병을 앓던 나스메소세키의 마지막 수필집이 되어버린 이야기엔 만년의 사색과 내면의 풍경이 담겼으나, 책을 덮으며 문득 그의 책들이 떠올랐다.
<도련님>,<마음>,<나는 고양이로쏘이다>의 에피소드들과 상당히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느껴지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던거 같다. 그래서 문고본이라는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
첫술에 배부르랴. 벌써 실망하기엔 이르다.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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