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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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행과 북학의 시대.

 

조선사 중에서도 특히 정조의 시대였던 18~19세기의 이야기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탕평책의 시행으로 능력있는 인재들을 골고루 등용했던 일들은 문화 부흥을 이뤄냈을 뿐아니라, 일명 백탑파(오늘날엔 원각사지 10층 석탑)라 불리우는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홍대용, 박지원등의 자칫 놓치면 아까웠을 인재들의 이야기가 꽃피우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나라와 문물교환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연행이 시작되고, 그로인해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박제가의 『북학의』등이 저술되면서 북학의 시대가 꽃피웠기 때문이다.

 

『서재에 살다』의 저자 박철상님 역시 19세기야 말로 문화부흥기라 이야기 한다. 어느때보다 외래문화와 접촉이 빈번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지식인들은 문화 수용에 앞서 깊은 고민에 빠졌던 시기이므로 오늘날 범람하는 외래문물에 대한 우리 시대와도 고민이 닮아있다고 이야기 한다.p10 그러므로 친숙한 그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과 이념에 관해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는 시간을 갖기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2년동안 『국회도서관보』에 실린 내용을 묶어놓았다.

 

2. 19세기의 문화샬롱.

 

그 옛날 조선시대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별명으로 '호'를 부르거나, 그 사람의 덕됨이나 성향을 담아 '자'를 만들어 부르기를 즐겼는데 그 사람의 호나 자를 살펴만 봐도 그 사람이 지향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름이 귀한 시대이기도 했지만, 유교사상이 깊었던 조선사회에서는 자신의 '이상'이나 '이념'이 실현되는것이야 말로 최고 중에 최고라고 생각했던 시대 였기에 늘 잊지 않고 기리기는 마음으로 호나 자로써 불렀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이름에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니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재'에도 자신의 이상과 이념을 담아 부르곤 했는데 간서치(看書痴) 이덕무에 서재는 '구서재(九書齋)' 라 하여 독서(讀書), 간서(看書),장서(藏書),초서,교서(校書),평서(評書),저서(著書)라 하였다. 풀이해보면 읽고, 보고,소장하고, 베끼고,교정하고,평을달고,저술하고,빌리고,볕에 말리는p79 등 책으로 할수 있는 모든 일을 의미했다. (후에 이덕무는 팔분당이란 이름을 짓고 성인의 뜻을 품기도 했다) 또한 정약용의 서재는 노자의 도덕경중에 '여(與)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 처럼하고 유(猶)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p14의 글자를 따서 여유당(與猶堂)이라 이름 하였는데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을 호심탐탐 노리는 세력들로 부터 경계하겠다는 뜻을 품기도 했다. 서재에는 때론 그리운 마음을 담아내기도 했는데, 헌종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던 윤현정은 헌종이 생전에 좋아했던 벼루들을 모아 '세개의 벼루가 있는 서재'란 뜻의 삼연재(三硯齋)이름 짓기도 했고,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셨던 황상은 '일속산방(一粟山房)' 이라 하여 좁쌀보다 좁은 집 이란 뜻을 품고 은자가 되길 소망하기도 했다.

 

 

각자의 '이상'을 담고 있는 서재는 교류와 만남의 공간이 되기도 했는데 연경길에 올랐던 홍대용이 유리창 거리에서 반정균과 엄정의 만남으로  훗날 이덕무, 박제가, 김정희등이 옹방강과 같은 인물을 만나 문화를 교류하는 장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두 문화의 만남은 그림, 글, 서책을 나누고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거나, 존경하는 인물들의 그림, 좋은 글귀, 받아온 편액(扁額)을 걸어 즐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책에선 덜 다뤄진 부분이라 아쉽긴 하지만, 때론 서재에 모여 악기를 연주하며 풍류를 즐기며 시를 짓고 다양한 문인들이 발걸음하여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때론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간이 되기도 했으며 가까운 벗이 밤늦게 찾아오면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좋은 책이 생기면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문화의 공간이였기에 오늘날로 치면 문화샬롱쯤이 되지 않을까.

 

 

이런 문화의 흐름은 정조라는 인물이 탕평책의 시행이나, 청나라 문물의 수용을 거부했더라면 오늘날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열하일기』라는 파격적인 글을 써서 문체반정이라는 곤욕을 치뤄야했던 박지원이나 박제가의 사정은 문물의 수용에 엄격한 기준이 있었고, 그것으로 혼란한 시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앞선 시대의 몸살이야말로 오늘날에 다양한 문화발전에 기틀이되고 더욱이 출판산업의 발전은 오늘날 무엇보다 큰 문화유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의 표지에서 사용된 '책가도'를 병풍으로 사용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던 정조였기에 19세기에 이르러 장서가들의 풍경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것은 배움에 대한 갈증, 갈망, 허기짐, 욕구등은 문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풍경이자 오늘날의 모태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3. 책의 아쉬운 점.

 

지금은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라고 불리우는 백탑 아래 모여 살던 인물들에 관심이 많아 일명 백탑파라 부르며 그와 관련된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던 내겐 좀 아쉬운 책이였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원전을 쓰고 풀이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읽고 있다보면 분명 잘 차려진 음식인데 뭔가 밍숭하고 간이 들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분명 재밌는 이야기, 때때로 보여지는 사진자료도 좋지만, 저자의 깊은 생각들이 빠져서 그저 원전을 풀이해주는것에 그치고 일전에 읽었던 책들과 상당부분 겹쳐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책의 주제를 '서재'로 삼았으메도 서재의 이야기는 크게 와 닿지 았다는점이 아쉽다.차라리 주제를 '서책에 살다'로 해서 책에 더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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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2-17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같은 이유로 저도 읽을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어요. 서재 이야기가 아니라서_ 쿨럭;; 그래도 도서관에서 마주치게 되면 한번 펼쳐보려구요.

해피북 2015-02-17 15:42   좋아요 0 | URL
저두 백탑파에 혹해서 구입했는데 ㅎ 아쉬운 부분이 생기더라구요 쿨럭 ㅋㅡㅋ

봄덕 2015-02-1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군요. ㅎㅎ 오늘 백탑파에 대한 네이버 자료가 떴던데요. 리뷰를 보니... 박지원, 홍대용 등 실학자들에 대한 각각의 책이 훨씬 나을 것 같아요. ^^

해피북 2015-02-17 20:24   좋아요 0 | URL
오! 네이버에 자료가 있군요 훗딱 가서 보고와야겠어요ㅋㅡㅋ 감사해요 ㅋ