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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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 가제본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언급된 페이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일전에 단양 도담상봉과 고수동굴에 다녀온적이 있다. 한가로운 휴일이였고 ' 단양 가볼만한 곳' 이라는 검색만으로 '단양 8경'과 여러 볼꺼리 먹거리들이 쏟아져 나와 망설임 없이 향하게 되었다. 몇 시간을 달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여느 관광지처럼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사진의 포인트가 되는 자리엔 너나 할것없이 포즈를 취하느라 발 디딜틈 없었다. 멀리서 도담 상봉을 구경하고 석문으로 올라가는데, 길목에는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설치되어있었고 때마침 어떤 취객분이 목청껏 뽑는 곡조에 두 귀를 틀어막고 올라야 했다. 올라서는 계단마다 풍겨오는 술냄새와 중간쉼터인 정자엔 이미 만취한 취객들의 모습이 어지러이 앉아있어 스치듯 둘러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8권 남한강편은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영월 주천강을 시작으로 단양, 충주, 원주, 여주, 이천을 거쳐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까지의 오백리길을 말한다. 여기서 단양은 8경(옥순봉, 구담, 도담, 석문,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소개하는데 읽다보니 그때의 좋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교수님의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 되었다. 단양 8경의 아름다움이야 조선시대 문인들이 여러 시화로 전할만큼 빼어나기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아끼면 좋으련만, 하루밤 사이에 달라지는 외관과 부쩍여지는 소음이 왠지 '문화유산'이라는 틀과 어울리지 않아 할수만 있다면 이 책을 꽁꽁 숨겨두고 혼자 읽고 싶은 마음이다. 문화유산을 평가하는건 특정한 외형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자연경관(자리앉음새)과 하나가 될때, 옛 조상들이 아끼고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자꾸만 관광특화단지로 경관이 변하고, 그 변화되어지는 모습만을 간직하게될 후손들의 마음을 한번쯤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특히나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영월의 <주천강가의 마애불- 주천에서>p33편만 읽어봐도 그 익살스럽고 호젓한 그곳이 번잡해지고 복닦거려질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참 슬픈일이된다.

 

 

' 전체 높이 3.5미터로 결코 작지 않은 이 마애불은 참으로 기묘한 모습이다. 얼굴만 보았을 때는 통통하고 복스럽게 돋을새김한 것처럼 보이지만 목 아래로는 몸체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또한 언뜻 보면 서 있는 입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좌상이다. 양각의 얼굴에 음각의 몸체 표현이 조화롭지도 않은데다 인체비례라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도 않은 것이고 자세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미술사가 입장에선 참으로 솜씨 없고 불성실한 조각이라 할 수밖에 없다.p30'

 

 

그동안 답사기를 숱하게 읽으며 교수님의 이런 혹평은 처음이였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불상이기에 이런 평가를 하셨나 살펴보고나서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입상과 좌상의 웃지못할 경계에 도드라진 얼굴이라니. 그동안 근엄하거나 인자했던 오묘조묘 신기한 불상의 모습만 숱하게 보다가, 이런 인간미 넘치는 불상을 만나니 한층 더 살가워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신경림 시인의 시가 더 정답게 느껴지는가보다.

 

 

 

 

'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은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 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

별들은 점잖지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여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p33

 

 

저녁이면  삐죽거리며 빠져나와 장난을 치고, 동트는 아침이 오는줄도 몰랐던 마애불이 서둘러 들어가느라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구나 하는 상상을 해보게되는 곳이다. 이외에도 주천강변은 숙종, 영조, 정조 세 임금이 주천강을 노래한 시가 새겨진 현판이 있을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그래서 더욱 매스컴에 보도되거나, 책에 소개되어 유명세를 타게되면 하루아침에 관광특화단지로 조성해버리는 재빠름에 걱정스런 마음이 앞서게된다. 부디 이렇게 아름답고 익살스러운곳이 오래도록 간직되기를, 부디 책을 읽으며 이런 걱정거리로 마음쓰는 일이 없어지기를 간절함을 담아본다.

 

 

물론 특화단지가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청령포에가면 관람로가 잘 설치되어 있어 한바퀴 돌아 선착장 모래톱까지 힘들이지 않고 여유롭게 산책할수 있다고 하니 관람객으로써는 호젓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잘 조성되어진 곳이라도 본연의 아름다움까지 담아낼수는 없는바, 답사기에서 담고있는 이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변하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이번 답사기 8권은 남한강물을 따라 흐르기 때문인지 아름다움뿐 아니라 애통함과 비통함의 한마져 느껴진다. 특히 단종을 사사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던 왕방연이 읊었다는 시구 (' 천안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나, 전란중에 지었다는 유성룡의 <속 청풍 한벽루>라는 시구가 강물따라 참 애처럽게 느껴진다.

 

' 지는 달은 희미하게 먼 마을로 넘어가는데

까마귀 다 날아가고 가을 강만 푸르네.

누각에 머무는 나그네는 잠 못 이루고

온밤 서리 바람에 낙엽소리만 들리네.

두 해 동안 전란 속에 떠다니느라

온갖 계책 근심하여 머리만 희었네.

일어나 높은 난간 향하여 북극만 바라보네'p130 

 

 

 이런 애잔한마음이 폐사지로 이어져 더 스산한 마음이 생겨났지만, 이전의 답사기에서 볼 수 없던 희귀한 모습의 탑비들이 울쩍한 마음을 달래주며 이번 답사기에 한층 풍미를 더한다. 비두리 마을의 '귀부와 이수' 돌탑은 정면을 응시하던 기존의 탑과 다르게 뒤를 돌아보는 거북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생동감도 느껴지고,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것인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 한다. (원주에는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 신도비가 있는데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한다.)

 

답사기를 읽다보니 훌쩍 떠나고싶은 마음이 일어나면서 애끛은 청명한 하늘만 원망하게 되는것 같다. 이런 마음을 잘 아시는지 교수님은 와유(臥遊)독서를 권한다. 병을 얻은 화가가  산수화를 누워서 감상하는 와유에서 산수화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답사 현장에 다닐 수 없는 사람들에겐 편안하게 누워 답사기로나마 감상해보시라는 자상함이 담긴 이야기다. 그런 자상함의 와유독서를 권하기에 나는 부족하게나마 화답으로 시구를 만들어봤다.

 

' 하늘은 나를 보고 나오라 손짓하고

삶은 나를 보고 앉으라 손짓하네.

풀잎 머금은 바람은 물결따라(남한강) 가자는데

억센 시간은 못난 발걸음 놓아주지 않는구나.

 

무심한 구름은 세월따라 흐르며

인생도처 유상수라 희롱하는데

이내 나서지 못한 애끛은 마음 소쩍새만 슬피 울리네.

 

듣자하니 화가 종병 산천을 와유로 즐겼다기에

답사기 산천삼아 와유독서로 마음달래노니,

외산인 교수님 무병장수 하시여

나같은 천치들 오유지족 하게 해주오''

 

 

교수님이 아니면 이런 책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냐며 감사의 마음 듬뿍담아 적어본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시면서 끝없이 이어질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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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유산을 소개한 교수님의 책을 가지게 된다면 그 책에 나온 장소들을 한 번씩 가보는 방식으로 여행하고 싶어요. 지인이 예전에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하는 답사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인증샷을 봤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저는 교수님의 책을 배낭 안에 넣고, 혼자 여행을 해봐야겠어요. ^^

2015-09-16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1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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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8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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