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유원 옮김 / 이론과실천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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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지구촌을 떠돌고 있다. 마르크스라는 유령이. 사회가 참 팍팍하다고 느껴질 수 록 거듭 회자되며, 서점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는 그의 책들만 살펴만 봐도 이 마르크스라는 유령을 현 시대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167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유효한 글이 참 놀랍기만 하다.

 

 

18세기 봉건주의가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태동한 산업혁명과 그 속에서 싹튼 부르주아 계급의 시작은 오늘날 윤리적 병패를 낳고 갑과 을의 종속사회를 만들고 가족의 급속한 해체와 수 많은 실업자를 배출했으며, 허영에 묶인 권위의식, 사회적의로 부추기는 금융사업과, 그 온전한 결과물로 빛에 떠밀려난 서민들의 삶을 들여만 봐도 그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을 20대의 나이에 미리 예견한 마르크스의 감각은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 자본가들의 세력 앞에 상품으로 내몰려 남들보다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청춘을  저당잡히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마르크스는 이미 167년전에 내다본 것을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부르주아 계급 그러니까 자본가 세력들은 모든 것을  '교환가치'라는 명목 아래 정당화 시키려고 하지만, 그 모순을 받아들여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선택 앞으로만 내몰리며 분노 사회, 삼포 세대, 사포세대, 캥거루족, 자살률 1위라는 멍에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모습은 마치 물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가 물 아래서 끊임없는 발길질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보지만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시한 폭탄에 불과하다. 지금 시대에 읽어도 가슴 떨리는 문장들을 산업혁명이 태동되던 시기, 변혁의 물결이 거세던 시기의 한복판에서 외쳤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팜플릿을 보며 노동자들은 단결하지 않을 수 없었을 성 싶다. 그가 외쳤던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문장 아래 속속 모여들었을 프롤레타리아들의 물결이 어떠 했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대목이였다.

 

 

그렇다면 현 시대는 정말 공산주의 라는 유령의 마르크스가 정답일까. 현 시대의 자본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것을 공평하게 나눠갖자는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가 정말 정답일까? 지구 전체에 마수를 뻗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촉수를 걷어내기 위해  국가의 권력을 향상시키고 사유재산을 없애 공동계획하의 토지 분배를 추진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일자리와 수당으로 공평하게 분배하는 사회만이 정당한 사회일까를 생각했을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눈먼자들의 도시.

 

 

어느날 한날 한시에 눈이 하얗게 멀어버린 도시의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나. 모든것이 공평해지자  혼란의 시작이 되었고 그 속에 새롭게 태어난 계급과 윤리적인 병패는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였다. 공산주의의 체제를 살아가고 있는 나라들의 모습만 봐도 수많은 모순 덩어리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온전한 답은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문제점들을 즉시하면서 현 시대에서 자행되는 윤리적 병패들을 되돌리자는 뜻을 품어본다. 옳은 것을 옳지 못하게 내모는 비도덕적 윤리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고 청춘에겐 청춘을 돌려주며 모든 목적을 '이윤추구' 보다도 '공동체 의식'에 초점을 맞춰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혼자만 독식하는 세상이 아니라, 독식하지 않는 세상.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 가 제시했던 자본이 부패하여 순환하는 세상이 된다면 많은 모순들이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아내는 자식을 죽이고, 자식은 부모를 죽이고, 형제는 형제를 죽이고, 이웃은 이웃을 죽이는 사회. 빛과 빛이 맞물려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사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사회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결혼? 출산? 직업? 이 모든 말들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씁슬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더 많은 것을 가질려는 자본가는 가질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빈곤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노동자 역시 가질려는 욕심을 내려 놓고 모두가 이익 앞에 평등한 사회.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에 주어진 이익에 만족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와 사회적 분위기의 역할을 뒷방으로 밀려났던 국가가 이제라도 제 빛을 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부르주아 계급은 인격적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해소 시켜버렸으며,
문서로 인증되고 정당하게 얻어진 자유를 단 하나의 양심없는 상업적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 한마디로 부르주아 계급은 종교적 정치적 환상속에 숨어있는 착취를 공공연 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건조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p12

부르주아 계급은 100년도 안되는 계급 지배 기간에 지나간 모든 세대들을 합한 것 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하였다. 자연의 힘의 정복, 기계장치, 산업과 농경에 대한 화학의 응용, 기선항해, 철도, 전신, 전 대룩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갑자기 땅에서 튀어나온 주민들, 이러한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무릎을 베고 졸고 있었음을 이전의 어떤 세기가 예견 하였겠는가 p16

자본이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프롤레타리아 계급, 즉 현대의 노동자가 발전하는데, 그들은 일을 찾을 수 있을때만 살아갈 수 있을 뿐이요, 자신의 노동이 자본을 증식 시켜야만 일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을 조각 내어 팔아야만 하는 이 노동자는 다른 모든 판매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그에 따른 다른 상품과 똑같이 모든 경쟁의 부침과 시장의 변동에 내 맡겨져 있다. p18

공장주에 의한 노동자 착취가 끝나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임금을 현금으로 지급 받으면, 다른 일부 부르주아 계급이 노동자에게 덮여 오는데 이들은 집주인, 소매상인, 전당포, 영업자 들이다. p19

이념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정신적 생산이 물질적 생산과 함께 변화한다는 것 외에는 무엇인가? 어떤 시대의 지배적 이념은 항상 지배 계급의 이념 이였을 뿐이다 p38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강제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지배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족쇄 말고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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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9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시즘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사상적 도구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는 절대로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해피북 2015-03-19 23:27   좋아요 0 | URL
사상적 도구라는 말씀에 깊은 공감을 해봅니다 어떤 원리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씀에두요

배려와 욕심을버린 중립적인 삶은 이상일 뿐이겠죠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