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독의 제주일기
정우열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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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동안 책으로 갈고 닦은 내공으로 신랑에게 제주도 가이드를 해주며 한 달간의 여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계획은 빗나갔고, 나는 다시 제주도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내가 '계획'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그게 짐케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인지 스티브 카렐 주연의 ' 에반 올마이티'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무튼 이런 장면이 있다. 잔디밭에 물을 주고 있는 신과 마주한 주인공 자신의 계획대로 삶을 살고 싶은데 신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내 인생의 계획대로 되지 않자나요'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했던거 같다. 그랬더니 신이 껄껄껄 아주 호탕하게 웃으며 " 계획이라고? 인간이 세운 계획이라고, 이 세상에 인간이 세운 계획 따위가 있을거 같냐'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 장면.

 

 

내 계획이 틀어질때마다 이건 신의 농간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수없이 쌓아 올린 계획의 파편중에 제대로 맞은게 하나도 없는걸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여행은 계획하지 말고 즉흥적으로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도 있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엔 항상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가방이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게 신을 속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가방을 챙겨 놓을까 하고 신랑에게 물으니 진정하라는 강력한 눈빛에 그만 풀이 죽어버렸고, 도서관에서 빌렸던 『올드독의 제주일기』를 꺼내들었다.

 

 

블로그 사이에선 제법 인기있는 작가인가 본데 나는 처음 접한 작가다. 첫 시작을 '소리에게' 라는 달달한 글귀가 눈에 띈다.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헌사인가 싶은 생각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십년을 함께 보내 소리라는 강아지에 대한 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하늘나라로 떠난 소리에게 애뜻함을 전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제주도에서 지낼 생각을 하게 된것일까 살펴보니 어느날 문득 물을 좋아하는 강아지들과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여건이 맞지 않아 궁리하던 중 떠오르는 곳이 제주였다고. 무작정 내려가 집을 알아봤는데 처음 본 집이 마음에 들어 덜컥 계약했고 그렇게 일사천리로 키우던 강아지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안착하게 되었다고 한다.(그러니까 진짜 여행에서 계획 따위는 필요없는가가 보다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였다.) 물을 좋아하는 강아지들에게 제주는 그야말로 지상낙원. 제주도에서 생활한 2년 동안의 기록을 아주 소소하고 담담하게 적어놓은 글이 참 인상적이면서도 약간의 소외감을 느꼈다.

 

 

제목부터 다시 들여다보자면 '제주일기' 그러니까 일기 형식으로 씌여진 글이다. 일기라 하면 허레허식 없이 씌여진 글이다 보니 앞뒤잴것 없이 당시의 상황을 포착해내듯 적어놓은 글이다. 그러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아까 이야기했다 싶이 나는 처음 접한 작가라 부연 설명도 없이 씌여진 하루 일과는 작가를 잘 아는 이들에겐 친근감을 선사하고, 나처럼 처음 접한 사람에겐 은근한 소외감을 주는 그런 책이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특성에 대해 잘 모르고, 방정맞은 도날드 덕의 목소리를 잘 모르며 보노보노의 아저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나같은 소외감을 맛보리라.(털썩) 그렇다고 책을 이해할 수 없냐면 그건 아니다. 책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저자의 남다른 그림 솜씨로 적절한 상황을 유머있게 담아놓아 소소한 재미는 있다.

 

 

다만 나 처럼 제주도에 정착했던 리얼 생활기, 더 깊은 제주도 속살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부족한 책이 될거 같다. 이건 진짜 일기를 들여다 보는듯 깊은 맛은 없으니까. 다만 제주도가 무지 무지 더워서 전기료가 15만원이 나왔던날 한전에서 걱정스런 마음에 전화를 했다는것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선 차마 볼 수 없는 희귀 곤충들이 집안으로 깜짝 출몰 한다는 사실을 입수한 상태. (벌레를 정말 싫어하는 나로써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볼 수 없는 하귤 이야기, 서핑 이야기와 해녀 학교 이야기 (해녀 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제주도의 야생초 효월 이기영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수확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

 

 

책 중간 중간 담아놓은 강아지 사진들에 눈길이 자주 간다. 너무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들. 비록 소리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풋코가 그 자리를 메우며 지내고 있겠지 싶은 마음에 흐믓하다. 그리고 무척 부럽기도 하다. 나는 언제쯤 그곳 제주에서 소식을 전해볼 수 있을까 하고. 한번 떠나본 사람들은 언제든지 다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올드독 그도 언젠가는 제주를 떠나 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는 '일기'라는 형식의 글 보다는 나처럼 무지한 독자에게 은총을 베푸는 글로 돌아와 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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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4-16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소리가 하늘나라고 떠났군요. 전편의 책을 읽고 좋아했었는데...

해피북 2015-04-17 21:09   좋아요 0 | URL
아 보슬비님은 올드독님을 아셨군요^~^ 강아지 이야기로 책 쓰셨다는걸 어렴풋 알게되었는데 ㅎ
십년을 함께 지낸 강아지 말만 들어두 마음 아픈데 말이죠 올드독님은 집에가면 소리 생각날까봐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셨더라구요 그래두 풋코가 있어 다행이예요

어느 글에 보니 십년을 강아지와 살아봐서 십년은 혼자 살아보고 싶다던 이야기 읽었는데 제생각엔 아마 몇년 못가 다시 강아지 키우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