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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된 생각들 -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
전현선 글.그림 / 열림원 / 2015년 1월
평점 :
지난 주말 신랑과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시립 미술관이 보여 들어가게 되었다. 미술관 입구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문득 신랑이 오른편에 있는 조각상을 보며 이야기 했다. " 재는 디게 혼났나보네. 그리고 재는 많이 혼나서 삐졌나봐"라고.
신랑의 시선을 쫓아 조각상을 보니 나도 신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한테 혼났을까?"" 재는 얼마나 삐졌길래 저렇게 앉아 있을까"등 좀 유치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은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작품을 바라보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유대감이 생기고 더 나아가 다양한 이야기 거리로 발전 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립 미술관이 덕수궁과 마주하고 있어서 인지 건물이 운치 있어 보이는데 이날의 주제는 < 미묘한 삼각관계전> 으로 한중일 예술품이 한 자리에 모인 모양이였다. 함께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게된 또 하나의 조각상. 문득 신랑은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무얼 표현한거 같냐고 물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본 신랑은 글쎄? 라는 미묘한 답만 내놓을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책이 텍스트로 전하는 예술이라면, 미술은 그림이나 조각상등의 시각적인 형체로 전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작가의 내면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독자와 작가간에 '공감대'가 얼마나 형성될 수 있는가에 따라 좋은 작품으로 혹은 '글쎄'와 같은 미묘한 작품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입구에서 봤던 조각상을 보고 바로 느낌을 표현했던 것은 독자와 작가간의 공감대가 잘 형성되어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가 달랐다고 해도 받았던 느낌이 남았다면 그것만으로 멋진 작품이 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계단에서 봤던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예술을 보는 안목을 지니지 못한 독자가 작품을 감상한다는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특정한 주제로 표현된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세계에 대한 특정한 지식이 없어서 일까. 정말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까?
전현선 작가의 책 『그림이 된 생각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작가는 책을 통해 독자와의 소통을 하고 싶었던 것일텐데 왜 나는 그런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것일까를 생각하다보니 지난번에 다녀왔던 미술관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느날 그림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던 부제를 통해 피터라는 인물은 누구인지, 어떤 그림들을 만날 수 있게 되고, 그림과 연관된 이야기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읽게된 책. 피터는 전현선 작가가 좋아하는 '피터 도익'이라는 화가의 이름에서 따왔고 표지의 피터는 어린 시절 큰삼촌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익살스런 표정의 큰삼촌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피터라는 아이로 재탄생 되었다고 했다.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지나온 삶을 통해 겪었던 경험들, 받았던 인상들, 느낌들, 생각들의 조각을 하나 하나 묶어 그림으로 완성시키며 독자에게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 풀어놓았다. 솔방울에 관한 이야기, 어린시절 연극부에서 받았던 영감들, 평소 버리지 못하고 애착을 갖는 물건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추상화가 만들어진것.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왜 이 책의 부제가 '피터가 말을 걸었다'라고 하는지에 대한 명료함을 찾을 수 없고, 극히 주관적인 생각들이 한편의 그림들이 되고 그림에 담긴 작가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는 지극히 유아적 안목을 지닌 내가 작품을 이해하기엔 부족함을 크게 느끼게 되면서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자면, 이런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는지, 아니면 내게 작품을 대할때 느낄 수 있는 심미적인 안목이 크게 부족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였고,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책이다. 앞으로 꾸준히 생각해볼 문제라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