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 느린걸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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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생존한 종의 DNA가 후대에 전달되어 남녀의 성향을 결정했다. 남성들은 도전적인 성향을, 여성들은 안정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남성의 성향이 더 적합하므로 인류의 문화는, 남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문화 내에서 남성은 소모적 존재가 되어 착취당하고 있다. 사회의 위험한 일은 주로 남성이 맡고 그들이 노력한 대가를 누리는 것은 배우자와 자녀다' " 책과 삶 독서신문 12월호"

 

솔직히 이 글을 읽고나서 조금 과격히 표현하자면 빡쳤다. 남성의 산물이라는 사회생활에서 소모적 존재가 되어 착취 당한다는 표현에 공감하지 못하는바 아니지만, 착취의 대상에 아내와 자녀까지 포함시키는건 무슨 심보란 말인지. 소모적 가치의 기준을 사회에 두고 봤을때 그런 논리가 형성된다면 그래 가정으로 시선을 돌려 소모성을 찾아보자. 어디에 그 기준점을 둘 수 있는가. 저 칼럼의 기준대로 '소모성' 으로만 놓고 따져본다면 아내에게서 찾을 수 있을터. 달리말에 가정내에서는 아내의 가치를 먹고 사는게 남편이라는 말이 된다는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 울분을 아무리 토해내도 세상은 가정내에서 발생되는 가치를 '소모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단지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소비적 형태'로 전환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모든것을 '소비적' 형태로만 계산한다. 집을 살 수 있는지, 차를 살 수 있는지,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가방을 들 수 있는지를 놓고 판가름 한다. 재산의 척도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결정 내리는 사회. 그리고 그런 무리들로 세상은 형성되어 살아간다.

 

 

작은 전세집을 얻어 결혼식을 올린 우리에게 주변에서는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아 넓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할것을 무수히 권유받곤 했다. 지금 장만하지 않으면 영영 얻을 수 없다는 둥, 집값이 폭등해 더이상 집 구매가 어려워질꺼라는둥, 지금이 딱 기회라는등의 낭설로 신랑과 나를 현혹시키며 집을 사지 않은 우리가 마치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불안과 절망감을 느끼게 만들곤 했다. 이런 상태를 이반 일리치는 "현대화된 가난" 혹은 "풍요 속의 절망"이라고 일컬었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 준 풍요 속에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 하는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된다"p6

 

아침에 일어나 메일함을 열어보면 밤새 무수히 쏟아져들어온 각종 광고 메일들과 쇼핑 딜 문자들은 마치 다수의 선택이 정답인양 선택을 종용하고 참여하지 못하는 현상에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거나 빈곤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채무적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 쉽상이며 사회적으로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이런 현상들에서 가장 내 살갗에 와닿는 일은 내 주변에서 나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치 상실'에 무뎌져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좋은 평수의 집에서 살아야하고, 좋은 차를 뽑아야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며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사람들을 '좋은 사람'으로 규정짓으므로써 소비적 가치 능력이 저하된 사람들은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자녀들은 좋은 학교에서 좋은 옷을 입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꾸짖고 선을 긋는 모습을 보는 일 역시 고통스러웠다. 멀게는 현대화가 일으킨 변화라지만, 현대화에 마비되어 가난과 차별이라는 새로운 낙인들이 생성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바라볼때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필요가 현대화 될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붙는다"p35

"부자들은 상품속에든 필요에 중독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가 만든 환상에 마비된다"p80

' 간단히 말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과 접촉하지 못한 채 지내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일을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p10

 

이반 일리치의 책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현대인들이 상품에 의존하여 삶이 몰수되는 과정에 무뎌져가는 감각을 우려한다. 자율성은 무너져가고 경험은 같아지며 욕구는 좌절되는 경험과  전문가들의 권위주의적 독식사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전문가들이 양산해내는 상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와 그런 구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져가므로써  점점 더 짙어지는 소비의 환락상태에 빠지는 현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사람들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되는 가혹한 시선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시대는 다음과 같이 기억될 가능성이 더 높다. 모든 세대가 삶을 빈곤하게 만드는 풍요를 광적으로 쫓느라 자유를 모두 양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정치를 역사상 최초로 복지 수령자의 불만을 조직하는 것으로 바꾼 다음에는 전문가 전체주의를 덮어버린 시대였다고"p57

 

 

꼭 적게 소비하고 상품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해서 '옳은 가치'라고 규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치' 의 기준이 '소비'의 기준으로 변환되어지고 사람의 척도를 '소비의 척도'로 내세우는 현대화의 거센 바람에 소멸되어가고 있는 인간 본연의 고유한 가치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이 상품성에 의존하지 않고 삶이 몰수 되지 않는 힘이 있을때 올바른 가치 기준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올바른 가치 기준을 마련하여 단단히 뿌리박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들을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세상. 새해에는 그런 시간들이 많이 찾아들길 바라는 마음. 이 책을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거쳐 생각을 다듬어 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의미있는 일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참 얇은 문고본 판형의 책이지만 알찬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치만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전문가들의 독식사회에 대한 우려를 모두 다 동의할 수는 없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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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3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과학 책들을 읽다보면 이반 일리치의 글을 인용한 걸 많이 보게되었는데 굉장히 공감이 가서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그녀의 저서는 아직 못읽고 있었네요. 저는 <학교 없는 사회>를 꼭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내년 독서목록에는 반드시 넣어봐야겠습니다^^

해피북 2015-12-30 19:54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통해 이반 일리치를 알게 되었는데 공감가는 대목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과 <전문가들의 사회>가 조금 겹치는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학교 없는 사회>라는 책도 호감이가네요 ㅎ 그런데...저기...음...이반일리치가 여성이었군요. 저는 남자분인줄 알았어요 ㅜㅜㅋ

2015-12-3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5-12-30 20: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두막을 짓고 살수도 없고 말이죠. 비슷한 생각을 갖은 분들과 모여산다고해서 사회생활을 안할수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죠. 함께 사는 세상이니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더라고요. 그래도 이곳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큰 위안이 되는것같아요 ㅎ

살리미 2015-12-3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가 댓글에 실수를 ㅋㅋ 해피북님 댓글보고서야 제 실수를 알았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남자분이 맞을걸요? ㅎㅎㅎ 제가 왜 그녀라고 써놨을까요? ㅋㅋㅋ

해피북 2015-12-31 21:20   좋아요 0 | URL
크흐흐흐. 그럴수도 있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